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baseball genius who chews up America RAW novel - Chapter (229)
미국 씹어먹는 야구 천재-229화(229/400)
타석에 들어서는 도진은 껌을 씹고 있었다.
이유를 알려면 3회 초로 거슬러 올라가야 한다.
3회 초 공격을 난관에 팔을 걸치고 지켜보던 도진은 양 팀 선발 투수의 투구에 전율이 흘렀다.
‘이게 메이저리그 탑 클래스 레벨이구나.’
1선발과 1선발의 대결은 개막전을 시작으로 몇 번 더 본 적이 있다.
하지만 그때는 지금만큼의 전율을 느끼지는 못했다.
‘몸이 완전히 풀리지 않아서 그랬겠지.’
하지만 그보다 지구 1, 2위와의 맞대결이 의미하는 바는 컸다.
2위가 1위를 잡아낼 수만 있다면 격차를 성큼 좁힐 수 있는 반면.
지게 된다면 그 격차는 훨씬 벌어지게 된다.
메이저리그는 한 시즌 162경기를 치를 만큼 그 경기 수가 매우 많다.
그렇기에 자칫 한 경기 한 경기에 힘을 쏟지 않는 것처럼 보일 수도 있다.
하지만 그 한 경기에서의 승리를 소중하게 할 줄 아는 선수들은 최선을 다하려고 노력하고 있었다.
지금 경기가 딱 그랬다.
‘자존심이 걸려 있어.’
1선발은 구단의 얼굴이다.
여기서 무너지는 팀은 남은 연전에서 멘탈적으로 타격을 입을 수도 있다.
멘탈 스포츠에서 멘탈에 타격을 입는다는 것은 승리에서 멀어지는 것.
그렇기에 양 팀 선발 투수는 오늘의 승리를 지키고자 고군분투했다.
때마침 8번 타자로 타석에 들어섰던 호세가 헛스윙 삼진으로 물러서며 헬멧을 내동댕이치더니 더그아웃 의자에 털썩 앉았다.
도진은 씩씩대던 호세와 눈이 마주쳤다.
호세는 다가오라며 손짓했다.
“좋아?”
“좋긴요. 아쉬웠습니다.”
“쓰으벌. 아쉽긴 뭐가 아쉽냐? 닿을 기미도 없더라.”
“뭐. 호세만 그런 건 아니잖아요. 지금 타선 전체가 먹통이에요.”
호세는 수건으로 이마에 맺힌 땀을 닦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그것도 그래. 그래서 2회와 3회 지켜본 소감이 어때. 대응책은 있어?”
“솔직히 잘 모르겠습니다.”
대응책? 있는 것 같기도 하고 없는 것 같기도 하다.
결국 결과가 모든 것을 이야기해주기 때문이다.
대응책이 있다고 한들, 타자는 투수보다 불리하다.
결과가 나오지 않을 확률이 훨씬 높았기에 자신감을 내비칠 수는 없었다.
“그나저나. 솔직히 막상 투수전을 지켜보니 몸이 굳는 것 같아요.”
“대응책은 있는데 오금이 저려서 결과를 내지 못하겠다는 핑계를 대려는 거냐?”
도진은 눈초리를 가늘게 찢었지만, 맞는 말 같다고도 생각했다.
“라커룸 들어가서 뭐라도 먹던가.”
“경기 중에 뭘 먹고 싶지는 않아요.”
“그럼 해바라기씨라도 줄까?”
호세는 해바라기씨 한 움큼을 입에 욱여넣더니 이내 껍질만 따발총처럼 발사하기 시작했다.
투투투투투.
도진은 호세를 당황스러운 눈빛으로 쳐다봤다.
“뭐, 뭐 하세요?”
“뭐 하긴. 해바라기씨 먹잖아?”
“와. 씨 발라먹는 폼 보소.”
“부럽냐? 너도 연습하다 보면 될 거다.”
“그거 왜 하는 거예요?”
호세의 두 눈이 팽창했다.
이걸 몰라? 이런 감정을 담고 있었다.
하지만 그는 해바라기씨를 도진에게 내밀며 친절하게 설명했다.
“허기를 조금 채울 수도 있고 긴장감을 유지할 수 있지.”
“긴장감을 유지해요?”
“어. 야구 선수들은 긴장감을 끝까지 유지하기 힘들지. 우리는 몸을 자주 움직이지 않기 때문에 굳는 것을 방지하려는 거지. 너도 지금 몸이 천천히 굳고 있는 거야.”
“평소에는 안 이랬는데.”
“원래 투수들 때문에 위축되는 경기에서 자주 나오는 현상인데. 지금까지 에인절스는 그런 경우가 없었지. 왜 해바라기씨는 싫냐?”
도진은 고개를 끄덕였다.
안 그래도 씹다가 뭘 계속 뱉는 것 자체가 정서적으로 좋지 않다.
