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baseball genius who chews up America RAW novel - Chapter (240)
미국 씹어먹는 야구 천재-240화(240/400)
1회 말.
카운트는 1-1.
마르셀로는 복잡한 심경을 추스르지 못했다.
‘난 지금 뭐하는 거지?’
도진은 에인절스의 신임을 받는 선수다.
‘나 역시도 그랬다.’
부끄럽지 않은 커리어를 쭉 유지해오지 않았던가?
하지만 지금은 어떤 부분에서도 저 어린 선수의 발끝에도 미치지 못했다.
민심.
실력.
그리고 인성까지.
‘난 패배자구나.’
X발. 그간 병신처럼 행동해왔던 나날들이 후회스럽기만 하다.
그래도 이것만큼은 확실하다.
과거의 행동이 후회스럽다고 한들 굽힐 생각은 없었다.
잘못은 잘못이다. 하지만 죽을죄를 지은 건 아니지 않던가.
‘그런데 도대체 왜…….’
마르셀로는 한숨을 내쉬었다.
투수를 바라보는 척하며 그 너머에 있는 도진에게 잠깐 시선이 머물렀다.
‘1루에 있어야 할 네가 왜 2루에 있는 거지?’
마르셀로는 알았다.
도진이 무리해서 2루를 훔쳤다는 것을.
아무리 그의 주루 센스가 환상적이라지만, 투수는 2구로 패스트볼을 던졌다.
심지어 1-0 상황으로, 2구째엔 패스트볼이 나올 것이라 걸 충분히 예측할 수 있었다.
그럼에도 도진은 위험을 무릅쓰고 도루를 행했다.
그리고 그 행동들이 전부 자신을 위한 것이란 것도 마르셀로는 잘 알았다.
‘왜 굳이 나를 위해서…….’
이뿐만이라면 또 모를까.
도진은 먼저 자신에게 사과도 건넸다.
물론 그 사과가 진심이라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에인절스의 팀 분위기를 살리기 위해 먼저 사과했다고 생각했으니까.
‘그러니 이래서 안 되는 거잖아. 네가 도대체 왜 2루에 있는 거냐니까?’
넌 날 완전히 무너뜨릴 수 있잖아.
라인업에 이름을 올리지 못하게 할 수 있잖아.
‘적어도 에인절스에서만큼은 네가 나보다 위잖아. 지금의 넌 그게 가능하잖아.’
자신은 민심 팬심 모두 잃었으니 말이다.
그러니 이해할 수 없는 행동투성이였다.
아무리 그린라이트여도 패스트볼에 뛰는 멍청이가 도대체 어딨겠는가?
애당초 그린라이트가 패스트볼 타이밍에 뛴다는 것 자체가 모순이다.
그럼에도 도진은 자신을 위해 억지로 2루를 훔쳤다.
왜일까. 혹시 개인 성적 때문일까?
퍼억!
“스트라이크!”
마르셀로는 머릿속을 괴롭히는 고민에 지금 공이 던져진 줄도 몰랐다.
그렇기에 잠깐 시간을 벌고자 타석에서 물러서서 다시 한번 도진을 힐끗 쳐다봤다.
그 즉시 번뜩임이 뇌리에 스쳤고.
마르셀로는 어금니를 꽉 물고 다시 타석에 들어갔다.
예전 제 모습이 비쳐 이번만큼은 도진의 행동이 이해됐다.
개인 성적을 위해서 뛴 건 절대 아니라고 야구 인생을 걸고 장담할 수 있다.
‘넌 나를 팀원이라고 생각하는 건가?’
정답이다. 젠장! 100% 확실하다.
자신도 그랬으니까. 내셔널스에 있을 때 말이다.
팀원 간의 불화가 있을 때마다 잘못하지 않았음에도 먼저 굽혔다.
팀을 위해서. 성적이 좋지 못한 내셔널스가 원팀이 되길 원해서.
그래야지만 더 높은 곳을 바라볼 수 있었으니까.
결과는 실패로 돌아갔지만, 눈곱만큼도 후회하지 않았다.
