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baseball genius who chews up America RAW novel - Chapter (224)
미국 씹어먹는 야구 천재-224화(224/400)
놀란은 좌타석에 들어서며 한쪽 입꼬리가 스멀스멀 올라갔다.
‘도대체 이날을 얼마나 기다려왔던가.’
광기가 넘치다 못해 희열에 가득 찬 그의 표정은 미국 전역으로 생중계되었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모자에 가려져 있어 정확히 보이지는 않았지만, 깨문 입술 사이로 도진의 미소 역시 미국 전역에 생중계되고 있었다.
그리고 놀란은 도진의 표정을 정면에서 바라보고 있었다.
‘역시. 너도 나와 같은 감정이구나.’
피식 웃은 놀란은 이내 진중한 표정으로 뒤바뀌었다.
이 매치업이 다시 성사된 것은 정확히 2년. 하이스쿨 인비테이셔널 결승전으로부터 2년이나 지나서였다.
그 2년이 비록 앞으로의 긴 야구 인생에 비하면 짧을 수도 있겠지만, 놀란은 지금까지의 기다림 때문에 몸에서 사리가 나올 것만 같았다.
‘이런 매치업을 앞으로 계속해서 이어 나갈 수 있다니.’
같은 리그와 지구의 팀들은 총 19게임씩을 뛴다.
에인절스와 양키스는 같은 AL 리그이지만 다른 지구였으므로 1시즌 총 6, 7게임을 붙는다.
지금까지 마이너리그를 제외하면 도진과 고작 두 번의 맞대결을 펼쳤을 뿐이지만, 이제는 매해 최소 6번은 붙을 수 있다.
더군다나 동시대 태어난 두 천재는 하나의 타이틀을 두고 피 터지게 다퉈야만 한다.
‘타이틀은 내가 가져간다.’
그리고 이 승부마저도.
놀란은 자신이 있었다.
한편. 도진도 로진백을 주무르며 호세의 사인을, 그리고 놀란이 어서 타격 자세를 잡았으면 했다.
피가 들끓고 있어 가만히 서 있는 것이 이렇게 힘들 줄이야.
때마침 놀란이 타격 자세를 잡았다.
도진은 사인에 고개를 끄덕이며 와인드업에 들어갔다.
바깥쪽으로 휘어져 나가는 투심.
앞선 타자를 삼진으로 돌려세운 그 코스였다.
도진은 무릎을 추켜세웠다.
발바닥이 지면에 강하게 닿자 역동적인 폼에서 나오는 그의 투구는 중력을 무시한 채 한복판으로 향했다.
놀란의 배트도 나왔다.
홈플레이트 부근에서 크게 휘어져 나가는 투구에도 망설임을 찾아볼 수 없는 그의 스윙은 투구를 갖다 맞추었다.
따–악!
도진과 호세의 침이 순간 꼴딱 넘어갔다.
도진은 성급히 우측으로 고개를 틀었고, 호세는 마스크를 벗어 던지고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밀어친 타구는 그 끝을 모르고 쭉쭉 날아가고 있었지만.
“파울!”
폴대를 살짝 빗겨나갔다.
간담을 쓸어내린 호세였지만, 그는 좀처럼 진정할 수 없었다.
‘이걸 이렇게 밀어쳐서 저런 타구를 만들어 버린다고?’
도대체 어떻게 돼먹은 놈이지?
분명 19세잖아?
그런데 그는 에인절스 최고 타자 중 한 명인 아돌니스와 견주어도 손색없었다.
누구라도 알만한 선수와 비교된다는 것.
‘양키스도 애송이만큼의 괴물을 얻었구나.’
놀란은 파울 홈런의 아쉬움을 훌훌 털어버리겠다며 곧장 타격 자세를 잡았다.
이제는 호세의 사인이 나오고 도진이 공을 던져야만 하는 차례.
하지만 호세는 좀처럼 사인을 내지 못했다.
‘젠장. 쪽팔리게.’
머릿속이 새하얘졌기 때문이다.
