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baseball genius who chews up America RAW novel - Chapter (198)
미국 씹어먹는 야구 천재-198화(198/400)
도진과 호세는 소파에 앉아 켜지지 않은 대형 티비만 멍하니 쳐다봤다.
정적을 깬 건 호세였다.
“아까 아이가 아프다고 했잖아.”
도진은 여전히 그에게 시선을 두지 않은 채 그저 고개를 끄덕였다.
“암이야.”
도진은 절대로 호세를 돌아보지 않겠다고 이를 악물었다.
대신 어떤 말을 꺼내야 하는지 감도 잡히지 않아 입도 뻥긋할 수 없었다.
“완치가 됐다가, 재발했다가 그러네. 너무 슬픈 표정 짓지 마라. 다행이라면 다른 곳으로 전이는 되지 않아서 나을 희망은 있어.”
희망이 있다.
도진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나지막이 입을 열었다.
“다행이네요.”
“이왕 얘기가 나와서 하는 말인데. 난 그리 좋은 아빠였던 건 아닌 것 같아.”
호세는 잠깐 뜸 들이더니 말을 덧붙였다.
“전 아내랑은 가치관이 좀 달랐어. 나는 어렸을 적부터 찢어지게 가난하게 살았거든? 먹고 싶은 거 제대로 못 먹고 하고 싶은 거 제대로 못 했어. 그나마 다행이라면 방망이 하나는 기똥차게 휘둘렀었지. 그래서 야구 하나만 보고 살게 됐고.”
이후의 스토리는 도진이 직접 겪어본 경험들과 비슷했다.
야구는 돈이 많이 들어가는 스포츠지만, 본인 입으로 방망이를 잘 휘둘렀다고 한 만큼 미국에서 알아주던 유망주.
그렇기에 학교의 지원을 받아 성장하며 결국 메이저리거가 되는 일반적인 루트를 탔다.
아낌없이 지원해주는 미국 고등학교였으니까.
“하지만 전 아내는 아니었어. 그녀도 부유한 집 자녀는 아니긴 했어. 하지만 오히려 어렸을 적 부모님이 일찍 돌아가셔서 돈보다는 가족을 더 중요시하는 부류라고나 할까?”
여기서 트러블이 생긴 거구나.
메이저리거는 시즌 때는 정말 바쁜 직업이다.
물론 호세 같이 베테랑일 때는 이야기가 조금 다를 수도 있겠지만, 적어도 첫 FA를 맞이하기 전까지는 죽기 살기로 노력해야 한다.
39세 호세의 아이가 중학생이다.
호세는 메이저리거 입성 후 얼마 되지 않아 결혼했던 것.
그렇기에 커리어와 가족이란 기로에서 커리어를 선택한 거겠지.
“난 두 번 다시 가난한 삶을 살고 싶지 않아. 지금도 마찬가지야. 솔직히 지금의 기억을 안고 이혼 전으로 돌아간다고 한들. 내 선택이 달라질 것 같지는 않거든.”
도진은 고개만 끄덕였다.
“어쨌든, 그때까지는 서로를 이해하려고는 했지. 아이가 태어났을 때도 가끔 다투기는 했지만 큰 문제는 없었어. 대신 아프고 나서는 상황이 조금 달라졌지. 나는 시즌을 치러야 하는데 아이는 병원에 입원해 있잖아? 구단도 원래 아이와 함께하라고 휴가를 주긴 했었는데 내가 거절했지.”
“입지 때문에 그랬군요.”
“맞아. FA 이후에 아팠다면 또 모르겠다. 드러눕고 아이와 함께했을 거야. 하지만 아이가 아픈 게 하필 그 전이라 상황 한번 개 같았지.”
자리를 비우면 그 자리는 누군가가 대체하게 될 수도 있다.
아직 완전히 자리가 잡히지 않았던 호세는 다시 마이너리그로 내려갈 수도 있었겠지.
‘선택하기 어려웠겠어.’
애당초 돈이라도 많이 모아 놓았다면 모를까.
서비스 타임이 끝나서 FA 계약을 하기 전까지는 최저 연봉을 받는다.
풀 타임으로 3년 정도 뛰면 연봉 조정 신청이 가능하지만, 거기서 월등히 많은 돈을 벌려면 탑 클래스 선수가 되어야만 한다.
아무리 메이저리거라도 모두가 3년 차에 탑 클래스 선수가 되는 건 아니다.
그런 건 극소수일 뿐.
그 때문에 메이저리거라면.
‘다른 걸 다 제쳐두고 입지가 완벽해지기 전까지는 야구에 몰두할 수밖에 없겠지.’
