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baseball genius who chews up America RAW novel - Chapter (205)
미국 씹어먹는 야구 천재-205화(205/400)
윌리엄은 자신을 부르는듯한 목소리가 들려오자 처진 고개를 천천히 들어 올렸다.
경쟁자인 도진이 미소를 보이자 순간 어금니에 힘이 들어갔다.
하지만 이내 침을 꼴딱 넘기며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옆자리에 털썩 주저앉은 도진은 즉각 입을 열었다.
“윌리엄. 우리는 3루 자리를 두고 경쟁하고 있잖아요?”
시작부터 굵직한 팩트가 들려오자 윌리엄의 눈이 번뜩 뜨였다.
혹시 기만하는 건가?
그의 표정을 천천히 살폈다. 기만 같지는 않았다.
도진은 윌리엄의 시선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정면만 바라보며 말을 이었다.
“동료들끼리의 경쟁은 엄연히 팀을 위한 순리지만, 개 같긴 해요.”
윌리엄은 타들어 가는 목을 축이겠다며 옆에 놓인 스포츠음료를 벌컥 들이켰다.
도진은 그가 컵을 내려놓자 다시 말을 이었다.
“그리고 저는 이번에 윌리엄을 보고 배운 게 많습니다.”
“뭐?”
드디어 윌리엄의 입이 떨어졌다.
그도 그럴 것이 에인절스의 초특급 유망주가 자신에게 배운 것이 있다는 말은 영 믿기지 않았으니 말이다.
같은 메이저리거다. 그리고 여전히 3루수는 확정되지 않았던지라, 둘의 입지는 같다고 볼 수 있다.
하지만 같다고 전부 같은가?
아니다. 도진은 올해로 고작 19세지만, 자신은 28세다.
누구는 백업이라도 메이저리거라는 사실을 부러워한다.
하지만 그 어떤 선수가 백업 선수라는 것에 만족할 수 있겠는가?
윌리엄은 한숨을 내뱉었다.
‘애당초 내가 잘했다면.’
본래 자신의 주 포지션은 외야수다.
그곳에서 밀려나게 되며 비어 있는 3루 자리를 놓고 경쟁자들과 투덕거리고 있었다.
밀려난 것이지만, 상관없다. 어떻게서든 새로운 자리에서라도 입지를 다지고 싶었다.
하지만 포지션을 바꾼 건 자신뿐이 아니다. 같은 내야수라도 도진은 유격수에서 3루수로 바뀌었다.
‘그리고 이 아이는 내게 없는 것이 있어.’
환상적인 수비 센스와 어린 나이.
아쉽게도 실력이 비슷하면 나이가 어린 선수에게 더 많은 기회가 주어지기 마련.
메이저리그에서 28세가 그리 많은 나이는 아니지만, 19세와 비교하면 어떤가?
그렇기에 그보다 압도적인 성적을 내고 있다면 또 모를까.
유일하게 앞선다고 생각했던 타격까지 밀리고 있었다.
‘안다. 이 아이는 천재다.’
괜히 18세에 메이저리그에 데뷔한 게 아니었다.
‘그런데 나한테 배운 게 있다고?’
도진은 자신의 눈빛을 읽은 듯 보이는 답변을 내놓았다.
“네. 배웠습니다. 스윙도 수비도 작년과 비교해서 정말 멋지게 발전한 것이 고작 제 눈에도 보여요. 저는 요즘 타격감이 조금 살아나고 있지만, 이건 어디까지나 윌리엄 같은 좋은 라이벌이 있어서 그런 겁니다.”
“내, 내가 라이벌이라고?”
18세에 메이저리그에 데뷔해서 말도 안 되는 퍼포먼스를 보인 천재와 자신이?
윌리엄은 코웃음을 치고 싶었지만, 그럴 수 없었다.
그건 자기 자신을 깎아내리는 것이었으니 말이다.
“라이벌이죠. 그리고 아직 경쟁은 끝나지 않았고요. 조급하죠? 저 역시도 윌리엄의 타격감이 좋았을 땐 조급했습니다. 대신 당신은 지금보다 훨씬 더 좋은 타격을 할 수 있다는 선수라는 것을 앞서 증명했잖아요?”
그러니 좋았던 며칠 전으로 돌아오세요.
직접 언급하지는 않았지만, 윌리엄은 그 의미가 함축되어 있다고 믿었다.
“왜 나에게 이런 말을 해주는 거지? 네 말대로라면 나는 엄연히 네 자리를 빼앗을 수 있는 라이벌이잖아?”
“그래서입니다. 같은 위치를 바라보는 선수가 있어야 함께 발전하는 법이니까요. 대신 오해는 하지 말아주세요. 저는 3루 자리를 내어주고 싶지 않아요. 그럴 생각도 없고요. 전부 불사르는 한이 있더라도 최선을 다할 겁니다.”
윌리엄의 턱이 벌어졌다.
