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baseball genius who chews up America RAW novel - Chapter (263)
미국 씹어먹는 야구 천재 263화(263/400)
도진은 타석에서 주자로 나간 선수들을 한눈에 담았다.
3루에 안착한 라이언의 비장함이 느껴졌다.
‘왜지?’
분노가 느껴지는 그의 제스처는 야구 경기에서 쉽게 볼 수 있는 장면은 아니었다.
그렇기에 도진은 저 행동의 의미를 손쉽게 유추했다.
‘전 팀과 마찰이 있었겠구나.’
잘하고 있는 선수를 트레이드하는 구단은 극히 적을 것이다.
오히려 우대를 해주면 해줬지, 내치지는 않을 테니까.
‘상황에 따라 다르겠지만 말이야.’
예를 들어 탱킹이라든가.
하지만 타이거즈는 탱킹을 위한 트레이드를 한 게 아니다.
비싼 선수를 데려가며 싼 선수를 내어주었으니까.
‘대충 상황이 그려지네.’
라이언의 장점은 기록상으론 출루뿐이었다.
‘타이거즈에서 환영받지 못했나 보다.’
그러니 자신을 내친 원소속팀에 복수하고 싶겠지.
도진은 어금니를 꽉 물었다.
‘일단 첫 단추는 잘 끼웠어.’
라이언은 지금 언제든지 홈까지 쇄도할 수 있는 3루에 있었으니까.
하지만 첫 단추만 잘 끼워서는 만족할 수 없다.
결국 비수를 꽂아야 만족스러운 복수가 될 것이다.
‘결국 내가 라이언을 홈으로 불러들여야 하는데.’
도진은 투수를 노려보았다.
오도네스. 타이거즈의 1선발.
90마일 중 후반대의 강력한 패스트볼을 던지며 변화구도 4개나 구사하는 팔색조 투수.
‘쉽지 않은 상대다.’
그래도 괜찮다고 오감이 자신에게 일렀다.
왜일까.
도진은 순간 치솟는 입꼬리를 강제로 제어했다.
‘왜겠어.’
올스타전에 참여해서 날고 기는 선수들과의 맞대결을 펼쳐봤기 때문이다.
‘예전 같았으면 거대하다고 생각했을 1선발이 그리 대단해 보이지 않네.’
한편. 오도네스는 도진을 마주하자, 미간이 잔뜩 구겨졌다.
그를 첫 타석에서 우익수 플라이로 잡아냈음에도 그랬다.
9개의 칸을 가득 메운 도진의 새빨간 히팅 포인트가 머릿속에 그려지자, 마른침이 꼴깍 넘어갔다.
‘절대 쉬운 공을 던져서는 안 된다.’
더군다나 지금은 1사 1, 3루.
첫 타석처럼 우익수 플라이가 나온다면?
빠드득.
오도네스의 어금니가 갈렸다.
지금 3루 주자가 홈으로 쇄도할 그림이 그려지자, 분노가 치밀었다.
‘반쪽 새끼가.’
10구 끝에 나가 출루하더니 결국 3루에 안착해 있다.
무엇보다 그가 출루했을 당시 주먹을 꽉 쥔 세레모니는 자신을 향한 도발이었다.
그러니 절대 득점을 내줘서는 안 된다.
오도네스는 이 난관을 타개할 정답을 알고 있었다.
‘병살타.’
이닝도 마무리할 수 있고 실점도 막을 수 있다.
대신 타자에게서 병살타를 유도하려면 공이 높아서는 안 된다.
최대한 낮게 낮게 던져 땅볼을 유도하면 된다.
‘다행이라면 우리 타이거즈는 수준급 내야수들로 도배되어 있지.’
그러니 어떻게서든 땅볼만 치게 만들면 된다.
설사 병살타가 아니어도 상관없다.
라이언은 타이거즈를 잘 알기 때문에 병살타가 아니더라도 발을 묶어둘 수 있다.
