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baseball genius who chews up America RAW novel - Chapter (209)
미국 씹어먹는 야구 천재-209화(209/400)
유우키는 볼넷이 선언되자 모자를 푹 눌러썼다.
‘젠장!’
표정에는 변화가 없었지만, 그의 심정만큼은 강산이 바뀐 만큼이나 크게 흔들렸다.
‘완벽한 슬라이더를 던졌는데.’
정말로 완벽했다.
이보다 더 좋은 공을 다시 던질 수나 있을까?
100번 중 1번 정도밖에 나오지 않을 만큼의 투구였으므로 불가능할 것이다.
그런데 저 한국인 선수는 자신의 슬라이더를 파악 후 체크 스윙으로 볼넷을 얻어나갔다.
졌다. 땀이 등골을 타고 흘러 유니폼 끝자락을 적시기 시작했다.
하지만 유우키는 금세 멘탈을 추슬렀다.
‘고작 볼넷 하나다.’
이런 경험을 어디 한두 번 겪어보던가?
적어도 NPB에서 수십 번은 겪어봤다.
그저 한 명의 주자가 1루로 출루했을 뿐이며, 고작 2회도 끝나지 않았지만 어쨌거나 여전히 노히터였다.
하지만 유우키는 등 뒤에서 느껴지는 베일 듯한 시선에 순간 몸이 움츠러들었다.
‘뭐지?’
투구에 돌입하기 전. 곁눈질로 1루 베이스를 힐끗 쳐다봤다.
철벽같이 단단했던 유우키의 표정에 균열이 간 것도 그때였다.
도진은 1루 베이스에서 먼발치 떨어져서 언제든지 뛰겠다고 리드하고 있었으니 말이다.
‘발이 빠른 건 알아.’
그런데 지금 리드는 너무 건방지잖아!
유우키는 주자는 신경 쓰지 말고 타자에 집중하라는 포수의 사인을 무시하고 1루로 견제구를 던졌다.
2아웃이다.
충분히 아웃 카운트 하나면 이닝을 마무리 지을 수 있겠지만, 만약 저 아이에게 도루를 허용한다면?
주자가 1루 베이스에 있는 것과 스코어링 포지션인 2루 베이스는 차이가 매우 크다.
만약 주자를 2루로 보낸다면?
멘탈을 보존하기 힘들 것이다.
더군다나 저 아이는 2아웃에서도 서슴없이 뛴다.
지금까지의 결과는 늘 그래왔다.
‘시범 경기이건 관계없이 말이지.’
하지만 유우키의 견제보다 도진의 귀루가 더 빨랐다.
마치 알고 있었다는 듯 얄미운 주루를 선보인 도진은 고개를 잠깐 숙이며 희미한 미소를 가렸다.
‘걸려들었네?’
솔직히 뛸 생각은 없다.
뛸 수는 있겠지만, 그랬다간 감독님과 호세한테 된통 혼날 것이 눈에 훤했다.
‘그래도 뛰지만 않으면 되잖아?’
이렇게 뛰지 않아도 알아서 흔들려 주니 수고도 덜 수 있었다.
‘이래서 한일전이 좋다니까?’
상대가 과하리만치 의식하고 있었으니까.
물론 유우키는 사와무라상도 타낼 만큼 훌륭한 투수.
한 번의 견제구로 뛰지 않는다는 것을 파악했겠지.
그래도 괜찮다.
‘이미 나를 의식했다는 것만으로 이번 승부에서 내가 이겼어.’
그가 흔들린다는 것은 투구에서 드러났다.
초구부터 던진 스플리터는 바닥이 아닌 정중앙으로 향하는 실투.
따-악!
7번 타자 윌리엄의 타격이 나왔다.
스플리터 특성상 제대로 맞히기만 한다면 장타가 나온다.
그렇기에 2루로 내달리는 도진의 주루에 가속이 붙었다.
2루 베이스를 밟고 3루 베이스로 쏜살같이 내달렸다.
3루 코치가 팔을 빙빙 돌린다.
홈까지 쇄도해도 괜찮다는 의미.