‘오히려 뿌듯했지.’
마르셀로는 그만 인정하기로 했다.
‘그래. 지금 네게 에인절스가 그렇구나. 내가 내셔널스를 사랑했던 것처럼.’
경력이 중요한가? 얼마나 오래 뛰었는지에 따라 팀에 대한 애정도가 다른 법인가?
‘그딴 건 X도 중요하지 않다.’
자신은 내셔널스 선수가 되기 전에도 그 누구보다 팀을 사랑했으니까.
복잡한 감정들이 물밀 듯이 밀려왔다.
‘내 야구 인생에서 앞으로 내셔널스로 돌아가는 일은 없을 것이다.’
아무리 옛 성적을 되찾고.
그걸 뛰어넘어 MVP가 되어도 말이다.
지금 내셔널스는 탱킹할 때며 선수를 처분하면 처분했지, 몸값 높은 자신을 다시 사들이는 일은 없을 것이다.
하지만 불평할 수 없다.
버림받은 게 아니잖아?
‘내 선택이었잖아?’
에인절스 단장 페리에게 트레이드 얘기를 들었다.
폼을 끌어 올리면 다른 팀으로 보내주겠다고.
하지만 그곳은 내셔널스가 아니다.
내셔널스가 아니라면 아무런 의미가 없다.
알고 있었다. 그렇기에 상실감에 젖어 프로의 기본 마음가짐마저 내다 버렸다.
‘그런데 왜.’
저 어린 선수는 그걸 다시 주워 내게 내밀고 있는 걸까.
완벽히 깨달아버린 마르셀로는 모든 것을 내려놓았다.
‘내 커리어는 오늘이 마지막이다.’
그 즉시 투수가 공을 던졌다.
마르셀로는 꽉 깨문 어금니에서 힘을 풀었다.
그러고는 부드러운, 하지만 후회가 잔뜩 묻어 있는 미소를 지어 보였다.
대신 그의 스윙은 감정이 실린 미소와는 반대로 후회 따윈 없었다.
따-악!
공을 쪼개버릴 듯한 타구음은 담장을 넘길 것이라고 일렀다.
마르셀로는 베이스를 돌았다.
20년 넘도록 야구를 해온 습관에서 나온 무의식에 행동이었다.
대신 그는 온통 머릿속에 맴도는 한 단어만을 되뇌고 있었다.
‘은퇴.’
속죄는 그것뿐이다.
돈이고 나발이고 모르겠다.
많을수록 좋다는 걸 알지만, 그보다 자존심이 더 중요하다.
지금까지 쌓아두었던 프라이드를. 몇 푼 더 벌자고 자존심을 땅에 완전히 파묻어버리고 싶지 않았다.
그러나 3루를 돌고 홈 베이스를 밟았을 때 마르셀로는 심장이 덜컥 내려 앉았다.
“와우. 나이스 홈런. 좋은데요?”
티 하나 없이 맑은 목소리가 고막을 관통했고 덩달아 심장을 아프게 찔러와서 그랬다.
마르셀로는 어떠한 대답도 내놓지 못했다.
그러자 도진의 목소리는 다시 들려왔다.
“팔 아픈데 안 쳐줄 거예요? 이번에도 무시하면 진짜 난리 나요.”
마르셀로는 도진의 올라간 어깨에 시선을 가져갔다.
펼친 손바닥이 햇빛을 가리고 있었다.
“하. 하하.”
완벽한 패배다.
정말 은퇴 말고는 없다고 생각하던 그때.
“팔 올려요.”
마르셀로는 영문 모를 표정으로 눈만 끔뻑였다.
“빨리요.”
마르셀로는 결국 팔을 들어 올렸다.
도진은 펼친 손바닥을 마르셀로의 손바닥과 맞췄다.
“가요. 우리 더그아웃으로.”
마르셀로는 멍하니 그 자리에서 도진의 뒷모습을 바라보았다.
‘내, 내가 자격이 있을까?’
모르겠다.
그런데 이것만큼은 확실하다.
새로운 가족이 자신을 향해 손을 내밀고 있다.