그의 눈동자에 비친 도진의 모습은 거대해도 너무 거대했다.
이 아이를 이길 수 있을까?
아니. 확률은 희박하다.
‘그래도 포기해서는 안 된다.’
야구는 엄연히 팀 스포츠지만, 개인 성적도 중요한 법이다.
개인 성적이 따르지 않는다면 자신을 기다리는 건 강등뿐이었다.
“고맙다.”
윌리엄의 목소리에서 진심이 묻어 나왔다.
도진은 피식 웃고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우리 잘해봐요.”
자리를 벗어난 도진의 입꼬리는 사그라들 기미가 없었다.
‘개인 타이틀. 중요하지. 내 목표와도 연관되어 있으니까.’
오지랖을 부렸다고 생각할 수도 있다.
하지만 도진에겐 이게 발전할 수 있는 원동력이다.
‘나는 막내잖아?’
엄연히 26인 로스터의 끝자락이 바로 자신이었다.
반대로 얘기하자면 그 누구에게도 배울 것이 넘쳐흐를 입지였다.
윌리엄은 프로로서 오프 시즌에 주전 자리를 꿰차고자 노력했고 그의 노력을 높이 샀다.
‘다시 타격에 불이 붙어도 상관없어.’
그걸 넘어서지 못한다면 그게 내 한계니까.
최고를 노리면서 앞에 놓인 장애물도 부수지 못한다?
거기까지인 거다. 꿈을 너무 높게 잡은 것이다.
도진은 지금보다 더 좋은 선수가 되어야지만 신인왕 타이틀을 거머쥘 수 있다고 확신했다.
그리고 에인절스의 순위도 함께 올라가겠지.
윌리엄 같은 젊은 선수의 활약은 팀과 자신에게 활기를 불어넣어 줄 것이다.
* * *
에인절스는 3주 차 마지막 경기에서 콜로라도 로키스를 만났다.
윌리엄은 6번 3루수. 도진은 7번 지명타자로 선정되었다.
2회 말 1아웃. 윌리엄이 타석에 들어섰다.
그리고 윌리엄은 거짓말처럼 근 며칠간의 슬럼프를 극복해낸 타격을 선보였다.
군더더기 없는 깔끔한 스윙으로 정확히 공을 갖다 맞추었고. 타구는 담장을 직격하는 2루타를 기록했다.
덩달아 도진의 방망이도 불을 뿜었다.
그 역시도 바깥쪽으로 휘어져 나가는 슬라이더를 결대로 밀어 쳐 2루타를 생성했고. 윌리엄의 득점으로 타점도 1개 올렸다.
두 번째 타석에서도 윌리엄은 2루수 키를 넘기는 안타를 쳤고 도진은 볼넷으로 걸어 나갔다.
세 번째 타석에서 윌리엄은 삼진. 도진은 다시 한번 볼넷과 도루 하나를 추가했다.
그렇게 3주 차 마지막 경기는 두 선수의 시너지를 보여주며 끝이 났다.
도진은 상우, 그레그와 함께 감독과의 상담을 기다리고 있었다.
그레그는 울상이었다.
“친구들아. 이번에도 나는 먼저 떠나겠지?”
도진은 그의 어깨를 툭 쳤다.
“그래도 저번보다 훨씬 좋은 모습을 보여줬잖아요.”
“저번에는 한 타석밖에 안 섰는데?”
“어쨌거나 이번에는 20타석 정도 소화했잖아요. 장족의 발전이죠.”
“그런가?”
그레그와 상우는 준수한 성적을 냈다.
타율은 둘 다 2할 5푼 남짓 기록했지만, 도진의 말마따나 작년과 비교하면 기회가 꽤 많이 주어졌다.
아직 메이저리그를 밟을 수준은 아니지만, 분명히 더블 A에서 좋은 성적을 낼 수 있도록 원동력이 될 것이다.
앞서 감독과 상담을 나누던 윌리엄이 사무실 밖으로 모습을 드러냈다.
그는 후련한 표정으로 도진의 앞에 서서 손을 내밀었다.
“축하한다.”
내가 주전 3루수가 되었구나.
확신에 찬 도진은 진심 어린 축하를 건넨 윌리엄의 내민 손을 잡았다.
그러고는 몸을 일으켜 사무실 안으로 들어갔다.
“와서 앉지.”
조 캐넌 감독은 도진이 자리에 앉아 곧장 본론으로 들어갔다.
“자네는 이번 시즌 주전 3루수로 낙점되었어. 그래서 내일부터는 시즌에 맞춰서 풀 타임으로 출장할 예정이라네.”
“감사합니다. 감독님.”
“그래도 너무 좋아하지는 말게.”
남은 경기 전부 죽 쒀도 개막전 주전 자리는 보장될 것이다.
하지만 아직 1년 차나 다름없는 도진은 성적이 좋지 않을 시 언제든지 벤치로 밀려날 수 있다.