어떤 공을 던지게 해야 이 타자가 치지 못할까?
변화구는 답이 되지 않는다.
도진이 던질 수 있는 변화구는 체인지업.
최대한 2스트라이크까지 끌고 나간 이후에 생각해볼 수 있는 구종이었다.
커브라는 변칙 수가 있지만, 이 천재 타자에게는 통하지 않을 것이다.
그러자 그때. 도진은 엄지와 검지를 동그랗게 말아쥐며 펼쳐진 남은 세 손가락을 팔에 붙였다.
먼저 사인을 보냈던 것이었다.
* * *
‘호세가 많이 당황했네.’
도진은 아랫입술을 살짝 씹었다.
사인이 나와야 하는 타이밍인데 사인이 나오지 않고 있다.
이유는 너무나도 쉽게 알 수 있었다.
완벽한 투심이었다.
맞더라도 뻗지 않으리란 확신이 있었다.
그런데 놀란은 폴대를 살짝 빗겨나간 파울 홈런을 만들어냈다.
조금만 더 타이밍이 맞았더라면?
‘홈런을 맞았을 거다.’
완벽한 공을 타자가 너무나도 손쉽게 받아쳤다.
포수의 머리가 굳어도 전혀 이상하지 않다.
무엇보다 지금 놀란은 120% 이상의 힘을 발휘하고 있다.
‘결국 놀란을 이기려면 나 역시도…….’
평소보다 더 강하고 좋은 공을 던져야 하는 수밖에 없다.
그리고 그에 적합한 구종은 단 하나뿐이었다.
도진은 사인이 나오지 않자 호세에게 사인을 보냈다.
그제야 호세도 고개를 끄덕였다.
사인이 교환되자 도진은 즉각 와인드업했다.
‘한복판은 절대 안 된다.’
손을 떠난 도진의 투구는 놀란의 무릎 높이로 향하는 포심 패스트볼.
던지는 순간 주먹이 불끈 쥐어질 만큼 몸쪽으로 향하는 완벽한 코스이며 제대로 긁히기까지 했다.
놀란의 눈이 번뜩 뜨였다.
그는 낮은 코스로 강력한 패스트볼이 날아오자 턱에 힘이 잔뜩 들어갔다.
‘굉장하구나!’
놀라움은 곧 희열로 바뀌었다.
가만히 두면 스트라이크가 된다.
그런데 이 공을 건들게 된다면 결과는 어떻게 나올까.
그는 궁금증을 담아두는 것을 선호하지 않았다.
부웅.
아래에서 위로 치솟는 스윙이 나왔다.
따-악!
너무나도 완벽한 코스로의 투구였던지라 놀란의 자세가 순간 흐트러졌다.
우측으로 포물선을 그리며 날아가는 타구는 결국 파울이 되었지만, 이번에도 담장을 넘겼다.
첫 번째 타구와는 다르게 손쉽게 파울임을 알 수 있었지만, 배터리의 간담은 더욱 서늘해졌다.
도진은 타구가 머무른 방향에 한참 동안 시선을 고정했다.
‘이야. 이걸 또 저렇게 쳐버리네?’
정말 말도 안 되는 괴력과 기술이다.
하지만 카운트는 0-2.
압도적으로 유리한 투수의 카운트였다.
덕분에 표정을 추스를 수 있다고 판단했다.
그렇기에 공을 달라며 심판에게 글러브를 들어 올렸다.
동시에 잠깐 타석을 벗어난 놀란과 눈이 마주쳤다.
0-2. 유리한 건 투수지만, 두 선수가 눈이 마주치는 순간 표정만큼은 정반대의 감정이 표출됐다.
놀란에게는 여유가 있었다. 그 때문에 도진의 속은 바짝 타들어 갔다.
포심과 투심. 자신 있는 두 가지의 구종을 전부 보여줬고 결과가 마냥 좋다고 말할 수 없었다.
‘이번에는 타이밍을 맞출 거다.’
그리고 타이밍이 맞게 되는 순간 결과가 어떻게 나올지는 뻔했다.
3구. 하이 패스트볼.
