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baseball genius who chews up America RAW novel - Chapter (197)
미국 씹어먹는 야구 천재-197화(197/400)
메이저리거로서의 첫 오프 시즌.
‘할 일이 많다.’
훈련 계획도 짜야 하며 집도 구해야 한다. 가능하면 며칠 휴가를 다녀오는 것도 괜찮을 것이다.
도진은 제일 먼저 에인절스 구장 근처의 월세 4,500달러짜리 아파트를 계약했다.
거대한 수영장을 5층짜리 아파트 건물들이 둘러싸고 있었다.
‘방 하나에 거실 하나인데 이 가격이 맞나?’
처음 느낀 소감은 매우 비싸다는 것이었다.
‘그래도 편의 시설들은 다 있으니까.’
피트니스 센터, 컨퍼런스룸, 작은 바도 있었다.
아파트 내에서 음식도 팔았고 바비큐도 가능하다고.
무엇보다 호세 같은 듬직한 가드가 떡하니 지키고 있어 왠지 믿음이 갔다.
도진은 침대 위에서 빈둥빈둥하다가 핸드폰 알람이 울리자 급하게 집 밖을 나섰다.
코비가 아파트 입구에서 손을 흔들었다.
“킴! 여깁니다.”
도진은 서둘러 그의 앞에 섰다.
“안녕하세요.”
“네. 좋은 아파트 계약하셨네요? 에인절스 선수들도 몇몇 살죠. 연예인들도 있고요.”
도진은 관심 없다는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대신 입에서는 ‘아! 그렇구나!’ 라는 영혼 없는 말이 튀어나오자 코비는 피식 웃었다.
“식사는요?”
“아직이긴 합니다. 드셨나요?”
“저도 아직입니다. 저기 햄버거집 맛있는데 가실까요?”
“해, 햄버거요?”
“왜 그렇게 놀라세요?”
“햄버거 먹어도 되나요?”
“음. 햄버거는 영양소가 꽤 풍부한 편입니다. 사이드 메뉴가 문제죠. 대신 오늘 같은 날은 그 사이드도 먹어야 하지 않겠어요?”
“그것도 그렇네요.”
오프 시즌이니까. 이럴 때 아니면 언제 눈치 안 보면서 먹고 싶은 것들을 먹겠는가?
“대신 조금 시끄러울 수도 있습니다.”
“시끄러운 건 괜찮습니다.”
그런데 음식점에 입장 후 도진은 자신이 생각했던 시끄러운 의미와는 조금 달랐다는 것을 깨달았다.
“킴! 사인 좀 해주세요!”
“사진 좀 같이 찍어주세요!”
“정말 잘 보고 있어요! 응원할게요!”
입장할 때는 그저 힐끗힐끗 쳐다보는 게 전부였는데 자리에 앉는 순간 기다렸다는 듯이 우르르 몰려왔다.
도진은 잠깐 코비의 눈치를 스윽 살폈다.
그가 고개를 끄덕였다.
메이저리거라면 팬 서비스는 기본이다.
오프 시즌에는 하던 일을 멈춰서라도 팬들과 함께하는 편이 좋다.
사인을 해주느라 10분 정도가 흘렀을까. 드디어 앞에 놓인 햄버거를 먹을 수 있었다.
도진은 한입 베어 물고 고개를 절로 끄덕였다.
“맛있네요.”
“그렇죠?”
코비는 도진이 음식을 전부 먹을 때까지 기다렸다.
콜라까지 비우고 나서야 입을 열었다.
“이제 일 얘기 좀 할까요?”
“넵. 전 준비 됐습니다.”
둘은 동시에 피식 웃었다.
엄연히 도진이 코비에게 먼저 연락해서 도움을 요청했던 것인데 그 반대의 상황처럼 보였으니 말이다.
“메이저리그는 어땠습니까?”
“음. 좋았죠. 아쉽기도 하고요.”
“아쉽다니. 킴이라서 할 수 있는 말입니다. 지금 거둔 성적도 예상했던 것보다 훨씬 잘해주셨거든요.”
도진은 뒤통수를 벅벅 긁었다.
“그런가요?”
솔직히 만족스럽지는 않았다.
더 잘할 수 있었으니까.
코비는 개의치 않다는 표정으로 대답했다.
“네. 구단에서도 매우 만족하고 있습니다.”
“다행입니다.”
“어쨌거나 오프 시즌 준비 때문에 제게 도움을 요청한 거죠?”
“귀신이시네요.”
“이제 슬슬 킴이 어떤 선수인지 파악됐습니다. 그래서 요구 조건은요?”
“12월이나 1월 사이에 에인절스 사이언스 센터를 다시 이용하고 싶습니다.”
“그 정도는 아무 문제 없죠. 스케쥴을 잡고 연락을 드리도록 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그 외에는요?”
도진은 미간을 살포시 구긴 후 생각에 잠겼다.
