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baseball genius who chews up America RAW novel - Chapter (210)
미국 씹어먹는 야구 천재-210화(210/400)
개막전 당일.
에인절스 라커룸 분위기는 딱딱하게 굳어 있었다.
유니폼으로 갈아입은 도진은 주위를 훑어보았다.
‘음. 다들 비장하네.’
그 장난기 많은 호세도 진중한 표정으로 단 한마디도 내뱉지 않았다.
‘개막전은 개막전이구나.’
새로운 시즌의 첫 출발은 언제나 중요한 법이다.
매번 밥 먹듯이 꼴찌만 하는 팀이라서 더 그럴 수도 있겠지.
응원해주는 팬들에게 올 시즌은 다르다는 것을 적어도 개막전에서는 보여줘야 한다.
때마침 조 캐넌 감독이 라커룸의 문을 열고 들어왔다.
늘 무뚝뚝한 표정인 그 역시도 오늘만큼은 더욱 위엄이 넘쳤다.
“새 시즌이다. 우리는 기필코 꼴찌에서 벗어나야 한다.”
조 캐넌 감독은 말을 덧붙였다.
“이왕이면 꼴찌 탈출 이상을 바라보는 시즌이 되었으면 좋겠다. 벨.”
에인절스의 캡틴 벨이 호명됐다.
그는 말라버린 아랫입술을 까득 깨물고는 눈을 번뜩 떴다.
“감독님의 말씀처럼 더 나은 시즌을 위해서는 오늘 경기 승리가 필요하다.”
개막전 첫 경기에서의 승리.
162경기 중 고작 이 첫 경기가 가지는 승리의 가치는 얼마나 될까.
그리 크지는 않을 것이다.
개막전을 이기고 내리 연패를 달리는 팀들도 존재했으니 말이다.
하지만 개막전의 승리가 팀의 분위기를 바꿀 수 있는 것도 사실이다.
“꼴찌의 발악은 승리에서부터 시작한다. 그러니 모두 최선을 다해주길 바란다. 나 역시도 그럴 테니까.”
선수들은 대답 대신 짧게 고개를 끄덕였다.
조 캐넌 감독은 만족스러운 표정으로 도진에게 턱짓했다.
“한마디 하지.”
도진은 너무 놀란 나머지 눈을 끔뻑이며 말을 더듬었다.
“저, 저요?”
“그래. 너.”
제, 제가 왜요? 제가 도대체 뭐라고요?
사방에서 향하는 비장한 눈빛들은 날카로운 검이 되어 심장을 벨 듯이 다가왔다.
토 달지 말고 빨리! 라는 깊은 의미가 담겨 있었다.
물러설 수 없다는 것을 인지한 도진은 눈을 질끈 감았다.
“에인절스의 일원으로서 개막전에 포함되어 영광입니다. 하지만 이런 영광스러운 자리를 패배한다면 마음이 쓰릴 것 같습니다.”
말이 트인 도진은 자신감 넘치는 목소리로 말을 덧붙였다.
“개같이 뛰겠습니다. 최선을 다해 팀 승리에 보탬이 되겠습니다. 기필코 승리가 필요하다고 말씀하셨죠? 월드 시리즈라고 생각하겠습니다. 그러니 오늘만큼은 저를 말리셔도 듣지 않겠습니다.”
선수들의 입꼬리가 스멀스멀 솟아나기 시작했다.
호세는 손뼉을 쳤다.
정신을 차려보니 뒤숭숭했던 라커룸의 분위기는 순식간에 환호로 뒤덮여 있었다.
“루키한테는 질 수 없지.”
“오늘 킴보다 성적 안 나오는 놈들은 크게 쏠 준비나 해라.”
“너나 잘해 임마! 네가 제일 위험해!”
라커룸이 시끌벅적해지자 오늘 잔뜩 굳어있던 호세는 도진의 어깨에 손을 얹었다.
“잘했다 애송아.”
“잘한 건가요?”
