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baseball genius who chews up America RAW novel - Chapter (246)
미국 씹어먹는 야구 천재-246화(246/400)
[세, 세상에.]해설자는 도진의 예고 도루에 당황했던 나머지 말을 더듬었다.
그를 받쳐주는 캐스터의 요동치는 감정이 마이크를 타고 전파되었다.
[서, 설마. 제가 잘못 본 건 아닌지요. 혹시 킴이 후안 라미레즈에게 예고 도루를 한 겁니까?] [그, 그런 것 같습니다.] [이, 이렇게 대놓고 뛰겠다는 광경은 태어나서 처음 봅니다.] [저도 그렇습니다. 그간 발에 자신 있는 선수들은 대놓고 뛰겠다고 암묵적으로 암시하는 경우는 있었습니다만. 저렇게 대놓고 초구부터 뛰겠다고 선언한 선수는 저는 처음 봅니다.] [도대체 왜 저런 행동을 했을까요?] [그야…….]잠깐 심호흡을 가져간 해설자는 말을 덧붙였다.
[자존심 문제로 보입니다. 사실 지금 분위기에서는 그것밖에 없지 않습니까?] [킴은 예의가 상당히 바른 선수라고 알려졌습니다. 여타 다른 동방예의지국 선수들과 마찬가지로 겸손하다는 소문이 자자하죠.] [저 역시도 그렇게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그는 메이저리거입니다. 평생 겸손만 해서는 더 높은 곳을 바라볼 수 없죠. 환경이 사람을 바꾼다는 말도 있지 않습니까? 킴도 천천히 바뀌고 있는 건지도 모르겠습니다. 아니면 원래 야구에서만큼은 저런 성격일 수도 있습니다. 마치 마이크 트라웃처럼요.] [마이크 트라웃도 야구 외적으로는 차분하지만, 경기장에서만큼은 야수였죠. 쉬운 예시 감사드립니다.]때마침 두 선수의 승부가 시작됐다.
후안 라미레즈는 잭슨에게 바깥쪽 패스트볼 사인을 냈다.
상대가 뛰겠다고 한다.
여기서 피치 아웃으로 주자를 잡아봤자 자존심만 더 상할 뿐이었다.
‘어차피 내가 압도적으로 유리하다.’
그러니 저 정도의 리드는 그저 핸디캡이었다.
저 핸디캡마저 묵살한다면.
‘내가 진 거다.’
투수 잭슨 카이로도 마운드에서 1루 베이스를 힐끗힐끗 쳐다봤지만, 견제는 머릿속에서 지웠다.
타석에 들어선 마르셀로도 배트를 휘두르지 않겠다며 타격 자세를 다소 느슨하게 가져갔다.
에인절스와 메츠 더그아웃도 자존심이 걸린 두 선수의 승부에 어떠한 작전도 내지 않았다.
야구를 전문적으로 알지 못하는 홈 팬들일지라도.
방송으로 이 경기를 지켜보는 원정과 타 팀 팬들도.
초구에 어떤 일이 벌어질지 훤히 예상할 수 있었다.
그리고 두 선수의 대결에 마침표가 찍힐 수도 있는 투구가 던져졌다.
도진은 그 즉시 2루로 뛰었다.
퍼억.
패스트볼은 포수가 요구하는 바깥쪽에 정확히 꽂혔고.
‘아직 멀었다. 애송아!’
후안 라미레즈 어금니를 꽉 물었다.
그는 신계의 팝 타임을 가진 포수.
공을 미트에서 빼내 송구까지 걸리는 시간은 고작 1.7초 남짓.
그는 실수 하나 없어 본모습을 유감없이 발휘했다.
쉐에에엑!
홈플레이트에서 2루까지 일직선으로 향하던 공이 베이스 커버를 들어간 유격수의 글러브에 정확히 꽂혔다.
대다수의 예상은 ‘잡았다!’였다.
하지만 그들이 간과한 것이 있었으니.
도루 저지가 워낙 뛰어나다고 알려진 MVP 포수에게 모든 귀추가 주목돼서 그렇지.
견제가 일절 없이 리드까지 크게 가져간 도진의 주루 능력을 평가절하했던 것이었다.
도진은 입단 당시부터 주루 부분에서는 메이저리그 탑 클래스인 80 스케일을 받은 선수였으니 말이다.
퍼억. 송구가 유격수 글러브에 꽂혔다.
유격수가 주자를 바로 태그하게끔 낮은 쪽 코스로 향했기에.
그의 팔은 반원을 그리며 도진의 몸에 닿았다.