머릿속에서는 질문을 정리해놨지만, 이걸 물어봐도 되나 싶었다.
“뭐든 괜찮습니다.”
“솔직히 제가 오프 시즌을 보내는 게 이번이 두 번째거든요?”
“큭큭. 그랬죠. 마이너리그에서 한 번. 그리고 바로 메이저리그로 올라왔네요. 너무 좋은 성적을 내서 잠깐 잊고 있었습니다.”
도진은 그 정도는 아닌데. 멋쩍은 미소를 지었다.
“어쨌거나 그래서 제가 오프 시즌을 어떻게 보내는지 잘 모릅니다.”
미소 짓던 코비가 이내 표정을 굳혔다.
“흠. 그럴 수도 있겠네요. 솔직히 선수마다 루틴이 전부 다르긴 합니다만, 일단 풀 타임을 뛴 선수들은 대부분 11월까지는 휴식합니다. 야구 선수는 휴식도 중요한 법이니까요.”
“가벼운 운동은요?”
“몸이 굳지 않을 정도로 정말 가볍게만 해주시길 바랍니다.”
예상했던 것보다 훨씬 친절한 설명이 들려왔다.
도진도 다음 시즌 도약을 위해 궁금증을 입 밖으로 내었다.
“1, 2선발 상대로 힘에서 많이 밀렸습니다. 몸을 키우려면 지금부터 준비하는 게 좋을 것 같아서요.”
“몸을 키운다라…….”
코비는 손가락으로 테이블 위를 두들겼다.
“솔직히 말씀드리자면, 제가 조언을 드릴 수는 없습니다. 키우라고 했다고, 혹은 반대로 유지하라고 했다가 성적이 나지 않을 수도 있잖아요?”
“그것도 그렇네요.”
“다음 시즌도 좋은 성적을 내기 위한 고민임을 알고 있습니다만, 결국 경험이 해결해준다는 말밖에 할 수 없겠네요.”
운동선수들에게 신체적인 능력은 단언 도움이 된다.
하지만 모든 운동선수가 피지컬이 좋나?
사람마다 다르므로 그건 아니다.
‘정말 직접 경험 말고는 답이 없네.’
몸을 불렸다가 한번 대차게 말아먹거나.
아니면 유지했다가 시원하게 말아먹고 그때 가서 몸을 키우는 방법밖에는 없었으니까.
“그래도 제 의견이 정말로 궁금하시다면 저는 억지로 몸을 불리기보다는 지금 이대로 가보는 게 좋다고 생각합니다. 결과가 좋았으니까요.”
몸을 키우는 것만이 훈련은 아니다.
적응도 훈련이며 익숙해지면 당연히 지금보다 더 좋은 성적을 낼 수 있다는 설명이 뒤따랐다.
‘이 부분에 대해서는 마이크와도 상의를 좀 해봐야겠네.’
“조언 감사합니다.”
“더 필요한 건 없을까요?”
“네. 없는 것 같아요.”
“휴가 계획은요?”
“아직은 없습니다.”
“그때 갔던 호텔이라도 잡아드릴까요?”
도진은 고개를 저었다.
지금껏 쭉 호텔에서 살아왔는데 다른 호텔에 간다고 한들 달라지는 건 없을 테니까.
코비는 시간을 확인하더니 슬슬 가봐야겠다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필요한 장비 같은 것들은 언제든지 요청해주시면 바로 대령해드리죠.”
“감사합니다.”
“그럼, 먼저 일어나보겠습니다.”
도진은 그를 배웅 후 길거리에서 잠깐 멍하니 서 있었다.
‘음. 뭐하지?’
상우는 내일부터 시즌 전까지 아파트에서 함께 지내기로 했다.
오늘 하루는 통째로 비어 있었다.
그러자 그때. 핸드폰 진동이 울렸다.
[호세: 애송아. 잠깐 좀 볼까? 시간 있지? 우리 그때 먹지 못했던 밥이라도 같이 먹어야 하지 않겠어?]그때라면 스프링 캠프 때다.
‘떨어졌다는 소식에 호세는 식사를 다음으로 미루는 게 낫겠다고 했었지.’
그때 당시 떨어졌다 한들 정말 아무런 감정도 없었지만, 자신을 위한 배려라고 생각해서 도진도 흔쾌히 약속을 미뤘었다.
[나: 물론입니다.] [호세: 그래. 지금 어디지?] [나: 플레티넘 트라이앵글이요.] [호세: 이야. 오렌지 카운티? 18세가 부자 동네에 있네? 아파트 구한 건가?] [나: 네. 아파트 구했어요. 부자 동네는 잘 모르겠고 구장 바로 옆이라서요.] [호세: 딱 봐도 부자 동네처럼 생겼잖아? 빈민촌에 사는 나 같은 촌놈은 이제 말도 못 붙이겠어. 연예인 꼬시러 간 거야?] [나: 농담하지 마세요.] [호세: LOL. 알았다. 주소 찍어줄 테니 와라.]* * *
택시에서 내린 도진은 보이는 광경에 쓴 입맛을 다셨다.
