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baseball genius who chews up America RAW novel - Chapter (188)
미국 씹어먹는 야구 천재-188화(188/400)
식당에 들어선 도진은 생선과 샐러드를 접시에 가득 담고 식탁에 앉았다.
호세는 고기가 수북이 쌓인 접시를 도진의 옆에 내려놓고 착석했다.
“오늘 경기 휴식이지?”
“네.”
“너무 상심하지 마라.”
“상심 안 했어요.”
도진은 3연전 마지막 경기의 선발 라인업에서 제외됐다.
하지만 그게 감독의 계획에서 제외됐다는 의미가 아니었으므로 딱히 개의치 않았다.
“확실히 표정은 좋아 보이네. 그런데 말이야. 너 왜 오늘은 생선만 먹냐?”
“저 쉴 때는 생선만 먹으라고 하던데요?”
“누가?”
“누구는 아니고요.”
도진은 핸드폰을 꺼내 하리와 마이크가 정리해둔 식단을 호세에게 보여줬다.
“너 전문 영양사도 있어?”
“그런 건 아니에요.”
“그럼, 네가 정리한 거야?”
“아뇨. 친구들이 정리해줬어요.”
“친구들이 이런 것도 해준다고?”
호세는 진절머리가 난다며 혀를 내둘렀다.
“이야. 루키가 이런 대우도 받고 좋은 친구들을 뒀네.”
“그렇죠? 물론 아직 데이터를 쌓는 중이라 이게 확실치는 않아요. 솔직히 오히려 이 식단에서 벗어나서 다른 데이터를 쌓는 편이 더 좋긴 한데 제가 지금 여유를 부릴 때는 아니잖아요?”
당장 성적을 내야 하는 처지에서 믿을 수 있는 데이터가 이뿐이었다.
“음식은 중요하다. 당연히 데이터를 쌓아놔야지. 그럼, 여기에 나와 있듯이 원정 경기 출전할 때는 고기와 밥을 먹는 거야?”
“네. 밥을 먹어야 경기 중에 힘이 덜 빠지는 것 같더라고요.”
“더블 A에도 밥이 있었어?”
“없었죠. 그래서 급할 때는 마트에 가서 즉석밥 사서 먹거나 했어요. 평소에는 나가서 식사를 해결하고 들어왔고요”
호세는 도진의 접시를 턱으로 가리켰다.
“여기선 밥을 주니까 지금 행복하겠네.”
“먹는 것 때문에라도 마이너리그에 내려가면 안 된다는 말을 들어보긴 했는데요. 새삼 느끼고 있습니다.”
“그렇지. 그러니 계속 남아 있어라.”
도진은 입술을 빼쭉 내밀었다.
“남고 싶죠.”
“잘하고 있잖아?”
“나쁘지 않죠. 하지만 연차가 쌓일 때까지 계속해서 성적을 유지해야 하는 처지라서.”
때마침 다른 선수들도 속속히 접시를 들고 등장했다.
평소 보던 선수들이 아닌 추가 로스터에 합류한 선수들이었다.
호세는 도진에게 힘을 실어주기로 했다.
“드디어 올 게 왔구나. 그래도 넌 다행이긴 하네.”
“왜요?”
“성적이 반대였어 봐. 넌 지금 나랑 겸상이 아니라 저기 구석 가서 눈물이나 훌쩍대며 먹고 있었겠지.”
도진은 동의한다며 고개를 끄덕였다.
솔직히 운이 좋았다.
연장전에서 데뷔하게 되어 완벽한 결과를 이뤘다.
필라델피아와의 경기에서도 그 기세를 이어 나갈 수 있었다.
“따지고 보면 쟤네도 네 후배야. 알지?”
도진은 피식 웃었다.
“그런가요?”
“쟤넨 40인 로스터지만, 넌 엄연히 26인 로스터에 포함된 선수니까. 그러니 당당하게 어깨를 펴라.”
“노력해볼게요.”
“그런 마음가짐으로는 살아남지 못해 인마!”
“밥 때문에라도 살아남겠습니다.”
호세는 만족스럽다며 고개를 끄덕였다.
“차라리 낫네. 물론 밥 말고도 다른 이유 때문에라도 남고 싶을 거다.”
* * *
호세가 말한 남아야 할 다른 이유는 바로 원정 경기였다.
마이너리그에서는 버스나 비행기를 타고 이동하는데.
메이저리거들은 전용기를 타고 원정 경기를 떠난다.
도진도 메이저리거로서 원정 경기는 처음이었던지라 눈이 휘둥그레졌다.
‘너무 편한데?’
직원들은 선수들의 편의를 위해 짐도 따로 챙겨줬다.
개인 물품은 개인이 챙겨야 하는 마이너리그 때와는 확실히 달랐다.
좌석은 또 어떻고.
‘조금 과장 좀 보태서 말하자면 침대와 다름없는데?’
