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baseball genius who chews up America RAW novel - Chapter (215)
미국 씹어먹는 야구 천재-215화(215/400)
7회 초. 2사 1, 2루.
대기 타석에서 타석으로 발걸음을 옮기던 도진은 2루에 나가 있는 윌리엄을 힐끗 쳐다봤다.
그러고는 1루 베이스에 있는 호세에게 시선을 고정했다.
‘내기라면서요.’
판을 이렇게까지 깔아두다니.
양보받는 처지에서 이미 내기는 물 건너갔다.
‘뭐. 솔직히 말하면 나도 애당초 내기는 관심 없었지만.’
오늘 호세는 첫 타석부터 팀을 위한 플레이를 선보였다.
더군다나 지금도 2루에 나가 있는 윌리엄이라는 결과를 보자니 매우 성공적이었다.
‘미세하지만 조금씩 바뀌고 있어.’
오늘 경기에서만일 수도 있다.
매번 팀을 위한 플레이가 나올 수는 없었으니까.
도진은 문뜩 궁금했다.
‘그런데 팀을 위한 플레이라는 정의가 도대체 뭐지?’
출루만이 정의인가?
그건 아니다.
야구에서는 결과가 곧 정의.
그러므로 욕심을 부려서 결과만 낸다면?
그것 또한 정의가 될 수 있다.
‘하지만 이것만큼은 확실해.’
루에 나간 선수들이 스윙을 할 줄 몰라서 볼넷으로 출루한 것인가?
아니다. 윌리엄은 후보다.
중요한 승부처에서 기회가 주어졌으므로, 주전 자리를 노리기 위해 욕심을 부려도 괜찮았다.
그런데 오히려 그는 투수를 끝까지 물고 늘어졌고 걸어 나갔다.
걸어 나갔다는 결과 자체는 안타를 생성한 것만큼이나 훌륭했지만, 그 과정이 어디 순탄하던가?
야구가 어디 걸어 나가고 싶다고 매번 걸어 나갈 수 있던가?
호세는 또 어떻고.
‘나는 호세가 갖춘 파워에 비하면 그저 아이 수준이지.’
호세는 홈런 하나면 팀을 동점으로 이끌 수 있었음에도 그는 끝까지 물고 늘어지며 출루했다.
‘주자는 쌓이면 쌓일수록 좋거든.’
투수가 그만큼 압박을 느낄 수밖에 없었으니까.
2사 2루와. 2사 1, 2루는 고작 1명의 주자가 추가로 루에 나간 것뿐이지만, 그 무게감 자체가 다르다.
만약 홈런이라는 결과가 나온다면 에인절스는 동점을 넘어 역전할 수 있었으니까.
‘희생에 기필코 보답하겠습니다.’
도진은 희생이라는 표현을 썼다.
출루 자체는 백번 옳다.
하지만 적어도 지금 윌리엄과 호세는 개인이 돋보일 수 있는 상황을 마다하며 팀을 위해 희생했다.
‘그러니 내가 해결사가 된다.’
도진은 타격 자세를 잡았다.
‘알폰소. 매리너스의 셋업.’
우투수이며 사이드암에 가까운 쓰리쿼터로 공을 던진다.
공을 낮게 제구할 수 있는 투수로서 작년 시즌 방어율 1.82로 완벽한 시즌을 보냈다.
‘두렵지는 않아.’
윌리엄과 호세가 그를 끈덕지게 괴롭혔기 때문이다.
마운드에 서는 자신이 제일 잘 알고 있었다.
‘쫄리겠지.’
초구. 공은 던져졌다.
도진은 타석에서 그의 공을 처음 맞이했다.
그러므로 패스트볼인지 체인지업인지 정확히 분간이 가지는 않았다.
‘하지만 지금 해결사로서 필요한 건…….’
장타.
도진은 한 타이밍 늦게 배트를 냈다.
한복판으로 날아오던 공이 속도를 잃었다.
하지만 속도를 잃고 스트라이크 존을 벗어나야만 하는 체인지업에서 무브먼트 따위는 찾아볼 수 없었다.
실투. 도진은 이를 놓치지 않았다.
따-악!
전광석화 같은 그의 스윙이 공에 닿자 천둥 같은 굉음을 뿜어냈다.
투수는 고개를 떨궜고.
좌측 담장을 향해 쭉쭉 뻗어나가는 타구를 확인한 윌리엄과 호세는 주먹을 불끈 쥔 채 미소를 머금고 베이스를 돌았다.
도진은 대형 홈런이 나오자 천천히 베이스를 돌았다.
* * *
에인절스는 매 이닝 주자를 내보내는 우여곡절이 있었지만, 불펜 투수들은 어떻게든 승리를 지켜냈다.
