The baseball genius who chews up America RAW novel - Chapter (186)
미국 씹어먹는 야구 천재-186화(186/400)
3회 말 선두타자로 도진이 타석에 들어섰다.
마스크를 쓴 후안 라미레즈는 도진을 힐끗 쳐다봤다.
‘와우.’
후안은 당장 어제 미디어를 뜨겁게 달군 도진을 알게 되었다.
그리고 그 첫 소감은 이랬다.
‘정말 더럽게 어리다.’
안 그래도 아시아인은 생김새 자체가 어린데 실제로 나이까지 어려버리니 이 무대가 어디인지 착각이 들 정도.
하지만 이내 표정을 굳혔다.
외견으로 상대를 무시해선 안 된다.
아무리 활약의 상대가 지쳐 떨어져 나가기 직전의 메츠라고 한들.
‘그들도 엄연히 메이저리거야.’
무엇보다 옆에 있는 선수가 이곳에 있다는 건 그만한 실력을 갖췄다는 의미다.
더군다나 필리스의 지금 상황은 한 경기, 한 경기가 플레이오프와도 같았다.
빌어먹을 브레이브스가 뒤꽁무니를 바짝 쫓고 있었으니 말이다.
‘꼬마야. 미안하지만 봐주는 건 없다.’
오늘 좌완 선발 투수 미에크의 컨디션은 괜찮았다.
아무리 에인절스가 식물 타선이라고는 하지만 4선발 투수가 3이닝 동안 고작 2안타밖에 내주지 않았다.
‘그리고 뭐. 루키야 뻔하지.’
표정 관리는 꽤 능숙해 보였지만, 심장이 터지기 직전일 터.
‘나 역시도 데뷔 후 두 달 정도는 그랬잖아?’
경기가 끝난 직후 긴장 때문에 손에 쥔 포크가 덜덜 떨렸다.
이 아이가 메이저리그를 포기한다면 모를까.
살아남겠다는 의지가 있다면 여기서 무언갈 보여줘야 한다는 것을 안다.
그리고 그것은 성적의 압박으로 이어질 테며, 장점을 십분 활용하지 못할 테며 스윙도 커질 것이다.
‘선구안이 좋은 선수도 시야가 좁아지는데 18세가 그 중압감을 견딜 리가 없겠지.’
초구는 바깥쪽 패스트볼.
도진은 메츠와의 대결에서 몸쪽 패스트볼을 잡아당겨 홈런을 만들었다.
그러므로 굳이 그에게 좋은 기억을 되살려줄 필요는 없었다.
초구.
투수가 와인드업했다.
그런데 공이 손을 떠날 즘 도진은 번트 자세를 취했다.
‘응? 번트?’
그 모습을 본 내야수들이 전부 전진했다.
후안도 언제든지 뛰쳐나가겠다고 준비하고 있었다.
번트에 대한 빠른 대처였다.
하지만 투수는 도진의 모션을 보고 흔들렸다.
필리스의 3선발은 구속은 빠르지 않지만 제구 자체는 훌륭한 투수였다.
하지만 도진의 갑작스러운 번트 자세로 인해 폼이 살짝 무너졌고.
포수가 요구했던 코스와는 다르게 공 한 개 정도가 빠졌다.
그리고 이에 맞춰 도진은 배트를 곧장 회수했다.
퍼억.
“볼!”
심판의 콜이 들려옴과 즉시에 후안 라미레즈는 아랫 입술을 꽉 깨물었다.
‘이것 봐라?’
벌벌 떨기만 할 줄 알았던 18세 선수가 오히려 배터리를 흔들려고 한다.
후안은 이 상황이 너무나도 어이가 없었다.
한편, 기분 좋은 초구를 맞이한 도진은 속으로 쾌재를 불렀다.
‘좋아. 일단 심리적으로는 앞섰다.’
결과가 나올 때까지는 웃을 수 없겠지만, 원래 투수와의 수 싸움에서 초구가 제일 중요한 법이다.
