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baseball genius who chews up America RAW novel - Chapter (211)
미국 씹어먹는 야구 천재-211화(211/400)
타석에 들어선 호세는 심호흡을 크게 내쉬었다.
‘어떻게든 출루해야만 한다.’
아직 단 한 명의 선수도 출루하지 못했다.
만약 여기서 자신마저 쉽사리 무너진다면?
선발 투수의 기세는 더욱 하늘을 찌를 것이다.
선발로 나선 선수 중 도진을 제외하면 메이저리그 경력이 꽤 있는 편이다.
그런데 선배로서 모범을 보여도 모자랄 판에 마치 꿔다놓은 보릿자루처럼 픽픽 쓰러져나가고 있었다.
‘물론 핑계는 댈 수 있어.’
상대는 메이저리그 1선발이다.
더군다나 자유자재로 스트라이크 존을 공략하는 투수가 하필 또 긁히는 날이다.
희망이라면 아직 4월이라는 점?
개막전부터 몸 상태가 100%인 선수는 없었으니까.
근거가 너무 빈약하지만 이렇게라도 생각해야 마음이 편한 법.
‘제임스 브라운의 긁히는 공을 제대로 칠 수 에인절스 선수는 애송이뿐이다.’
공을 구분해서 칠 수 있는 건 도진뿐이었으니까 말이다.
아니. 저런 선수는 메이저리그에도 몇 없다.
천재 타자들만 갖출 수 있는 능력이 그에게는 있었다.
아직 경험이 부족해서 탑 클래스 수준은 아닐지라도 믿을 수 있는 건 도진뿐이었다.
그러니 기필코 출루해야 하는데 상황이 녹록지만은 않다.
‘쉽지 않으면 어쩔 건데?’
무섭다고 사시나무 떨듯이 잠자코 바들바들 떨며 보고만 있을 것인가?
도진을 봐라. 그는 개막전 수비에서부터 몸을 사리지 않고 있다.
‘분위기를 뒤집을 만한 멋진 플레이를 선보였지만 우리 에인절스는 지금 어떻지?’
그 분위기를 되살리지 못했다.
‘오히려 투수의 기에 눌렸어.’
하지만 우린 미래를 볼 때가 아니잖아?
호세는 타격 자세를 잡았다.
도진과 함께 훈련하며 바뀌게 된 클로즈드 스탠스.
선구안은 다소 포기하면서까지 힘에 싣는 메커니즘이다.
‘배터리가 이를 모를 리가 없다.’
초구. 호세는 바깥쪽 흘러 나가는 투심에 크게 헛스윙했다.
하지만 생에 둘도 없을 만큼 있는 힘껏 스윙했던지라.
부웅!
태풍도 갈라버릴 듯한 바람 소리가 경기장 안을 맴돌았다.
호세는 배트를 돌린 후 투수의 동공이 순간 팽창한 장면을 놓치지 않았다.
‘그래. 잘 생각해라 제임스. 내가 아무리 퇴물이어도 까닥하면 넘어가는 거야. 알지?’
그러니 변화구 위주로 피칭해라.
호세는 수 싸움을 걸었다.
2구와 3구는 절대 휘두르지 않겠다고 다짐했기 때문에 스트라이크 존을 벗어나야 하는 변화구여야만 한다.
“볼!”
“볼!”
호세의 예상대로였다.
2구는 슬라이더, 3구 서클 체인지업은 스트라이크 존을 벗어났다.
카운트는 2-1.
호세의 예상대로 카운트에서 우위를 점했지만, 안도는 시기상조였다.
상대는 메이저리그 1선발.
하루에도 몇 번씩 경험하는 이런 상황은 그에게 우습겠지.
‘그러니 여기서…….’
호세는 4구째 높은 쪽 코스로 날아오는 패스트볼을 예측했던 나머지 크게 스윙했다.
따-악!
하지만 타이밍이 다소 빨랐던지라.
총알만큼이나 빠른 타구는 그대로 파울 지역의 그물을 맞춰버렸다.
카운트는 2-2.
투수에겐 여유가 있었고 타자는 조급했지만.
호세는 오히려 가라앉은 입꼬리를 힘껏 올렸다.
투수도, 포수도. 자신이 강제로 띤 미소를 보라는 의미에서였다.
‘배짱 좀 보자. 어디 스트라이크 존으로 꼽아봐라!’
5구 서클체인지업은 스트라이크 존을 벗어났다.
풀카운트를 앞둔 배터리는 서로에게 사인을 보냈고 이는 일치했다.
‘6구. 호세는 패스트볼만 노리고 있다.’
그러니 저렇게 힘차게 돌려버리는 배트에 자칫 잘못하다간 크게 한 방 얻어맞을 수 있다.
그런 불안감 때문에 풀카운트 승부에서 헛스윙을 유도하고자 슬라이더를 던졌고.
호세는 애당초 관심도 없다는 듯 배트를 내지 않았다.
퍼억.
“베이스 온 볼스.”
1루에 안착한 호세는 주먹을 불끈 쥐어 보였다.
고작 볼넷을 얻어나간 것에 비해 과한 세레모니였다.
