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baseball genius who chews up America RAW novel - Chapter (212)
미국 씹어먹는 야구 천재-212화(212/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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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진이 마운드에 오르자 해설들은 걱정 반 기대 반의 목소리였다.
[에인절스의 51번. 킴. 에인절스 불펜 중 시범 경기에서 제일 믿음직스러웠던 선수가 마운드에 오릅니다.] [하지만 안심할 수는 없습니다. 무사 만루거든요? 거기에 애슬레틱스의 4번 제이든은 만만치 않습니다.] [조금 더 일찍 올렸으면 어땠을까 하는 아쉬움도 남습니다. 아직 메이저리그가 어색할 법한 19세 선수이지 않습니까?] [그렇습니다. 저희는 이런 상황에서 마운드에 오르는 선수가 어떤 심정인지 아주 잘 알고 있지 않습니까?] [맞습니다. 그가 아무리 훌륭한 투수라도 긴장이 될 수밖에 없는 처지에 놓여 있습니다. 오늘 홈런 한 개를 때려냈으니 좋은 분위기를 가져갈 수도 있겠지만, 쉽지는 않아 보입니다.]연습 투구를 끝낸 직후 호세가 마운드를 방문했다.
그는 서둘러 미트로 입을 가렸다.
“오늘 어떤 공이 좋냐?”
불펜 투수들이 등판을 앞두고 불펜에서 몸을 풀 때.
불펜 포수들은 투수의 공을 직접 받아낸다.
메이저리그에서 잔뼈가 굵은 선수들이야 그저 가볍게 몸을 푸는 경우가 대부분이며.
공을 받는 포수도 투수의 기를 살려주고자 모든 공이 좋다고 말해주는 게 일반적이다.
하지만 루키인 도진은 다른 투수들과 조금 달랐다.
아직 메이저리그 경험이 너무나도 적었기에 어떤 공이 마운드에서 통할지 데이터가 적었다.
그렇기에 지금까지 쭉 자신에게만큼은 솔직하게 말해달라고 했고 호세도 이를 알고 있었다.
도진은 무표정으로 나지막이 읊조렸다.
“전부 다요.”
말은 이렇게 했지만, 도진은 지금 부족한 자신감에 허덕이고 있었다.
호세는 미간을 찌푸렸다.
“지랄하네.”
“진짠데요.”
도진은 끝까지 거짓말했다.
오늘 투심이 좀처럼 말을 듣지 않는다.
투수라면 이런 날은 흔하디흔했다.
하지만 하필이면 무사 만루다.
포심과 체인지업 두 가지의 구종만으로는 이 난관을 헤쳐나가기엔 다소 무리가 있었다.
그리고 이 사실을 입 밖으로 내봤자, 호세의 뛰어난 리드 능력만 반감될 뿐이었다.
‘어차피 던지는 순간 들통나긴 할 텐데.’
그래도 별 수 없다.
무사 만루에서 마운드에 올랐다.
‘투심이 말을 듣든 안 듣든 어떻게서든 상대를 눌러야 한다.’
하지만 마음과는 다르게 도진은 걱정 투성이었다.
호세는 걱정이 묻어난 도진의 표정을 읽었다.
툭.
“그래. 뭐 구종이 중요하냐? 어차피 힘으로 찍어 누를 텐데. 안 그러냐?”
도진은 개막전을 처음 겪는다.
그런데 하필이면 부담이 상당한 무사 만루에서 마운드에 오르게 됐다.
애당초 애쉬톤 대신 도진을 올렸다면 좋았겠지만, 호세는 감독의 선택도 이해할 수 있었다.
경기가 막바지로 향하는 가운데 1점 차 승부에서 2번부터 시작하는 타선이다.
경험이 있는 선수를 내보내는 게 정상이었다.
‘결국 이 꼬라지가 났지만, 어쩌겠냐.’
앞선 투수가 미워도 같은 에인절스다.
일부러 경기를 망치려고 든 것이 아니었으므로 다음 투수가 안고 가야만 했다.
