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baseball genius who chews up America RAW novel - Chapter (245)
미국 씹어먹는 야구 천재-245화(245/400)
타석에 들어선 도진은 여유가 넘쳤다.
필리스의 컨트롤 타워의 생각이 훤히 읽혔으니 말이다.
스코어는 2:1.
여전히 불안한 점수 차.
그러니 이번 타석에서 승부의 마침표를 찍는다.
한편, 후안 라미레즈는 여유 넘치는 도진의 표정에 목구멍이 바짝 타들어 갔다.
‘젠장! 젠장!’
1, 2경기와는 다르게 도진의 생각이 전혀 읽히지 않는다.
‘어떤 공을 요구해야 하지?’
더군다나 이 루키는 선구안이 좋다.
그를 정확히 알지는 못하지만, 지금까지의 데이터를 놓고 보자면 타격 재능만큼은 진짜다.
‘현존 최고 타자 중 하나인 메츠의 에스리우스 로자리오와 비슷하다.’
에스리우스 로자리오는 메츠 소속으로 필리스와 같은 지구.
거기에 도미니카 공화국 대표팀 동료였다.
그는 2스트라이크에 몰렸음에도 본인의 스윙을 가져가는 규격 외의 선수였다.
‘공을 예측한다기보다는 보고 치는 괴물이지.’
후안 라미레즈는 도진에게서 에스리우스의 모습이 겹쳐 보였다.
무엇보다 에스리우스 로자리오는 언제나 필리스를 상대로 공포를 심어줬던 대상.
어떤 구종도 족족 쳐내버렸으니 그럴 수밖에.
‘이 승부. 쉽지 않다.’
후안 라미레즈는 미트를 낀 손바닥이 흥건히 젖기 시작했다.
질 수도 있다는 불안감을 고작 루키에게서 느끼고 있었으니 말이다.
후안 라미레즈는 도진에게서 시선을 뗀 후 1루 베이스를 힐끗 쳐다봤다.
그 즉시 울분이 머리끝까지 치밀었다.
‘지금 내가…… 고작 루키를 걸어내보낼 생각을 한 건가?’
승부에서 지기 싫어서?
후안 라미레즈는 강제로 분노를 꾹꾹 눌렀다.
‘그것만큼은 절대 안 된다.’
걸어 내보내면 MVP가 아닌 겁쟁이라는 평판이 평생 따라붙게 될 테니까.
하지만 쉽지 않다.
‘지금 이 루키의 기세로는 어떤 공도 쳐 낼 것 같다.’
후안 라미레즈는 이 승부에서 패배하면 잃을 것이 너무 많았다.
프라이드는 당연한 얘기고 지금 1위를 간신히 사수하는 필리스가 와르르 무너져 내릴 수도 있었다.
‘어쩌지…….’
꾸물대는 후안 라미레즈를 바라보는 투수 잭슨 카이로는 가슴이 먹먹했다.
‘후안! 뭐 하는 거예요! 정신 차려요!’
잭슨은 후안 라미레즈를 동경했다.
그는 MVP이며 선수들에게 귀감이 되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그의 조언 덕분에 이번 시즌 완전히 터질 수 있게 되었다.
그런데 고작 풀 타임도 치러본 적 없는 루키에게 겁을 먹고 있다.
잭슨의 턱에 힘이 잔뜩 들어갔다.
‘이래선 안 된다.’
저 루키에게 지면 잃을 것이 너무 많다.
지금 잘 나가는 자신도 포함이었다.
도진에게 벌써 2개의 홈런을 내주었다.
올 시즌 언터처블이라는 별명을 얻은 자신이 저 선수에게만큼은 한없이 작아지고 있었다.
‘이러다가 꾸준히 좋았던 내 페이스마저 꺾일 수 있다.’
불안감이 전신을 옥죄어 오자 잭슨은 절대로 벌어져서는 안 되는 일이라며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덕분에 마음은 한결 편안해졌다.
‘나는 원래 공만 빠르기로 소문난 투수였다.’
그래서 전 소속팀 애리조나 다이아몬드백스에서 방출당했다.
구속도 재능의 영역이지만, 제구도 마찬가지.
현대 야구에서는 제구를 잡는 방법도 다양했지만, 빠른 공을 유지하면서까지 제구를 잡기란 쉽지 않다.
올 시즌 필리스로 와서 부족했던 제구 부분을 후안 라미레즈와 함께 개선해 나가고 있었고, 결과도 좋았다.
‘내가 오로지 타자에만 집중할 수 있게 해줘서 부담감을 덜 수 있었어.’
그와 함께 부흥하는 일만 남았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여기서 만약 다시 한번 저 루키에게 안타 하나를 더 허용한다면?
후안 라미레즈는. 필리스는. 그리고 자신마저 걷잡을 수 없을 정도로 무너지는 그림이 그려졌다.
‘절대. 안 된다.’
잭슨의 눈동자에 분노가 가득 들어차더니 바깥쪽 공 1개 정도 빼는 패스트볼 사인에 곧장 와인드업에 들어갔다.