“그리고 말이야. 고맙게 생각한다.”
“무슨 말씀이신지.”
“윌리엄을 다독여줬잖아? 덕분에 로스터를 운용하는데 숨이 좀 트였어.”
도진은 여전히 고개를 갸웃했다.
조 캐너는 씨익 웃었다.
“윌리엄은 자네의 조언 덕분에 무거운 짐을 내려놓을 수 있었다고 하더군. 슬럼프 기간을 단축하는 것만큼 희소식은 없잖아?”
“다행이라고 생각합니다.”
“어째서 그런 건지 물어봐도 될까?”
“팀을 위해서 그리고 저를 위해섭니다.”
조 캐넌은 대충 이해했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어쨌거나 윌리엄은 3루수와 외야수를 볼 수 있지. 덕분에 지금 컨디션을 유지한다면 충분히 빈 자리를 메꿀 수 있게 되었어. 어쩌면 다른 선수들과도 주전 경쟁을 펼칠 수 있겠지.”
3루수에 국한되지 않고 외야수와 지명타자 자리에도 들어갈 수 있다.
긴 시즌을 치르는 선수들은 휴식이 필요한 법.
로스터가 두터워진다는 것은 에인절스에 아주 큰 희소식이었다.
“어쨌거나 말이 옆으로 샜지만, 다시 한번 축하한다네. 이만 나가보도록.”
“감사합니다.”
주전 3루수. 이번 시즌 첫 과제를 달성한 도진은 주먹을 불끈 쥐었다.
* * *
“브라더들! 난 갈게!”
도진은 오늘 캠프를 떠나는 그레그의 어깨를 도닥였다.
“조만간 메이저리그에서 봐요.”
“그게 어디 쉽냐고!”
“충분히 잘 해낼 수 있습니다.”
“에휴. 알았다.”
상우도 거들었다.
“나도 금방 따라갈 테니 기다리고 있으라고요.”
상우는 4주 차에도 살아남게 되었지만, 어디까지나 포수라서 그랬다.
요즘 타격에 집중하는 호세의 체력 안배를 위해 투수들의 공을 잡아주고자 조금 더 남게 되었다.
그레그의 모습이 완전히 시야에서 사라지자 상우와 도진은 저녁을 때울 겸 한인 식당에 도착했다.
삼겹살 3인분, 밥과 된장찌개도 시켰다.
“그나저나. 자신 있냐?”
상우의 느닷없는 질문에 도진은 눈을 치켜떴다.
“당장 내일 경기부터 네 진짜 라이벌과 맞붙잖아?”
“그렇지.”
내일 경기는 클리블랜드 가디언스다.
가디언스는 아메리칸 리그 중부에서 지구 우승을 자주 하는 팀으로, 대개 플레이오프에 진출한다.
하지만 꼴찌인 에인절스가 가디언스와 라이벌인가?
그건 아니다.
팀이 아니라 개인적인 라이벌이 가디언스에 있는 것이다.
3루수 류타 이시하라. NPB에서 밥 먹듯이 30홈런을 기록한 선수가 포스팅을 통해 가디언스에 합류하게 되었다.
미디어는 류타 이시하라가 올 시즌 적응만 잘하면 아메리칸 리그 유력한 신인왕 후보라고 떠들어대고 있었다.
비록 시범 경기지만, 신인왕 후보자 중 한 명과의 맞대결이었으며, 같은 포지션의 한국인과 일본인의 대결이었다.
“그리고 하루 쉬고 나서 3일 차 경기도 한일전 아니냐?”
도진은 고개를 끄덕였다.
3일 차 경기는 텍사스 레인저스.
유우키 나카무라. 데뷔 이례 10승을 단 한 번도 놓치지 않은 투수.
그 역시도 비교적 25살이란 어린 나이에 포스팅으로 레인저스와 계약하게 되었다.
“첩첩산중이네.”
상우는 눈초리를 가늘게 찢었다.
“말만 그렇지, 표정은 아무렇지 않네?”
“그런가? 꽤 견제되는 선수들이긴 해. 솔직히 일본이 우리보다 더 많은 메이저리거를 배출해내잖아? 그리고 NPB에서 경험도 무시할 수 없지.”
“모두가 성공을 거두는 건 아니지만, 꾸준히 배출해내긴 하지. 그래도 지면 안 돼. 한국 언론과 커뮤니티 불타오른다.”
도진은 한쪽 입꼬리를 올렸다.
언론이고 커뮤니티고 솔직히 관심 없다.
한일전. 같은 동아시아를 대표하는 나라로서 지고 싶지 않은 것도 맞다.
하지만 제일 중요한 이유라면 생에 한 번뿐인 아메리칸 리그 Rookie of the year 타이틀이다.
앞길을 막아서는 존재들은 전부 부숴버려야 한다.
비록 시범 경기일지라도 기선제압은 중요한 법이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