‘하필이면 19세 루키에게 부담이 넘어간 거긴 한데.’
그러니 잘 해내지 못해도 괜찮다.
애당초 19세 메이저리거에게 모든 부담을 떠넘길 만큼 에인절스는 못난 팀.
그 누구도 도진을 나무라지 않을 것이다.
그래도 자신감은 심어줘야겠지.
호세는 도진에게 주먹을 내밀었다.
“3삼진 기대한다.”
도진이 주먹을 툭 건드렸다.
“맡겨 주세요.”
호세는 어금니를 꽉 물었다.
대답과는 다르게 도진의 눈동자에 비친 두려움이라는 감정 때문이었다.
하지만 어쩌겠는가? 이제는 그를 믿을 수밖에 없다.
호세는 마운드에서 내려갔다.
* * *
사정없이 뛰어대는 심장이 좀처럼 가라앉질 않는다.
개막전과 1점 차. 거기에 무사 만루라는 부담감이 하나가 되어 전신을 덮쳐온다.
“후우.”
도진은 숨을 깊게 들이마신 후 내뱉었다.
아마추어, 마이너리그에서 이런 상황을 숱하게 겪어봤지만 좀처럼 나아지질 않는다.
역시 메이저리그라는 무대가 갖는 무게감은 달라도 너무 달랐다.
‘내가 무너지면…….’
에인절스는 진다.
그렇기에 난관을 극복하고 싶지만, 좀처럼 쉽지 않다.
파르르 떨리는 오른손은 공을 던질 수나 있을지 걱정이 된다.
도진은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적어도 야구 경기 도중에 감정을 내비치지 않는 것이 자신의 장점이지만, 지금은 그 누가 봐도 감정이 드러날 것이다.
호세에게서 포심 패스트볼 사인이 나왔다.
더군다나 한복판이다.
도진은 고개를 한번 끄덕였다.
공은 던져졌다.
하지만 한복판은커녕 호세의 머리 위로 날아가고 있었다.
퍼억!
“볼!”
호세가 진정하라며 사인을 보낸다.
도진도 알겠다고 고개를 끄덕였지만, 공을 넘겨받는 순간 팔로 눈을 가렸다.
사정없이 떨리는 동공을 숨기기 위해서였다.
오늘 좋다고 소문난 포심 패스트볼도 한복판에 못 던지다니.
도진은 그 이유에 대한 정답에 쉽게 도달할 수 있었다.
상대를 힘으로 짓누를 수 있다는 믿음이 없어서였다.
타자는 작년 35홈런을 때려낸 강타자.
ops도 1.023을 기록했을 만큼 선구안도 좋고 장타도 칠 줄 안다.
‘여기서 볼넷을 내주면…….’
에인절스는 리드가 사라진다.
그렇다고 한복판에 공을 던지자니 한 방 제대로 맞을 것 같았다.
2구. 도망가는 피칭을 하고자 서클 체인지업을 던졌다.
하지만 투구는 스트라이크 존에 도착하기 한참 전 땅에 곤두박질쳐졌다.
잠깐 타석을 벗어난 타자의 입꼬리가 치솟았다.
자신을 무시하고 있다.
‘젠장. 한 방 먹여주고 싶은데.’
그런데 좀처럼 상대를 이길 수 있다는 확신이 서지 않는다.
이를 바라보던 호세는 어금니를 까득 물었다.
‘젠장. 역효과군.’
자신감을 심어주고자 3삼진을 기대한다고 했다.
도진의 능력만 두고 본다면 가능하고도 남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는 이런 무대가 처음이다.
그와 함께 한 기간이 마치 오래됐다고 착각이 들 만큼 그는 매번 좋은 모습을 보여줬다.
‘개막전도 처음이고, 메이저리그를 밟은 지 고작 한 달 남짓이야.’
더군다나 메이저리그를 밟았을 때 에인절스는 어땠지?
꼴찌 확정이었다.
