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baseball genius who chews up America RAW novel - Chapter (237)
미국 씹어먹는 야구 천재-237화(237/400)
둘의 대화를 가만히 듣던 마르셀로는 화가 머리끝까지 치솟았다.
자신을 욕하는 건지 아니면 내셔널스를 욕하는 건지.
정확히 알 수는 없었지만, 딱히 상관은 없었다.
둘 다 싫었으니까.
더군다나 도발하는 대상이 아직 한 시즌도 제대로 치르지 않은 루키였다.
빠드득.
어금니가 갈렸다.
‘감히…….’
마르셀로는 내셔널스에서 이룬 자신의 커리어를 무시하는 듯한 도진의 발언에 결국 눈이 회까닥 뒤집혀 도진에게 달려들었다.
“이 개새끼가!”
도진은 거구의 마르셀로가 자신에게 달려들었음에도 여유가 넘쳤다.
부웅.
크게 휘두른 주먹은 전혀 위협적이지 않았다.
얼굴을 향해 휘두를 것이 뻔히 보이는데 맞아줄 이유는 없었다.
도진은 마치 복싱 선수처럼 더킹으로 주먹을 회피했다.
‘와. 맞았으면 골로 갔다.’
연이어 날아오는 펀치.
하지만 마르셀로는 격투기 선수가 아니다.
이성을 잃고 휘두르는 주먹을 뒷걸음질로 가볍게 회피했다.
‘이쯤 하면 됐겠지.’
이제는 정당방위다.
도진은 다시 한번 마르셀로의 주먹이 얼굴로 향하자 고개를 좌측으로 까딱여 피한 후 마르셀로의 왼쪽 복부에 꽂아 넣었다.
퍼억.
“끄르륵.”
마르셀로의 입에서 침이 튀어나오더니 바닥에 끈적하게 붙었다.
동시에 하체 힘이 풀렸는지 두 무릎이 바닥에 쿵 하고 닿았다.
도진은 쥐고 있던 양 주먹을 풀고 주위를 살폈다.
싸움을 뜯어말리겠다고 냅다 달려오던 선수들은 일제히 멈춰서더니 결과에 심히 놀란 표정이었다.
도진은 소매로 이마를 닦아내며 나지막이 읊조렸네.
“위험했네. 맞았다면 야구 인생 끝날 뻔했어.”
정당방위라고 선수들에게 다시 상기시켜 주었다.
그리고 이 소동은 시합을 앞두고 있었으므로 그대로 일단락이 났다.
도진과 마르셀로는 다툼으로 인해 남은 내셔널스 경기에 참여하지 못했지만.
에인절스 선수들은 어느 때보다 좋은 컨디션으로 남은 두 경기도 따내 스윕했다.
* * *
내셔널스와의 경기가 끝난 직후 LA로 돌아온 도진을 단장이 불렀다.
도진은 사무실 앞 의자에 앉아 있었고 마르셀로도 조금 떨어진 우측 편에 혼이 나간 채로 단장의 부름을 기다렸다.
‘상황이 이렇게까지 커질 줄은 몰랐는데.’
단장의 부름은 일전 고등학생 시절 교장실에 불려 가는 느낌이 들었다.
성인이 되었기에 사고를 쳤다는 게 조금 부끄럽기도 했다.
“킴. 마르셀로. 안으로 들어오시죠.”
사무실 문을 열고 나온 코비가 손짓했다.
도진은 가볍게 한숨을 내뱉고 안으로 들어갔고 마르셀로가 터덜터덜 그 뒤를 따랐다.
막상 여유로웠던 도진도 예상보다 많은 인원이 모여 있자 마른침을 꼴깍 삼켰다.
‘왜, 왜 이렇게 많이 모였지?’
그리고 그들은 구단의 수뇌부들이었고 표정도 다소 어두웠다.
도진은 의자까지의 거리가 마치 가시밭길을 걷는 듯했다.
최고의 결과라고 생각했는데 수뇌부들의 표정이 좋지 못해서 그랬다.
물론 그들의 어두운 표정은 온전히 마르셀로를 향하는 것이었므로 도진은 그저 제 발이 저렸을 뿐이었다.
도진과 마르셀로가 착석을 끝내자 단장 페리는 한숨을 짙게 내쉬었다.
“다 큰 성인들이 주먹으로 싸우다니. 정말 부끄럽기 짝이 없군요. 그나마 외부로 퍼지지 않는 것을 다행이라고 여겨야겠죠. 일단 사건의 경위부터 얘기해보도록 하죠. 도대체 왜 이런 일이 벌어진 거죠?”