도진은 엉덩이로 좌석의 쿠션감을 확인하겠다며 몇 번 방방 뛰는 시늉을 했다.
이를 옆에서 지켜보던 호세는 혀를 날름거렸다.
“애가 따로 없네.”
“애 맞아요.”
“그래. 애가 맞지. 내가 얘랑 동등한 메이저리거라니. 자존심이 참 상하는군.”
“에이. 동등하진 않죠. 저보다 연봉도 훨씬 높잖아요?”
“전혀 위로가 되지 않는다.”
도진은 그러거나 말거나 파일에서 A4 용지 한 장을 꺼내 스윽 훑어봤다.
“그건 또 뭐냐?”
“아. 제가 경기 전에 늘 보는 건데요. 오늘은 비행기도 편하겠다. 할 것도 없으니 보려고요. 이 정보는 호세에게도 도움이 되겠네요. 보실래요?”
도진은 종이를 호세에게 내밀었다.
“제가 오늘 선발 출전하잖아요. 이건 상대 선수들 정리해둔 정보예요.”
호세는 코웃음을 치며 도진이 내민 종이를 툭 쳤다.
“야. 나 메이저리거야.”
굳이 코흘리개가 정보를 알려주지 않아도 괜찮다.
이미 상대 선수의 정보는 머릿속에 입력돼있다는 의미였다.
도진은 종이를 다시 내밀었다.
“복습이요. 복습.”
“쯧. 필요 없다니까 그렇네.”
도진이 계속해서 종이를 들이밀자 호세는 한숨을 내쉬었다.
“한숨 자야 컨디션 유지할 수 있는데.”
호세는 에휴! 한숨을 내뱉고는 종이를 받고 스윽 훑었다.
그 순간 동공이 팽창했다.
“야. 이게 맞아?”
“뭐가요?”
“데이터가 무슨…… 전력 분석관급인데?”
“꽤 괜찮게 정리돼 있죠?”
괜찮은 정도가 아니라 완벽하잖아!
호세는 입만 뻐끔대며 종이를 멍하니 들여다보았다.
상대 투수에 관한 것이었다.
어떤 코스의 제구가 잘 되는지.
코스마다 구종을 몇 퍼센트 구사하는지까지 나와 있었다.
“그 정도면 오늘 타석에서 도움이 조금은 되지 않겠어요?”
호세는 대답하지 못했다.
자신이 모르는 정보들도 나열되어 있었으니 말이다.
“혹시 타자에 관한 것도 있냐?”
하면서 도진의 파일을 스윽 쳐다봤다.
파일이 빵빵하게 터질 것 같은 걸로 보아 분명히 있을 것이다.
“누가 궁금하세요?”
“조나단 무반.”
“오클랜드 2번 타자네요.”
“어. 이상하게 그놈 생각이 전혀 안 읽혀. 그놈이 출루할 때마다 말렸거든.”
도진은 파일을 주섬주섬 뒤지더니 이내 조나단 무반에 관한 종이를 호세에게 내밀었다.
“여기요.”
“이, 이거 맞아?”
“뭐가요?”
“아니. 핫존과 콜드존은 그렇다 치자. 나도 대부분 인지는 하고 있으니까. 그런데 변화구와 패스트볼에 따라 다시 핫존과 콜드존을 또 나눈다고?”
“그렇죠? 제가 생각해도 좀 병적이긴 해요.”
“이거 도대체 누가 했냐? 네가 직접 한 거냐?”
“그럴 리가요. 제 친구가 했어요.”
“친구?”
“네. 고등학교 때 저와 배터리를 이룬 친구였어요.”
“전문가보다 나은데? 전문가도 이렇게까지 안 해.”
“뭐. 굳이 그렇게까지 할 필요가 없어서 아니겠어요?”
호세는 고개를 끄덕였다.
핫존과 콜드존만으로는 타자와 승부할 수는 없는 법이니까.
“그렇긴 하지. 그래도 결국 정리를 해두는 편이 더 좋긴 해.”
하지만 이걸 역에 역으로 다시 이용하는 데이터로 쓴다면 상당히 도움이 될 것이다.
그만큼 수 싸움은 한 치 앞도 내다볼 수 없었으니 말이다.
호세는 조나단 무반에 관한 정보를 전부 머릿속에 입력해 두었다.
평소 자신이 아는 것들도 상당수 있었지만, 전혀 예상치 못한 것들도 있었다.
더군다나 선수의 습관까지 전부 적혀 있었으니 어찌 놀라지 않을 수 있겠는가.
“너 메이저리거 됐다고 친구가 힘 좀 쓴 건가?”
“아닌데요?”
“응?”
“저 더블 A에서도 친구가 보내 준 정보들을 참고했어요.”
“더, 더블 A에서도?”
“네.”
“너 온종일 연습만 하잖아.”
도진은 연습벌레였다.
스프링 캠프에서도 그랬고, 메이저리거가 돼서도 그랬다.