도진은 자신을 새로운 가족으로 인정하고 품으려는 것이었다.
좋든 싫든 가족이란 게 그렇잖아? 떼려야 뗄 수 없는 사이잖아?
피는 물보다 진하다는 말도 있듯이 에인절스 유니폼을 입고 있는 지금 당장은 자신도 에인절스다.
은퇴? 아직 인간이 되지 못했으니 번복 좀 해야겠다.
그 기회가 손만 뻗으면 닿을 거리에 있었으니 절대 놓치고 싶지 않았다.
‘나도……’
마르셀로는 어금니를 까득 물었다.
지금은 에인절스다.
아니. 염치없지만 앞으로도 에인절스이고 싶다.
이제는 새로운 가족과 함께 더 높은 곳을 바라볼 수 있었으면 좋겠다.
하지만 막상 더그아웃 입구에 도달한 마르셀로는 덜컥 겁이 났다.
‘착각하지 마라. 나에겐 자격이 없어.’
그런 마르셀로에게 혼자서 북 치고 장구 치지 말라는 목소리가 대기 타석에서 들려왔다.
아돌니스의 것이었다.
“알고는 있었지만, 꽤 치는군. 앞으로가 기대되는 타격이었다. 이어 나가도록 하지.”
그리고 그다음 타자인 호세도 양쪽 입꼬리를 한껏 상승시킨 채 더그아웃의 입구를 가로막고 있었다.
“뭐 해? 팔 떨어지는 거 보고만 있을 거야?”
호세의 팔이 저 높은 하늘까지 닿겠다는 듯 쭉 뻗어 있었지만, 염치라는 놈이 어깨를 올리지 못하게 짓눌렀다.
그러자 호세는 강제로 마르셀로의 등짝을 후려쳤다.
짝.
“행동 하나 굼뜨네. 에인절스 선수가 그래서 되겠어? 오늘만 봐준다. 하이 파이브는 이걸로 퉁 치자.”
그 후 마르셀로는 에인절스 전원과 일일이 하이 파이브를 나눴고.
마지막 쐐기를 박는 도진의 목소리가 뼛속 깊숙이 파고들어 왔다.
“Welcome to Angels. Marcelo.”
X발. 에인절스에 어서 오란다. 환영한단다.
마르셀로는 결국 소매로 시야를 가리고 고개를 떨궜다.
* * *
마르셀로는 첫 타석 홈런 이후로 바로 교체되었다.
감정이 격해져 시합에서 뛸 수 없었다.
그래도 그의 선제 투런 홈런으로 에인절스의 방망이는 불을 뿜어내며 11:2 완승을 거뒀고.
그 기세를 쭉 이어 나가게 되며 4연전에서 3승을 가져갔다.
4연전이 끝난 직후 도진은 캐서린과의 인터뷰를 앞두고 있었다.
도진도 앞서 마르셀로와의 다툼에서 그녀를 한번 이용했던지라.
특종에 목마른 캐서린과 단독 인터뷰를 진행했다.
‘음. 단독이라고 하기엔 뭐하지?’
언제나처럼 캐서린과는 편하게 카페 같은 곳에서 인터뷰를 나눴고.
그 때문에 호세가 감시한다며 도진을 따라갔다.
도진은 우측 편에 혼자 앉아 있는 호세를 힐끗 쳐다보자 그가 이빨을 드러내며 으르렁댔다.
“뭘 봐? 인터뷰나 해.”
“가, 같이 하시죠?”
“됐어. 꼽사리는 사양이다. 난 어디까지나 시즌 중 저 미모의 기자분과 연애질을 하는지 감시하러 온 거니까.”
가족 같은 사인데요?
라는 말을 꾹 참은 도진은 곧장 캐서린과의 인터뷰를 진행했다.
“일단 오늘 경기 승리 축하드려요! 요즘 연전연승으로 지구 1위 텍사스와도 고작 두 경기밖에 차이 안 나더라고요.”
“벌써 그렇게 좁혀졌네요?”
캐서린은 가볍게 미소를 지었다.
“저한테 물으시는 건가요?”
