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baseball genius who chews up America RAW novel - Chapter (20)
미국 씹어먹는 야구 천재-20화(20/400)
경기 시작 전.
관중석에 앉아 있던 캐서린은 선수들이 악수하는 모습에 괜스레 유난을 떨었다.
“후우. 팀장님. 괜히 제가 긴장되네요.”
“나도 이번 경기는 기대하고 있다. FS가 선수 보충을 확실히 잘했어.”
“도진 킴. 그 선수요?”
“그 선수는 당연하고. 또 이번에 포수로 등록된 선수도 그렇지.”
캐서린은 라인업이 적힌 종이를 서둘러 파악했다.
마이크 화이트.
저번 경기에서는 보지 못했던 선수였다.
“포수를 영입한 건가요?”
“마이크 화이트. 지금 3학년이지만 그 역시도 캘리포니아 최고 유망주 중 한 명이었지. 특히나 포수 매물이 많이 없잖아?”
“그렇게 잘하는 선수였군요.”
“너는 이제 입사 2년 차라 모를 수도 있겠지만 대단한 선수였어. 물론 그간 실전을 뛰진 못했으니 적응이 필요할 수도 있겠지만.”
“그래도 오늘은 킴의 인터뷰를 따면 되는 거죠?”
팀장은 고개를 끄덕였다.
“지든 이기든 무조건 그의 인터뷰를 따보도록 해라.”
“도널드 감독님이 거절하시면요?”
“그럼 어쩔 수 없지.”
캐서린은 자신의 왼쪽 가슴에 손을 얹었다.
“후. RS 홈구장에서 이런 마음을 먹으면 안 되지만 괜히 FS를 응원하게 되네요.”
“좋은 마음가짐이다. 기자라면 당연 특종을 노려야지. 하지만 말이야. 오늘 경기가 쉽지는 않을 거야.”
“상대는 RS니까요? 그리고 오늘 1선발인 페드로 선수도 등판하지 못하고.”
팀장은 말라버린 아랫입술을 혀로 핥았다.
“그것도 그렇지만 다른 문제가 있어.”
“원정이라서요?”
“어. 특히나 RS 원정 오는 팀들이 보편적으로 뭐라고 평가하는지 알아?”
“뭐라고요?”
“절대 원정 오고 싶은 학교가 아니라고.”
캐서린의 미간이 더욱 찌푸려졌다.
RS가 어때서?
어디 시골 마을에 있는 것도 아니고, 그라운드 상태가 좋지 않은 것도 아니다.
“저기 저 선수 보이지? 35번을 단 덩치 큰 선수.”
“아! 킴 선수와 악수하는 선수요? 윌 마인다스. 걸리면 넘겨버린다는 홈런왕 출신이잖아요.”
팀장은 눈을 날카롭게 찢었다.
“저 선수가 RS에 입단하는 순간부터 팀이 이상하게 흘러가고 있어.”
“왜요?”
“경기 전 상대에게 패드립도 서슴지 않는다고 해. 그리고 몇몇 같은 팀 선수들은 그 영향을 받아서 따라 한다고.”
캐서린의 눈이 동그랗게 뜨였다.
“네? 그게 가능해요? 그렇다면 왜 제재가 없는 거죠? 그러면 안 되잖아요.”
“증거가 없으니까.”
아. 캐서린은 고개를 끄덕였다.
야구 선수가 패드립을 녹음하겠다고 녹음기를 들고 그라운드에 설 수는 없었으니까.
“그래도 전수조사하면 증거가 드러날 수도 있지 않을까요?”
“그렇다 한들 심증만 있을 뿐 물증이 없어. 특히나 윌 마인다스는 철저히 약한 선수에게만 트래쉬 토크를 내뱉어.”
“약한 선수라뇨?”
“슈퍼스타들은 피한다 이거지. 대체로 팀에서 어중간하거나 신인들의 자존감을 깎아내린다고 들었어.”
고작 그따위 실력으로 야구부에 있는 게 수치라는 둥.
자신과 같은 선수라는 게 부끄럽다는 둥.
상대의 자존감을 서슴지 않게 깎아내린다고.
캐서린은 미간을 잔뜩 찡그렸다.
“아니. 고작 고등학교 선수가 그러면 안 되는 거잖아요! 페어플레이 정신에서 어긋난 거잖아요.”
“그래. 하지만 선수들에겐 1승, 1승이 자신들의 미래와 직결되기도 하니까 죄의식이 없는 거지.”
격투기 선수들이 싸움 시작 전 트래쉬 토크를 하는 이유를 알고 있을 것이다.
하나의 쇼로 보는 사람도 있었지만 진짜 앙숙이면 트래쉬 토크가 실제로 경기에 도움이 됐다.
상대의 흥분을 유발해서 이성을 잃게 만드는 최고의 수단이었다.
도진과 윌을 지켜보던 캐서린의 미간은 더욱 구겨졌다.
윌의 입 모양이 심상치 않았기 때문이다.
‘인종차별 같은데.’
하지만 팀장의 말마따나 확실치 않았다.
* * *
감독과 코치들도 선수들이 악수하는 장면에서 시선을 떼지 않았다.