때마침 가사 도우미가 피자를 들고 왔다.
호세는 도진이 피자를 먹게끔 먼저 한 조각 집어 입에 넣었다.
“재미없는 얘기라 체할 수도 있으니 콜라도 마시면서 먹어라.”
“전 걱정하지 마세요. 돌도 씹어 먹을 수 있거든요.”
호세는 피식 웃었다.
도진의 답변에 자칫 어두웠던 분위기에 한 줄기의 빛이 쏘아져 내렸다.
“내 남은 커리어에서의 꿈이 뭔지 아냐?”
도진은 호세가 플레이오프 진출을 갈망하는 것을 알고 있었다.
“플레이오프 진출이요?”
“맞아.”
“왜 우승이 아니라 플레이오프 진출입니까?”
“앞서 아들이 완치됐다가 재발했다고 얘기했었지?”
“네.”
“아이의 투병 생활 3년 차 때 우리 에인절스가 와일드카드로 플레이오프에 진출했었거든. 그리고 거짓말처럼 완치됐었어.”
그때의 기적을 한 번 더 보고 싶었던 거구나.
도진의 고개가 절로 끄덕였다.
“아들의 소원도 플레이오프 진출이야.”
“소원이라뇨?”
“플레이오프 진출했을 때의 내가 제일 보기 좋았다고 하더라. WBC 우승보다도. 베스트 멤버로 출전한 미국이 우승컵을 들어 올리는 것이 당연하다고 생각했던 걸 수도 있겠지만.”
도진은 복잡한 머리를 정리 후 결론에 도달했다.
본인을 나쁜 아빠로 포장하는 것 같은데 그렇게 느껴지지는 않았다.
오히려 멋있다고 생각했다.
‘미국 의료비도 비싸다잖아?’
도진은 미국에서 병원을 기본적 없다.
그렇기에 얼마나 큰 돈이 들어가는지는 알 수 없었다.
대신 한국과는 비교도 안 될 만큼 큰돈이 나간다고 했다.
‘돈 없는 사람들은 병원 가는 것을 두려워할 만큼.’
호세는 메이저리그 생활을 쭉 이어 나가며 아들의 투병 생활에 부족함 없이 생활할 수 있게끔 본인의 위치에서 최선을 다하고 있는 거겠지.
그가 만약 메이저리거가 아니었다면?
치료비도 제때 내지 못하는 상황이 발생할 수도 있다.
‘이런 설명은 없었지만, 분명히 그럴 거야.’
호세는 한숨을 푹 내쉬었다.
“그런데 알잖아? 솔직히 에인절스가 플레이오프 나갈 실력이냐?”
“글쎄요. 나갈 수도 있는 거 아닌가요?”
“올 시즌만 봐도 알잖아? 당장은 답도 없어. 물론. 네가 들어와서 다행이라고는 생각한다.”
“제가 무슨 힘이 있겠어요.”
호세는 피자 한 조각을 다시 집어 들었다.
“지금 당장은 힘이 없지. 대신 슈퍼스타가 없는 에인절스에는 큰 힘이 돼.”
“제가 슈퍼스타는 아닌걸요.”
“18세 메이저리거를 우린 슈퍼스타라고 부른다. 물론 기량을 유지해야지만, 완전한 슈퍼스타 반열에 오를 수 있겠지만. 어쨌거나 유망주가 터져줘야만 팀은 반등할 수 있다. 유망주가 터지지 않고 반등한 팀은 없잖아?”
더군다나 도진이 합류 후 에인절스는 조금씩 변하고 있다.
큰 변화는 아니지만, 일단 그와 경쟁하는 선수들에게만큼은 확실히 변화가 있었다.
이런 사소한 변화가 쌓이면 팀은 결국 바뀌게 된다.
18세 메이저리거. 에인절스가 선택한 콜업은 지금까지 굉장히 성공적이었다.
“하여튼 난 네가 잘했으면 좋겠어. 그게 우리 팀이 더 좋은 성적을 낼 수 있는 원동력이 될 테니까. 나는 내 아들을 위한 개인 욕심이지만, 네가 잘해서 손해를 볼 건 없잖아?”
“그게 말처럼 쉽지는 않죠.”
호세의 눈이 비장함으로 가득 찼다.
“아니. 넌 그만한 재능을 갖췄어. 그 재능이 어떻게 개화할지는 모르겠지만, 꼭 탑 클래스 반열에 올라서 팀을 이끌어주길 바란다. 그리고 무엇보다 우리 아들이 에인절스 팬이거든? 내가 네 얘기를 좀 해서 그런가? 경기 몇 번 보더니 벨에서 너로 갈아탔더라고.”