하지만 그의 투구는 후안 라미레즈가 미트를 대고 있는 바깥쪽 대신 반대 방향으로 제구가 되었다.
그리고 이 투구는 실투가 아니었다.
쉐에에엑!
98마일의 패스트볼이 도진의 옆구리를 향해 굉음을 내지르며 날아갔다.
피할 여유가 없었던 도진은 순간 눈을 번뜩 뜨며 몸을 완전히 돌렸다.
퍼억.
투구는 도진의 허리를 가차 없이 후려쳤고.
“윽.”
도진은 외마디 비명과 함께 그라운드에 털썩 쓰러졌다.
“이 개새끼들이!”
에인절스 더그아웃은 팀의 선봉장 도진이 타석에서 그대로 쓰러지자 분노를 참지 못했고.
감독과 코칭 스태프를 제외한 선수 전부가 그라운드 위로 뛰쳐나왔다.
* * *
도진이 쓰러지자 머리끝까지 화가 차오른 호세는 더그아웃을 뛰쳐나갔다.
“야! 이 양아치 새끼들아!”
그를 필두로 벨, 레이날도, 윌리엄, 아돌니스 등등.
전부 험악한 표정으로 호세의 뒤를 따랐다.
그 때문에 필리스 선수들도 우르르 더그아웃을 벗어났다.
이미 배터박스 근처에 다다른 호세를 필리스 선수 셋이 달려들어 막았다.
“놔! 놓으라고! X발! 야! 후안 라미레즈! 얘기 좀 하자고! 이게 뭐 하는 짓이야!”
아무리 힘이 센 호세라도 메이저리거 셋을 뚫지 못했다.
그렇기에 그를 대신해서 누군가가 나서줘야 하는데 메이저리그에서도 유명한 벨과 아돌니스 같은 걸출한 선수만이 적임자였다.
하지만 벨은 원래 얌전한 성격. 아돌니스도 마찬가지다.
스타 반열에 오른 미카와 카메론에게도 파이터 기질이 다분했지만, 도진과의 관계가 아직 개선됐다고 볼 수 없었기에 기대할 수 없는 상황.
윌리엄은 이제 메이저리그에서 자리를 잡기 시작했으므로 발언권 자체가 없었다.
씩씩대고는 있었지만, 무슨 말을 내뱉어야 할지. 감도 잡지 못하는 듯 보였다.
“젠장!”
호세가 울분을 터트린 가운데.
모두의 예상을 뒤엎고 에인절스 선수 중 호세보다 분개한 선수가 있었으니.
“후안 라미레즈!!! 이 개새끼야!!!”
갑작스레 마르셀로가 필리스 선수들 사이를 비집고 그의 앞에 섰다.
필리스 선수들도 마르셀로와 도진의 사이가 좋지 않다는 것을 알았다.
그렇기에 그를 막아서는 선수는 하나도 없었으므로 비교적 자유롭게 후안 라미레즈 앞에 서게 됐다.
“너! 뭐 하는 짓이야! 고작 루키에게 이딴 짓을 벌여? 그러고도 네가 MVP냐?”
마르셀로의 분노에 후안 라미레즈는 꿀 먹은 벙어리가 되었다.
자신이 사인을 낸 건 아니다. 엄연히 잭슨 카이로의 독단이었다.
하지만 반박할 수 없었다.
도진과의 승부에서 이기겠다는 생각이 머릿속을 잠식했기에 투수의 심리를 완전히 배제하고 있었으니까.
엄연히 포수로서 실격이며 잘못이었다.
마르셀로는 반쯤 혼이 나간 후안 라미레즈를 계속해서 추궁했다.
“너 이따위밖에 안 되는 놈이었어? 후안! 말을 좀 해보라고!”
마르셀로는 후안 라미레즈의 보호구를 멱살 대신 잡고 흔들었다.
그래도 둘은 친분이 있었기에 가능했던 행동.
내셔널스 소속 당시 같은 지구로서 그를 밥 먹듯이 만났고 그 역시도 도미니카 공화국 대표팀 동료였다.
마르셀로는 MVP를 따낸 후안을 남몰래 존경도 했다.
그러니 그 실망감은 배가 되어 돌아왔다.
무엇보다 공을 맞힌 대상이 하필 도진이다.
원수에게도 손을 내밀어준 저 착한 친구를 말이다.
“도발도 엔터테인먼트잖아! 왜 목숨 걸고 달려드는 거냐고!”
면전에 대고 울부짖는 마르셀로의 팔을 뒤늦게 필리스 선수 2명이 잡았다.
힘으로 후안 라미레즈에게서 떼어내려고 안간힘을 써 보았지만, 흥분을 가라앉히지 못한 마르셀로는 마치 태풍에도 끄떡없는 태산처럼 그 자리에서 우뚝 버텼다.
“놔! 놓으라고!”
마르셀로는 이미 눈동자가 뒤집혔음에도 정신만큼은 온전했다.
안다. 자신이 이렇게 분개할 포지션이 아니라는 것을.
아직 팀원들에게 용서도 받지 못했으므로 그저 쇼처럼 보일 수도 있겠지만, 상관없었다.
