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baseball genius who chews up America RAW novel - Chapter (219)
미국 씹어먹는 야구 천재-219화(219/400)
아돌니스 로드리게스.
대기 타석에서 호세의 타석을 지켜보던 그는 미간을 와락 구겼다.
도대체 경기가 어떻게 흘러가는 것인지.
좀처럼 경기 내용이 머릿속에 들어오지 않았다.
‘경쟁이잖아…….’
경쟁은커녕 예상과는 정반대로 흘러가고 있었다.
어째서 계속해서 자신에게 찬스가 오는 것인가.
눈을 비벼보았다.
2사 만루. 달라지는 건 없었다.
그 때문에 한숨이 나왔다.
근 4년간 에인절스에서 눈 씻고 찾아볼 수 없는 팀플레이가 펼쳐지고 있었으니까.
더군다나 호세는 공을 휘두를 생각조차 하지 않았다.
상대는 트윈스의 필승 불펜. 그런데 그는 마치 볼넷을 예견이라도 한 듯 스윙조차 하지 않고 자신에게 바톤을 넘겼다.
‘투수가 던진 2구째 공은 가슴 높이로 날아오는 패스트볼도 참았어.’
호세가 좋아하는 투구 중 하나였지만, 그는 흘려보냈다.
어째서겠는가?
2사 2, 3루와 2사 만루. 투수가 느끼는 압박감은 이루 말로 표현할 수 없었다.
그런데 이건 경쟁이잖아? 서로 피 터질 때까지 물고 뜯어도 모자랄 판에 어째서?
입지보다 고작 한 경기 승리가 더 중요하다는 것일까?
아돌니스는 전신을 물밀 듯이 덮쳐오는 자괴감에 아랫입술이 파르르 떨렸다.
‘알아. 안다고.’
자신도 메이저리거다. 한 경기의 소중함을 모를 수가 없다.
그래도 지금은 그래서는 안 되는 거잖아.
팀 승리보다 라커룸을 장악할 수 있는 입지가 먼저잖아.
‘내가…….’
우리가 졌다.
호세는 자신보다 더 나은 사람이다.
아돌니스는 패배를 인정했다.
물론 핑계는 여전히 댈 수 있다.
이런 건 예전에는 볼 수 없었던 모습이다. 그랬다면 벨과 호세를 끝까지 따랐을 테니까.
‘왜 지금에 와서…….’
정답을 알고 있던 아돌니스는 타석에 들어서며 3루 베이스에 아주 미세하게나마 시선을 주었다.
스쳐 지나가듯 비친 도진의 모습이 머릿속에 고정됐다.
‘역시 너구나.’
아돌니스는 그만 인정하기로 했다.
저 루키야말로 에인절스를 이끌 주인공이었다.
그러자 오늘 그의 활약이 그림 그려지듯이 머릿속에서 활개 쳤다.
첫 타석부터 그는 자신의 타점에 이바지한 장본인.
그는 부상을 무릅쓰고 다음 타자이자 경쟁자인 미카에게 기회를 넘겨주겠다고 몸을 날려 1루를 사수했다.
미카의 안타가 나왔을 때도 그는 2루에서 멈춰서는 대신 3루까지 내달렸고, 덕분에 2사 만루라는 절호의 기회가 만들어졌다.
‘여기서 만루 홈런을 친다 한들 내가 해결사로 등극할 수 있는가?’
아니. 완패다.
야구에서는 과정도 중요하다.
대거 득점이 필요한 빅이닝에서는 결국 결과보다는 과정이 중요한 법이었으니까.
그리고 이 과정은 결국 도진이 기획했다.
‘저 아이가 없었다면 8회도 득점 없이 끝났겠지.’
자신은 차려놓은 밥상에 숟가락을 손에 쥘 위인이 아니다.
아돌니스는 그렇게 생각했다.
비참해지기 싫다. 에인절스는 더는 자신이 필요하지 않았으니까.
그리고 어쩌면…….
‘에인절스의 앞길을 막았던 건 나였구나.’
적어도 문제점을 파악한 지금 그냥 물러설 수는 없다.
마지막 자존심을 지키기 위해서라도 활약하겠다.
아돌니스는 타격 자세를 잡았다.
2사 만루. 상대는 트윈스의 마무리투수지만 인간이다.
살 떨리는 2사 만루에서 등판한 그가 정상적인 피칭을 할 수 있을까?
아돌니스의 눈이 번뜩 뜨였다.
‘나를 상대로?’
자신은 에인절스 야수에서 가치가 제일 높은 선수였다.
“스트라이크!”
“볼!”
“볼!”
“스트라이크!”
“볼!”
3-2 풀카운트.
아돌니스는 배트를 짧게 잡았다.
스트라이크 존으로 향하는 모든 공을 커트해내며 결국 8구째 슬라이더를 흘려보냈고.
“베이스 온 볼스!”
여전히 8회, 2사 만루.
하지만 점수는 4:6.
이제는 짧은 안타 하나면 동점인 가운데 윌리엄이 타석에 들어섰다.