마르셀로는 한숨을 내쉬었다.
“저 친구가 제 자존심을 건드렸습니다.”
마르셀로에게 고정됐던 페리의 시선이 도진에게 향했다.
도진도 인정한다며 고개를 끄덕였다.
“네. 그랬습니다.”
“왜죠?”
“팀 분위기를 망치는 주범이 꼴 보기 싫어서요.”
도진의 솔직함에 수뇌부들은 두 눈을 끔뻑였다.
“그래서 킴이 먼저 주먹을 휘두른 겁니까?”
도진은 마르셀로에게 대답하라며 침묵했다.
마르셀로도 그저 침묵으로 일관했다.
“그건 아닌가 보군요.”
“네. 그건 아닙니다. 어디까지나 정당방위였으니까요.”
마르셀로는 상기된 목소리로 대화에 끼어들었다.
“정당방위라고? 상대를 깎아내려 열받게 해놓고?”
도진은 눈 하나 깜빡하지 않았다.
오히려 구단의 수뇌부들에게 자신이 내뱉은 말을 그대로 전달했다.
내셔널스 출신인 누구 때문에 뺏긴 2위를 되찾아오자고 한 것까지 전부.
“제 말에 거짓 따위는 없습니다.”
“이 빌어먹을 루키 새끼가…….”
도진은 마르셀로가 분개하자 턱을 꼿꼿이 세웠다.
“그럼 루키보다 잘하던가요.”
마르셀로의 눈동자에 분노가 맺혔다.
“이번 시즌 좀 잘나간다고 착각하는 모양인데 내가 마음만 먹는다면 너 따위는 언제든지 재낄 수 있어.”
도진은 단장에게 시선을 돌리고는 어깨를 으쓱했다.
이로써 자신이 해야 할 역할은 끝났다고 확신했다.
‘나는 그저 일개 선수일 뿐이야.’
마르셀로는 제 무덤을 팠다. 이제는 온전히 구단의 몫이었다.
페리는 한숨을 푹 내쉬었다.
“마르셀로. 그 발언은 지금까지 태업을 해왔다는 말과 크게 다르지 않다고 들리네요?”
마르셀로의 동공이 파르르 떨렸다.
“그, 그건 아닙니다.”
“이왕 이렇게 됐으니 허심탄회 얘기해보죠. 원하는 게 뭡니까? 당신도 알다시피 저희는 야구에 일가견이 있는 사람입니다. 진짜로 컨디션이 좋지 못한지 아닌지를 구분하지 못할 만큼 바보는 아닙니다.”
마르셀로는 궁지에 몰렸다는 것을 깨닫고 고개를 떨궜다.
“……잘 모르겠습니다.”
“잘 모르겠다뇨? 프로 선수가 그렇게 무책임한 발언을 해도 되는 겁니까?”
페리의 언성이 높아지자 회의에 참여했던 코비는 도진에게 사무실 밖으로 나오라며 손짓했다.
도진도 이제는 마음 편히 구단에 책임을 떠넘기며 사무실을 벗어나며 코비와 함께 근처 다이닝으로 이동했다.
“킴. 식사는 하셨나요?”
“하긴 했는데 배가 고프긴 하네요.”
“여기 음식 괜찮으니 드시고 싶은 거 있으면 드세요.”
“감사합니다.”
도진은 연어 샐러드 하나를 시켰다.
코비는 햄버거 하나를 주문하더니 본론에 돌입했다.
“일단 고생 많았습니다.”
“아닙니다.”
“무서웠을 텐데 말이죠. 싸움 좀 하시나 봐요?”
도진은 에휴! 한숨을 내쉬었다.
“싸움을 잘하긴요. 일을 너무 크게 벌인 것 같아 부끄럽네요.”
“에이. 솔직해지셔도 됩니다. 주먹다짐도 감수하고 행동한 거 아닌가요?”
도진은 고개를 끄덕이며 굳이 숨기지 않았다.
“네. 이렇게 해야지만 문제가 해결되리라 믿었습니다.”
“구단으로서는 다행이라고 생각합니다. 어쨌거나 마르셀로 일로 골머리를 앓고 있었거든요. 그런데 이제는 빼도 박도 못하게 됐죠.”
도진은 착잡한 표정을 지었다.
“마르셀로는 어떻게 되는 겁니까?”
“걱정되시나요?”
“조금은요.”
“어떤 부분에서요?”
도진은 물을 들이켰다.
“그냥 왠지 한 사람의 인생을 망치지는 않았을까 하는 걱정도 있긴 합니다.”