초구의 결과로 타자와 투수의 마음가짐이 달라지기 때문이다.
‘일단 조금 더 흔들어볼까?’
2구.
도진은 다시 한번 번트 자세를 취했다.
하지만 배터리는 이 상황도 염두에 둔 것인지 이번 투구는 스트라이크 존으로 향했다.
도진은 다시 한번 타이밍 맞춰 배트를 회수했다.
퍼억.
“스트라이크!”
도진은 아랫입술을 살짝 씹고는 배터박스에서 벗어났다.
‘역시. 쉽지 않네.’
세이프티 번트는 없다.
상대는 자신의 의도를 단번에 알아차렸다.
또한 평소보다 전진 수비하는 내야수들 때문에 번트를 댄다 한들 1루에서 살 확률은 매우 낮았다.
‘그래도 수비를 앞으로 끌어들였으니 1차 계획은 성공이긴 한데.’
3구. 도진은 떨어지는 커브임을 간파하고는 배트를 내지 않았다.
덕분에 카운트는 2-1.
4구째 공은 다시 한번 바깥쪽 패스트볼.
도진은 원래 배트를 낼 생각이었다.
수비도 전진해 있었으며 갖다 맞춰 수비의 키를 넘길 수만 있다면 안타 확률은 올라간다.
하지만 계획과는 달리 배트를 내지 못했다.
투수가 공을 던진 코스가 예상보다 너무 멀어 보였기 때문이다.
“스트라이크!”
2-2 카운트.
투수는 승부구를 던질 차례이며 타자는 비슷해 보여도 배트를 내야 한다.
‘참는다. 무조건 참는다.’
이렇게 된 이상 풀카운트까지 끌고 가야 한다.
지금껏 총 4개의 공 중 3개가 패스트볼.
그러니 다시 한번 패스트볼로 카운트를 잡으러 들어오지는 않을 테니까.
자신은 루키이며 포수도 이를 알고 있다.
조급함을 역이용하겠다고 변화구로 스윙을 끌어낼 것이다.
그러니 비슷해 보여도 무조건 배트를 참아내야만 한다.
혹시 스트라이크 존에 공이 들어와도 상관없다.
메이저리그 최고 포수를 흔들면서 출루할 방법은 50%의 확률을 믿는 방법밖에 없으니까.
5구. 회전이 걸린 공은 스트라이크 존으로 향했다.
하지만 도진은 이 악물고 견뎌냈다.
슬라이더는 홈플레이트 부근에서 꿈틀대더니 바깥쪽으로 크게 휘어져 나갔다.
“볼!”
휘유.
도진은 눈을 번뜩 뜨며 타석에서 물러섰다.
‘됐어.’
풀 카운트. 도진은 포수를 힐끗 쳐다봤다.
그와 눈이 마주쳤다.
패스트볼 가능성을 배제해? 그런 눈빛으로 자신을 쳐다보고 있었다.
그러므로 투수가 여기서 던질 수 있는 공은 패스트볼밖에 없다.
‘내가 이름을 좀 날린 타자라면 모를까.’
루키 상대로 볼넷 따위 내주지 않을 테니까.
만약 다시 한번 변화구가 온다면?
‘그럼 인정이지.’
하지만 과연 포수가 이를 용납할까?
절대 그럴 리 없다.
공은 던져졌다.
도진은 다시 한번 바깥쪽으로 향하는 공에 배트를 냈다.
이번에도 멀어 보였지만, 이미 저 코스의 공은 한번 접했다.
따-악!
결대로 밀어친 공은 1루수 키를 훌쩍 넘겨 우익수 앞까지 데굴데굴 굴러갔고.
1루에 안착한 도진은 주먹을 불끈 쥐었다.
이를 바라보던 후안 라미레즈의 표정이 와락 구겨졌다.
* * *
아무리 야구가 확률 싸움이라지만, 엄연히 실력이 존재하는 법이다.
