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baseball genius who chews up America RAW novel - Chapter (232)
미국 씹어먹는 야구 천재-232화(232/400)
경기에 앞서 가벼운 훈련이 진행됐다.
도진은 라이브 배팅을 앞두고 몸을 풀고 있던 그때.
마르셀로가 도진을 찾았다.
“너구나?”
도진은 갸웃한 고개를 되돌리며 싱긋 웃어 보였다.
“무슨 뜻이에요?”
“요즘 에인절스가 잘 나가는 이유가 너잖아?”
“그건 아닙니다. 모두가 하나가 되어 성적을 낼 수 있는 거라고 보거든요.”
마르셀로는 모호한 표정을 지었다.
“역시. 아시아인이라 그런지 겸손을 떠는군.”
“사실입니다. 모두가 서로를 도우며 원팀에 가까워지고 있으니까요.”
“원팀? 풉! 에인절스가?”
도진은 눈을 질끈 감았다가 이내 다시 미소를 지었다.
적어도 그의 심기를 불편하게 해서는 안 된다.
혹시 모르잖아?
그가 생각을 바꾸면 팀에 큰 도움이 되는 것만큼은 확실했으니까.
“맞는 말이네요. 원팀. 아직 멀었죠.”
도진이 굽히자 마르셀로는 만족스럽다는 미소를 띠며 말했다.
“내가 전에 몸담았던 워싱턴 내셔널스는 확실히 원팀이었어. 에인절스는…… 아직 멀었지.”
“도대체 뭐가 문제일까요?”
“글쎄. 이유가 중요한가? 안 되는 팀에 이유가 고작 한 개일리가 없잖아.”
“맞는 말 같네요. 그래도 고쳐나갈 수 있다는 희망이 있잖아요.”
“아니. 에인절스는 결국 다시 무너질 거다. 지금까지 쭉 그래왔어. 황금기라고 불렸던 해도 포스트 시즌도 진출하지 못했으니까. 15년 동안 포스트 시즌도 겨우 한 번밖에 진출하지 못한 쓰레기지.”
도진은 어금니를 까득 깨물었다.
‘대놓고 구단을 향해 쓰레기라니.’
그에게서 소속감 따위는 느낄 수 없었다.
하지만 틀린 말은 아니다.
지금은 엄연히 황금기라고 불렸던 에인절스 때보다 전력이 약하다.
도진은 강제로 분노를 추스르고 눈에서 초롱초롱한 빛을 내뿜었다.
“마르셀로. 저는 당신을 잘 모르지만, 정말 좋은 선수라는 평가가 자자해요. 앞으로 팀을 위해 경험과 힘을 보태준다면, 에인절스도 바뀌지 않을까요?”
아부를 떠는 건 도진의 성미에 맞지 않는다.
만약 에인절스가 꼴찌였다면 이렇게까지 마르셀로에게 맞춰주지 않았을 것이다.
미국의 문화처럼 정면에서 반박했을 것이다.
하지만 지금 에인절스는 순위를 유지해야 하는 것은 물론.
더 높은 곳을 바라볼 수 있는 여건이 갖춰져 있다.
‘물 흐리는 선수의 기분을 맞춰주는 걸로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면 그러는 게 나아.’
하지만 마르셀로는 도진의 질문을 무시하더니 라이브 배팅을 위해 케이지로 들어갔다.
그러고는 휘두르는 둥 마는 둥.
허접한 스윙으로 대충 연습을 끝내고 나오더니 도진을 지나치면서 어깨에 손을 얹었다.
“열심히 해 봤자 어차피 결과는 똑같다. 너무 애쓰지 마라.”
도진은 불끈 쥔 주먹에서 힘을 풀었다.
‘정말 답도 없구나.’
* * *
마르셀로 무냐.
그는 재작년 내셔널스와 대형 계약을 체결했다.
대형 계약을 체결했을 당시 마르셀로는 매우 좋은 폼을 보여줬다.
