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baseball genius who chews up America RAW novel - Chapter (214)
미국 씹어먹는 야구 천재-214화(214/400)
3회 초. 호세가 타석에 들어섰다.
‘쩝. 이 타순 은근히 부담된다니까?’
하필이면 도진의 앞 타순이다.
해결사 면모를 보이는 그의 앞에 선다는 것.
왠지 출루를 해줘야만 할 것 같았다.
메이저리거로서 언제 어디서든 본인의 스윙을 해야 한다는 걸 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나가면 불러들여 줄 것 같단 말이지.’
호세는 피식 웃었다.
‘이 또한 원팀이 되어 가는 과정일 수도.’
혼자서 해결하려고 하기보다 후속 타자의 도움을 받는다.
이 의미는 정말 크다.
‘타석에서 타자가 조급하지 않을 수만 있다면 큰 무기가 되지.’
시너지 효과도 불러일으킨다.
투수의 투구 수를 늘릴 수도 있었으며, 후속 타자들이 투수의 공을 조금 더 지켜볼 수 있게 된다.
‘배터리의 투구 패턴도 더 분석할 수 있으니 수 싸움에서 앞설 수도 있고.’
물론 메이저리그 1, 2선발들은 그러거나 말거나 자신들의 피칭을 이어 나가지만, 메이저리그에 어디 1, 2선발만 존재하던가?
다른 선발 투수들을 상대로 승리를 거머쥘 수 있다는 것.
‘우리 에인절스에 무엇보다 필요한 거거든.’
챙겨갈 수 있는 승리는 기필코 챙겨가야 한다.
그것이야말로 높은 위치로 도약할 수 있는 지름길이었다.
‘제일 중요한 건. 내 긴 메이저리그 생활 중 이런 생각을 가져본 게 처음이라는 거야.’
솔직한 말로 그동안 쭉 팀 성적보다 개인의 성적에 중점을 뒀었으니까.
물론 어디까지나 지금은 좋은 활약을 펼치는 도진의 앞 타순인 자신에게만 해당하는 이야기였다.
만약 9번 타자가 도진이 아닌 다른 선수였다면?
‘이런 생각을 하지 않았겠지.’
감독님께 이 사실을 전달해야 할까?
호세는 고개를 저었다.
‘나는 어디까지나 애송이를 신뢰하고 있으니까.’
대신 다른 선수들은 아직 도진을 신뢰하라고 강요하기엔 시기상조다.
그가 보인 노력이나 재능을 모를 수는 없겠지만, 도진은 아직 메이저리그 무대에서 보여준 것이 너무 적다.
신뢰는 곧 성적과 비례하니까.
‘그렇다고 애송이만 믿고 갈 수는 없지.’
자신도 엄연히 메이저리거다.
그처럼 슈퍼스타의 자질을 갖추지 못했을지언정.
그 자질을 제외하면 모든 면에서 도진에게 앞서 있다.
‘그러니 ‘우리’가 다 죽어가는 팀 한번 살려 보자.’
호세는 타격 자세를 잡았다.
뒤에 도진이 있다. 아직 19세 애송이일 뿐이지만, 믿음직했다.
‘이상하게 마음이 편안하군.’
초구로 변화구가 날아왔지만 호세는 스윙하지 않았다.
퍼억.
“스트라이크!”
2구 변화구도 스트라이크 존 안으로 들어오며 카운트는 0-2.
충분히 조급할 만한 카운트였음에도, 호세는 어금니를 꽉 깨물며 그 조급함이 새어 나가지 않도록 붙잡아뒀다.
‘아직 삼진을 당한 건 아니야.’
3구. 다시 변화구일 것이다.
대신 이번에는 스트라이크 존을 벗어나겠지.
그리고 그 공이 날아오자 호세는 배트를 내지 않았다.
“볼!”
4구. 가슴 높이로 날아오는 패스트볼.
호세는 반쯤 나간 배트를 손목을 비틀어 강제로 멈춰 세웠다.
“볼!”
0-2에서 2-2가 되었다.
여전히 안심할 수 없는 카운트지만, 호세는 조급함을 전혀 느끼지 않았다.
‘상대는 4선발이야. 내가 밀릴 이유는 없어.’
5구. 변화구가 날아왔고 호세는 배트를 내지 않았다.
스트라이크 존에서 아래로 떨어지는 체인지업은 다시 한번 볼이 되었다.