하지만 호세에게만큼은 더없이 뜻깊은 장면.
‘애송이 덕분에 야구 인생에서 큰 전환점을 맞이하게 되었으니까.’
그저 잘 치고 잘 받고 부상 당하지 않고 롱런하는 게 프로 의식이던가?
아니. 한 경기 한 경기 최선을 다하는 것이 프로라는 것을 도진은 경기 내에서 직접 선보이고 있었다.
‘애송아. 보여줘라.’
호세는 말아 쥔 주먹을 대기 타석의 도진에게 내밀었다.
도진은 고개를 두 번 끄덕이고는 타석에 들어섰다.
* * *
‘정말 멋있었습니다.’
도진은 호세가 어떤 마음가짐으로. 어떤 생각을 가지고 배터리를 공략했는지는 모른다.
그의 머릿속을 들여다보는 초능력 따위는 없었으니 말이다.
하지만 의지만큼은 느껴졌다.
예전의 호세가 아니다.
그는 변하려고 노력하고 있었다.
팀이 변하려면 신인 선수들보단 고참 선수들이 모범을 보여야 하는 법.
호세는 임무를 아주 잘 수행해냈다.
물론 개인 성향이 강한 미국이라 그의 의지가 다른 에인절스 선수들에게도 전달됐을지는 모른다.
‘그래도 상관은 없어.’
그의 의지를 자신이 전달받았다.
그러므로 이번 기회를 어떻게서든 이어 나가야만 한다.
마운드에 선 제임스 브라운은 모자를 잠깐 벗고 손가락으로 이마를 문질렀다.
예상치 못한 일격을 맞아 당황스러울 때 나오는 그의 행동이었다.
‘패스트볼을 던졌어야 했나?’
고개를 저었다.
슬라이더로 배트를 끌어낼 확신이 있었고, 제대로 던지기까지 했다.
이건 그냥 호세가 잘한 거다.
그의 수 싸움이 완벽했다.
‘평소의 호세라고 볼 수 없군.’
타자라면 카운트가 몰리면 다급해진다.
하지만 호세는 그보다 더욱 급한 성격이었다.
하지만 제임스 브라운은 여느 때와 다름없는 차분한 표정이었다.
‘그저 주자 하나가 루에 나갔을 뿐이야.’
평정심을 찾은 제임스 브라운은 타석에 들어서기 전 도진의 행동에 다시 한번 표정이 와락 구겨졌다.
그는 타석 밖에서 두 번의 연습 스윙을 가져갔는데 그 강도가 워낙 강했으니 말이다.
마치.
‘건방진…….’
자신 있으면 어디 한 번 스트라이크 존으로 던져봐라.
그의 배트에서 뿜어져 나오는 음색은 경고처럼 들렸다.
새파랗게 어린 선수가 잔뼈 굵은 메이저리그 1선발을 상대로 말이다.
제임스 브라운은 투심 사인에 고개를 저었다.
발이 느린 주자가 1루에 나가 있다.
충분히 투심으로 병살타를 유도해봄 직하지만.
도진의 행동에 자존심이 긁혀버려서 그를 완벽히 눌러버리겠다는 생각뿐이었다.
그렇기에 초구. 그는 패스트볼을 몸쪽 바짝 붙여서 던졌다.
퍼억.
“스트라이크!”
심판의 콜이 들려오자 도진은 아쉽다며 고개를 미세하게 저었다.
‘이야. 이게 들어와?’
자로 잰 듯한 제구다.
웬만해선 좋은 타구를 생성하지 못했을 만큼의 완벽한 투구였다.
하지만 그와 별개로…….
‘화가 많이 나셨네.’
느껴진다.
호세에게 볼넷을 내주기 전까지 평온했던 투수의 모습이 아니다.
의도치 않게 볼넷을 내주지 말았어야 할 선수에게 볼넷을 내줘서 그런 것도 있을 테고.
‘내 도발도 먹혀들었고.’
메이저리그 1선발이다.
아무리 100%의 몸 상태가 아닐지라도 그는 애슬레틱스에서 제일 잘던지는.
메이저리그에서도 손꼽히는 선수였다.
‘그래서 힘 대 힘으로 맞붙는다 한들 내가 이길 확률은 낮아.’
하지만 상대가 흥분했을 때는 이야기가 좀 다르다.
‘충분히 공략할 수 있어.’
이어지는 2구와 3구. 커터와 투심은 존을 벗어났다.
“볼!”
“볼!”
그리고 대망의 4구. 공은 던져졌다.
도진은 앞선 투심과 비슷한 구종이 날아오자 배트를 한 타이밍 늦게 냈다.
체인지업이었으니까.
‘그것도 실투.’
아무리 1선발이라도 실투를 안 던지는 투수는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다.
무엇보다 그 공이 지금 치기 좋게 날아오고 있었다.
도진의 배트가 힘차게 돌아갔고.
투수가 던진 공은 배트의 스위트 스폿에 정확히 얹혔다.
따—악!
도진은 타구가 좌익수 방면으로 쭉쭉 뻗어나가자 배트에 가벼운 스핀을 주는 배트 플립을 선보였다.