‘내가 내셔널스를 이끌겠다.’
그리고 그땐 그의 내면에 굳은 포부가 존재하고 있었다.
하지만 뜻대로 되지 않았다.
야구는 고액 연봉자들이나 특급 선수들이 많다고 무조건 성적을 낼 수 있는 건 아니었으니 말이다.
그때 내셔널스는 자신을 제외하더라도 많은 특급 선수들과 대거 계약하며 완벽한 도약을 꿈꿨지만, 결과는 좋지 못했다.
사공이 많으면 배가 산으로 간다. 그때의 내셔널스가 딱 그랬다.
그리고 성적이 떨어지자 슬슬 열심히 하지 않는 선수들이 눈에 들어왔다.
당연히 마르셀로는 이에 분개하며 단장까지 직접 만나서 그를 설득했다.
“이대로 가면 내셔널스는 암흑기를 맞이할 겁니다.”
고액 연봉자가 다수인데 성적을 내지 못한다?
구단이 입는 손해는 이루 말할 수 없었다.
마르셀로는 워싱턴에서 태어나고 자랐다.
어렸을 적부터 아버지의 손을 잡고 내셔널스를 응원하러 다녔다.
거기에 2019년에는 우승까지 해버린 좋은 기억 덕분에 야구 선수로서 내셔널스에 뼈를 묻겠다고 각오했다.
하지만 실패한 팀에서는 결국 구조조정이 있기 마련.
불필요한 선수를 처분하고 유망주를 수급한다.
흔히 말하는 탱킹에 돌입해야 했다.
그래도 마르셀로는 상관없다고 생각했다.
자신이 처분당할 리는 없다고 생각했으니까.
오히려 탱킹을 기회로 생각했다.
‘내가 젊은 선수들과 함께 내셔널스를 이끈다.’
하지만 작년 여름.
내셔널스 단장에게서 청천벽력 같은 소식을 들었다.
“마르셀로. 그간 구단의 노고에 감사를 표한다. 하지만 자네도 알다시피 지금 구단의 사정이 좋지 않아. 에인절스로 가줄 수 있겠나?”
마르셀로는 트레이드 거부권이 있었다.
그렇기에 단장의 제안을 거절할 수 있었지만, 그는 팀 사정을 아주 잘 알고 있었다.
‘내가 나가면 내셔널스는 괜찮은 유망주 2, 3명은 보유할 수 있게 될 거다.’
나가는 건 상관없다.
내셔널스를 위한 일이라면 목숨까지 바칠 각오가 되어 있었다.
대신 문제는 다른 고액 연봉자들이었다.
“내셔널스의 미래를 정확히 듣고 판단하고 싶습니다.”
“고액 연봉자들을 전부 내보내고 유망주들로 팀을 꾸릴 생각이라네.”
탱킹이다. 그렇기에 마르셀로는 흔쾌히 에인절스로 떠나게 되었다.
그런데 트레이드 데드라인이 끝난 8월 1일.
내셔널스의 고액 연봉자 중 자신만 처분이 됐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마르셀로는 곧장 내셔널스 단장에게 전화해서 따졌다.
“지금 장난하시는 겁니까? 저를 처분하려고 굳이 거짓말까지 하셨어야 하는 겁니까?”
-마르셀로. 미안하네. 자네에게 거짓을 고한 건 절대 아닐세. 알잖아? 지금 내셔널스가 보유한 고액연봉자들은 나이도 많고 성적도 좋지 못했어.
유망주를 내주면서까지 데리고 갈 팀이 없었던 것이었다.
오로지 구단들은 성적이 좋았던 자신만을 원했기에 유일하게 트레이드할 수 있었던 매물이었다.
통화가 끝난 직후 마르셀로는 패닉에 빠졌다.
‘열심히 한 결과가 고작 이거냐?’
구단을 위해 희생한 결과가 이렇다고?
‘버려졌다.’
정말로 버려진 것이다.
그렇게밖에 생각할 수 없었다.