포수도 제 생각을 읽었는지 걸맞는 사인을 보내왔다.
오도네스는 바깥쪽에 걸치는 투심 사인에 입꼬리를 올렸다.
‘좋아. 그거면 충분하지.’
낮게 던진다.
포수가 요구하는 코스로만 던질 수 있다면 기필코 땅볼이 나올 것이다.
숱한 위기를 겪어왔던 오도네스는 심장이 차분해지자 곧장 투구에 돌입했다.
공이 손을 떠나는 순간 주먹이 불끈 쥐어졌다.
포수가 요구하는. 자신이 그토록 던지고 싶었던 코스로 정확히 날아갔기 때문이다.
하지만 오도네스는 순간 간담이 서늘해졌다.
지체없이 나오는 도진의 배트를 보면 누구라고 그럴 수밖에 없을 것이다
‘뻔해.’
도진은 상대 배터리의 수를 훤히 읽고 있었다.
아직 스코어는 0:0.
실점을 1점으로 최소화하며 경기를 운영해도 괜찮은 점수 차다.
‘그런데 주자가 원소속팀 멤버였으니 득점을 용납하고 싶지 않겠지.’
그러니 이 공은 바깥쪽 낮은 코스로의 투심이다.
아무리 완벽한 코스로 공이 날아온다고 한들.
타자가 어떤 공이 날아올지 완벽하게 예상한 이상 한 가운데 공을 치는 것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따—악!
투수가 던진 투심은 홈 플레이트에서 크게 꿈틀대며 낙하했지만, 그토록 원치 않았던 배트와 만났다.
밀어친 타구는 우익수 방면으로 쭉쭉 뻗었다.
대신 첫 타석과는 달랐다.
우익수가 발에 불이 붙었는지 부리나케 움직였기 때문이다.
타구는 펜스를 직격하며 방향감각을 잃고 중견수 방면으로 데굴데굴 굴러갔다.
3루 주자 홈인.
1루 주자마저 3루를 돌아 홈인.
2루에 안착한 도진은 더그아웃으로 이동하는 라이언을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아쉽게도 라이언은 이를 보지 못했다.
오도네스를 통해 첫 득점을 신고해 환희에 휩싸여서 그랬다.
그러나 그때.
더그아웃 입구에서 거대한 풍채가 그를 막아서고 있었다.
에인절스의 레전드 호세였다.
“어이. 타이거즈는 어땠는지 몰라도 에인절스에서는 세레모니에 보답해야 한다는 것을 잊지 마라. 더군다나 환영 인사를 무시하면 예의가 아니잖아?”
호세의 말뜻을 이해한 라이언은 뒤늦게 2루에 안착해서 자신을 가리키는 도진의 손가락을 보았다.
그 검지가 하늘을 가리키는 엄지로 바뀌자.
라이언도 도진에게 엄지를 치켜세웠다.
‘트레이드되길 정말 잘했다.’
라이언은 에인절스라는 어색해야만 하는 팀이 너무나도 편안하게 느껴졌다.
팀원들의 하나 된 목소리 때문에도 그랬다.
“에인절스에 잘 왔다. 앞으로 여기가 네 집이다.”
* * *
타이거즈는 앞서나가는 에인절스의 뒤를 바짝 쫓았다.
3회 말 홈런으로 1점을 올렸고 4회에도 2개의 연속 안타로 1점을 추가해 동점을 만들었다.
5회 초. 에인절스 공격.
라이언은 이번에도 선두 타자로 타석에 들어서게 됐다.
전 소속팀에서 느껴보지 못한 편안함을 새로운 팀에서 느껴서일까.
빗맞은 안타는 행운까지 따르며 2루수와 1루수 그리고 우익수 정중앙에 떨어지는 텍사스성 안타를 만들었다.
그다음 타자인 제롬은 긴장을 머금고 타석에 들어섰다.
‘젠장. 나도 뭘 보여줘야 하는데.’