도진은 속도를 서서히 줄이며 3루 베이스를 통과해 홈 베이스를 밟고 득점을 올렸다.
8번 타자 호세. 대기 타석에 선 그가 도진에게 다가오라며 손짓했다.
“능구렁이 자식. 너 뛰었으면 나한테 진짜로 죽었어!”
“안 뛰었잖아요.”
“끄응.”
“뛰길 바라신 거예요?”
호세는 도진에게 그만 닥치고 더그아웃으로 들어가라며 엉덩이를 툭 쳤다.
지금 투수는 흔들리고 있다. 분위기를 이어 나갈 때다!
하지만 2사 2루 타석에 들어선 호세는 헛스윙 삼진으로 타석에 물러섰다.
그는 허탈한 표정으로 도진의 옆에 털썩 주저앉았다.
“너. 도대체 저 공을 어, 어떻게 쳤냐?”
그만큼 유우키의 공은 훌륭했다.
도진은 그저 씨익 미소를 보이며 대답을 대신했다.
호세는 한국인이 아니라서 말해봤자 모를 테니까.
* * *
유우키는 2회 1점을 헌납했음에도 3회는 삼자범퇴 이닝을 만들었다.
그런데 4회 2사에서 5번 타자에게 2루타를 헌납하게 되며 6번 타자 도진과의 승부를 앞두고 있었다.
‘역시. 쉽지 않군.’
너무나도 당연한 얘기겠지만, 메이저리그는 NPB와 달랐다.
이곳은 배트에 공을 맞히기만 한다면 장타를 만들어낼 선수가 즐비했다.
방금 2루타를 맞은 패스트볼도 절묘한 코스로 날아갔지만.
타자의 힘이 자신의 구위를 이겨냈다.
곧이어 타석에 들어서는 도진에게 시선이 고정됐다.
‘왔군.’
유우키는 어금니를 까득 물었다.
상대를 향한 분노라기보다는 투쟁심에 가까웠다.
그의 첫 타석에서는 볼넷을 내주었지만, 두 번째 타석을 잡으면 된다.
세 번째 타석 전에 교체가 눈에 훤했으니 이번이 시범 경기에서 마지막 대결이었다.
‘아웃 카운트를 잡아야 한다.’
정규시즌 맞대결에 돌입하기 전 최소 저 선수에게 밀리지 않는다는 걸 증명하겠다는 마음이 컸다.
그리고 자신도 있었다.
이미 앞선 승부에서 상대가 어떤 공에 강점이 있는지 확인하지 않았던가?
슬라이더를 유인구로 던져주고 다른 구종으로 승부하면 충분히 승산이 있겠지.
타석에 들어선 도진은 유우키와는 다르게 여유가 넘쳤다.
‘볼넷 하나 얻었으니 오늘 승부는 내가 이긴 거나 마찬가지긴 한데.’
투수와 타자의 승부에서 투수가 유리한 법이다.
그런데 이번 승부에서 지더라도 최소 5할의 출루율.
타수가 적더라도 어쨌거나 타자가 5할을 기록한다는 건 완승이었다.
도진은 표정을 굳혔다.
‘그래도 완전히 무너뜨려야 정규시즌에 도움이 될 거다.’
투수의 눈을 들여다보았다.
머릿속이 읽힐 듯 말 듯 오묘하다.
메이저리그는 아니지만 프로무대에서 멋진 활약을 펼쳤던 선수라서 그럴까?
멘탈 추스르는 법을 확실히 아는듯했다.
‘물론 안 읽혀도 관계는 없지만.’
도진은 타격 자세를 잡았다.
초구부터 날아오는 슬라이더에 배트를 내지 않았다.
하지만 그가 던진 슬라이더는 스트라이크 존 안으로 들어왔다.
“스트라이크!”
도진은 찰나의 순간에 머릿속을 정리했다.
‘투구 패턴이 바뀌었군.’
전 타석에서 두 번의 슬라이더를 유인구로 사용했지만, 이번에는 그 공으로 카운트를 잡으러 들어왔다.