팀을 위해 열심히 했더니 등에 칼이 꽂혔다.
팀원들이, 구단이. 메이저리그가.
‘야구가 나를 배신했다.’
마르셀로는 회의감에 휩싸였다.
오히려 지금까지 팀을 위해 헌신했는데 이것이 발목을 비틀었다.
마르셀로도 처음부터 태업을 할 생각은 없었다.
오히려 내셔널스에 자신을 내보낸 대가를 톡톡히 치르겠다고 트레이드 직후 이 악물고 경기에 나섰다.
하지만 마르셀로는 경기 도중 타구에 맞아 오른쪽 엄지가 골절됐다.
악재에 악재가 겹치자 마르셀로는 모든 분노를 에인절스에 돌렸다.
매번 꼴찌를 밥 먹듯이 하는. 소속된 것에 부끄러움을 느끼는 그런 구단이었다.
‘어차피 돈은 벌 만큼 벌었다. 이 병신 같은 구단. 천천히 무너뜨려 주마.’
* * *
에인절스의 상대는 휴스턴 애스트로스.
아메리칸 서부 리그 3위이자 에인절스의 뒤를 바짝 쫓았다.
그렇기에 이들과의 맞대결도 텍사스 레인저스와의 맞대결만큼이나 중요했다.
1. 도진 킴 3B.
2. 윌리엄 바스테스. CF.
3. 켄 매논. SS.
4. 아돌니스 로드리게스. C.
5. 마르셀로 무냐. DH.
6. 에이든 브라운. 2B.
7. 카메론 킹. RF.
8. 자렌 테일러. 1B.
9. 미카 라이트. LF.
조 캐넌 감독은 라인업을 슥 훑어보고는 아랫입술을 꽉 깨물었다.
‘마르셀로의 타격 능력은 외면할 수 없어.’
조 캐넌도 마르셀로가 라커룸 분위기를 흐리는 에티튜드가 마음에 들지는 않았다.
더군다나 연습 때도 최선을 다하지 않고 있다.
물론 몇몇 선수들은 자신의 페이스를 유지하고자 연습에서는 최선을 다하지 않을 때도 있다.
고작 해봐야 연습이었으니까.
실전에서 결과를 내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했다.
‘그래도 타격감이 좋지 못할 때는 달라진 모습을 보여줘야 하는데.’
부상에서 복귀 후 마이너리그에서도 보여준 것 역시 정말 보잘것없은 기록이었다.
하지만 거기까지도 이해할 수 있다.
메이저리거는 마이너리그에서 오로지 컨디션만 점검하기 때문이다.
‘솔직히 지금은 벤치에 앉혀놓거나 하위 타선으로 내보내 경기 분위기부터 파악하게 하고 싶은데.’
이 또한 쉽지 않다.
적어도 그가 에인절스의 분위기를 해치지 않게 하려면 팀에 녹아들게 하는 수밖에 없다.
괜히 벤치에 앉히거나 후보로 내보냈다가 그가 노발대발할 시 에인절스는 걷잡을 수 없게 된다.
‘젠장!’
조 캐넌은 속으로 분노를 삼켰다.
선수 한 명에게 휘둘리는 구단이라니.
메이저리그 내에서 아무리 스타 선수들의 힘이 강하다지만 있어서는 안 될 일이다.
허나 지금은 달리 방법이 없었다.
상승세를 타는 에인절스가 만약 여기서 무너진다면?
‘그때는 되돌릴 수 없게 된다.’
올라가기는 어렵지만, 추락은 빠르다.
지금까지 메이저리그 역사에서 나온 데이터였다.
조 캐넌 감독은 도진을 힐끗 쳐다봤다.
‘부탁한다.’
도진은 팀을 바꾸는 선수다.
만약 그가 로스터에 없었다면?
에인절스의 성적은 지금 바닥이었을 수도 있다.
루키를 믿어야만 하는 에인절스의 사정은 딱해도 너무 딱하다.