그러므로 당연히 마이너리그에서도 그랬을 것이다.
“연습 이후에는 선수들 정보를 달달 외웠어요.”
“개, 개인 시간은?”
“지금 개인 시간 따질 때는 아니죠.”
네가 인간이냐? 기계 아니냐?
아니. 도대체 사람이 개인 시간 없이 살 수가 있나?
호세의 턱이 벌어졌다.
“그럼, 스트레스 해소는?”
“이것 자체가 스트레스 해소되는데요?”
“무슨 말이냐.”
“야구 선수라면 상대를 이겼을 때 스트레스가 풀리는 거 아니에요?”
“반만 맞고 반은 틀려. 엄연히 프로 야구는 일이야. 일과 개인 시간은 다르잖아?”
도진은 혼잣말로 중얼거렸다.
“난 아닌데.”
호세는 어이없다며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도진은 외적으로만 최선을 다하는 것이 아니었다.
이렇게 내적으로도 탄탄하게 성장하고 있었다.
‘이러니 18세에 메이저리거가 되지.’
그리고 18세 메이저리거가 되어서도 좋은 활약을 펼치고 있었다.
아무리 두 경기밖에 치르지 않았다고 한들. 어떤 선수가 18세부터 괴물들 상대로 좋은 활약을 펼칠 수 있겠는가.
더 나아가 솔직히 까놓고 얘기해서 이렇게까지 할 수 있는 선수가 얼마나 있겠는가?
‘아예 없다고 확신한다.’
도진을 제외하면 그랬다.
선수들은 마음의 안정이 필요한 법이다.
그래서 가족을 꾸린다거나 취미 활동으로 마음의 안정을 가져가려 한다.
왜 선수들이 결혼도 하고 술도 마시러 다니고 여가 활동을 하러 다니겠나?
잘나가는 메이저리거들이 전부 야구만 하는 것은 아니었다.
이렇게 활활 불타올라봤자 나중에 식어버린다면?
번 아웃. 슬럼프가 되어 돌아올 것이다.
하지만 호세는 이상하게도 도진이 걱정되지 않았다.
‘얘는 오히려 야구를 하지 않을 때 불안해하는 편이지.’
더군다나 연습이든 시합이든 야구를 할 때만큼은 미소가 끊이질 않았다.
“오해하지 말고 들어. 정말 걱정돼서 하는 말이니까.”
“경청 중입니다.”
“야구랑 결혼할 건 아니지?”
“야구랑 결혼을 어떻게 해요.”
“다행이네.”
호세는 말뿐만이 아니라 진심으로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그는 역시나 에인절스를 바꿀 인재였다.
* * *
뻐엉!
[와우! 오늘 호세 컨디션이 상당히 좋아 보이죠?] [그렇습니다. 오늘 2번의 타석에서 2개의 홈런을 기록하네요! 마치 상대의 수가 다 읽히는 모양입니다.] [이뿐만이 아닙니다. 오클랜드의 핵심 조나단을 꽁꽁 묶어 놓고 있어요.]오클랜드의 첫 원정 경기에서 에인절스는 호세의 활약으로 3:1로 승리했다.
호세는 경기가 끝난 즉시 도진을 찾았다.
“어이.”
“넵. 오늘 활약 좋았습니다!”
“알아 인마! 그나저나 앞으로 정보 공유 좀 해줘라.”
“문제는 없죠. 그런데 굳이 이 정보 때문에 잘한 것 같지는 않은데요?”
이는 사실이었다.
오늘은 평소보다 컨디션이 좋았다.
굳이 정보가 없었어도 이 컨디션이었다면 좋은 활약을 펼쳤을 것이다.
그도 그럴 것이 정보와는 완전히 딴판으로 흘러갔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것이 바로 야구였다.
어디까지나 통계는 통계일 뿐이다. 그 통계가 100%가 아닌 이상 변수는 언제든지 발생한다.
오히려 자신의 머릿속에 있는 데이터가 오늘 결과를 만드는데 더 적합했다.
‘하지만 이 컨디션을 유지하게끔 도와준 게 저 아이의 마음가짐이야.’
도진은 경기에 나설 때마다 더 좋은 모습을 보이겠다고 노력하고 있다.
원정길에 오른 메이저리거들이 전부 한숨 자고 있을 때 도진만큼은 상대 선수들을 공부했다.
호세는 그런 도진의 옆자리에 앉았다가 덩달아 한숨도 못 자게 되었지만, 아무렴 어떨까.
잠을 자지 않는 대신 매번 2홈런씩 때려낼 수만 있다면 평생 안잘 수도 있다.
‘물론 매번 2홈런씩 때릴 수는 없긴 한데.’
그래도 황혼기에 접어든 자신의 야구 인생에 다시 불이 지펴지기 시작했다.
어쩌면 은퇴 전 마지막 전성기를 다시 한번 누릴 수도 있지 않을까?
호세의 손에 실낱같은 희망이 쥐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