“하. 윌 저놈. 결국 킴에게 가는군요.”
투수코치의 말에 타격코치도 서둘러 말을 이었다.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니네요.”
감독도 팔짱을 낀 채 미간을 구겼다.
“킴의 실력을 알았겠지. 그래서 멘탈을 부숴 놓으려고 윌이 직접 출격했나 보군.”
예상 범주 안에 있었지만, 감독은 굳이 마이크와 도진에게 언급하지 않았다.
야구는 멘탈 스포츠다.
저런 더티한 방식으로 상대를 공격하는 놈들은 여럿 있다.
그걸 견뎌내는 것은 온전히 선수의 몫이었다.
그리고 차라리 매도 빨리 맞는 법이 좋다는 말도 있듯이.
이런 상황을 미리 겪어두는 편이 오히려 차후에 도움이 될 터.
‘그래도 걱정이 되긴 하는군.’
마이크와 도진은 뒤늦게 팀에 합류했지만, 팀의 중심으로 여겨질 만큼 뛰어난 인재다.
그들이 무너지는 순간 오늘 경기의 승산 따윈 없었다.
‘잘 버텨주길.’
* * *
“굿 게임.”
“칭. 챙. 총.”
도진은 인종차별적 발언에 미간을 살짝 구겼다.
‘아니 흑형! 매너 좀!’
칭챙총.
아시아인을 향한 비하 발언이었다.
도진도 이를 알고 있었다.
미국에서 이따금 듣는 발언이었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도진의 구겨진 미간은 금세 본래대로 돌아갔다.
오히려 양쪽 입꼬리가 솟아오르기까지 했다.
‘타격이 없거든.’
칭챙총이 어때서?
인종차별 발언이라는 건 알고 있었지만, 이보다 더한 인종차별적 발언도 들어봤다.
‘무엇보다 나는 한국인인데?’
한국에서는 쌍욕은 기본 인사에 불과하고 부모님 안부를 묻는 욕설도 흔하다.
그에 비하면 칭챙총은 그저 귀여운 수준이었다.
심지어 도진은 멘탈을 부수겠다고 달려드는 상대에 온갖 창의적인 욕설을 들으며 야구를 해왔다.
따라서 그의 멘탈은 미국의 나약한 욕설 따위로는 흠집 하나 낼 수 없을 경지였다.
‘뭐야 이놈?’
윌은 자신의 인종차별적 발언에도 타격이 없자 당황했다.
하지만 호흡을 가다듬고 다시 도발했다.
“어이 중국인. 여기는 네가 있을 곳이 아냐. 냄새나는 네 나라로 돌아가라.”
윌은 이미 영상은 봤다. 앞에 있는 아시아인의 투구는 뛰어났다.
그의 멘탈을 부수지 못한다면 오늘 경기에서 고작 FS 따위에게 질 가능성도 존재했다.
그래서 윌은 악착같이 트레쉬 토크를 던졌다.
하지만 도진은 차분했다.
“음. 미안하지만 정정 좀 해줄게. 일단 나는 중국인이 아니라 한국인이야.”
이거 미친 새낀가?
의도를 몰라서 되묻는 건가?
윌은 벌어지는 턱을 통제하지 못했다.
그렇기에 준비된 멘트를 전부 끝내지 못했다.
더 해봤자 의미가 없었으니까. 자신만 더 추해질 뿐이었다.
자신은 이미 수많은 상대를 도발했다.
그리고 그들의 멘탈을 꽤 부순 전력이 있다.
그렇기에 윌은 알고 있었다.
‘앞에 있는 아시아인은 아무런 타격이 없다.’
여기서 더 해봤자 꼬리만 길어지겠지.
“각자 위치로.”
심판의 콜에 도진은 유유히 등을 돌렸다.
그러자 마이크의 걱정스러운 목소리가 들려왔다.
“야. 괜찮…….”
마이크는 말을 잇지 못했다.
도진은 정말 괜찮았기 때문이다.
자신은 인종차별 발언에도 또박또박 말대답까지 해주는 도진의 여유를 옆에서 보지 않았던가.
상대는 도진의 멘탈을 부수려고 했다.
하지만 타격이 없다.
‘아니. 타격은 있지.’
도진이 아닌 트래쉬 토크를 내뱉은 당사자 윌이.
그렇기에 마이크의 정신이 혼미했다.
안 그래도 자신도 악수한 선수에게서 온갖 놀림을 당하고 있었다.
왜 이제 야구판에 들어왔냐.
야구가 우습냐.
너 같은 놈은 뭉개 주겠다.
겁쟁이. 치킨이라는 발언이 서슴없이 들려왔다.
안 그래도 데뷔전이라서 긴장되는데 상대의 도발까지 이어지자 괜히 더 짜증이 솟구쳤다.
이런 식의 도발일 줄은 상상도 하지 못했으니까.
트래쉬 토크. 스포츠에선 있을 법한 일이다.
고등학교에서는 더더욱 있을 법한 일이다. 특히나 학교 대항전이라면 그렇다.
‘그래도 이건 너무하잖아!’