‘빈민촌 촌놈이라며.’
커다란 철제 게이트 너머로 100명이 함께 살아도 부족하지 않을 것 같은 이 미친 크기의 고품격 맨션은 도대체 뭐지?
유튭에서 가끔가다 슈퍼스타들이 지내는 맨션을 본 적이 있었는데 그것과 같았다.
‘여긴 몇백억씩 하겠지?’
물론 큰 집에 관심은 없다.
그냥 이런 곳에 살면서 부자 동네 운운하는 호세가 얄미웠던 것뿐.
[나: 도착했어요.] [호세: 기다려. 금방 나간다.]호세를 기다리던 도진은 한숨을 내쉬었다.
‘금방이라며.’
10분이 됐는데 아직도 안 나오네?
집이 그렇게나 넓은가?
때마침 철제 게이트가 열리며 호세가 뚜벅뚜벅 걸어 나왔다.
“여! 부자! 오느라 고생 많았겠어.”
도진은 뒤통수를 벅벅 긁었다.
“그만 놀려요. 제 아파트 방은 하나에요.”
호세는 끄억끄억 웃더니 이내 호흡을 되찾았다.
“일단 들어가자.”
도진은 호세와 함께 안으로 이동했다.
호세와 닮은 가드도 있었고 정원을 가꾸는 정원사도 있었다.
‘정말 놀리는 데 도가 텄어.’
호세는 도진의 등을 짝 소리가 나게끔 손바닥으로 쳤다.
“에인절스 선수 중에는 네가 이 집 방문이 처음이다.”
“그래요? 영광이네요.”
“뭐 먹을래?”
햄버거를 하나밖에 먹지 않아 배가 딱히 부르지는 않았지만, 이런 곳에서는 도대체 뭘 먹어야 하는 거지?
밥을 해주나? 아니면 요리사도 있는 건가?
결혼은 했겠지? 와이프가 요리해주는 건가?
“잘 모르겠어요. 저 다 잘 먹어요.”
“피자 시킬까?”
도진은 연달아 눈을 끔뻑이다 금세 고개를 끄덕였다.
호세도 오프 시즌이라서 평소 먹지 못했던 음식을 시켜 먹는구나.
“좋아요.”
“왜. 피자 싫어해?”
“당연히 좋아하죠. 고등학교 때 주식이었어요. 못 먹은 지 꽤 오래됐지만.”
드디어 맨션 입구에 도착했다.
‘멀리서 봤을 때보다는 작지만, 최소 방 10칸은 되겠네.’
호세는 도진의 어깨를 팔꿈치로 툭 쳤다.
“부럽냐?”
“조금요.”
“너도 FA 되면 이만한, 아니 이보다 더 나은 집을 구할 수 있겠지.”
“까마득하네요.”
“그러게나 말이다. 일단 들어가자.”
도진은 내심 기대했다.
이런 좋은 집의 구조가 궁금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입구에 들어서는 순간 제일 먼저 자신을 맞이해주는 건 냉기였다.
집이 넓어서일 수도 있겠지만, 그런 느낌과 조금 달랐다.
도진도 언젠가 한 번 느껴봤던 느낌이었다.
하지만 쓸데없는 생각일 수도 있었으므로 개의치 않기로 했다.
“집이 참 넓네요.”
“혼자 살기에는 매우 넓긴 하지.”
호세는 결혼을 안 했나?
아니. 벽에 걸려 있는 액자에는 아이 사진이 있었다.
포수 장비를 착용하고, 배트를 들고 있는 사진도 따로 걸려 있었다.
전부 호세랑 닮았지만, 호세는 아니었다.
“아들인가요?”
“어. 중학생이야.”
도진은 눈치가 빨랐다.
호세는 아들과 떨어져 산다고 확신할 수 있었다.
호세는 도진의 눈빛을 읽은 듯 보였다.
“음. 이혼한 지 9년 정도 됐지. 흔한 일이잖아?”
호세의 말마따나 미국에서는 흔한 일이다.
더군다나 이혼했다고 한들 친구 사이로 지내는 부류들도 꽤 많았다.
천조국은 참 쿨했으니 말이다.
“그럼, 아들은 자주 봐요? 호세 닮았으니 야구도 잘하겠네요. 야구 선수로 키워볼 생각은요?”
호세가 씁쓸하게 웃었다.
도진은 말실수를 했다는 것을 깨달았다.
“자주 못 봐. 애가 아프거든. 지금도 투병하느라 애 엄마랑 병원에 있어. 그나저나 손님 불러 놓고 가정사를 꺼내는 건 민폐지. 즐거운 얘기나 해볼까?”
도진은 어딘가 쓸쓸해 보이는 호세의 등을 톡톡 건드렸다.
“아뇨. 들려주세요. 궁금합니다.”
그 역시도 말하고 싶은 눈치였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