“벨에게는 미안하지만, 팬이 생겨서 기분은 좋네요.”
“그러니까 잘하란 말이야.”
피식 웃은 도진은 이내 표정을 굳혔다.
“잘하려고 노력할 겁니다. 저도 인간인지라 제가 잘됐으면 좋겠어요. 대신 호세에게 미안하지만, 이 말은 꼭 해야겠습니다.”
도진은 침을 꼴딱 삼켰다.
“저는 호세의 아들이 아니라 저를 위해서 뛸 겁니다. 플레이오프 진출이요? 저도 희망합니다. 그러나 다시 한번 말하지만, 저를 위해서 뛸 겁니다.”
아무리 아들이 자신의 팬이라고 한들, 같은 핏줄인 아버지보다 더 잘되길 원할까?
‘절대 그럴 리 없지.’
호세의 사정은 안타깝다.
하지만 그의 입지가 가만히 손가락만 빨면서 팀이 자연스레 잘해지길 원하는 위치던가?
그는 엄연히 팀을 이끌 수 있는 메이저리거였다.
함께 잘 해내야지만 원하는 목표에 도달할 수 있었다.
에인절스는 원맨팀이 아닌 원팀을 꿈꿨으니까.
“역시 넌 재미가 없어.”
“어디서 재밌다는 말을 들어 본 적은 없는 것 같아요.”
“매사 진지한 놈이긴 하지. 그래서 더 마음에 들지. 18세 메이저리거라고 헛바람 든 것도 아니잖아?”
“그렇긴 하죠.”
“잘난 척하기는.”
“부러우면 호세도 잘난 척 좀 하시죠?”
“난 이미 늙었어.”
“그래도 메이저리거잖아요.”
“원래 운동선수란 전성기가 있는 법이야. 난 그 전성기에서 이미 내려왔지.”
기량 하락 후 호세는 쭉 후보였다.
그런데 말을 들어 보니 그는 주전으로 뛰어야 할만한 개인적인 이유도 있었다.
“그래도 저보다 돈 더 많이 받으시잖아요. 돈 값하셔야죠.”
“쯧. 노력은 해보마.”
“말뿐인 노력은 메이저리그에서 통하지 않습니다.”
“애송이 따위가 날 가르치려 드는 거냐?”
“애송이에게서도 배워갈 게 있지 않을까요?”
“틀린 말은 아니긴 해.”
도진은 드디어 호세를 향해 고개를 틀었다.
“그래서 말인데요. 오프 시즌 때 뭐 하세요?”
“병원에 좀 있다가 슬슬 운동해야지.”
“그럼, 오프 시즌 때 같이 훈련하실래요?”
“너 같은 핏덩이랑?”
“네. 저는 호세가 없는 젊음이 있습니다. 젊은 에너지를 좀 받아 가면 좋지 않겠어요?”
호세는 흥미롭다며 턱을 매만졌다.
“계획이 뭔데?”
“글쎄요. 아직 계획을 짠 건 아닙니다. 저희 어제 시즌 마무리했는데요? 대신 그 어떤 오프 시즌보다 빡센 건 확실할 겁니다.”
“쯧쯧. 난 그렇게 움직이면 다쳐.”
“그래서 안 하실 거예요? 플레이오프 나가서 기적을 빌어 봐야죠.”
도진은 호세가 오프 시즌을 돕는다면 다음 시즌 훨씬 더 나은 성적을 낼 수 있다는 확신이 있었다.
그 역시도 더 나은 기량으로 다음 시즌 준비해야 하는 건 매한가지 아니던가?
그는 훈련 중 시즌 아웃이 된다 한들 마지막 불꽃을 태울 준비가 돼 있었으므로 절대 거절할 리 없었다.
‘마이크나 상우 그리고 그레그가 불편해할 수도 있겠지만.’
또래들이 모인 자리에 베테랑 중 베테랑이 함께 훈련에 참여한다?
얻어갈 이득은 이루 말할 수 없었다.
호세는 주먹을 말아쥐고는 도진에게 내밀었다.
“좋다. 날짜와 계획 그리고 장소 정해지면 알려줘라.”
도진도 주먹을 말아쥐어 톡 건드렸다.
“그나저나. 사인이라도 해드릴까요?”
“뭐 인마? 네 사인을 어디다 쓰라고?”
“아들이 제 팬이라면서요. 전달해주시면 되잖아요?”
“이 새끼가! 내가 너한테 그것밖에 안 돼? 나중에 직접 병원에 들러서 사진 한 방 찍어주고 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