“후회하시나요?”
“그건 아닙니다. 저도 인간인지라 개인이 먼저라서 그런지 속이 후련하긴 한데. 그저 제 입지가 저렇게 행동할 입지가 아니라서 그런 것 같기도 하네요. 잘 모르겠어요. 이랬다가 저랬다가 제가 지금 무슨 말을 하는지도 모르겠어요.”
코비는 피식 웃었다.
“일단 그의 처우에 대해서 알려드리려고 합니다. 마르셀로는 성적 때문에 당장 트레이드하기는 어렵습니다.”
도진은 이해한다며 고개를 끄덕였다.
“마르셀로는 적어도 야구 실력만 보면 좋은 선수입니다.”
“저도 알고는 있습니다. 그에게서 가끔 보인 번뜩이는 스윙은 배우고 싶어질 정도였으니까요.”
“후후. 그런 선수가 에인절스에서 성적을 내면 좋겠지만, 이미 건너서는 안 되는 강을 건너버렸죠. 하지만 그는 곧 트레이드될 겁니다.”
도진은 의문을 가득 품고 고개를 갸웃했다.
“이건 극비긴 한데요. 몇몇 구단과 트레이드를 얘기하고 있긴 합니다.”
“다른 구단들이 받아준답니까?”
코비는 햄버거를 한입 베어 물었다.
“희박하지만, 가능성은 있습니다. 대신 마르셀로의 폼이 올라오는 게 먼저겠지만요.”
“폼이 올라오지 않는다면 트레이드가 없을 수도 있겠네요?”
“구단은 자선사업가가 아닙니다. 마르셀로를 원하는 구단들은 어디까지나 그가 최상의 폼이길 원하죠.”
도진은 두통이 일었다.
“제가 듣기로는 마르셀로는 트레이드 전, 굉장히 뛰어난 성적을 냈다고 들었습니다.”
“맞아요. 그해에는 실버슬러거에 근접했었죠.”
실버슬러거라니.
포지션별로 타격에서 제일 훌륭한 타격 성적을 낸 선수에게 주어진 상이다.
“그때로 돌아갈 수 있을까요? 저는 불가능해 보입니다.”
“왜죠?”
코비의 되물음에 도진은 어이없다며 눈을 끔뻑였다.
“그야…… 팀에 녹아들지 못할 테니까요. 이제 외톨이가 된 선수가 다시 그때의 폼을 되찾는 게 쉬울까요?”
폼을 어느 정도 되돌릴 수는 있다고 생각했다.
이제는 마르셀로도 팀을 나가고 싶어질 테니까.
하지만 막상 실버슬러거상을 받지 못했다고 한들 근접했다는 건 리그 최고 수준의 타격을 의미했다.
‘하긴. 몸값을 생각하면 그럴 수밖에 없구나.’
몸값이 비싸다는 것.
그만큼 리스크가 동반되는 것이다.
‘그러니 환경이고 뭐고 다 바뀐 지금. 원래의 폼을 되찾기는 어려울 거야.’
더군다나 그는 엄연히 자신에게 그리고 에인절스에 패배했다.
이제부터 느낄 좌절감으로는 절대 예전으로 돌아갈 길은 보이지 않았다.
야구는 멘탈 스포츠.
온전하지 않은 멘탈로 성적을 내는 것은 모순이 섞여 있었다.
“그래서 말인데요. 부탁을 하나만 드려도 됩니까?”
코비는 뒤통수를 벅벅 긁어대며 난감하다는 표정으로 뜸을 들였다.
“에인절스는 제게 최선을 다하고 있다는 걸 압니다. 저 역시도 구단을 위해서 할 수 있는 게 있다면 하고 싶습니다. 물론 가능한 선에서지만요.”
“……혹시 식사 끝났으면 나가시겠어요?”
도진은 흔쾌히 자리에서 일어나 다이닝 밖으로 이동했다.
코비는 계산 후 도진의 옆에 서서 담배부터 꺼내 물었다.
‘도대체 무슨 부탁이길래 이렇게 뜸을 들이는 거지?’
주머니를 뒤적이던 코비는 결국 라이터를 찾지 못해 담배를 입에서 빼내더니 천천히 입을 열었다.
“……마르셀로가 다시 원래의 폼을 되찾을 수 있도록 당분간만이라도 그를 용서해 주시면 안 됩니까?”
도진의 동공이 서서히 팽창하려고 하자 코비는 서둘러 말을 덧붙였다.