매리너스 해설들은 오늘 패배에 한숨을 푹 내쉬었다.
[오늘 에인절스가 남다른 모습을 보여주면서 승리를 가져갔습니다.] [패배는 아쉽지만, 인정할 수밖에 없겠죠. 에인절스는 오늘 하나가 됐습니다. 더욱이 하위타선에서 나온 결과물이라 더 뜻깊었겠죠.] [쌓아둔 주자를 불러들인다. 주자로 나간 선수가 핀치 히터와 베테랑이며, 해결사 역할을 신인 선수가 해줬습니다. 에인절스가 이런 모습을 자주 보여줄 수만 있다면? 올 시즌은 충분히 기대해봄 직할 것 같습니다.] [이로써 매리너스와 에인절스는 2승 2패가 됐네요.]1승 3패와 2승 2패. 2할 5푼과 5할의 승률은 어감부터가 다르다.
에인절스는 승률을 5할로 맞추게 되며 오늘만큼은 내리 2연패로 가라앉았던 분위기를 조금은 되찾아올 수 있었다.
경기가 끝난 직후 호세는 도진을 불렀다.
“호텔에 박혀 있기만 하면 심심하잖아? 야식이나 먹으러 가자. 시애틀에도 맛집 좀 알거든.”
“좋습니다. 야식을 좋아하진 않지만, 제가 살게요.”
호세는 미간을 와락 구겼다.
“됐다. 내기는 네가 이겼잖아? 내가 살게.”
“뭐. 굳이 사주신다는데 거절하지는 않겠습니다.”
“그나저나 한 명 더 불렀거든? 괜찮지?”
그리고 그 주인공은 다름 아닌 윌리엄이었다.
호세는 윌리엄이 쭈뼛쭈뼛 다가오자 그의 어깨에 손을 얹었다.
“왜 이렇게 굳어있어?”
“그야……”
윌리엄은 말을 끝까지 잇지 못했다.
이를 가만히 지켜보던 도진은 살포시 고개를 저었다.
‘고참 선수랑 식사하는 자리가 편할 리가.’
자신도 경기가 끝난 직후 누구와 시간을 보내는 것이 처음이다.
만약 호세가 아니라 벨 조이스나 아돌니스라고 생각해봐라.
물론 벨 조이스와는 안면이 있어서 조금 편하겠지만, 아돌니스와 야식을 먹는다?
‘체할 거 같은데?’
셋은 펍으로 이동했다.
맥주를 파는 그 펍이 맞다.
도진은 뒤통수를 벅벅 긁었다.
“호세. 저 여기 입장 못하는데요?”
“왓? 어리다고 자랑하는 거냐?”
“그게 아니라. 그럼 전 밖에 있을까요?”
“괜찮다. 들어와.”
“아니 호세! 전 이러면 징계 먹어요!”
호세는 어쩌라는 표정으로 말을 덧붙였다.
“생긴 건 술만 파는 가게처럼 생기긴 했는데. 엄연히 음식점이야.”
“다행이네요.”
“물론 술도 팔지만.”
아니. 펍이 맞잖아!
위험을 직감한 도진은 끝까지 뻐팅겨 보았지만, 호세의 힘을 당해낼 순 없었다.
결과적으론 의미 없는 다툼이었지만.
‘포장할 거면 진작 말을 해주던가.’
더럽게 민망하네.
호세는 마트에 들러서 맥주도 10캔이나 샀다.
최종 종착지는 다시 호텔이었다.
‘이럴 거면 왜 불렀냐고…….’
그냥 혼자 가서 사와도 되는 거 아니었나?
호세는 도진의 불만을 읽었다.
“이것도 하나의 팀플레이다.”
“억지 아닌가요?”
하면서 도움의 눈빛으로 윌리엄을 힐끗 쳐다봤다.
윌리엄은 호세의 눈빛을 의식하더니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티, 팀플레이 맞지.”
“2:1. 민주주의 국가에서 1은 아무런 쓰잘데기가 없다.”
셋은 결국 호세의 호텔 방 안으로 들어갔다.
호텔 방에 입장한 도진은 자신과 다른 방 크기에 혀를 내둘렀다.
‘스위트 룸 아닌가?’
호세는 어깨를 으쓱했다.
“따로 하루 빌렸어. 알아서 자리들 잡아라.”
셋은 원탁의 식탁에 앉았다.
호세는 맥주 하나를 윌리엄에게 건넸다.
“마실 거냐?”
호세는 고뇌에 빠진 윌리엄을 대신해서 맥주 한 캔을 따더니 그의 앞에 놓고는 도진을 힐끗 바라봤다.
“너도 마실래?”
“아뇨.”
“재미없는 놈.”
그러더니 손에 쥔 맥주 한 캔을 따더니 벌컥벌컥 들이켰다.