3-2 풀카운트.
6구째 패스트볼에 호세는 스윙했고.
따-악!
타구는 중견수 앞에 떨어졌다.
* * *
타석에 들어선 도진은 뛰어대는 심장을 제어하고자 심호흡을 내뱉었다.
그러고는 루에 나간 호세를 힐끗 쳐다봤다.
‘호세. 대단한데요?’
0-2에서 3-2를 만들더니 깔끔한 안타를 치고 나갔다.
더군다나 풀 카운트에서 파워 히터형 타자가 간결한 안타를 뽑아냈다.
충분히 노림수를 가져가서 큰 거 한 방을 노릴 수 있었겠지만, 그는 오히려 상반된 행동을 보였다.
‘뜻은 이어받았습니다.’
호세는 지금 팀플레이를 중점으로 두고 있다.
솔직한 말로 메이저리그에서는 단타보다는 장타가 주목받고 있다.
그도 그럴 것이 단타는 3개를 쳐야 점수 1점을 획득할 수 있지만.
장타는 2개만 쳐도. 아니 잘 치면 1개만 쳐도 점수를 낼 수 있었으니 말이다.
‘하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잘나가는 집안 이야기고.’
해결사들이 즐비한 강팀에 한해서다.
그와 반대되는 팀들은 부족한 실력을 조직력으로 메꿔야 한다.
‘그게 우리 에인절스지.’
해결사? 30홈런을 때려낼 수 있는 아돌니스 말고 해결사가 있던가?
팀 내 고액 연봉자인 좌익수 미카 라이트와 우익수 카메론 킹은 작년 시즌 20홈런도 달성하지 못했다.
그들이 받는 돈에 비하면 망한 시즌이나 다름없었다.
‘문제는 작년만 그런 게 아니었지.’
재작년에도 사이좋게 19홈런을 달성했으니까.
물론 그들을 나무랄 수 없다.
거액의 계약을 체결하고 드러눕든, 실력이 퇴화하든 메이저리그에서는 충분히 있을 법한 일이다.
하지만 그들이 고액의 연봉을 받고 있다는 게 무슨 의미겠나?
‘고액이 적힌 계약서에 사인할 수 있는 성적을 냈다는 거거든. 옛 모습을 찾을 수만 있다면 지금보다 더 좋은 모습을 보여줄 수 있을 거야.’
둘 뿐이 아니다.
다른 선수들도 마찬가지다.
‘나야 작년 뒤늦게 합류해서 꼴찌가 크게 와닿지는 않았지만. 선수들은 아닐 거다.’
백날 노력해봤지만 결국 최종 성적이 꼴찌였다면?
인간인 이상 의욕이 꺾일 수밖에 없겠지.
대신 암울한 면만 존재하는 건 아니다.
‘호세도 이렇게 바뀌려고 하고 있잖아?’
벨 조이스도 개막전 승리를 위해 고군분투했다.
이런 사소한 것들이 모여 진심이 되어준다면 선수들의 심경에도 변화가 있을 것이다.
‘호세는 타석에서 행동으로 몸소 시범을 보였어. 그러니 나도…….’
초구를 맞이하는 도진은 눈을 부릅떴다.
평소와 다른 집중력은 그에게 스윙하지 말라고 전했다.
퍼억! 슬라이더가 스트라이크 존을 벗어나며 볼이 되었다.
“볼!”
2구는 패스트볼이 바깥쪽에 걸쳐 스트라이크, 3구는 체인지업이 다시 한번 스트라이크 존을 외면했다.
2-1에서 도진은 투수를 흔들고자 그가 투구 모션에 돌입하는 즉시 번트 자세를 취했고.
그 때문에 투수의 패스트볼은 포수가 요구하는 바깥쪽이 아닌 몸쪽으로 향했다.
퍼억!
“볼!”
3-1.
타자라면 큰 거 한 방 노리고 싶은 타이밍.
하지만 도진은 어어지는 투구를 끝까지 지켜보기로 했다.
그리고 그 결과. 바깥쪽으로 향하는 타구를 아주 가볍게 결대로 밀어쳤다.
타구는 1루수 키를 훌쩍 넘기더니 우익수 앞까지 데굴데굴 굴러갔고.
1루에 안착한 도진은 호세에게서 시선을 떼지 못했다.