가슴 높이로 향하는 패스트볼에 놀란은 배트를 내지 않았고, 볼이 선언됐다.
배터리도 무덤덤했다.
어차피 유인구였고 지금 당장 타자의 눈을 현혹하려면 필수 과정이었다.
4구. 여기서 스윙해주길 바라면서 바깥쪽으로 휘어져 나가는 서클 체인지업을 던졌다.
하지만 놀란은 마치 배터리의 머릿속을 읽고 있다는 듯 스윙하는 시늉조차 하지 않았다.
“볼!”
0-2에서 2-2.
쉬운 공을 주지 않겠다는 투수와 어떻게든 쳐내겠다는 타자의 싸움은 한 치 앞을 내다볼 수 없게 되었다.
사인이 나왔다.
도진은 즉각 고개를 끄덕였다.
발을 들어 올린 도진은 속으로 제발! 이라고 외치며 공을 던졌다.
투구는 한복판으로 향했다.
하지만 그 끝에 도달할 즘 다시 한번 바깥쪽으로 휘어져 나갔다.
타자의 배트가 나왔다.
도진은 그 즉시 주먹을 불끈 쥐었다.
‘걸렸다!’
초구와 구종만 같을 뿐.
엄연히 다른 공이었다.
초구는 스트라이크 존에 꽂아 넣는 투심이었다면, 이번에는 공 한 개 정도 빼버리는 투구였다.
그렇기에 배트가 나온 지금. 삼진이 확실시되는 듯했지만.
딱!
놀란은 엉덩이까지 쭉 빼며 배트 끄트머리로 투구를 커트해냈다.
“허!”
놀란을 중심으로 사방에서 헛웃음이 튀어나왔다.
당연히 그 웃음의 주인공은 도진과 호세였다.
이걸 커트해?
무엇보다 그가 지금 선보인 배트 컨트롤은 인간의 것임이 믿기지 않았다.
하지만 호세는 넋이 나간 표정을 고스란히 유지했던 반면.
도진은 목덜미를 긁더니 그만 진심 섞인 미소를 띠었다.
‘고맙다. 역시 넌 최고의 라이벌이다.’
겉으로 말을 내뱉은 것도 아닌데 놀란도 미소를 띠는 걸로 보아 같은 생각을 하는 것처럼 보였다.
그리고 둘은 이번 투구가 마지막이 될 것임을 알았다.
도진은 지체없이 와인드업했다.
손을 떠나 미트로 향하는 투구는 평소 즐겨 던지며 자신 있어 하는 포심 패스트볼.
투구는 중력을 무시한 채 스멀스멀 떠오르는 듯했다.
마치 비행기가 이륙을 시작한 모습과도 같았다.
놀란의 배트가 나왔다.
부웅!
하지만 스윙 후 놀란은 곧장 배트를 한 바퀴 돌려 회수하고는 등을 돌렸다.
퍼억!
가슴 높이의 공에 헛스윙을 해버렸던 것이었다.
“스트라이크 아웃!”
도진은 주먹을 불끈 쥐었다.
놀란은 더그아웃으로 이동하면서 도진과 전광판을 번갈아 가며 힐끗 쳐다보더니 히죽 웃었다.
‘102마일 라이징 패스트볼이라.’
분명히 도진이 던진 공은 한복판으로 향하는 듯 보였다.
하지만 결과가 보여주듯 그의 투구 결과는 타자의 가슴 높이.
아무리 배트 컨트롤에 능해도 이건 칠 수 없는 공이었다.
‘거기에 최고 구속까지 경신해? 해도 해도 너무하는구나.’
타석에 아쉬움을 남겨둔 놀란은 이번에도 자신의 패배를 인정했다.
하지만 아직 시즌이 끝나기 전에 복수를 할 기회는 남아 있었기에, 예전만큼 찝찝한 마음은 없었다.
그리고 도진은 삼자범퇴로 이닝을 마무리 지었다.
* * *
메이저리그 소식을 전해주는 소식통이나, 뉴스와 커뮤니티까지 오늘 결과로 뜨겁게 달궈졌다.