터억.
유격수의 양쪽 입꼬리가 일순 치솟았지만, 베이스에 닿은 도진의 손바닥이 뒤늦게 시야에 담기자 심장이 덜컥 내려앉았다.
결국 그라운드 안팎으로 모든 시선은 심판에게 향했고.
심판은 숱한 부담감에도 확신에 찬 표정으로 모은 양팔을 활짝 펼쳤다.
“세이프! 세이프!”
필리스 선수들은 일제히 나라를 잃었다는 듯한 표정을 지었다.
필리스 감독도 그럴 리 없다며 재빨리 심판에게 뛰쳐나가 비디오 판독을 요구했다.
하지만 전광판에 리플레이 되는 장면에는 도진의 손이 미세하게나마 먼저 베이스에 닿자 결정은 번복되지 않았다.
이 결과로 오늘 도진은 타석에서 2홈런을 기록했고 도루까지 추가했다.
절대로 도루를 내주지 않겠다는 후안 라미레즈의 장담에도 말이다.
결국 후안 라미레즈와 필리스 선수들 그리고 팬들까지.
속 쓰리지만 완패를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도진의 눈동자에는 아직 가시지 않은 울분이 남아 있었다.
‘아직 끝나지 않았어. 확실히 밟아버리겠다.’
9회 말. 스코어는 2:1.
에인절스가 리드하는 가운데 마운드에 오른 도진은 후안 라미레즈를 만나게 된다.
* * *
마운드에 선 도진은 목을 좌우로 풀었다.
그 즉시 호세가 마운드에 올랐다.
“아주 성대하게 저질렀네?”
“뭐가요.”
“쯧. 모른척하기는.”
호세는 도진의 옆구리를 미트로 툭툭 쳤다.
“좋잖아? 지금 웃음 참고 있잖아? 기분이 날아갈 것 같잖아?”
도진은 무표정을 유지했다.
“아니에요.”
눈살을 찌푸린 호세는 금세 표정을 원래대로 되돌렸다.
“이야. 진짜인가 보네? 고작 이걸로는 만족할 수 없다는 거야?”
“네. 일단 안타도 2개밖에 치지 못했으니까요. 완전한 승리라고 볼 수 없죠.”
“개소리는. 3타수 2안타 1볼넷이면 충분해. 상대는 네가 두렵다고 빈볼까지 던졌고 넌 한술 더 떠서 도루까지 했어. 내기가 바뀌었더라도 포수는 절대로 도루를 내주지 않겠다고 선언했잖아? 후안 라미레즈만이 아니라 메이저리거들과 팬들도 전부 네 승리라고 생각할 거다.”
도진은 후! 짧게 호흡을 내뱉었다.
그의 눈동자는 어떠한 감정도 품지 않겠다며 굳건했다.
“하지만 아직 경기가 안 끝났잖아요.”
“허.”
호세는 어이없다며 웃었다.
하지만 이내 그 미소는 진심으로 범벅이 됐다.
‘하긴. 미친개에게 물리면 약도 없다고.’
후안 라미레즈. 너 상대를 잘못 골랐구나.
호세는 혼잣말을 곱씹고도 그저 우스울 따름이다.
MVP보고 루키를 잘못 골랐다니.
어디서 이 말을 내뱉는다면 지나가던 개도 웃을 것이다.
“야. 멍멍해봐라.”
도진은 미간을 찌푸리며 호세를 벌레 보듯 쳐다봤다.
“갑자기요?”
호세는 이내 ‘아니다.’라는 말과 함께 진중한 표정을 지었다.
둘의 승부는 끝났을지언정. 아직 경기는 끝나지 않았으니까.
그리고 도진은 이제 필리스의 2번부터 내리 3번과 4번을 상대해야 했으므로 첩첩산중.
“3연전 첫 마운드 등판이잖아. 컨디션 어때?”
“좋아요.”
“하긴. 구단이 널 깍듯이 아끼니 컨디션은 좋겠지.”
투수는 원래 마운드에서 감을 잃어서는 안 된다.
하지만 도진은 적어도 야수로서 매 경기 출장했으므로 경기의 감은 항시 유지했다.
그리고 에인절스는 도진을 웬만해선 세이브 상황에서만 올렸지만, 그 공백이 길어질 때만 가끔 마운드에 올려 최고의 컨디션을 유지하게끔 전적으로 케어했다.
그러니 오늘도 그는 최고의 공을 던질 것이다.
“내려간다. 후안 라미레즈 타석에서는 그때 말한 대로 간다?”