“그래. 에인절스가 지금 4년 내내 개막전에서 패배했거든? 그리고 개막전 패배했던 시즌 중 세 번이나 꼴찌를 했어. 이것도 징크스 아니겠어?”
“오늘의 결과가 정말 중요하겠군요.”
“지면 네 탓이다.”
“네?”
“네가 그랬잖아. 승리에 보탬이 되겠다고.”
억지다. 억지야.
하지만 지금은 자신감이 필요했다.
“까짓것 해보죠. 적어도 제 임무는 다하겠습니다.”
메이저리그 개막전. 도진에게도 뜻깊은 날이다.
그러므로 패배는 원치 않았다.
‘120%를 발휘해야겠지.’
* * *
LA 에인절스의 홈 개막전의 상대는 오클랜드 애슬레틱스.
도진은 경기 시작 전. 선수들과 함께 나란히 서서 초청 가수의 목에서 흘러나오는 미국 국가를 들었다.
국가가 끝난 직후 선수들은 시합 준비를 위해 다시 더그아웃으로 복귀하자.
해설의 흥분된 목소리가 미디어를 타고 흘러 나갔다.
[에인절스와 애슬레틱스. 애슬레틱스와 에인절스의 경기가 시작을 앞두고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팬들이 기다리신 메이저리그 개막이 몇 분 남지 않았습니다. 일단 라인업부터 확인해봐야겠죠? 애슬레틱스 라인업입니다.]1. 브렌던 스미스. CF.
2. 애덤 존슨. 1B.
3. 크리스토퍼 데이비스. 3B.
4. 제이든 앤더슨. LF.
5. 알렉산더 라이언. DH.
6. 닐 콜린스. 2B.
7. 케빈 클락. C.
8. 테일러 백. RF.
9. 로버트 홀튼. SS.
P. 제임스 브라운.
[예상했던 라인업 그대로입니다. 오클랜드 작년 플레이오프에서 탈락했지만, 강팀이지 않습니까?] [그렇습니다. 특히나 애덤 존슨부터 알렉산더 라이언까지 이어지는 2번부터 5번까지의 타순은 작년 무려 140개의 홈런을 기록했을 만큼 강타선이에요.] [오클랜드의 1선발 제임스 브라운이 마운드에 오릅니다. 훌륭한 투수잖아요?] [작년 시즌 14승 8패 방어율 3.36을 기록했죠. 언제나 밥값을 톡톡히 해주는 선수예요.] [다음은 에인절스 라인업입니다.]1. 켄 매논. SS.
2. 자렌 테일러. 1B.
3. 에이든 브라운. 2B.
4. 아돌니스 로드리게스. DH.
5. 미카 라이트. LF.
6. 카메론 킹. RF.
7. 카덴 루이즈. CF.
8. 호세 가브리엘. C.
9. 도진 킴. 3B.
P. 벨 조이스.
[에인절스는 작년과 비교하면 큰 변화가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호세가 다시 마스크를 쓰게 됐고 아돌니스가 지명 타자로 들어갔습니다. 그 외에 변동 사항은 핫 코너죠.] [18세에 데뷔해서 올해 19세가 된 한국인. 그가 3루수에서 모습을 드러냈거든요? 어떻게 보십니까.] [작년 8월에 콜업돼서 준수한 성적을 낸 선수죠. 솔직히 말하자면 18세치고 매우 뛰어난 활약을 펼쳤어요. 더군다나 시범 경기에서의 성적을 중요하게 보지는 않지만, 작년과 비교하면 완전히 다른 사람이 됐어요.] [타격 메커니즘을 바꿔서 장타가 늘었습니다. 저는 시범 경기에서 처음 그 모습을 처음 접하는 순간 깜짝 놀랐거든요?] [메커니즘을 바꾸는 게 어디 쉽던가요? 그런데 저 선수는 보란 듯이 해냈고 시범 경기에서 결과를 냈습니다. 정규 시즌에서도 그 기세를 이어 나갔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선수들이 그라운드로 나오고 있습니다.]시합이 시작되며 에인절스 선수들이 더그아웃을 벗어났다.