* * *
“윌리엄. 부담 가질 필요 없어요.”
홈을 밟고 득점을 올린 도진이 대기 타석에 있던 자신에게 다가왔다.
윌리엄은 흔들리는 동공을 강제로 휘어잡고 고개를 끄덕여 보았다.
“어, 어.”
“진짜 긴장할 필요 없어요. 여기서 결과가 나지 않아도 정말 괜찮거든요.”
“어째서지?”
“어째서라뇨?”
윌리엄은 할 말을 잃었다.
오늘 아돌니스는 무려 에인절스의 4타점에 전부 관여했다.
여기서 자신이 치지 못한다면?
경쟁에서의 승리는 저들에게 넘어갈 것이다.
지금까지 활약해준 도진과 호세를 어떻게 마주할 수 있겠는가.
그런데 도진의 눈은 진실을 말하고 있었으므로 더욱 이해할 수 없었다.
“타자가 어떻게 매번 잘 쳐요. 2사 만루. 투수도 떨리지만, 타자도 마찬가지잖아요? 오히려 팀이 지고 있는 가운데 타석에 서야 하는 윌리엄이 더 떨리겠죠.”
윌리엄은 고개를 끄덕였다.
다시 도진에게서 소프트아이스크림처럼 부드러운 목소리가 들려왔다.
“윌리엄. 만약 결과를 내지 못했다고 호세가 뭐라 하면 저한테 말해주세요. 물론 제가 할 수 있는 건 없겠지만요.”
“고맙다.”
“들어가 볼게요.”
도진은 뒤도 돌아보지 않고 더그아웃으로 들어갔다.
걱정 따윈 없었으니까.
적어도 오늘만큼은 에인절스는 하나가 되었다.
팀의 중심들마저 후속 타자에게 더 좋은 찬스를 내어주겠다며 고군분투했다.
그러므로 오늘 에인절스는 그 어떤 날보다 빛이 났다.
더그아웃으로 들어간 도진의 등을 멍하니 바라보던 윌리엄은 아랫입술을 꽉 물었다.
‘끝까지 나한테 부담을 주지 않으려고 하는구나.’
윌리엄은 타석으로 이동했다.
그간 도진과의 경쟁이 머릿속에서 떠올랐다.
‘한때는 나도 네가 너무나도 미웠는데 말이지.’
18세 메이저리거 재능의 크기는 남달랐으니 말이다.
백날 노력해도 그의 뒤꽁무니조차 따라갈 수나 있을까?
아니. 없다는 것을 알았다.
시범 경기에서 그가 못했으면 하는 바람에 저주나 내린 예전 모습이 떠오르자 부끄러움에 심장이 쿡쿡 찔러댔다.
윌리엄은 아랫입술을 까득 씹었다.
‘그런데 이제는 아니야.’
그와 아주 잠깐이라도 경쟁했다는 것. 언젠간 자랑할 수 있는 타이틀이 생긴 것이다.
그는 메이저리그를 씹어먹을 것이며 언젠가는 미국을 호령하는 대선수가 될 테니까.
‘쳐낸다. 무조건 쳐낸다.’
경쟁이란 그늘 아래 선수들은 오히려 힘을 합치고 있었다.
에인절스는 적어도 오늘만큼은 바뀌었다.
아돌니스를 필두로 미카도 팀을 위해 고군분투하고 있었다.
물론 이 분위기가 얼마나 갈지는 모르겠다.
어쩌면 오늘이 마지막일 수도 있다.
하지만 이 과정은 전부 도진이 세팅해 둔 것이 아니던가?
‘그리고 네가 에인절스에 있을 때만큼은.’
절대 바뀌지 않을 것만 같은 이 팀은 변할 것이다.
하나로 뭉칠 수 있을 것이다.
윌리엄은 타격 자세를 잡았다.
도진에게 힘을 보태겠다. 그러려면 쳐내는 수밖에 없다.
초구부터 절호의 기회를 맞이했다.
한복판 패스트볼.
도진을 이기겠다고 겨울부터 열을 올렸던 노력 덕분일까?
트윈스 마무리 투수의 공이 이렇게나 위협적이지 않다니.
따-악!
타구는 우중간을 향해 쭉쭉 날아갔다.
펜스를 직격한 타구의 결과는 싹쓸이 2루타.
에인절스는 7:6으로 역전했고 그 승리를 지켜냈다.
* * *
똑똑.
경기가 끝난 후 사무실에 앉아 있던 조 캐넌은 누군가 문을 두들겼다.
“들어와라.”
아돌니스. 그는 착잡한 표정으로 문 앞에서 서성였다.
“와서 앞에 앉지.”
아돌니스는 고개를 푹 숙인 채 조 캐넌을 마주 보고 앉았다.
조 캐넌은 심각해 보이는 아돌니스가 먼저 입을 열길 기다려주었다.
머릿속이 정리되었는지 그의 입에서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감독님. 드릴 말씀이 있습니다. 트레이드 시켜주십시오.”
“어째서지?”
“감독님은 알고 계시지 않습니까.”