고통스럽게 쓰러진 대상이 도진이다. 유일하게 자신에게 손을 내밀어준 선수였다.
후안 라미레즈는 끝까지 꿀 먹은 벙어리, 하지만 필리스 선수 몇몇이 그를 옹호했다.
필리스 1선발이자 사이 영 수상자 매버릭이 그중 하나였다.
“실투잖아! 라미레즈는 바깥쪽으로 빠져 앉아 있는 거 봤잖아! 적당히 해! 이 개자식들아!”
그리고 도진을 맞춘 당사자 잭슨 카이로는 고작 이걸로 엄살 부린다며 하찮은 목소리로 한마디 거들었다.
“머리로 간 것도 아니고. 고작 실투 갖고 더럽게 뭐라 하네.”
“뭐라고 이 개자식들이? 진짜 해보자는 거냐?”
그 둘이 내뱉은 한마디씩이 에인절스의 화를 더 돋우며 걷잡을 수 없는 큰 싸움으로 퍼지려는 그때.
“저, 괜찮아요.”
인상을 잔뜩 찌푸린 도진은 자리를 툴툴 털고 일어났다.
“공짜 출루잖아요?”
자신을 걱정해주는 에인절스 선수들에게 애써 미소를 지어 보였다.
그리고 그 표정이 워낙 차분해서 선수들의 화도 순식간에 가라앉았다.
하지만 그 누구도 눈치채지 못했다.
미소 사이에 숨겨져 있던 도진의 분노를.
* * *
한바탕 소동이 가시자 조 캐넌 감독이 도진에게 물었다.
“괜찮나?”
저 말 한마디에는 두 가지의 뜻이 담겨 있었다.
정말 괜찮은지, 그리고 교체가 필요한지 묻는 것이었다.
도진은 눈동자에 각오를 담았다.
“네. 계속 뛸 수 있습니다.”
도진은 1루 베이스를 밟고 베이스러닝 장갑으로 갈아 끼웠다.
그와 동시에 1루 코치의 걱정스러운 목소리가 들려왔다.
“교체가 필요하면 언제든지 말해라.”
도진은 미소를 지었다.
“그럴 일 없을 거예요. 덜 아픈 부위에 맞았거든요.”
등허리에 투구가 꽂히자 순간 숨이 멎는듯한 통증을 느꼈지만, 시간이 지난 지금은 정말 괜찮았다.
‘물론 지금 등허리를 드러내면 시퍼런 멍이 박혀 있겠지만, 고작 멍 하나로 호들갑 떨 정도는 아니지.’
당한 건 되갚아줘야 하므로 어떻게서든 경기를 직접 뛰어야만 했다.
필리스와는 또 언제 만날지 모르는데 그때까지 복수의 칼날을 계속 갈고 있을 수는 없었으니까.
‘그때가 되면 이 감정이 식을 수도 있잖아?’
그러니 기회는 오늘뿐이다.
도진의 턱에 힘이 들어갔다.
‘젠장. 이렇게 나올 줄은 몰랐는데.’
고의성이 있냐 없냐를 따지기엔 다소 애매한 부분도 있었고 투구가 머리로 향한 것도 아니므로 퇴장감도 아니었다.
무엇보다 원래 잭슨 카이로는 몸쪽 제구에는 약점이 있는 선수였으니까.
하지만 머리로는 이해한다는 감정과는 달리 도진의 분노는 쉽사리 가라앉지 않았다.
‘그래도 이걸 옹호하는 건 선 넘었지.’
후안 라미레즈의 잘못이 아님을 안다.
그의 머릿속을 들여다본 건 아니지만, 저 자존심 강한 선수가 벤치 클리어링 때 어떠한 반박도 하지 않았으니까.
‘그러니 이건 투수의 독단이다.’
그런데 매우 당당한 당사자의 행동과 말투를 보아하니 눈살이 찌푸려졌다.
야구에서는 비일비재하게 일어나는 일임을 알고 있지만 이건 엄연히 페어플레이 정신에 어긋났다.
‘그러니 난 야구로 되갚아주겠다.’
도진의 눈동자가 투쟁심으로 물들었다.
여기서 복수의 방법은 단 하나뿐이라며 1루 베이스에서 슬금슬금 리드를 가져가기 시작했고.
그 리드의 폭이 워낙 커 누구라도 이후 도진이 할 행동을 예측할 수 있었다.
도진은 아예 쐐기를 박아버렸다.
오른쪽 엄지로 2루 베이스를 두 번 가리키며 대놓고 뛰겠다고 상대 포수에게 예고했던 것이었다.
그렇기에 그 광경을 뜬 눈으로 지켜보던 후안 라미레즈의 동공이 팽창했다.
그리고 도진을 맞췄다는 미안한 감정마저 일순 사늘하게 식었다.
‘감히…….’
고작 루키가 MVP를 상대로 대놓고 2루로 뛰겠다고 경고하고 있었으니 말이다.
‘그래. 어디 한번 해보자.’
두 선수는 절대 물러설 수 없는.
자존심이 걸린 승부를 눈앞에 두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