벨 조이스는 도진이 3루 베이스 근처에 다다를 때쯤 그를 불러 세웠다.
“헤이. 루키.”
도진은 벨 조이스에게 쭈뼛쭈뼛 다가갔다.
“넵.”
“오늘 승리는 네 손에 달려 있다.”
“네?”
벨 조이스는 피식 웃더니 이내 손을 휘휘 저었다.
도진은 똥 마려운 강아지처럼 의문을 가득 품은 채로 미간을 구겼다.
‘아니. 왜 승리가 나한테 달려 있다는 건데?’
하지만 경기가 시작되는 즉시 이유를 알 수 있었다.
브렌던 스미스.
좌타자인 그에게 호세는 바깥쪽으로 걸터앉았다.
퍼억! 초구부터 100마일의 패스트볼이 시원하게 스트라이크 존에 걸쳤다.
“스트라이크!”
2구 역시 마찬가지였다.
휘어져 나가는 97마일의 투심은 다시 한번 바깥쪽이었다.
“볼!”
3구와 4구도 노골적으로 바깥쪽만 유도해서 카운트는 2-2.
‘오늘 철저하게 바깥쪽 승부를 하려나 보네.’
5구. 스트라이크 존에서 바깥쪽으로 향하는 투심에 타자의 배트가 나왔다.
따-악!
간결하게 밀어친 타구는 3루 베이스를 넘어 안쪽으로 들어오더니 파울 지역으로 흘러나가고.
도진은 즉각 반응하며 백핸드로 타구를 처리했다.
3루 측 더그아웃 근처에서. 그것도 역동작에 크게 걸렸던지라.
발을 멈춰 세우는 대신 보폭을 오히려 포수 쪽으로 밟고는 기우뚱한 채로 1루를 향해 송구했다.
쉐에에엑.
발 빠른 좌타자의 주루보다 레이저 같은 도진의 송구가 먼저 1루수 글러브에 도착해 있었다.
퍼억!
“아웃!”
심판이 주먹을 불끈 쥐었다.
벨은 도진을 향해 손으로 글러브를 퍽퍽 치며 격한 축하를 보냈고.
호세도 도진에게 엄지를 치켜세웠다.
어려운 타구를 완벽하게 처리한 도진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휴. 다행이네.’
오늘 철저하게 바깥쪽 승부하려는 모양이구나.
그렇게 생각한 도진은 틀렸다는 사실을 바로 다음 타석에서 깨달았다.
우타자인 자렌 테일러에게는 집요하게 몸쪽만 공략했기 때문이다.
‘아, 아니 이 사람들이.’
물론 이유는 알고 있었다.
에인절스의 내야진에서 수비가 제일 뛰어나기로 소문난 켄과 자신이 3루수와 유격수였으니까.
벨 조이스의 90마일 중 후반대 투심은 정타를 맞추기 힘들다.
그러므로 땅볼 타구를 완벽하게 처리할 수 있는 켄과 자신에게 타구가 향하는 편이 좋다.
‘그래도 이건 너무 노골적이잖아.’
불평을 내뱉을 새도 없이 타자의 몸쪽으로 휘어져 들어가는 타구가 다시 한번 빗맞았다.
타구는 3루수, 투수, 포수 사이로 데굴데굴 굴러가고 있었다.
셋은 동시에 움직였다.
그중 도진은 타구에서 제일 거리가 멀었지만, 그의 속도만큼은 벨과 호세를 우습게 능가했다.
“비켜! 비켜!”
타구를 향해 쏜살같이 달려오던 도진은 맨손으로 공을 집어 들었다.
속도가 붙지 않은 상태라 송구하기 위해 몸을 트는 순간 균형이 크게 흔들렸다.
까득. 도진은 이를 악물었다.
