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baseball genius who chews up America RAW novel - Chapter (25)
미국 씹어먹는 야구 천재-25화(25/400)
도진은 커브를 흉내 낼 줄 안다.
하지만 흉내는 흉내일 뿐.
자신이 던지는 커브를 제대로 된 변화구라고 생각하지는 않았다.
정식으로 배운 적이 없어 낙폭이 크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저 흉내일 뿐이지.’
물론 RS와의 경기에서 커브가 먹히긴 했지만 그건 상대의 허를 찔러서다.
‘이제 그 허를 찌르는 것도 불가능해.’
자신이 커브를 던진 순간 정보는 이미 퍼졌을 테니까.
물론 암울할 필요는 없었다.
지금부터 배우면 되는 일이다.
그리고 앞으로 잘 다듬어서 알아도 치지 못하는 커브를 구사하면 그만이었다.
페드로는 도진에게 커브 그립을 쥐어 보였다.
“사실 다른 변화구를 알려주고 싶기는 한데. 시간이 촉박해서 원리라도 알고 있는 커브를 알려주는 게 샌프란시스코 경기에서 도움이 되겠다고 생각했다.”
변화구를 던질 때 저마다의 원리가 있다.
도진은 자신의 커브가 비록 완전치는 않았지만, 어떻게 던져야 하는지는 알고 있었다.
“저도 그렇게 생각합니다. 당장 주말까지 4일도 남지 않았으니 다른 변화구를 익힌다는 건 사실상 불가능하겠죠.”
페드로도 덩달아 고개를 끄덕이며 진심 어린 조언을 이어 나갔다.
“물론 네가 다양한 변화구를 구사할 수 있게 된다면 팀에 큰 도움이 되는 것도 맞지만. 아직은 때가 아니야.”
도진은 몸 상태도 마운드에 적응도 아직 덜 되었다.
괜히 다양한 구종을 구사하기보다는 가진 소수의 구종을 완벽하게 다듬는 편이 좋겠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네 야구 계획이 따로 있겠지? 그러니 너에게 변화구를 다양하게 구사하라고 하는 것도 해서는 안 될 짓이지.”
페드로의 말에 도진의 눈이 번뜩였다.
역시나 이 나라의 문화는 좀처럼 적응이 되지 않는다.
‘확실히 개인주의야.’
개인주의라고 오로지 자신만 생각하는 건 아니었다.
상대에게도 개인주의를 강요하고 있었다.
승리보다는 개인의 기량을 차근차근 높이라는 조언이었다.
당연히 변화구를 장착한다면 당장 팀에 도움이 된다.
그리고 성적으로도 결과가 나올 것이다.
하지만 변화구는 투수의 어깨와 팔꿈치를 갉아 먹는다.
당장 성적을 내겠다고 미래와 선수 생명을 맞바꾸는 경우가 나올 수도 있다는 것을 방지하라는 말이었다.
페드로는 도진이 그런 길을 걷지 않길 바랐고, 차후에는 그가 자신만의 변화구 연마 계획을 세우길 바랐다.
“그래서 부상 위험이 그나마 덜 한 커브를 전수해줄 생각이다.”
페드로의 말마따나 커브는 스플리터나 슬라이더에 비하면 부상 위험이 덜 하다.
물론 체인지업이 부상 위험이 제일 적지만, 체인지업은 전문가의 지도하에 제대로 배워야 한다.
변화구 습관을 잘못 들여놓는다면 차후에 뜯어고칠 때 애를 먹는다.
도진은 페드로를 향해 허리를 굽히며 인사했다.
한국에서는 듣지 못했던 따듯한 조언들 덕분이었다.
“감사합니다.”
“하지만 나는 샌프란시스코를 기필코 이기고 싶다. 그래서 네게 두 가지의 커브를 전수해줄 생각이다.”
도진은 흥분을 감추지 못했다.
커브의 종류는 다양하다.
당장 커브의 종류를 대라면 다섯 가지나 댈 수 있을 정도며, 다섯 가지 커브 모두 구속과 구질이 전부 달랐다.
두 가지의 커브를 전수해준다는 건 자신에게 두 가지의 무기가 생기는 것이나 다름없었다.