그는 육중한 거구의 몸을 이끌고 2루를 돌아 3루까지 내달렸고.
꽈당.
슬라이딩이 익숙지 않은 노장 선수는 어설프지만, 매우 노련한 슬라이딩으로 3루수 태그를 피해 베이스를 터치했다.
“세이프!”
심판의 콜을 제외하면 에인절스 더그아웃은 침묵만이 흘렀다.
지금까지 눈 뜨고 보기 어려울 만큼 몸을 사렸던 호세에게서 절대 볼 수 없을 법한 과한 플레이가 나왔으니까.
‘아프겠는데.’
도진은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3루 베이스에서 일어나지 못하는 호세에게서 시선을 떼지 못했다.
다치진 않았겠지? 이런 생각도 잠시.
호세는 몸을 벌떡 일으켜 세우더니 양손을 불끈 쥐며 포효했다.
“으라차!”
도진도 덩달아 주먹을 불끈 쥐었다.
‘정말 멋진 플레이였습니다.’
존경을 담아 호세에게 눈빛을 보내는 것도 잠시. 도진은 문뜩 내기가 진행되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질 수 없지.’
그렇기에 도진은 초구부터 2루로 내달렸고.
“세이프!”
3회 초 무사 2, 3루.
에인절스는 1번 타자의 희생 플라이와 2번 타자의 안타로 2점을 획득했다.
못 나가는 팀이 이기려고 발악한다.
지극히 정상이지만, 근 에인절스에서는 볼 수 없는 플레이가 나왔던 것이었다.
* * *
도진은 팀이 단번에 변하리라고는 생각조차 안 했다.
그리고 역시나. 에인절스는 호세와 도진의 득점을 제외하면 여전히 점수를 뽑지 못했다.
여전히 선수들은 큰 거 한 방을 노리는 무식한 스윙을 했고, 그 결과는 당연히 좋지 못했다.
6회 초. 스코어는 3:2. 에인절스는 1점 뒤지고 있었다.
조 캐넌 감독은 도진을 불렀다.
“오늘은 불펜에 들어가지 않을 거다.”
도진도 굳이 이유를 묻지는 않았다.
앞선 세 경기에서 모두 등판했기 때문에 4연속 등판은 다소 무리가 있었다.
“대신 타격에 더 힘을 써주길 바란다.”
6회 말. 에인절스는 바뀐 불펜 투수가 1점을 헌납하게 되며 스코어는 4:2.
5번 타자 미카 라이트부터 시작하는 7회 초.
승리를 위해서는 적어도 점수를 따라가야만 하는 이번 이닝에서 미카 라이트는 삼진을 당했다.
다음 타자는 카메론 킹.
에인절스 더그아웃에서 교체지시가 나왔다.
윌리엄. 그가 핀치 히터로 나서게 된 것이었다.
카메론 킹은 씩씩대며 조 캐넌 감독에게 항의했다.
“아니! 도대체 절 왜 빼는 겁니까?”
조 캐넌의 눈초리가 가늘게 찢어졌다.
“자네는 너무 자네 생각만 하는 것 같군. 자리를 지키고 싶으면 타격감을 끌어 올리도록.”
16타수 3안타. 지금까지 카메론 킹의 성적이었다.
물론 대부분 메이저리거들은 슬로우 스타터이며, 자신들만의 루틴을 집요하게 고수하지만.
2할도 안 되는 타격 성적으로 아득바득 우기기에도 다소 무리가 있었다.
“쯧! 타격감을 끌어 올리면 단 한 타석이라도 더 나서야 하는 것을.”
카메론 킹은 끝까지 불만을 내뱉으며 더그아웃 의자에 털썩 주저앉았다.
하지만 그의 자리를 대신해서 들어간 윌리엄은 달랐다.
그의 눈동자에는 고액 연봉자들과 다르게 어떻게서든 기회를 거머쥐겠다는 의지가 담겨 있었다.
‘살아 나간다.’
머릿속에는 오로지 이 생각뿐이었다.
윌리엄은 라이벌이었던 도진을 지금까지 쭉 지켜봐 왔다.
그는 승자, 자신은 패자였지만, 딱히 상관없었다.
19세 메이저리거. 충분히 자괴감을 느낄 수 있는 상황이었음에도 윌리엄은 오히려 그런 도진을 닮고자 그를 꾸준히 지켜봤다.