그렇기에 쉽게 갔어야 할 상대로 안타를 맞은 후안 라미레즈는 충격에 휩싸였다.
‘내가 저 꼬맹이한테 말렸다고?’
맞고 나서 깨닫게 됐지만, 저 아이는 꽤 똑똑했다.
자신이 약자라는 사실을 완벽히 인지했음에도 조급한 모습을 보이지 않았다.
초구부터 배터리를 흔들려고 들었다.
카운트가 몰린 상황에서도 배제도 하더니 결국 2-2보다 타자가 조금 더 유리한 풀 카운트까지 끌고 갔다.
‘여간내기가 아니었네?’
하지만 후안 라미레즈는 당황하지 않았다.
이미 출루시킨 주자를 신경 써봤자 승부에 일절 도움 되지 않는다는 것을 알았으니 말이다.
‘투수는 타자와 승부하게끔 내버려 두고 주자는 내가 신경 쓴다.’
후안 라미레즈는 야수들에게 진정하라는 제스처를 보내고는 다시 쪼그려 앉았다.
선수들도 동요된 마음을 삭였다.
이닝의 선두타자를 출루시켰다고 한들 아직 실점한 것은 아니며.
마스크를 쓴 포수의 팝 타임은 1.7초대.
신계에 도달한 포수였다.
대신 상대 주자는 빠르다고 한들 전혀 위협이 되지 않는 18세 선수였을 뿐이다.
하지만 이내 후안의 이마에 핏대가 섰다.
‘저 건방진……’
도진의 리드 때문이었다.
일반적인 리드보다 한 발짝 더 나가 있는 걸로 보아 언제든 뛸 수 있다는 경고를 보내고 있었다.
‘이제 메이저리그에 갓 올라온 신인 자식이!’
후안은 어금니를 꽉 물었다.
이빨 갈리는 소리가 새어 나가지 않았지만, 분노로 가득 차 있었다.
초구는 바깥쪽 패스트볼.
퍼억.
존을 살짝 벗어나며 볼이 됐지만, 후안은 공을 받자마자 1루로 송구했다.
도진은 재빨리 몸을 날려 1루로 귀루했다.
“세이프! 세이프!”
후안도 결과를 신경 쓰지 않았다.
지금 송구로 상대는 뛰었다가는 잘못된다는 것을 깨달았을 터.
‘더는 내 신경을 거스르지 않겠지.’
하지만 이는 착각이었다.
도진은 다시 한번 베이스에서 리드를 크게 가져갔다.
결국 도진의 행동에 자존심이 긁힌 후안은 견제구 사인을 냈다.
다만 이번에도 도진은 제시간에 귀루했다.
“세이프! 세이프!”
고작 18세 아이의 행동에 견제당하고 있다니.
건방진 자식!
하지만 시원하게 속으로 욕을 내뱉은 후안은 곧 평정심을 되찾았다.
너무 주자를 신경 쓰면 결국 타자를 잡을 수 없다.
또한 앞선 행동으로 알 수 있었다.
‘저건 블러핑이야.’
그는 뛰지 않을 것이다.
괜히 뛰었다가 주루사라도 당한다면 지금껏 쌓아 올린 점수가 와르르 무너져 내릴 테니까.
후안의 예상은 이번만큼은 들어맞는 듯했다.
카운트가 2-2가 될 때까지 도진은 리드만 조금 크게 가져갔을 뿐 뛸 생각이 전혀 없었다.
‘내가 너무 과민 반응을 했었군.’
18세 메이저리거다.
자신보다 1년이나 앞서 데뷔한 선수였기 때문에 모르는 사이 자존심이 상했던 모양이다.
지금 와서 따지고 보면 그저 주루 스킬 좀 있는 선수가 배터리를 흔들려는 상황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이래서 나이 어린 게 무기가 된다니까?’
은연중에 상대를 무시하게 된다.
대신 파악이 완벽히 끝난 지금 더는 그를 신경 쓸 필요는 없겠지.