뇌는 슬라이더라고 일러주었고, 도진은 앞선 경험으로 당연히 볼이 될 줄 알고 휘두르지 않았는데 이게 웬걸?
순간 머릿속이 복잡해졌지만, 머리를 맑게 하고자 심호흡을 연달아 내뱉었다.
2구. 공은 던져졌다.
한복판으로 향하는 빠른 공.
패스트볼이라고 착각한 그의 배트가 허공을 시원하게 갈랐다.
부웅.
“스트라이크!”
도진은 잠깐 타석에서 벗어나 배트로 스파이크를 털고 투수를 힐끗 쳐다봤다.
희미하지만 그의 입꼬리가 미세하게 솟아났다.
‘기분 좋아 보이네.’
그런데 역시나. 그는 NPB에서 훌륭한 투수일지 몰라도 메이저리그는 신인이다.
표정에서 드러나지 말아야 할 감정이 또렷하게 보였다.
‘완벽히 잡았다고 생각하겠지.’
착각할 법한 0-2 카운트였으니까.
그런데 이걸 어쩌나?
‘스플리터와 슬라이더는 두 번 다시 당하지 않아.’
두 번째 타석이다.
공을 몇 번 더 지켜본 결과 그가 던지는 구질이 몸에 익기 시작했다.
이런 감정은 자신감이 되어 돌아왔다.
‘결과가 어떻게 나올지는 모르겠지만, 최소 스플리터와 슬라이더에 헛스윙할 일은 없을 거다.’
배터리는 신중했다.
하나는 하이 패스트볼, 하나는 떨어지는 스플리터로 눈을 현혹하려고 들었다.
5구를 앞둔 유우키는 포수의 사인에 고개를 끄덕였다.
체인지업.
제대로 떨구기만 한다면, 상대가 노리지만 않는다면 무조건 배트를 끌어낼 수 있다고 봤다.
‘뭘 노려도 이번 승부는 내가 이긴다.’
2스트라이크를 잡았다.
타자는 스트라이크 존에 비슷하게 형성된 투구에 무조건 배트가 나와야 한다.
‘이번 체인지업은 놈의 헛스윙을 끌어낼 것이다.’
확신에 찬 그의 눈동자만큼이나 실밥을 긁는 완벽한 체인지업이 유우키의 손을 떠났다.
그런데 뭔가 이상하다. 타자의 배트가 나와야 하는데 아직 나오지 않고 있다.
섬뜩함을 느낀 유우키의 동공이 파르르 떨렸다.
불안한 감정은 언제나 들어맞는 법.
스트라이크 존으로 향하던 공이 급하게 속도를 줄였다.
그와 동시에 도진의 스윙에서 섬광이 번쩍했다.
따-악!
바닥을 향하던 공을 어퍼 스윙으로 완전히 걷어 올려버렸기 때문이다.
도진의 자세는 무너졌지만, 체인지업을 받아쳤다.
그렇기에 타구는 외야를 향해 쭉쭉 뻗어나갔다.
유우키는 급하게 등을 돌려 타구를 쫓았다.
제발! 저 타구가 좌익수에게 잡히길 간절히 빌었지만, 좌익수는 여전히 펜스를 향해 내달리고 있었다.
유우키는 고개를 떨궜다.
‘졌다.’
투웅.
타구는 담장을 직격하며 중견수 방면으로 데구르르 굴러갔다.
타구를 쫓던 유우키의 시야를 2루 베이스에 도달한 도진이 가리자.
단단하게 굳은 시멘트만큼이나 굳건했던 그의 멘탈이 와장창 깨져버렸다.
유우키는 윌리엄과 호세에게 연속 안타를 내어주며 결국 마운드에서 내려갔다.
* * *
도진은 경기장을 떠나는 상우를 배웅했다.
“잘하고 와라.”
“잘하는 건 하는 거고, 다시 오지는 못할 거다.”
“왜 이렇게 자신감이 없냐.”
상우는 버럭했다.
“자신감? 자신가암? 기만자 새끼야! 너 그러는 거 아냐!”