무너져 내려가는 자신에게 손을 내밀어준 그가 고마워서일 것이다.
덕분에 오늘 경기에서 문뜩 깨달은 바가 있다.
‘살아 나가기만 한다면 홈으로 불러줄 거다.’
호세를. 그리고 결과를 봐라.
그 누구보다 늦게 훈련에 참여하고 일찍 집에 가는 선수가 몸을 사리지 않았다.
그 또한 도진에 대한 믿음이 확고했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결국 득점을 올렸잖아?’
물론 도진이 호세를 불러들였느냐? 그건 아니다.
하지만 에인절스의 득점은 호세와 도진에게서 나왔다.
‘그러니 나도 살아 나간다.’
이는 자신의 목숨줄과도 연관되어 있다.
경쟁자를 살펴보자.
원래 외야수인 자신은 미카 라이트와 카메론 킹이라는 고여 썩어버린 고액 연봉자들이다.
메이저리그 구단은 성적이 좋지 못한 고액 연봉자라도 지급하는 돈 때문에 울며 겨자 먹기로 사용할 수밖에 없다.
하지만 지금, 예상보다 빠르게 이렇게 기회가 오지 않았던가?
‘무엇보다 적어도 킴을 경쟁자로 삼을 바에는…….’
앞날이 창창한 19세 메이저리거보다 고액 연봉자의 자리를 대체하는 그림이 어째서 확률이 더 높아 보이는 것일까?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건 개인 성적보다 팀 성적을 위해 뛰는 거다.’
그리고 윌리엄. 그가 매리너스의 필승 계투를 상대로 끈질기게 괴롭힌 결과.
“베이스 온 볼스!”
10구 끝 승부에서 1루로 걸어 나갔다.
그와 동시에 호세는 타석에 들어서려던 7번 타자 카덴을 불러 세웠다.
그러고는 낮디낮은 중후한 목소리로 읊조렸다.
“번트 대라.”
“엥?”
“번트 대라고.”
“구, 굳이?”
“대라면 대 이 새끼야! 한 점이라도 따라가야 하잖아!”
“번트로 주자를 2루까지 진루시킨다 한들. 호세 네 능력으로 불러들일 수는 있고?”
“Fu**. 나 무시하냐?”
카덴은 입을 꾹 다물었다.
적어도 지금 에인절스에서 호세는 도진과 아돌니스 다음으로 팀 내 ops 3위를 기록하고 있었으니 말이다.
그 역시도 뛰어난 성적이라고는 보기 어려웠지만, 그보다 나은 성적을 내는 선수는 드물었다.
호세의 부탁에도 카덴은 단호하게 고개를 저었다.
“1아웃에서 번트를 왜 대? 이 노친네야!”
하지만 타석에 들어선 카덴은 결국 번트를 댈 수밖에 없었다.
두 선수의 대화를 들었던 조 캐넌 감독은 카덴에게 즉각 번트 지시를 냈으니 말이다.
2사 2루.
호세는 마치 꽉 막힌 속이 단번에 소화가 됐다는 후련한 표정으로 타석에 들어섰다.
‘X발. 생각해보니 열받네? 말은 끝까지 들어야지 누가 내가 불러들이겠대?’
타자는 매일 컨디션이 다른 법이다.
어떨 때는 공이 수박만 하게 보인다거나 어떨 때는 공이 날아오다 멈추는 느낌을 받는다.
이럴 때는 타격감이 최고조란 뜻이다.
물론 오늘 호세는 공이 수박만 하게 보이지도 않았으며, 공이 멈추기는커녕 시원하게 미트로 꽂혔다.
그런데도 카덴에게 번트를 지시했던 이유는 다 믿는 구석이 있어서였다.
‘조급함을 덜어서 그런가?’
대신 이상하게 공의 실밥까지는 보였다.
매번 이러지는 않을 것이다.
솔직히 조금 더 암담하게 사실을 늘어놓자면 이번 시즌을 통틀어 오늘만 이런 현상이 나타날 수도 있다.
‘그러니 이런 날에 어떻게서든 승리를 챙겨가야 하잖아?’
타석에 들어선 호세는 오늘 자신의 선구안을 마음껏 뽐내며.
“베이스 온 볼스!”
볼넷으로 걸어 나갔다.
2사 1, 2루.
그리고 마침내.
타석에 들어서는 19세 메이저리거의 표정은 자신감에 절여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