팬들도 보고 있을 텐데 더럽다고 느낄 수도 있잖아?
호세는 도진의 표정을 읽었다.
“해바라기씨가 싫으면 담배라도 줄까?”
“담배요?”
“어. 씹는담배.”
에휴! 도진은 한숨을 내쉬었다.
“씹는담배라니. 저 쫓겨나요.”
메이저리그도 씹는담배를 규제하고 있다.
그런데도 카메라에 비치지 않을 때 씹는 선수들은 여전히 존재하지만, 규정상 루키는 담배를 씹어서는 안 된다.
더군다나 19세가 담배라니.
사회적 물의를 대놓고 일으키라는 것과 다름없었다.
“해바라기씨도 싫다, 씹는담배도 싫다. 원하는 게 도대체 뭐냐? 거 참 까다롭네! 가서 껌이나 씹던가.”
“껌 씹는 것도 긴장감을 늦춰주나요?”
“어. 몰랐어? 턱이라도 움직이게 만들어야지.”
“턱을 움직인다고 굳은 몸이 풀려요?”
“마이크한테 물어보던가.”
도진은 문뜩 옛 친구가 떠 올랐다.
‘알렉산더가 껌을 씹는 게 멋지게 보이려는 거 때문이 아니었어?’
도진은 호세에게 양손을 공손히 모아 내밀었다.
“껌 좀 주세요.”
호세는 정말 손 많이 가는 아이네. 투덜대며 레이날도에게 껌을 달라고 했다.
레이날도는 주머니에서 껌을 꺼내 호세에게 통째로 넘겼다.
호세는 껌을 두 개 꺼내 도진에게 넘겼다.
“한 개면 되는데.”
“두 개 씹어.”
“왜요.”
“그래야 강해 보이니까. 거만해 보이기도 하고.”
도진은 곧장 두 개의 껌을 받아 입에 넣고 오물오물 씹었다.
거만해 보인다.
상대 투수가 자신을 그렇게 본다면 괜찮을 것만 같았다.
* * *
한국도 그렇지 않던가?
껌을 짝짝 씹어대면 버릇이 없다고 보는 시선도 있다.
겁 없는 루키는 숱한 메이저리거들 사이에서도 아기나 다름없었다.
하지만 아기라고 만만하게 보여서는 안 된다.
그렇기에 껌을 씹는다는 것.
지금 당장 상대의 기고만장함을 꺾으려면 참 좋은 방법이었다.
더군다나 늘 껌을 짝짝 씹어대던 알렉산더의 표정을 어찌 잊을 수 있겠는가?
거만 그 자체였다.
그리고 거만의 수치가 일정량 이상 넘어가면 상대에게는 공포가 될 수도 있었다.
도진은 껌을 짝짝 씹어대더니 풍선도 한번 크게 불며 타석에 들어섰다.
투수를 힐끗 쳐다봤다.
조이 히메네즈의 표정이 일그러졌다.
‘당황스러운 모양이네.’
마치 자신을 제일 먼저 부뚜막에 올라간 얌전한 고양이처럼 보고 있었으니까.
‘이걸로 벌써 껌 씹는 값은 뽑았네.’
1선발들의 멘탈을 미세하게라도 흔들고 있다.
경기 외적이어도 결국 이런 사소한 것들이 모여 실투를 유발할 테니까.
‘물론 어디까지나 결과가 중요하다.’
도진은 타격 자세를 잡았다.
첫 타석과는 느낌 자체가 달랐다.
껌 때문일까?
호세의 말마따나 굳어버린 몸도 풀린 것 같았다.
위축이 되지 않는다는 것. 타자에게는 큰 무기였다.
초구. 포심 패스트볼이 포수가 요구한 바깥쪽 스트라이크 존에 정확히 꽂혔다.
퍼억!
도진은 배트를 내지 않았다. 그저 자신의 공략법이 통할 것인지 점검을 했을 뿐.
‘역시. 이 정도의 공을 보고 친다는 건 말이 안 돼.’
보고 친다. 새로 장착한 이 메커니즘은 확실히 좋은 결과를 만들어 주고 있다.
하지만 어디까지나 보고 친다는 개념도 경험이 필요한 법이다.
‘인간은 적응의 동물이거든.’
이렇게 빠른 공은 아직 눈에도 제대로 익지 않는다.
날아오는 공에 휘둘러야겠다는 확신에 군더더기가 없으려면 이런 공을 몇백 번, 더 나아가 몇천 번은 더 본 이후에나 가능한 부분이다.
‘그러니 지금 내가 당장 조이 히메네즈를 공략할 방법은 하나뿐이야.’
바로 수 싸움.
보고 친다는 개념을 버리고 상대의 투구를 노려서 친다.
지금 당장 결과를 내려면 이 방법밖에 없다.