그런데 도진은 자신보다 심한 인종차별적 발언을 듣고서도 눈 하나 끔뻑하지 않았다.
마이크는 이해할 수 없다며 혀를 내둘렀다.
무엇보다 앞서 자신이 상대 선수에게 입은 멘탈 피해는 순식간에 사라졌다.
도진도 저렇게 침착한데 자신이 어떻게 화를 낼 수 있겠는가.
‘여기서 화를 내면 소인배가 된다.’
인사가 끝난 후. 더그아웃으로 이동 중에 마이크는 주위를 살폈다.
다른 선수들의 걱정스러운 시선 때문이었다.
그 시선들은 전부 도진에게로 향했다.
마이크의 시선은 금세 더그아웃으로 향했다.
감독, 그리고 투수와 타격코치의 표정도 곱지 못했다.
‘어떻게 위로할지 고민 중이시겠지.’
마이크는 걸음걸이에 속도를 붙이며 제일 먼저 더그아웃에 도착했고.
“괜찮나?”
“아무렇지 않습니다.”
감독의 질문에 마이크는 자신 있게 대답했다.
도진이 더그아웃에 들어서자 마이크는 그의 어깨에 손을 얹었다.
“그리고 감독님. 이 새끼는 저엉말 아무런 타격이 없는데요?”
* * *
“야. 넌 진짜 대단하다.”
도진은 마이크의 말에 피식 웃었다.
인종차별 발언이 걱정됐나 보네.
하지만 자신은 정말 아무렇지도 않았다.
“난 걱정하지 마라. 너보고 치킨이라던데. 괜찮냐?”
치킨.
한국에서는 그저 맛있는 음식이지만, 미국에서는 겁쟁이라는 의미로 상대를 도발하는 데 쓰인다.
미국인들이 싫어하는 단어기도 했다.
“순간 당황하긴 했는데. 지금은 괜찮아.”
도진은 경기장을 한번 쳐다보고는 나가보라며 손짓했다.
“대기 타석에나 들어서. 첫 경기가 중요한 건 알잖아? 이왕이면 볼넷이나 안타를 쳐주면 더 고맙고.”
선두타자가 2루 땅볼로 아웃 되자 마이크는 헬멧을 쓰고는 대기 타석으로 이동했다.
도진은 그 광경에 자신의 턱을 매만졌다.
‘고작 도발 따위에 애마냥 난리 치면. 절대 하이스쿨 인비테이셔널 토너먼트에 초청받지 못해.’
선천적인지.
아니면 목표가 뚜렷해서 그런 것인지.
도진의 멘탈은 남달라도 너무 남달랐다.
이를 지켜보던 알렉산더가 도진에게 다가왔다.
“대단한 놈이네.”
“뭐가?”
“넌 자격이 있어.”
“그러니까 무슨 자격.”
“그보다 너 이럴 때냐?”
도진이 고개를 갸웃하자 알렉산더는 여유롭게 말을 이었다.
“슬슬 준비해야지?”
“어? 나 지명 타잔데? 그리고 5번이야.”
지금 당장 불펜으로 들어갈 일도 없었다.
무엇보다 1번과 2번 타자가 연달아 아웃이 됐다.
자신의 타석이 되려면 마이크와 알렉산더가 동시에 출루해야만 한다.
‘때마침 마이크의 타석이네.’
도진은 눈초리를 더욱 가늘게 찢었다.
‘과연! 데뷔전의 결과는?’
따악!
오?
2루수 키를 가볍게 넘기는 안타를 기록했다.
도진은 곧장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서 고래고래 소리를 질렀다.
“나이스 안타!”
그러자 그때.
타석에 들어서려던 알렉산더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네 차례다. 한 방 날려라.”
이건 또 무슨 개소리더냐.
일단 출루부터 하고…….
생각을 끝내지 못한 도진은 이를 악물었다.
‘하. 이런다 이거지?’
도진은 어금니를 빠득 갈아대며 곧장 헬멧을 썼다.
그러고는 배트를 집어 들어 대기 타석에서 2번의 연습 스윙을 빠르게 가져갔다.
“베이스 온 볼스!”
알렉산더를 고의 사구로 내보냈기 때문에 그의 말마따나 자신의 차례가 온 것이었다.
‘어떤 미친 투수가 2아웃 1루에서 의도적으로 2아웃 1, 2루를 만들어?’
그런데 그런 팀이 있었다니.
도진은 눈이 돌아갔다.
‘나를 무시했다 이거냐?’
그것밖에 없다.
물론 알렉산더는 강타자다.
자신이 봐도 그는 정말 뛰어난 타자다.
‘그래도 이건 아니잖아!’
알렉산더는 위험하니 피하고, 대신 만만해 보이는 자신을 상대로 아웃시켜 공격을 끝내버리겠다니.
타석에 들어선 도진은 배트를 빙글빙글 돌리며 곧바로 타격자세를 잡았다.
‘던져! 던져! 빨리 던지라고!’
도진의 눈동자는 꺼지지 않는 불길로 활활 타오르고 있었다.
인종차별과 쌍욕은 참아도.
자신을 야구로 무시하는 건 절대 참을 수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