“네. 부탁드려요.”
홀로 마운드에 남게 된 도진은 로진백을 주물렀다.
억누르고 있었기에 티가 나지 않았지만, 그의 내면에는 태풍이 몰아치고 있었다.
‘전부 되갚아준다.’
앞서 7타석 무안타도. 오늘 상대 투수의 비매너 플레이도.
필리스에게 겪은 수모를 전부 말이다.
사인이 나왔다.
도진은 몸쪽 패스트볼 사인에 고개를 끄덕이고 망설임 없이 초구를 던졌다.
타자의 배트가 나왔다.
하지만 이미 도진과 후안 라미레즈의 승부의 결과가 나온 상황.
사기가 떨어진 타자의 스윙은 도진의 투구를 맞출지언정 안타를 만들어내진 못했다.
빠각.
심지어 배트가 부러지며 타구는 내야도 벗어나지 못했다.
“아웃!”
이어서 3번 타자도 비슷한 결과가 나왔다.
도진의 포심 패스트볼이 배트의 윗등에 맞게 되며 공은 높게 치솟았지만, 2루수가 앞으로 서서히 나오며 타구를 안전하게 처리했다.
이제 마지막으로 남은 건 반드시 눌러버려야 할 후안 라미레즈의 타석뿐.
도진은 타석으로 들어서는 후안 라미레즈를 시야에 담았다.
그 역시도 타석으로 들어서며 도진을 잔뜩 노려봤다.
까득.
후안 라미레즈의 윗니가 아랫니와 맞물렸다.
‘포수로서 패배했다고 해도, 타석에서까지 패배자가 될 수는 없다.’
여기서 저 루키를 상대로 어떻게서든 출루한다.
팀원들과 팬들에게 실력만큼은 아직 자신이 우위라는 것을 각인시켜야 하는 임무가 남아 있었다.
후안 라미레즈는 자신이 있었다.
그의 수비가 워낙 뛰어나 착각하는 부류들도 존재했지만.
‘내가 MVP를 딸 수 있었던 건 타격마저 뒷받침돼서다.’
아니. 오히려 타격에 더 자신이 있었다.
전반기가 아직 끝나지 않았음에도 벌써 20개의 홈런으로 내셔널리그 홈런 부분 1위를 달리고 있었으니까.
‘최고 구속 102마일 포심 패스트볼. 100마일 남짓의 투심과 90마일 초 중반대의 서클 체인지업.’
까다롭다. 구종 자체는 단순하지만, 피칭 디자인은 완벽했다.
하지만 어떤 공을 던질지 알 수만 있다면?
어린 루키의 투구를 받아치는 것은 손바닥을 뒤집는 것만큼이나 쉬었다.
‘그러니 내가 공략해야 할 대상은 네가 아닌.’
후안 라미레즈는 쪼그려 앉아 있는 호세를 힐끗 쳐다봤다.
이 포수의 생각만 읽을 수 있다면 이기는 건 자신이었다.
‘앞선 타자들에게 2개의 포심을 보여줬어. 이번에는 절대 같은 공을 보여주지 않을 거다.’
그러니 투심 혹은 서클 체인지업.
자신이 패스트볼에 강하다는 걸 모를 리가 없을 테니 정답은 체인지업 하나였다.
사인을 교환한 도진이 와인드업에 들어가자 후안 라미레즈는 배트를 강하게 말아쥐었다.
그러나 도진의 손에서 공이 떠난 즉시 후안 라미레즈의 표정이 와락 구겨졌다.
전혀 예상치 못한 투구였기 때문이다.
뒤늦게 스윙해봤지만, 조금의 망설임 때문에 타이밍을 놓쳤고.
몸쪽으로 날아오는 도진의 투심 패스트볼은 건들지도 못한 채 춤을 추듯 헛스윙했다.
퍼억.
“스트라이크!”
타석에서 물러난 후안 라미레즈는 짧게 신음하며 도진을 잠깐 흘겨보고 다시 호세에게 시선을 돌렸다.
그가 자신을 올려다보며 희미하게 미소 지었다.
‘젠장. 패스트볼이라니.’
도망가는 피칭으로 헛스윙을 유도할 줄 알았기에 그 공을 노렸다.
하지만 오히려 반대로 패스트볼이 날아왔다.
그것도 걸리면 담장을 넘길 수 있는 몸쪽으로 말이다.
후안 라미레즈의 머릿속은 마치 꼬인 실타래처럼 더욱 복잡하게 엉켰다.