이제는 한 팀이 되었지만, 자신과 같은 날 들어온 라이언은 벌써 두 번의 출루를 기록한 것도 모자라 에인절스의 첫 득점까지 기여했다.
그 때문에 초조해지는 건 어쩔 수 없었다.
하지만 제롬 역시 타격보다는 눈이 좋은 선수.
눈이 좋은 선수는 잘 쳐낼 때도 있지만, 그렇지 못한 경우도 대다수.
바로 투수와의 힘 대결에서 밀릴 경우였다.
‘하필 상대가……’
메이저리그의 1선발이었기에 그를 지금 당장 힘으로 누르기엔 무리가 있었다.
이러한 불안감은 자신감을 깎아 먹었다.
더욱이 자신을 응원하는 에인절스 선수들의 목소리는 그 불안감을 증폭시켰다.
“이어 나가자!”
“새로 들어왔으니 하나 보여줘야지!”
제롬은 알았다.
저들의 응원이 자신에게 부담을 주려는 것이 아님을.
하지만 예상하지 못했던 팀 분위기는 혼란만 가미되었다.
에인절스라는 팀은 지금까지 늘 꼴찌만 해왔던 팀이었으니 말이다.
‘조용할 줄 알았어.’
올 시즌 2위를 달리고 있다고 한들.
언제나 후반기부터 결국 꼴찌를 찾아가는 팀이 에인절스다.
하지만 팀 분위기가 어두컴컴하리란 예상은 보기 좋게 빗나갔다.
‘마치 1위를 달리는 팀 분위기와 다르지 않다.’
제롬은 밀워키 브루어스 소속이었다.
그리고 밀워키에 몸담았을 때 1위로 포스트 시즌을 밟아본 적이 있었으므로 이 분위기가 생소하지는 않았다.
하지만 제롬 역시 라이언과 크게 다를 바가 없었다.
그 역시도 카메론과 트레이드되며 이 팀에 오게 됐으니 말이다.
‘그는 무려 한 시즌에 홈런을 20개씩 치는 타자지.’
그렇기에 당장 그의 공백을 메꿀 수 없다.
아니. 일평생 20홈런을 치는 시즌이 없을 수도 있다.
야구 역시 재능이다.
지금까지 뛰어난 눈을 바탕으로 높은 출루율을 기록했지만, 자신이 가진 무기는 그것이 전부였다.
이내 제롬의 눈이 번뜩 뜨였다.
‘에인절스에서 내게 바라는 건?’
출루.
이미 앞서 3회에서 보여주지 않았던가?
나가기만 한다면 후속 타자들은 자신을 불러들일 능력을 갖추고 있다.
‘득점권 타율의 신 마르셀로…….’
제롬은 힐끗 더그아웃으로 시선을 돌렸다.
영광을 담은 그의 눈동자는 도진을 비추고 있었다.
‘그리고 올스타 MVP 킴.’
이 팀은 약팀이 아니다.
그 누가 이 팀을 약팀이라고 칭할 수 있겠는가.
그렇기에 약팀에서 마음 편히 경기에 임하겠다는 예상이 빗나간 지금 정신이 혼미했다.
그리고 그때.
퍼억.
“스트라이크!”
패스트볼이 한복판에 꽂혔다.
정신이 돌아오지도 않았는데 상대 투수는 자비란 걸 모르는 모양이다.
아니면 정신이 없는 틈을 타 물어뜯겠다고 달려든 걸 수도 있겠지.
‘정신 차려야 한다.’
하지만 쉽지 않다.
너무 긴장했던 나머지 방금 투수가 던진 공은 두 개로 보였기 때문이다.
‘망했다.’
휘두른다고 한들 공이 스치기라도 할까?
허접한 스윙으로 비웃음이나 사지 않으면 다행이겠지.
이런 감정들이 타자에게 도움이 되지 않으리란 것을 누구보다 본인이 제일 잘 알았다.