하지만 후안은 크게 오해했다.
뛰지 않겠다고 확신을 가진 도진은 투수가 발을 치켜드는 순간 2루를 향해 뛰었으니까.
‘젠장!’
잠깐의 방심. 그 틈을 도진이 파고들었다.
공을 잡자마자 2루로 송구해봤지만, 0.1초의 망설임 때문에 결과는.
“세이프! 세이프!”
1사 2루.
타석엔 에인절스의 2번 타자 멕긴.
그는 우전 안타를 뽑아내며 도진을 홈으로 불러들였다.
승부에서만큼은 잃을 것 하나 없는 도진의 도박이 완벽히 먹혀들었다.
* * *
“오 마이 갓!”
호세는 홈을 밟고 더그아웃으로 향하는 도진에게 시선을 떼지 못한 채 호들갑을 떨었다.
포수를 공략하라고 했다.
그런데 이게 정말 포수를 공략하라는 의미는 아니었다.
후안은 MVP급 포수지만 투수는 4선발이다.
어떤 미친놈이 약자를 두고 강자를 공략하겠는가?
도진도 이를 알고 있었을 것이다.
‘현명한 아이니까.’
초구에 번트로 상대 투수를 흔들 때만 해도 잘하고 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결과는?
대답은 옆에 앉아 있던 벨 조이스에게서 들려왔다.
“포수를 가지고 놀았군.”
“벨. 저게 말이 되냐?”
“결과가 보이지 않는 걸 보니 요즘 눈이 많이 침침한가 보군. 정말 은퇴할 때가 되었어.”
호세는 에휴! 물은 내가 잘못이지 라는 표정을 지었지만, 말을 덧붙였다.
“그 뜻이 아니잖아? 상대는 후안 라미레즈라고?”
“그렇지. 후안 라미레즈지.”
“놈을 몰라서 하는 얘기냐?”
“모를 리가 있나. 당장 우리 팀에 1순위로 영입하고 싶은 포수지. 왜 은퇴하게?”
“쓰으벌! 내가 은퇴하면! 저놈이 온다더냐? 그럼 기꺼이 자리 내어줄게!”
아무리 돈을 많이 준다고 해도 에인절스를 온다고?
애당초 MVP급 포수에게 수천억을 안겨주려는 구단은 에인절스 말고도 여럿 있었다.
그런 선수를 상대로 도진은 주눅 들지 않고 자신의 플레이를 보여줬다.
벨은 피식 웃었다.
“그 자리도 참 안전 자산이군.”
“닥쳐라.”
호세는 입술을 빼쭉 내밀었다.
하지만 도진이 더그아웃으로 들어오자 언제 그랬냐는 듯 입꼬리를 치켜올렸다.
“잘했다! 그거다!”
도진은 호세에게 쭈뼛쭈뼛 다가가 나지막이 읊조렸다.
“심장 떨어지는 줄 알았어요.”
“아무렴 어때. 결과만 좋으면 됐지.”
호세는 기분이 참 좋았다.
9월을 앞둔 마지막 경기에서 도진은 후안 라미레즈를 상대로 안타와 도루를 뽑아냈다.
이런데도 감독이 그를 안 쓴다면?
‘그럼 진짜 문제 있는 거야.’
물론 주전을 확보했다는 것은 아니다.
‘대신 이 무대에서 남아 있어야만 하는 이유를 증명했다. 그러니 이대로만 가자고.’
이제 시즌도 한 달밖에 남지 않았다.
도진이 남은 경기에서도 좋은 모습을 보인다면?
내년 에인절스의 주전 자리는 그의 것일 테니까.
아직 몇 번의 증명이 더 필요하겠지만, 첫 단추는 너무나도 완벽하게 꿰맸다.
아니. 메이저리그 역사상 루키의 이런 환상적인 활약의 연속은 없었기에 더욱 기대가 됐다.
무엇보다.
‘경기는 이제 시작이잖아? 어디 더 날뛰어봐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