-이러면 누가 이긴 거냐?
└킴이 이겼지.
└놀란이 이겼지. 진짜 에인절스는 답이 없다.
개인 승부에서는 도진이 이긴 것이 맞다.
하지만 9회 마무리를 지어야 할 투수가 역전 만루 홈런을 내주었다.
그리고 그 만루 홈런의 주인공은 다름 아닌 놀란이었다.
-솔직히 킴이 놀란을 삼진으로 돌려세웠을 때 팀이 승리해야 하는 그림이 당연한 거 아니었어?
└인정. 전율이 쫙 올라왔는데 9회에 김이 팍 세더라.
└8회부터 말썽이었어. 점수만 내주지 않았지, 위기였잖아?
└분위기를 가져오거나 지켜줄 선수들이 더 필요해.
└선수 수급을 하든 선수를 올리던 뭐 좀 해라!
└일단 에인절스는 투수 풀이 구림. 쉽지 않아.
하지만 에인절스도 얻어간 것이 없다고는 볼 수 없었다.
경기가 끝난 직후 조 캐넌 감독은 도진을 불렀다.
“감독님. 부르셨어요?”
“그래. 고생 많았다.”
“아닙니다. 죄송합니다.”
“죄송하긴. 넌 잘했어.”
도진은 감사하다며 고개를 꾸벅했다.
그래도 아쉬운 건 아쉬운 거다.
이 승리로 팀의 분위기를 이어 나갈 수 있을 것만 같았는데 결국 경기에서는 져버렸다.
조 캐넌 감독은 도진의 표정을 읽었고 그는 다른 이 결과를 다른 시각으로 바라보았다.
“나는 오히려 지금 이런 결과가 나와서 다행이라고 생각한다.”
도진은 눈을 멍하니 끔뻑였다.
“어, 어째서요?”
“시즌은 길다. 처음 분위기를 쭉 이어 나가면 더할 나위 없이 좋겠지만, 시즌 중반쯤 이런 문제가 터졌다면 오히려 더 답도 없는 법이니까.”
그럴 수도 있겠구나.
도진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데 이걸 왜 자신에게 이야기해주는 걸까?
도진은 눈빛으로 물었다.
조 캐넌 감독은 씨익 웃었다.
“네 올 시즌 순번과 보직은 확정돼서 알려주려고 한다네.”
도진은 자세를 고쳐 잡고 진중하게 말했다.
“듣고 있습니다.”
“올 시즌 자네는 휴식할 때를 제외하곤 쭉 3루수와 1번 타자로 출전할 걸세. 에인절스의 리드 오프로 앞으로도 더 좋은 활약 펼쳐주길 바란다.”
1번 타자라.
한 타석에라도 더 나설 수 있다는 건 행운이다.
그만큼 경험도 더 쌓일 테니까.
“그리고 자네가 목표하는 타이틀이 있다면 더 도움이 되겠지! 물론 성적이 좋지 못할 시에는 언제든지 타순이 변경될 수 있다는 점을 명심하게.”
“감사합니다! 감독님!”
“음. 아직 얘기는 끝나지 않았어. 아무래도 1번 타자로 나서면 체력 소모가 제일 큰 법이야.”
당연한 이야기지만, 1번 타자는 팀 내에서 제일 많은 타석을 소화하게 되기 때문이다.
“그래서 말인데. 투수 보직도 바꿀 생각이네. 에인절스의 클로저. 자네가 맡아 주길 바라네.”
도진은 지금까지 7회에 마운드에 올랐다.
그 때문에 마운드에 섰다가 다시 지명타자로 타석에 들어서야 하는 때도 있었다.
하지만 그가 마무리 투수가 된 지금.
승리만 지킬 수 있다면 다시 타석에 들어서는 일은 없을 것이다.
도진은 양키스전 이후로 팀의 선봉장과 마무리를 동시에 맡게 되었고.
이 결단은 차후 이번 시즌 에인절스와 도진에게는 최고의 선택으로 남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