도진이 부담을 느낄 필요가 없는 무대였다.
하지만 지금은 다르다.
선수단은 꼴찌라는 악의 굴레를 끊어내고자 오늘만큼은 승리로 시작하고 싶다는 의지를 내비쳤고.
하필이면 상황이 그리 녹록지 않은 지금.
도진이 그 부담감을 전부 떠안게 됐다.
‘타자가 실수만 해준다면, 페이스를 되찾을 수 있을 텐데.’
애슬레틱스의 4번 타자 제이든을 상대하고 있으니 그런 운을 바랄 수도 없는 처지였다.
3구. 포심 패스트볼도 스트라이크 존을 크게 벗어났다.
퍼억.
3-0. 제구가 잡힌 루키의 공은 회복될 기미가 보이지 않는 듯했다.
그에게 도움의 목소리가 들려오기 전까지는 그랬다.
“헤이 킴.”
도진은 우측에서 들려오는 목소리에 고개를 틀었다.
윌리엄이 글러브 안을 주먹으로 팡팡 쳐대고 있었다.
3루 쪽으로 공을 보내면 어떻게서든 막아주겠다는 의미를 도진은 명확히 알고 있었다.
그러자 신기하게도 긴장감에 절여져 잔뜩 굳어있던 몸이 사르르 녹기 시작했다.
‘감사합니다.’
복잡했던 도진의 머릿속이 맑아졌다.
도진은 착각하고 있었다.
야구는 결코 혼자 하는 스포츠가 아니다.
무사 만루에서 구원 등판한 자신도 팀을 돕겠다고 나선 것이다.
그리고 위기에 봉착한 자신을 이제 윌리엄을 비롯한 야수들이 도와줄 것이다.
‘그래. 두려워할 필요 없어.’
혹시나 결과가 좋지 못하다면?
어쩔 수 없다. 그냥 그러려니 하고 넘어가면 된다.
162경기에서 한 경기, 한 경기에 전부 의미를 둘 것인가?
에인절스는 개막전 승리가 필요하지만, 지금만큼은 그런 잡생각을 떨쳐버릴 때였다.
‘타자에만 집중한다.’
도진은 바깥쪽 포심 패스트볼에 사인을 저었다.
호세가 자신의 생각을 읽은 것인지.
한복판에 미트를 고정했다.
3-0다. 가만히만 있어도 투구가 볼이 되면? 스코어는 2:2. 그리고 다시 한번 만루다.
그러니 상대가 배트를 휘두를 확률은 극히 낮다.
도진은 투구에 돌입했다.
계속해서 스트라이크 존을 외면했던 그의 투구가 정확히 한복판에 꽂혔다.
퍼엉!
미트에서 굉음이 뿜어져 나왔다.
그 소리는 혼자가 아니라며 도진에게 힘을 실어 주었다.
카운트는 3-1. 여전히 갈 길은 멀다.
‘그래도 한 걸음 내디뎠잖아? 지금 당장은 이거면 충분해.’
바깥쪽 패스트볼 사인이 나왔다.
도진은 고개를 저었다.
마스크 사이로 호세의 입꼬리가 올라간 것이 보였다.
그는 포심 패스트볼 사인을 냈다.
도진이 투구 동작에 들어가자 몸쪽으로 붙어 앉았다.
5구. 몸쪽으로 휘어들어가는 공에 타자의 배트가 나왔다.
따-악!
3루수로 향하는 라인드라이브성 타구는 수비가 약한 윌리엄의 정면으로 향했다.
퍼억.
그런데 그는 이를 악물며 타구를 받아냈다.
“아웃!”
주자는 여전히 만루.
하지만 귀중한 아웃 카운트 한 개가 생겼다.
도진에게는 메마른 사막에서의 오아시스와도 같았다.
‘여전히 첩첩산중이긴 한데.’
타석엔 5번 타자.
긴장의 끈을 놓을 때는 아니지만, 도진의 입꼬리만큼은 그의 생각을 무시한 채 슬그머니 치솟았다.