‘이번에는 기필코.’
패스트볼은 아닐 것이다.
이번에야말로 체인지업으로 헛스윙을 유도해 카운트를 유리하게 가져가겠지.
아무리 상대가 에인절스의 마무리며 좋은 공을 던지지만, 결국 루키일 뿐이다.
‘나와 힘 대결을 할 리는 없지. 1점 차니까 머릿속에서 완전히 지워도 된다.’
하지만 2구 역시 몸쪽으로 휘어져 들어오는 100마일의 투심.
따-악!
후안 라미레즈는 예측하지 못한 구종에 뒤늦게 배트를 휘둘렀다.
이번엔 간신히 맞췄지만, 빗맞은 타구는 바닥에 곤두박질쳐지며 파울이 되었다.
‘뭐, 뭐야?’
후안 라미레즈는 읽히지 않는, 근데 어딘가 익숙한 투구 패턴에 몸이 꽝꽝 얼어붙었다.
이내 이 투구 패턴의 출저가 뇌리를 스쳐 지나갔다.
‘자, 잠깐만.’
후안 라미레즈는 당황을 씹었다.
두 번의 몸쪽 투심이라니.
이건 1차전에서 도진을 처음 만났을 때 자신이 매버릭에게 요구했던 코스와 구종까지 완벽히 똑같았다.
‘서, 설마.’
따라 하고 있다고?
고작 루키와 다 늙어 이빨이 전부 빠져버린 호랑이가?
후안 라미레즈는 포수를 힐끗 쳐다봤다.
이번에도 호세가 자신을 향해 씨익 웃는다.
성급히 마운드로 시선을 돌려 보았다.
투수마저 싱긋 웃자 의문은 확신으로 되돌아왔다.
‘그럼, 이다음 공은…….’
서클 체인지업.
그 공을 던질 것이다.
매버릭이 첫 타석에서 도진을 잡았을 때 체인지업을 던졌으니까.
후안 라미레즈의 머릿속은 의심으로 가득했다.
‘하지만 정말 던질까?’
큰 거 한방이면 동점이 될 수도 있는 지금 걸리기만 하면 담장을 넘길 수 있는 체인지업을?
후안 라미레즈는 배트를 말아쥐고 타격자세를 잡았다.
‘너라면…… 가능성이 차고 넘친다.’
자신에게 예고 도루까지 한 루키다.
그러니 100% 서클 체인지업을 던질 것이다.
‘그렇게 해서 나를 완벽히 눌러버리겠다고?’
후안 라미레즈의 화가 머리끝까지 치솟았다.
‘잠자코 당해줄쏘냐!’
후안 라미레즈가 움켜잡은 배트엔 그의 자존심이 걸려 있었다.
한편, 도진은 후안 라미레즈의 감정선이 크게 요동치는 것을 보았다.
‘이야. 역시 MVP 포수는 다르네.’
다음 공이 체인지업이란 걸 후안 라미레즈도 깨달은 듯했다.
하지만 도진은 이미 체인지업을 던지겠다고 다짐했다.
‘후안 라미레즈는 휘두를 거다. 큰 거 한 방 치려면 체인지업에 배트가 나올 수밖에 없어.’
무엇보다 자존심이 걸려 있다.
이깟 자존심이 뭐냐고 할 수도 있겠지만 이들은 메이저리거다.
‘세계 최고의 선수들만 모인 자리잖아?’
그들에겐. 그리고 자신 역시.
이 자존심이 전부였다.
‘이 체인지업을 완벽하게 제구해 후안 라미레즈의 헛스윙을 끌어내면 된다.’
도진은 오른손을 글러브 안에 집어넣었다.
그리고 공을 쥔 그립은 체인지업이었다.
와인드업. 공은 던져졌다.
코스는 몸쪽이 아닌 정중앙.
홈플레이트 부근에서 힘을 잃고 아래로 뚝 떨어질 것이다.
대신 얼마만큼 떨어지느냐에 따라 오늘 경기의 마침표를 찍을 수 있느냐 없느냐가 결정되겠지.
아직 결과가 나오지 않았지만, 도진이 불끈 쥔 주먹에는 자신감이 쥐어졌다.
‘완벽히 긁혔다.’
후안 라미레즈에게서 마치 골프처럼 아래에서 위로 걷어 올리는 어퍼 스윙이 나왔다.
하지만 뚝 떨어지며 시야에서 사라져버린 투구에 결국 타자가 원하는 타격음이 들려오는 대신.
퍼억.
“스트라이크 아웃! 게임 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