무엇보다 같은 팀이라고는 하지만 개인주의 성향이 있는 미국이다.
‘힘들게 연마한 커브를 이렇게 손쉽게 알려주기 쉽지 않을 텐데. 선배는 진짜 이기고 싶나 보다.’
페드로는 반짝반짝 눈을 빛내는 도진을 힐끗 쳐다보고는 피식 웃고 곧장 본론으로 들어갔다.
“제일 먼저 알려줄 커브는 12-6 커브다.”
12-6 커브.
12시에서 6시로 수직 낙하한다는 클래식한 커브다.
구사율에 따라 낙차의 크기가 달라지며 낙차가 크면 클수록 타자가 대응하기 힘들다.
12-6 커브를 주 무기로 쓰는 투수로는 다저스 최고의 투수 클레이튼 커쇼가 있다.
커쇼는 이 커브로 3번의 사이영상을 수상했기에 위력이야 두말할 것도 없었다.
도진은 서둘러 바닥에 떨어진 공 하나를 주워 올렸다.
그러고는 페드로의 그립을 금세 따라 했다.
“커브의 기본 수칙을 인지하고 있다면 그렇게 어렵지는 않을 거다. 공을 릴리스할 때 볼 상단에 압력을 가해 탑스핀을 넣으면 된다.”
커브를 던질 줄 아는 도진에겐 페드로의 설명이 어렵게 다가오지는 않았다.
“그럼 한번 던져볼까?”
도진은 고개를 끄덕인 후 곧바로 자세를 잡고 이번에 배운 새로운 커브를 던졌다.
그립에 조금의 변화를 줬을 뿐인데 결과는 만족스러웠다.
전에 던진 커브와 낙폭 차이가 확연히 눈에 보였기 때문이다.
하지만 페드로는 미간을 잔뜩 찌푸렸다.
“흐음. 잘하긴 했어. 그런데 스핀이 제대로 들어가지 않는 것 같네.”
“네? 누가 봐도 12-6 커브였는데요?”
“어. 그렇긴 한데. 이것보다 더 잘할 수 있을 것 같은데? 다시 한번 던져볼까?”
도진은 곧장 와인드업 후 공을 던졌다.
이번에도 큰 낙폭의 커브는 만족스러웠다.
하지만 이미 앞선 투구와 큰 차이가 없었기에 페드로를 힐끗 쳐다봤다.
그는 무언가를 발견했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손목 스냅 때문이네. 볼을 던질 때 손목을 더 이용해보자. 지면 쪽으로 내리찍는 식으로 던져봐.”
도진은 고개를 갸웃했다.
말로는 정확히 와닿지 않았기 때문이다.
페드로도 설명보다는 곧장 시범을 보였다.
“아…….”
페드로의 투구를 접한 도진은 금세 깨달았다.
자신이 앞서 던진 폼과 페드로의 폼 차이는 확실히 존재했다.
“다시 해보겠습니다.”
도진은 온통 자세만 생각하며 공을 던졌다.
머릿속이 온통 자세뿐이라 공의 위력은 떨어졌지만, 낙차만큼은 훨씬 뛰어났다.
“좋아. 물론 어정쩡하긴 했는데. 감을 금방 잡았네.”
“좀 더 반복 학습이 필요할 것 같습니다.”
“그렇지. 변화구는 결국 반복 학습이지.”
말은 그렇게 했지만 사실 페드로는 태연한 척하느라 애를 먹었다.
고작 자세를 한번 보여줬을 뿐이다.
하지만 도진은 그 원리를 완벽하게 깨우치며 정확하게 12-6 커브를 구사했다.
아무리 커브가 다루기 쉬운 변화구라도 그건 언제까지나 손에 익었을 때의 얘기다.
하지만 도진은 커브에 대한 원리와 그립만 알고 있었을 뿐, 12-6 커브를 처음 던져봤다.
‘정말 어마어마한 재능이군.’
커브는 특히나 자세가 중요하다.
부상을 방지하기 위해선 자세가 전부라고 봐도 무방했다.
하지만 도진의 폼은 흠잡을 곳 없이 깔끔했다.
페드로는 금세 입꼬리를 올렸다.
‘이런 괴물이 한 팀이라서 다행이군.’