‘패스트볼이 계속 늦어. 미리 알고 휘둘러야지만, 대응할 수 있어. 그러니 패스트볼이 오면 볼, 스트라이크 구분하지 않고 그냥 휘두른다.’
2구. 패스트볼과 비스름한 체인지업이 바깥쪽으로 날아왔다.
도진은 그 때문에 크게 헛스윙하며 한 바퀴 빙글 돌아 바닥에 주저앉게 됐다.
도진은 속으로 투덜댔다.
‘하아. 역시 갑자기 노림수를 가져가려니 또 어렵네.’
과거는 잠시 접어두자. 일단은 살아 나가는 것이 우선이다.
표정을 굳힌 도진은 타격 자세를 잡았다.
3구째 슬라이더.
노리는 공이 아니다. 공이 떠난 즉시 판단이 가능했기 때문에 배트를 내지 않았다.
“볼!”
4구는 아까 헛스윙을 유도한 체인지업이었다.
도진은 나가려는 배트를 강제로 멈춰 세웠다.
“볼!”
후우. 날숨 사이로 짙은 긴장감이 묻어 나왔고 식은땀이 등골을 적신다.
야구. 정말 어렵다.
노림수를 가져가려 했더니 하필이면 패스트볼과 똑 닮은 체인지업이 날아온다.
빠드득.
도진은 어금니에 힘을 잔뜩 주었다.
‘다시 체인지업을 던지지는 않을 거다.’
저런 공격적인 피칭을 선보이는 투수가 자신에게만 3개의 체인지업을 던진다고?
더군다나 4구째에서는 잘 참아내지 않았던가?
‘여기서 무조건 승부를 보려고 할 터.’
조이 히메네즈가 와인드업했다.
몸쪽으로 향하는 코스는 패스트볼 혹은 체인지업.
도진은 이미 체인지업을 머릿속에서 지웠다.
그렇기에 지금까지 심어둔 조이 히메네즈의 패스트볼에 맞춘 스윙을 했다.
따-악!
공이 배트에 맞는 순간 조이 히메네즈의 동공이 세차게 흔들렸다.
이번만큼은 완벽히 이길 수 있다는 그의 계획이 송두리째 무너져버렸던 것이었다.
도진은 곧장 배트를 내동댕이치며 발걸음에 속도를 붙였다.
‘담장은 넘기지 못한다.’
1루를 돌아 2루에 슬라이딩으로 들어간 도진은 양 주먹을 불끈 쥐었다.
말아쥔 오른손으로는 가슴을 톡톡 치며 더그아웃을 향해 내밀었다.
에인절스 선수들의 환호가 나왔다.
그리고 4회에 들어서 드디어 도진의 손에서 에인절스의 첫 안타가 나왔고.
이 소중한 기회를 그냥 날려버릴 수는 없었다.
2번 타자 윌리엄이 고개를 끄덕이며 타석에 들어섰다.
도진은 저 의미를 아주 잘 알고 있었다.
‘좋아. 해보자고요. 윌리엄.’
조이 히메네즈가 고개를 갸웃거리며 불편한 기색을 내비쳤다.
예상치 못한 일격에 2루타를 허용했다.
무조건 잡을 수 있다고.
오늘 상대에게 격차를 선사해주며 완벽하게 눌러버리겠다는 그의 계획이 꼬여버렸으니 그럴 수밖에.
그저 목을 좌우로 푸는 행동일 수도 있겠지만, 도진은 저것이 불편함의 표출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감정을 드러내서는 안 되지.’
물어뜯고 싶어지잖아?
조이 히메네즈가 세트 포지션에 돌입하는 순간.
도진은 3루로 내달렸다.
그 때문에 3루수는 도루저지를 위해 베이스 커버를 들어가는 움직임을 보였다.
그리고 윌리엄은 타격 자세에서 곧바로 번트로 전환했다.
토옥!
기습 번트.
타구는 훤히 비어 있는 3루수와 투수 사이로 데굴데굴 굴러갔다.
3루수는 예상치 못한 작전에 순간 패닉에 빠졌다는 듯 어영부영 행동했다.
뒤늦게 쏜살같이 타구를 향해 달려 나갔고.
맨손으로 공을 집고 1루를 향해 송구했다.
퍼억!
아웃!
하지만 레인저스의 내야는 3루수의 환상적인 수비에도 샴페인을 터트리기에는 일렀다.
그도 그럴 것이 3루를 훔치려던 도진은 이에 만족하지 않고 3루수가 1루 송구를 이어나갈 때 쯤 홈으로 내달렸기 때문이다.
1루 수는 곧장 글러브에서 공을 빼 포수에게 던졌지만.
“세이프! 세이프!”
1:0.
조이 히메네즈에게 실점을 안겨준 이 득점은 결승 득점이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