균형이 흔들리는 바람에 1루 베이스가 내민 글러브가 순간 5개로 보일 정도로 초점이 맞지 않았다.
하지만 그 찰나의 순간에 도진은 눈을 부릅떴다.
‘보인다.’
여러 개였던 글러브가 단 0.1초 동안만큼은 1개로 고정되고.
도진은 그곳을 향해 정확히 송구했다.
꽈당.
“아웃!”
외야 관중석까지 들릴 만큼 크게 넘어진 도진은 심판의 콜에 벌떡 일어났다.
벨 조이스와 호세는 걱정스러운 눈빛으로 물었다.
“괘, 괜찮나?”
“야 이 미친놈아! 흥분을 가라앉혀! 그러다 다 치려면 어쩌려고!”
도진은 별일 아니라는 듯 유니폼을 훌훌 털어냈다.
짝짝짝.
경기장을 찾은 에인절스 팬들은 일제히 자리에서 일어서서 도진에게 기립박수를 보냈다.
도진은 얼이 나간 벨과 호세를 힐끗 쳐다보며 어깨를 으쓱했다.
“하지만 잡았죠?”
벨과 호세의 입꼬리가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치솟았다.
만약 3루수가 도진이 아니었다면?
에인절스는 무사 1, 2루라는 위기를 맞이했을 수도 있다.
그런데 그의 환상적인 수비는 귀중한 아웃카운트를 만들었다.
‘역시…… 우리 에인절스에는 이런 선수가 필요했어.’
벨과 호세의 생각이 일치했다.
라커룸 안에서는 비장했지만, 막상 경기에 나서고 나니 162경기 중 그저 하나의 경기라고 착각하고 있었다.
그렇기에 반성했다.
호세와 벨은 글러브와 미트로 하이파이브를 나누고는 비장하게 말했다.
“오늘 경기. 어떻게서든 잡아내자.”
* * *
에인절스의 타선은 내세울 장점 따위는 없는 타선이다.
작년 30개 구단 중 팀 타율 29위에 그쳤던 만큼 식물 타선이었다.
더군다나 상대 투수는 오클랜드 애슬레틱스의 1선발 제임스 브라운. 공략하는 데 애를 먹었다.
2회까지 퍼펙트 피칭을 이어 나간 제임스 브라운은 3회를 맞이했다.
도진은 대기 타석에 있는 호세에게 다가갔다.
“호세. 오늘 상대 투수 컨디션이 좋아요.”
호세는 떨떠름한 표정으로 말했다.
“저놈은 매번 좋았어.”
제임스 브라운의 공이 빠른가?
그건 아니다.
평균 구속 93마일로 패스트볼 구속만 놓고 보자면 메이저리그 평균이다.
그런데 그는 패스트볼을 3가지나 다룰 줄 알았다.
포심, 커터, 투심.
거기에 휘어져 나가는 슬라이더와 서클 체인지업까지 곁들인다.
포심 패스트볼 기준 좌우를 완벽하게 공략할 수 있는 선수였다.
7번 타자 카덴 루이즈를 상대로 내야수 팝업 플라이를 유도하며 다시 한번 기세를 이어 나가자.
도진은 호세만 들을 수 있도록 나지막이 읊조렸다.
“호세. 보여주세요.”
호세는 눈썹을 치켜떴다.
“그게 말처럼 쉽냐?”
그러고는 불만을 잔뜩 품은 채 타석으로 발걸음을 돌렸다.
‘젠장. 나도 그러고 싶지. 하지만 개막전이잖아?’
선취점은 중요하다.
하지만 하필이면 오늘 최고조의 컨디션을 선보이는 제임스 브라운에게 선취점을 가져오리란 쉽지 않았다.
‘나로서는 불가능해.’
암담했던 호세의 표정이 어느 순간 자신감이 철철 흐르고 있었다.
‘그런데 말이야. 내 뒤에 놈은 가능할지도.’
목숨을 걸어서라도 출루를 해봐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