“그러는 거 아니긴. 선수가 자신감 없이 뭘 하겠다고.”
상우는 입술을 빼쭉 내밀었다.
“틀린 말은 아니긴 한데. 현실적으로 메이저리그에 올라오기 힘들다는 거지.”
도진도 알고 있었다.
상우가 더블 A를 폭격할지라도 메이저리거로서의 자리는 없다.
아돌니스는 굳건했고, 호세는 한층 더 발전했다.
둘 사이를 비집고 들어올 틈은 없었다.
“그래도 40인 로스터에 합류해 봐야지? 그럼 9월에 올라올 수 있잖아.”
“하긴. 그것도 그렇네. 여튼. 난 간다. 뺑이 쳐라.”
뺑이는 네가 쳐야 하는 게 아닐까? 도진은 이 말을 꾹 삼켰다.
이제 더블 A로 내려가는 선수가 필요한 건 격려뿐이었다.
상우는 택시를 타기 전 도진에게 고개를 틀었다.
“오늘은 뉴스 봐라. 기회 되면 커뮤니티도 보고.”
“알아서 할게. 어서 가라.”
“간다.”
상우가 택시를 타고 떠났다.
홀로 남게 된 도진은 구장 근처의 벤치에 털썩 앉았다.
‘음. 봐볼까?’
주머니에 든 핸드폰을 만지작거렸다.
어떤 기사가 나올지 눈에 훤하긴 했지만, 정규시즌에 앞서 승자의 기쁨을 이어 나가고자 읽어보는 것도 괜찮겠지.
도진은 핸드폰을 열어 포털사이트 해외 야구 란에 들어가자마자 혀를 내둘렀다.
“와. 이렇게나 많았어?”
온통 자신에 관한 기사로 도배되어 있었다.
2, 3개쯤 되리라는 예상을 5배는 우습게 빗나갔다.
-한국 최고의 유망주 김도진! 일본 최고의 투수 유우키마저 무너뜨리다!
-사와무라상? 메이저리그는 한 수 위라는 것을 증명한 한국인 김도진!
-신인왕 후보 연달아 격파! AL 신인왕은 따놓은 당상!
“이건 좀 너무 가지 않았나?”
따놓은 당상이라니.
그러면 얼마나 좋겠는가?
그래도 도진은 내심 기분이 좋았다.
‘이런 맛에 기사 보는 건가?’
이왕 이렇게 된 거 커뮤니티도 들어가 볼까?
도진은 순간 멈칫했다.
커뮤니티의 주소조차 제대로 몰랐다.
‘상우에게 물어볼까?’
아니. 굳이 차후에 놀림 받을 짓은 안 하는 게 낫겠지.
대신 신인왕이라는 목표를 달성하게 되면 그때는 찾아볼 생각이다.
도진은 핸드폰을 덮고 주머니에 다시 쏙 넣었다.
* * *
커뮤니티는 오늘 경기에서 이긴 도진의 활약에 활활 타올랐다.
-일본의 미래가 없다고 생각하면 개추!
글 내용은 일본 기사의 링크가 걸려 있었다.
-류타의 복수를 다짐한 유우키. 그에게 일본의 미래가 달려 있다.
└일본인 컷!
└둘 다 졌으니까 이제 일본은 미래가 없는 건가?
└그냥 진 것도 아니고 처참하게 발렸죠?
└이거 맞냐? 한국이 일본의 기대주들을 이긴 거 맞냐고!
└팩트: 개같이 처발랐음.
└솔직히 그게 중요하냐? 19세 한국인 메이저리거가 주전 3루수라는 게 중요하지. 이러다가 진짜 신인왕까지 따는 거 아니냐고!
└가능성이 있긴 한데 너무 기대는 안 하는 게 나을 듯. 류타랑 유우키 말고도 이번 시즌 신인왕 후보들이 전부 쟁쟁해.
└응원이나 하자. 유일하게 믿을만한 한국인 메이저리거다.
그리고 시간은 흘러 어느덧 메이저리그 정규시즌이 다가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