‘가보자.’
사인이 나왔다.
이번에도 포심이다.
‘이야. 투심 사인은 절대 안 내네. 귀신인 줄.’
도진은 실없는 생각을 동반하며 다시 한번 투구에 돌입했다.
아까 두려움에 허덕이는 자신이 아니다.
도진이 던진 바깥쪽으로 향하는 패스트볼에는 힘이 잔뜩 실려 있었다.
타자의 배트도 나왔다.
따-악.
도진은 공이 배트에 맞는 즉시 깨달았다.
‘2, 유 간을 꿰뚫는 코스.’
이대로 공을 흘려보내면 2루수도 유격수도 잡지 못한다.
3루와 2루 주자는 홈을 밟게 될 것이며 에인절스는 앞서나간 리드가 사라지는 셈이다.
도진은 우측 편을 뚫고 지나가겠다는 타구의 속도를 머릿속에 입력한 채 급하게 왼쪽으로 몸을 회전시켰다.
동시에 글러브를 최대한으로 뻗었다.
터억.
한 바퀴 몸을 회전시키며 글러브 안으로 공이 빨려 들어가는 묘기에 가까운 수비가 나오자.
진루하던 타자들이 벙찐 표정으로 그 자리에 멈춰 서게 됐다.
“아웃!”
도진은 주자들을 바라보며 씨익 웃고는 2루 베이스 커버를 들어간 켄에게 공을 가볍게 토스했다.
“아웃!”
병살타. 이닝 종료.
에인절스 일원들은 도진을 포함, 동시에 주먹을 불끈 쥐었다.
8회와 9회에 바뀐 투수들에게도 다소 위기가 있었지만, 그들은 넘어온 분위기를 끝까지 손에 거머쥐며 무실점으로 경기를 지켜냈다.
최종 스코어 2:1.
에인절스는 개막전 승리를 거뒀다.
* * *
오늘 경기 수훈 선수가 된 도진은 인터뷰가 예정되어 있었다.
[오늘의 수훈 선수. 에인절스를 위기에서 구한 도진 킴입니다!] [여보세요? 들리시죠?]헤드셋을 낀 도진은 미소를 머금고 고개를 끄덕였다.
“잘 들립니다.”
[일단 오늘 승리 정말 축하드립니다. 에인절스가 5년 만에 개막전 승리를 거뒀습니다. 특히나 메이저리그 풀 타임 경기를 처음 치르는 킴에게도 더욱 뜻깊은 날일 것 같습니다.]“그렇습니다. 오늘 앞서 라커룸 분위기가 정말 차가웠거든요? 그 얼어붙은 분위기에 균열을 낼 수 있는 역할을 해서 다행이라고 생각합니다.”
[정말 훌륭한 퍼포먼스를 펼쳤습니다. 오늘 에인절스는 단 1개의 안타를 쳤는데 그게 결승 투 런 홈런이었어요. 3타수 1안타 2타점. 거기에 마운드에서는 무사 만루에 등판했음에도 무실점으로 이닝을 마무리 지었죠. 야구를 혼자 한 셈이니 선수들이 미울 만도 했겠습니다.]“그건 아니에요. 어디까지나 팀원들의 도움이 없었다면 오늘 경기 승리를 지켜내지 못했을 것 같습니다.”
그가 내뱉은 말에는 거짓 한 점 없었다.
‘에인절스는 하나가 되어야 한다.’
오늘만큼은 하나가 되기 위한 퍼즐 조각의 첫선을 자신이 해낸 것에 만족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때.
와르르르.
호세와 레이날도가 양쪽에서 아이스팩에 담긴 얼음과 물을 도진에게 부어댔다.
“이만 가봐야할 것 같습니다. 이 헤드셋 비싸 보이는데, 청구는 호세에게 하세요.”
흠뻑 젖은 도진은 헤드셋을 벗고 호세를 쫓아가려고 했지만, 그는 이미 더그아웃으로 피신한 후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