‘후환이 두렵기는 한데.’
요즘 메이저리그도 변하고 있다.
20년대부터 어린 선수들이 배트 플립에 대한 인식을 바꿔 놓기 시작하더니.
이제는 팀마다 배트 플립으로 유명한 선수들이 나오고 있었다.
물론 여전히 배트 플립은 도발이라는 인식이 남아 있었지만, 예전보다는 확실히 덜 했다.
무엇보다 상대는 1선발이다.
‘당장 실력으로 그를 능가하긴 어려워. 그러니 이 기회를 놓칠 수는 없지.’
보복? 해봐.
공짜 출루는 언제든지 환영이니까.
개막전 첫 타석 투 런 홈런.
도진은 3루를 돌아 홈 베이스를 밟고 더그아웃에서 무수한 축하를 받았다.
3회 말 스코어는 2:0. 에인절스는 도진의 홈런으로 앞서 나가기 시작했다.
* * *
호세는 도진의 홈런을 격하게 환영했다.
세레모니가 전부 끝난 직후에도 도진의 헬멧을 사정없이 두들기고 있었다.
그렇기에 도진은 헬멧을 벗지 못했다.
“그, 그만……”
“으하하! 으하하하!”
“아파요!”
“어쩌라고! 하하하하!”
도진은 서둘러 자리를 피했다.
호세는 언제 그랬냐는 듯 위엄있는 표정을 지었다.
도진도 그제야 호세의 옆에 털썩 앉았다.
대신 축하는 아직 끝나지 않았다.
벨 조이스였다.
“멋진 홈런이었다.”
“운이 좋았습니다!”
호세는 혀를 찼다.
“또 운이란다.”
“진짜 운이긴 했죠. 실투였잖아요? 물론 어디까지나 호세가 출루해준 덕분에 나온 결과라고 생각해요. 만약 호세가 주자로 나가지 못했다면 상대 투수가 흔들릴 일도 없었겠죠.”
“애송이 자식이. 야구 볼 줄 좀 아네?”
도진은 볼을 빵빵하게 불리더니 이내 입 틈으로 바람을 후 불어 전부 빼냈다.
“호세. 저 메이저리건데요?”
야구를 볼 줄 안다는 건 너무나도 당연한 얘기가 아닐까요?
순진무구한 표정으로 그를 쳐다봤다.
호세는 쯧쯧 혀를 차더니 이내 피식 웃었다.
“어쨌든 잘했다. 실투를 놓치지 않는 것도 실력이지. 대신 아쉽긴 하네.”
제임스 브라운은 19세의 투 런 홈런에도. 배트 플립에도 흔들리지 않았다.
1번 타자를 4구 삼진. 2번 타자에게는 3구 삼진으로 이닝을 마무리 지었다.
도진은 호세의 걱정스러운 표정에 나지막이 읊조렸다.
“그래도 우리 선발 벨 조이스에요.”
“그래. 벨 조이스지.”
“그런데 뭐가 그렇게 걱정이세요?”
“벨 조이스가 걱정은 아니지.”
궁금증을 풀어낼 새도 없이 공수 교대.
경기는 계속해서 진행됐고 호세와 도진은 다음 타석에서 삼진으로 물러섰다.
스코어는 여전히 2:0.
숨 막히는 투수전이 이어지고 있었다.
이대로 흘러가기만 한다면 승리로 끝날 것만 같던 에인절스가 하나 간과한 것이 있었다.
벨 조이스. 그의 투구 수였다.
아직 100% 몸이 아닌 그는 팀의 승리를 위해 무실점 피칭을 이어 나가고자 평소와 다른 피칭 스타일은 선보였다.
힘보다는 기교가 잘 먹혀들고 있었지만, 5회가 끝날 즘 벌써 90개 가까운 공을 던지게 됐다.
6회 초.
벨 조이스가 마운드에서 내려가자마자 투수는 3개의 안타를 연달아 허용하며 1점을 실점했다.
6회 불펜에 들어선 도진은 호세의 걱정이 이해되기 시작했다.
‘아직 경기는 끝나지 않았어.’
선발 투수가 내려가자마자 실점하게 됐다.
1점 차는 어떻게 될지 아무도 모른다.
더군다나 언제든지 홈런을 칠 수 있는 타자들이 상대라면 더욱 그렇다.
7회. 에인절스에 다시 한번 투수 변화가 있었다.
불펜에서 몸을 풀던 두 선수 가운데 도진이 아닌 애쉬톤이 먼저 마운드에 오르게 됐다.
조 캐넌은 승리가 필요한 시점에서 메이저리그 경험이 있는 애쉬톤이 도진보다 제격이라고 판단했던 것.
하지만 애쉬톤은 1번 타자에게 2루타를. 2번 타자에게 안타. 그리고 3번 타자에게 볼넷을 내주었다.
그 즉시 불펜에 전화가 울렸다.
“킴! 등판해야겠다. 제발 막아다오.”
7회 초. 무사 만루. 다음 타자는 4번 타자.
도진은 절체절명의 순간에서 마운드에 오르게 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