빈 캔을 구긴 호세는 맥주 한 캔을 더 땄다.
도진은 걱정스럽게 물었다.
“저기 호세……”
“왜.”
“맥주 그렇게 마셔서 내일 시합 어떻게 뛰시려고요.”
아니. 인간적으로 시즌 중에 맥주를 마셔도 되는 건가?
“맥주가 술이냐?”
“마셔보지 못해서 모르지만, 술이잖아요.”
“20캔 마셔도 멀쩡해.”
더군다나 테이블 위에 깔린 색색별의 안주들도 도진은 걱정이었다.
‘짠 음식투성인데.’
호세는 음식에서 시선을 떼지 못하는 도진에게 이유를 설명해 주었다.
“땀 많이 흘렸잖아? 오늘은 먹어도 괜찮아.”
“안 먹는 게 더 낫지 않아요?”
“글쎄. 그건 네 입장일 테고. 우린 아니야.”
“우리요? 윌리엄은……”
윌리엄의 표정을 살핀 도진은 입을 꾹 다물었다.
안주를 바라보는 윌리엄의 시선이 예사롭지 않았다.
마치 보물을 발견한 듯한?
“윌리엄. 그렇게 보지만 말고 먹어라. 물론 많이 먹지는 말고. 넌 내일 경기 뛰어야 할 수도 있으니까.”
윌리엄은 결단이 섰는지 즉각 버펄로 윙을 입에 집어넣었다.
“호세. 우리도 경기 뛰어야죠.”
“난 내일 안 뛰어. 너도 안 뛸걸?”
“어떻게 알아요?”
“일단 난 늙어서 그렇고. 넌 어려서 그래.”
답변이 뭐 저렇지?
하지만 묘하게도 수긍이 갔다.
지금까지 네 경기를 뛰었다.
타석에만 들어섰다면 또 모를까. 이닝도 3이닝을 더 소화했기 때문에 보호 차원에서 하루 쉴 수도 있다.
하지만 아닐 수도 있잖아?
그러므로 도진은 따로 주문한 샐러드를 포크로 집어 먹었다.
맥주 한 캔을 더 비운 호세는 도진을 바라보더니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쯧. 몸 관리 한번 징그럽게 하네. 사람이 먹을 때는 먹어야지. 어쨌거나 슬슬 얘기나 해보자.”
“무슨 얘기요?”
“야구 선수가 야구 얘기를 해야지. 뭐 다른 얘기하고 싶어?”
어디서 많이 듣던 멘트.
도진은 뒤통수를 벅벅 긁었다.
늘 제 입에서 나와야 할 말버릇이 호세에게서 들려왔으니까.
“오늘 애송이한테는 딱히 관심 없으니까 듣기나 하고. 어이 윌리엄.”
이미 버펄로 윙 4조각이나 해치운 윌리엄은 맥주 한 모금을 홀짝이며 입가심하더니 호세를 힐끗 쳐다봤다.
“네.”
“너 오늘 무슨 생각으로 타석에 임했냐? 내가 봤을 땐 휘두를 마음이 없어 보였거든? 너 타격감 꽤 괜찮았잖아?”
윌리엄은 고민하지 않았다.
“요즘 2연속 패배로 인해 라커룸 분위기가 좋지 않았으니까요. 역전을 위해서는 타격보다는 출루가 나을 것 같았어요.”
“날 믿은 건가?”
“네. 믿었습니다.”
“하. 이놈도 거짓말이 아주 능숙하네?”
윌리엄은 진지한 표정으로 대답했다.
“아뇨. 전 제가 출루하면 호세도 출루하리라 믿었습니다.”
“왜? 내 선구안이 언제부터 그렇게 뛰어났지?”
“선구안 때문이 아닙니다. 오늘 호세의 주루 플레이에서 확신할 수 있었습니다.”
호세는 입꼬리를 올렸다.
“똑똑하네. 경기를 읽을 줄 알아. 물론 네 장점은 타격이다. 그 부분이 퇴색되지 않게 조심해라.”
“알겠습니다.”
“그나저나.”
호세는 맥주 한 캔을 더 따서 윌리엄 앞에 두었다.
“일단 쭉 들이켜.”
도진은 호세의 행동에 놀란 나머지 턱이 벌어졌다.
내일 경기 뛸 수도 있으니 자중하라고 하지 않았는데 맥주를 저렇게 마시게 내버려 둬도 괜찮은가?
‘그나저나 같은 미국인이라도 호세가 어려운 건 매한가지인가보다.’
윌리엄은 맥주를 벌컥벌컥 들이켰다.
“너. 술 세냐?”
맥주캔을 싹 비운 호세가 윌리엄에게 물었고.
도진은 에휴! 한숨을 삼켰다.