하지만 이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건 역시 도진뿐이었다.
그가 선봉장으로 나서서 팀의 분위기를 올려줄 수 있다면 마르셀로가 생각을 바꿀 수도 있을 테니까.
때마침 시합이 시작되며 도진은 타석에 들어섰다.
그 역시도 마음이 편치 않았지만 이내 각오를 삼켰다.
‘마르셀로 무냐가 5번이라.’
감독님의 뜻은 쉽게 깨달았다.
그는 경기를 통해 마르셀로가 바뀌기를 원했다.
‘나 역시도 같은 생각이야.’
마르셀로의 사정은 알지 못한다.
하지만 그는 한때 최고에 가까웠던 선수였다.
계약 금액도 어마어마했고, 에인절스의 특급 유망주 셋까지 내주면서까지 데려오지 않았던가?
‘다시 야구를 좋아하게 만들면 돼.’
타격 자세를 잡은 도진은 풀 카운트 접전 끝에 볼넷으로 1루로 걸어 나갔다.
그러고는 윌리엄과 눈빛을 교환했다.
상대 투수를 흔들려는 블러핑. 작전은 먹혀들었다.
투수는 작전을 경계하며 주자를 신경 썼다.
그로 인해 윌리엄은 비교적 쉽게 볼넷으로 출루할 수 있었다.
무사 1, 2루. 타석엔 3번 타자 켄.
여기서 진짜 작전이 나왔다.
주자들은 전부 뛰었고. 켄은 땅볼 타구로 주자들을 진루시켰다.
1사 2, 3루.
타석엔 아돌니스 로드리게스.
3-1 카운트에서 아돌니스는 떨어지는 체인지업에 배트를 휘두르지 않았다.
“베이스 온 볼스!”
1사 만루.
타석엔 마르셀로 무냐.
밥상은 전부 차려졌다.
평범한 희생플라이 하나라도 타점을 올릴 수 있는 절호의 기회.
타석에 들어선 마르셀로가 씨익 웃자 도진은 섬뜩함을 느꼈다.
‘젠장. 미운털이 박혀서 그런가? 좋게 봐줄 수가 없네.’
도진은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아직 결과가 나오지도 않았는데 같은 팀 선수를 헐뜯어서는 안 된다.
초구.
부웅. 호쾌한 스윙이 나왔다.
예상했던 것과는 완전히 다른 스윙이었다.
클래스는 영원하다. 라는 말이 있지 않던가?
비록 헛스윙했지만, 맞았다면 담장을 넘겨버렸을 만큼의 힘이 느껴졌다.
‘내가 잘못 생각했나?’
도진은 즉각 반성했다.
그리고 눈동자에 희망을 담았다.
저런 힘 있는 스윙은 에인절스에 필요한 것이었다.
하지만 2구.
거짓말처럼 떨어지는 공에 맥없는 스윙이 나왔다.
딱!
둔탁한 소리는 유격수 정면으로 향했고.
“아웃!”
“아웃!”
병살타가 나오며 선취점의 기회가 날아갔다.
도진은 끝까지 이해하려고 들었다.
‘패스트볼에 맞춰서 스윙했다가 변화구가 날아와서 밸런스가 깨졌나?’
그랬다면 충분히 이런 결과가 나올법했으니까.
‘고의성은 없어 보였는데?’
그렇게 수비를 위해 더그아웃으로 들어가려는 순간.
마르셀로를 지나친 도진은 등 뒤에서 들려오는 목소리에 미간을 찌푸렸다.
“아. 아쉽네. 아쉬워. 이게 병살타가 나왔네.”
전혀 아쉽지 않은 목소리에는 오히려 비꼬는 듯한 음색이 묻어 있었다.
입이라고 다물고 있었다면 또 모를까.
이 또한 주자로 나갔던 선수들과 더그아웃에서 응원하던 선수들의 사기를 팍팍 깎아내렸다.
문제는 이게 고작 시작에 불과했을 뿐이라는 점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