“그와 친하게 지내라는 건 아닙니다. 솔직히 말씀드리자면 구단도 하루라도 빨리 마르셀로가 폼을 되찾아서 트레이드 매물이 되었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그가 폼이 올라온다 한들 팀원에게 주먹까지 휘둘렀던 선수를 용서할 수 없겠죠. 하지만 이것 말고는 달리 방법이 없어서 그래요.”
코비는 계속해서 도진의 눈치를 살폈다.
루키에게 이런 제안을 해야 한다는 것 자체가 마음에 들 리가 없었다.
하지만 오늘 도진과 마르셀로가 사무실에 방문하기 전 회의에서는 이것을 제외하면 달리 방법이 없다는 결론이 났다.
물론 과한 요구다.
지금의 상황을 놓고 보자면 구단에서 해야 할 대처를 도진이 대신 해낸 상황이다.
그것도 모자라 도진에게 마르셀로를 용서해달라는 부탁까지 하는 상황이었다.
제아무리 성인군자라도 화를 낼 수도 있는 요구.
‘하아. 어떻게 설득하지?’
코비가 어떻게든 도진을 설득해보기 위해 머리를 굴리려는 찰나 도진은 미소를 지어 보였다.
“문제없습니다.”
“네?”
“그를 돕겠습니다. 제가 도움이 될지는 모르지만요. 용서라. 마르셀로가 야구만 제대로 한다면 그를 미워할 이유는 없습니다.”
코비의 눈동자에 의문이 가득 찼다.
“어째서죠?”
“바보 같은 생각일 수도 있겠지만, 마르셀로가 본 모습을 보이면 에인절스는 얻어갈 것이 많죠. 그리고 저 역시도 에인절스 소속이잖아요? 나쁘게 말하면 이제 선수를 이용해 먹는다고 보는 것도 괜찮겠네요.”
도진은 이대로 만족하지 않고 말을 덧붙였다.
“사무실에서는 익숙지 않은 분위기 때문에 가만히 있었지만, 이제 마르셀로의 미래를 알게 됐으니 제 생각을 얘기해도 될까요?”
코비는 흔쾌히 고개를 끄덕였다.
도진은 말을 덧붙였다.
“마르셀로가 실버슬러거에 근접한 성적을 내는 선수로 돌아간다면 그를 트레이드 할 이유가 있나요?”
“그, 그게 무슨 말이죠?”
도진은 도무지 이해할 수 없다는 말투로 말했다.
“그렇잖아요. 그런 선수를 다시 내준다고요? 구단은 자선사업가가 아니라면서요. 그런데 왜 에인절스는 자선 사업을 하려고 하죠? 그와 비슷한 수준의 선수를 데려온다면 할 말은 없지만, 쉽지 않을 텐데요?”
이미 마르셀로의 에티튜드를 다른 구단이 모를 리가 없었다.
그렇기에 손해를 볼 수밖에 없는 트레이드였다.
도진은 이번에는 분노를 조금 담았다.
“손해만 보면 팀이 한층 더 나아질 수 있나요? 저는 없다고 봅니다. 그런데 제가 좀 겁쟁이라서요. 단장님께 대신 제 의견을 전해드릴 수 있나요?”
코비는 너무 놀란 나머지 턱이 벌어졌다.
예상보다 훨씬 어른스러운 도진의 대답 때문에 그랬다.
그렇기에 이내 있는 힘껏 미소를 지었다.
도진은 구단이 더 좋은 성적을 낼 수만 있다면 진심으로 마르셀로를 용서할 생각이었던 것이었다.
용서라. 말만 쉽지, 그렇게 행동하는 것은 절대 쉽지 않다.
지금까지 불화가 있던 선수들이 다시 재결합하지 못했던 이유가 무엇이겠는가?
둘 중 하나가 팀을 떠날 때까지 이어지는 냉전을 어떻게 설명하겠는가?
하지만 도진의 눈빛을 보아하니 그는 정말로 이번 일도 그저 헤프닝으로 넘길 생각으로 보였다.
‘팀 분위기를 위해서 트레이드 얘기를 꺼냈는데, 킴은 오히려 그 반대로 생각하는구나.’
실버슬러거급 선수가 팀에 존재한다는 것 자체가 팀에 도움이 된다고 보는 것이었다.
물론 둘의 관계 개선이 먼저였지만 도진에게 생각이 있는 듯 보였다.
그러니…….
‘우리 에인절스는 정말 말도 안 되는 선수를 뽑았구나.’
야구 내적으로도 그리고 외적으로도.
천금과도 바꿀 수 없는 선수를 영입한 에인절스가 바라볼 미래는 한없이 밝기만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