“무엇을?”
아돌니스의 턱에 힘이 들어갔다.
“제가 에인절스에 필요 없는 선수라는 것을요.”
조 캐넌은 오른손을 들어오려 턱을 매만졌다.
“필요 없는 선수라고? 누가. 네가?”
“네.”
“내가 그런 말을 한 적이 있던가?”
“저는 오늘 경쟁에서 패배했습니다. 더는 여기에 남아 있을 이유가 없습니다.”
“경쟁에서 패배했다라. 팀을 승리로 이끈 주인공이 할 말인가?”
“제가 주인공이라고요?”
아돌니스의 말에 가시가 맺혀 있었다.
하지만 조 캐넌은 눈 하나 끔뻑이지 않았다.
“오늘 우리가 낸 7점에서 4타점 2득점을 낸 선수가 주인공이 아니면 뭐지?”
“저는 주인공이 아닙니다. 주인공은 따로 있다는 걸 감독님께서 더 잘 알고 있지 않습니까?”
“그게 누구지?”
아돌니스는 아랫입술을 씹고 잠깐 뜸을 들였다.
“킴. 그 어린 선수죠.”
“어디 보자. 2출루 2도루 2득점에 관여했어. 확실히 나쁘진 않았지. 물론 그는 팀을 위해 헌신했고 빅 이닝을 만들어 낸 장본인이 맞다. 하지만 결국 해결사 역할을 한 건 아돌니스 자네잖아?”
“아뇨. 오히려 해결사라면 팀을 역전 시킨 윌리엄이겠죠.”
아돌니스는 한이 맺힌 목소리로 덧붙였다.
“저는 미카와 카메론을 통제하지 못했습니다. 그들이 분위기를 흐트러뜨리는 걸 지켜본 방관자일 뿐이라고요!”
호통 섞인 외침에도 조 캐넌은 나직이 물었다.
“자네. 메이저리그 경력이 얼마나 됐지?”
“9년 차입니다.”
“9년이라. 내가 몇 년 됐는지 아나? 감독으로만 20년이네. 선수 시절까지 포함해볼까? 30년은 우습게 넘겼지. 얼핏 계산해도 자네보다 3배가 훌쩍 넘어. 자네 정도는 애송이로 보인다는 말이야.”
조 캐넌 감독은 말을 이었다.
“아돌니스. 정말 잘나가는 극소수의 팀을 제외하면 이런 일들은 비일비재해. 난 선수로든, 아니면 감독으로서도 이런 일을 수없이 겪어 봤다. 그런데 말이야. 그 선수들에게는 대부분 공통점이 있다네. 혹시 뭔지 아는가?”
아돌니스는 힘없이 고개를 저었다.
“잘 모르겠습니다.”
“팀을 위한 마음이다. 정확히는 팀이 잘 됐으면 하는 바람이지. 메이저리그에서 1시즌에 몇 팀이 포스트시즌에 진출하지? 아메리칸, 네셔널리그 포함 고작 8팀이라네. 그런데 그중에서도 잘나가는 몇 팀을 제외하면 전부 파벌이 있지. 자네도 알고 있을 걸세.”
“하지만 부끄럽게 대놓고 드러날 일은 드물겠죠.”
“뭐. 그것도 맞는 말이지. 그런데 그게 잘못됐다고 생각하지는 않네. 내가 자네를 잘 아는 건 아니야. 알다시피 부임한 지 아직 1년도 되지 않았으니까. 하지만 자네는 어디까지나 에인절스가 더 높은 곳에 도달하길 원하는 바라고 있잖아?”
조 캐넌은 대답이 선뜻 들려오지 않자 되물었다.
“아닌가? 망치려고 그랬던 거라면 나도 할 말 없다네.”
“그, 그건 아닙니다.”
조 캐넌은 부드러운 미소를 지었다.
“자네보고 그들과 친한 친구가 되라는 말은 아닐세. 서로 존중하는 팀 동료면 충분하지 않겠어? 남들과 똑같이 말이야.”
아돌니스는 고개를 떨궜다.
남들과 똑같다는 말은 잔뜩 성이 난 그의 마음이 누그러졌다.
다른 팀도 자신들과 같구나.
부끄러운 게 아니구나.
“죄송합니다. 트레이드 철회해도 되겠습니까?”
“잘 생각했다.”
“이만 나가보겠습니다.”
아돌니스는 자리를 벗어났다.
조 캐넌 감독은 그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원래 선수는 우여곡절 끝에 성장하는 법이야. 에인절스는 큰 사건 하나를 해결했군.’
물론 이 일로 원팀이 된 것은 아니다.
말처럼 쉬웠다면 메이저리그의 모든 팀이 원팀이었을 테니까.
하지만 성장했다. 지금으로서는 그거면 충분하다.
조 캐넌 감독의 머릿속에는 에인절스의 막내 도진이 순간 떠올랐다.
‘이런 보배를 그저 어리다는 이유로 쓰지 않을 생각을 했었다니. 나도 늙은 건가? 감이 다 죽었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