도진이 12-6 커브를 10번 정도 반복하자 페드로는 다시 그를 불러 세웠다.
“좋아. 잘하고 있어. 반복 학습은 따로 하는 걸로 하고. 다음 커브도 배워봐야겠지? 이왕이면 연습할 때 같이하는 게 좋잖아?”
도진이 또다시 눈을 빛내자 페드로는 지체하지 않았다.
“이번에 알려줄 변화구는 파워 커브다. 그리고 내 주특기기도 하지.”
파워 커브.
12-6 커브보다 낙폭은 적지만 구속이 훨씬 빠르다.
파워 커브는 12-6 커브와 적게는 2~3마일에서 많게는 5~6마일 이상 차이가 날 때도 있다.
“파워 커브와 12-6 커브의 차이는 크게 두 가지로 보면 돼.”
커브의 속도가 빨라야 하므로 손목으로 찰싹 때린다는 느낌으로 던져야 한다.
그리고 패스트볼과 같이 하체에 힘을 주는 것이 핵심이다.
“패스트볼과 12-6커브를 반반 섞어놨다고 보면 되겠네요?”
도진의 물음에 페드로는 눈을 끔뻑였다.
“어? 뭐 그렇게 볼 수도 있겠지만, 엄연히 다른……”
페드로는 말을 잇지 못했다.
시범을 보인 도진의 파워 커브는 이번에도 완벽했기 때문이다.
‘뭐. 그렇게 이해하는 게 편하다면야.’
결국 목적지에 도달하는 것이 중요한 법이지.
어떻게 도달하는지는 전혀 중요하지 않았으니까.
‘확실히 좋은데?’
도진은 아까와 확연히 다른 커브를 던졌다는 사실에 주먹을 불끈 쥐었다.
그러고는 곧장 페드로에게 몸을 틀어 다시 한번 허리를 굽혔다.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선배님 덕분에 두 가지 커브를 익힐 수 있게 됐어요. 물론 더 연습해야겠지만 꼭 열심히 해서 제 것으로 만들겠습니다.”
“어? 어. 그래.”
엉겹결에 대답한 페드로는 혀를 내둘렀다.
‘적어도 자세를 다듬는 시간만 1시간 정도 잡았는데.’
하지만 자신의 예상은 우습게 빗나갔다.
설명을 제외. 직접 폼을 교정하는 시간은 5분도 채 걸리지 않았기 때문이다.
‘스펀지야 뭐야? 뭐 이렇게 흡수가 빨라?’
페드로는 다시 한번 도진과 한 팀이라서 정말 다행이라며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대신 마지막으로 진심 어린 조언을 건넸다.
“커브는 속도가 느린 대신 안타를 맞기 쉬운 공이야. 결국 제구가 제일 중요하다.”
“명심하겠습니다.”
* * *
도진은 이번에 배운 커브를 연습하기 위해 마이크를 찾았다.
현재 그는 타격 코치와 함께 블로킹을 연습하고 있었다.
“코치님. 마이크 좀 빌려도 될까요?”
타격코치가 고개를 갸웃하자 도진은 여유롭게 말을 이었다.
“제가 이번에 페드로 캡틴에게 커브를 배웠거든요. 마이크가 제 공을 받다 보면 알아서 블로킹 연습이 되지 않을까요?”
“으흠. 틀린 말은 아니군. 마이크. 킴의 피칭을 도와라.”
마이크는 미간을 잔뜩 구겼다.
“뒤치다꺼리는 내키지 않는데요?”
“뒤치다꺼리는 무슨. 실전에서 나올 법한 실수를 만회하기 위해선 직접 투구를 받아보는 게 제일 좋겠지.”
타격코치는 그 말을 끝으로 자리를 벗어났고 도진은 마이크를 향해 씨익 웃었다.
“허락은 받았고.”
“진짜 미친놈인가? 아니면 똥개 훈련이라도 시키려고? 커브 배운지 몇 분이나 됐다고 공을 받아달래? 저기 벽에다 던져!”
물론 도진은 마이크의 분노를 이해했다.
어디로 튈지 모르는 투구라면 고생은 전부 포수의 것이었으니까.
하지만 이번만큼은 양보할 수 없었다.