참 빨리도 물어본다.
도진은 한숨이 나오려고 하자 얼른 토마토를 입에 넣고 둘의 대화에 귀를 기울였다.
“야, 약한데요?”
“그래도 괜찮아. 고작 맥주잖아?”
“그, 그렇죠?”
“그러니 하나 더 마셔.”
둘은 30분도 채 되지 않아 맥주 10캔을 해치웠다.
호세는 얼굴이 벌겋게 달아오른 윌리엄의 옆구리를 툭 쳤다.
“어이. 우리끼리니까 솔직히 말해보자. 우리 팀 좌익수랑 우익수. 열 받지 않냐?”
윌리엄은 반쯤 눈이 풀렸지만, 끝까지 정신줄을 잡고 있는 듯 보였다.
“그, 글쎄요.”
“쯧쯧. 눈치 보기는.”
호세는 눈에 힘을 주었다.
“미카랑 카메론 자식 요즘 마음에 안 들어. 돈 많이 받는다고 해이해졌어. 안 그러냐? 앞에 애송이야 메이저리거가 된 지 오래되지 않아 상황을 잘 모르지만, 넌 그래도 2년 정도 봤잖아?”
윌리엄은 끝까지 입을 다물었다.
호세는 그러거나 말거나 말을 덧붙였다.
“솔직히 난 네가 주전 좌익수나 우익수를 맡아야 한다고 생각해. 널 위해서가 아닌 우리 에인절스를 위해서. 넌 어때?”
윌리엄의 눈이 순간 풀리더니 혀가 꼬였다.
“인저엉! 내가 놈들보다 못한 게 뭔뒈? 타격이 부조캐? 아니면 팀을 생각하는 마음이 뒤처져? Fuuuc*”
호세는 비어 있는 맥주 봉지를 아쉽다며 쳐다보더니 윌리엄에게 더해보라고 손짓했다.
윌리엄은 신나서 불평을 이었다.
대신 이번만큼은 꼬인 혀는 사라졌다.
“아니! 앞에 있는 루키야 그렇다 칩시다! 열심히 하잖아요. 그런데 나보다 돈도 15배 이상 받는 놈들이 도대체 왜 그따위로 뛰는 거야?”
호세는 윌리엄의 어깨를 톡톡 도닥였다.
“그래. 바로 그 마음가짐이다. 물론 몸값 때문에 네가 풀 타임을 뛰기는 부족하다. 그래도 이 애송이나 외야수들이 쉴 때는 네가 1순위로 들어가잖아? 그러니 기회가 올 때 잡아. 에인절스가 변하려면 너 같은 인재가 필요해.”
에인절스는 열심히 뛰지 않는 스타보다 팀을 위해 희생할 줄 아는 선수가 필요하다는 뜻이었다.
“가능할까요?”
윌리엄의 질문에 호세는 자신 있게 끄덕였다.
도진도 엄지를 치켜세웠다.
“저를 인정해주다니. 호세! 기분도 좋은데 술 더 없어요?”
“없어 임마.”
“그럼 전 화장실 좀 다녀올게요.”
윌리엄이 잠깐 자리를 비웠다.
도진은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속삭였다.
“아니. 남 흉봐도 돼요?”
“안 될 건 뭐 있어? 내가 틀린 말 했어?”
“그래도요.”
윌리엄이 차후에 둘에게 얘기할 수도 있는 거 아닌가?
그렇게 되면 에인절스의 팀 내 분위기는?
“네 걱정이 뭔지는 알겠어. 그래도 날 믿어라. 물론 윌리엄이 주전 자리를 당장 꿰찰 수는 없어. 메이저리그가 그렇거든. 돈 많이 받는 놈을 쉽게 뺄 수 없어.”
“그건 그렇죠.”
“하지만 놈들은 경쟁자가 없어서 해이해진 것도 맞아. 그 자리를 윌리엄이 위협해야지만 우린 더 좋은 성적을 낼 수 있어.”
도진은 혹시 호세가 파벌을 만들려나? 싶었다.
하지만 이로써 확실해졌다. 그는 누구보다 에인절스가 도약했으면 한다는 것을.
‘아들의 소원과도 맞물리니까.’
더군다나 결국 호세는 개인 시간을 이용해 후배들을 다독여줬던 것이었다.
‘이건 내가 할 수 없는 일들이야.’
도진은 호세를 존경의 눈빛으로 쳐다봤다.
하지만 그런 존경도 고작 찰나의 순간일 뿐.
“우웨엑!”
화장실에서 들려오는 소리에 호세와 도진의 동공이 터질 듯이 팽창했다.
“호, 호세. 윌리엄 토하는 것 같아요!”
“아, 아니 X발. 고작 맥주 먹고 왜 저래? 하. X됐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