“아. 요즘 정신이 없었거든요.”
“정신이요? 하긴 안 그래도 그 내용에 관한 얘기를 나눠보려고 하는데 괜찮죠?”
“네. 괜찮긴 한데 정신이 없던 건 그 사건 때문만은 아니라서요.”
“그럼요?”
개입하지 않을 거라 했던 호세가 마치 혼잣말을 중얼거리듯이 큰 소리로 말했다.
“애송이는 올스타를 노리거든.”
캐서린의 눈이 희번덕였다.
“어? 킴? 올스타 노리는 거예요? 하긴. 성적을 보면 일단 불펜으로는 뽑힐 수도 있겠네요?”
이번에도 호세가 대신 대답했다.
“쯧. 투타 겸업이 투수로만 뽑히는 것도 쪽팔리지.”
도진은 어이가 없어서 턱이 벌어지기 시작했다.
아니. 애당초 올스타 자체에 뽑히는 걸 다행이라고 여겨야지.
이마저도 김칫국인데 투타 두 분야에서 모두 뽑히라고?
“저 루킨데요.”
“어쩌라고.”
캐서린이 대화에 개입했다.
“일단 말 나온 김에 제가 도움 좀 드릴게요.”
“무, 무슨 도움이요?”
“제가 누군지 잊으셨어요?”
“기자님이시죠.”
“제가 대신 홍보해드릴게요. 아마 호세 선수가 함께 여기까지 온 이유가 이것 때문인 것 같은데요?”
도진은 호세를 힐끗 쳐다봤다.
그는 마치 아무런 관심이 없다는 듯 태연하게 바나나주스를 먹고 있었다.
‘진짠가 보네.’
캐서린은 말을 덧붙였다.
“LA가 인구가 좀 많나요? 에인절스 팬 대다수가 킴을 찍는다면 충분히 뽑힐 수 있어요. 물론 제일 중요한 건 성적이에요. 이제 한 달 남았네요? 남은 경기에서 잘해야 해요.”
“아, 알겠습니다. 감사합니다.”
“그럼 이제 본론으로 들어가 볼까요? 마르셀로와의 관계가 개선된 것처럼 보였어요. 맞나요?”
도진은 피식 웃었다.
“네. 저흰 같은 에인절스니까요.”
캐서린은 놀랍다는 표정을 지었다.
“분명히 코흘리개 고등학생이었는데 어느덧 멋진 인터뷰도 할 수 있는 어른이 됐네요?”
호세는 비아냥댔다.
“맥주도 못 마시는 핏덩이가 어른은 무슨.”
도진과 캐서린은 동시에 쓴웃음을 지었다.
“결국 킴이 하고 싶은 말은 마르셀로의 합류로 에인절스의 전력이 강화됐다는 거네요?”
도진은 지체하지 않고 대답했다.
“네. 분명히 그럴 겁니다.”
“팬들이 반가워할 소식이네요! 이로써 궁금증은 풀렸지만 중요한 질문은 하나 더 있어요. 에인절스는 다음 경기 필리스를 만나잖아요? 후안 라미레즈와의 재회인데 소감 한마디 부탁드려요.”
“후안 라미레즈…… 후안 라미레즈. 누구였지?”
어디서 많이 들어봤는데.
도진은 미간을 찌푸렸다.
머리를 굴려보아도 해답에 도달하지 못하자 호세가 정답을 알려주었다.
“필리스 MVP 포수 등신아.”
“아!”
후안 라미레즈. 작년 메이저리그 데뷔 후 맞붙었던 MVP 포수.
도진은 알지 못했지만, 후안 라미레즈는 도진에게 내준 도루에 자존심이 잔뜩 긁혔다.
“이 반응도 꼭 기사에 올리시길.”
호세가 넌지시 던진 말에 도진은 손사래를 쳤다.
“너무하네. 잠깐 까먹을 수도 있지. 안 그래요, 캐서린 기자님?”
하지만 도진은 캐서린의 음흉한 표정에 등골이 오싹해졌다.
‘에이. 설마. 기자님. 아니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