“우리 다음 경기 샌프란시스코잖아? 이겨야 할 거 아니야!”
“이기는 건 둘째치고 이건 나만 손해잖아!”
“어허! 자고로 커브란 무엇이냐. 포수와 합을 맞춰서 스트라이크에 꽂을지 아니면 유인구를 던질지 정해야 하는 거 아니냐?”
마이크는 입을 꾹 다물었다.
적어도 도진의 말이 틀리지는 않았기 때문이다.
특히나 커브는 간파당하면 안타가 자주 나온다.
그렇기에 투수와 포수의 합이 정말 중요했다.
자신의 사인에 따라 도진이 위력적인 커브를 던질 수 있느냐 아니냐가 달려 있었다.
도진의 커브를 스트라이크 존에 꽂을지. 볼로 배트를 유인할지는 온전히 자신에게 달려 있었다.
도진은 설득된 표정의 마이크에게 입꼬리를 올렸다.
“그리고 내가 그냥 왔겠어?”
“뭔 소리야?”
“2개의 신무기를 장착했으니 네가 직접 받아보고 평가해 봐야 할 것 아니냐.”
“2개?”
“일단 받아보기나 해.”
마이크는 미간을 구긴 채 옆에 놓인 포수 마스크를 썼다.
두 가지의 신무기라.
말은 거창했지만, 전혀 기대되지 않았다.
30분도 되지 않아서 신무기 2개를 장착했다는데 어떤 포수가 이를 믿겠는가.
그저 자신에게 공을 정확히라도 던져줬으면 하는 바람뿐이었다.
하지만 마이크는 포구를 실수했다.
도진이 던진 초구의 커브는 포수 마스크 높이로 포물선을 그리며 날아오다가 바닥까지 꽂혔기 때문이다.
‘뭐, 뭐야?’
마이크는 당황스러웠다.
이게 말이 되는 건가?
자신이 아무리 야구를 쉬었다고 한들 변화구를 갓 익힌 투수의 공을 받아보지 못한 것은 아니었다.
대부분 실수투성이에 성공률 자체가 높지 않았다.
이건 프로 선수도 다르지 않았다.
하지만 이렇게까지 완벽하게 구사할 수 있다니.
하지만 도진의 도발 때문에 감탄은 금세 사그라들었다.
“쯧쯧. 그렇게나 자신만만하더니. 이건 누가 봐도 포수 에러다?”
“닥쳐!”
마이크는 버럭 했지만, 여전히 놀라움이 가시질 않았다.
방금의 투구가 지금 배워온 새로운 변화구라니.
‘낙차가 완벽하잖아?’
특히나 자신은 RS전에서 도진의 커브를 받아봤다.
그때의 커브는 커브라고 부르기엔 다소 애매한 이퓨즈(아리랑 볼)였지만.
지금은 누가 봐도 완벽한 12-6 커브를 구사했다.
“이번엔 다른 커브.”
도진은 또다시 와인드업했다.
낙차는 확연히 줄어들었지만, 구속만큼은 예상치 못할 정도로 빠른 공이 포수 마스크 쪽으로 향하다 미트로 꺾였다.
퍼억.
결국 마이크는 이번에도 포구를 제대로 하지 못해 허벅지로 공을 받아냈다.
도진은 그 광경에 실실 웃었다.
“이번에도 네 실수다?”
마이크는 반박하지 못했다.
‘도대체 어떻게 되먹은 놈이냐? 아니. 배워온 게 아니라 여태까지 커브를 숨겨놓은 거 아니야?’
마이크가 놀라는 것도 당연했다.
그만큼 도진은 완벽하게 커브를 구사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마이크는 도진의 공을 몇 번 더 받아보고 나서 생각을 정정했다.
‘들쑥날쑥한 걸로 보아 아직 완벽하지는 않아. 이번에 배운 변화구가 확실하다.’
하지만 생각을 끝마치고 현실로 돌아오자 몸이 파르르 떨렸다.
96마일을 웃도는 강속구.
거기에 낙차와 구속이 다른 두 가지의 커브를 갖춘 도진은 또다시 성장한 것이었으며.
샌프란시스코에게 승리할 확률이 조금 더 늘어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