하지만 감정이 쉽게 제어되는 법이던가?
더군다나 생판 생소한 환경에서?
제롬이 어둠의 소용돌이로 빠져드는 그때. 한 목소리가 자신을 일깨웠다.
“편하게 늘 하던 대로 해요! 어떤 타자가 매번 출루해요? 야구의 신도 그건 불가능하겠다.”
청량하고 맑은 목소리. 주인공을 시야에 담지 않아도 누군지 알 수 있었다.
에인절스의 심장.
‘MVP.’
그를 필두로 팀을 꾸려나가려는 에인절스다.
이걸 이제 모르는 사람이 있을까?
그런 그가 진심을 다해 자신을 응원하고 있다.
오늘 생전 처음 만나 악수 한 번 나눈 게 전부인데 말이다.
‘넌 이런 꼴사나운 모습인 나도 팀원으로 생각하고 있구나.’
하긴. 그는 진작부터 자신을 팀원으로 생각하고 있었다.
첫 타석에서 번트를 댄 자신에게도 엄지를 치켜세웠고, 그의 해맑은 표정은 진심이 가득 묻어 나왔으니까.
고작 번트를 댔을 뿐인데 말이다.
제롬은 쓴웃음을 지었다.
‘번트가 잘못된 건 아니잖아?’
후속 타자들이 전부 쟁쟁한데 굳이 주인공이 될 필요는 없잖아?
조연.
‘그것이 이곳에서 내 역할이다.’
제롬은 자신에게 되물었다.
세상 한 번 사는 인생인데 조연으로 만족하냐고?
2구. 공이 투수의 손을 떠났다.
제롬은 재빨리 자세를 비틀어 번트를 댔다.
토옥.
1루로 향해 전력으로 질주했지만, 포수가 생각보다 빠르게 움직여 타구를 처리해 아웃이 됐다.
그런데도 제롬은 만족스러운 미소를 띠었다.
‘이 팀이 어떻게 흘러가는지 아직 완벽히 모른다.’
하지만 중심이 누군지는 알고 있었으며, 자신이 해야 할 역할만큼은 뼛속에 심어두고 있었다.
다행이라면 적어도 자신이 구단과 감독의 뜻까지 모르는 바보는 아니었으니 말이다.
‘내 역할은…… 저 어린 MVP에게 찬스를 만들어 주기만 하면 된다.’
제롬은 후련한 표정으로 더그아웃 입구에 도착했다.
그러자 도진이 자신의 앞을 막아서며 물었다.
“번트로 만족하세요?”
무슨 뜻일까.
제롬은 의문을 가득 품었다.
하지만 도진의 미소를 보자 순간 긴장에 뒤덮인 몸이 따스해졌다.
“만족한다.”
“어디 한번 볼까요?”
제롬은 더그아웃 입구에서.
도진은 대기 타석에서 함께 윌리엄의 타석을 지켜봤다.
“베이스 온 볼스!”
윌리엄은 흔들리는 투수를 상대로 이번에도 볼넷을 얻어가자, 도진은 어깨를 으쓱했다.
“주자가 또 쌓였네요. 제롬의 번트 덕분에 나온 결과겠죠. 만족할 만하겠네요. 물론 앞으로 더 좋은 모습을 보여주리라 믿고 있지만요.”
도진은 하늘 높이 팔을 올려 손을 펼치며 나지막이 읊조렸다.
“마무리는 제게 맡기세요.”
제롬은 한아름 미소를 머금고 도진과 하이파이브를 했다.
그러고는 타석으로 들어서는 도진의 뒷모습을 멍하게 쳐다봤다.
그러자 이번에는 호세가 자신에게 다가와 물었다.
“정말 만족하냐? 고작 번트 갖고? 저 애송이의 말을 전부 믿는 건 아니지?”
“제 선택에 후회는 없습니다.”
“어디 한번 지켜볼까?”
따—악!
초구부터 호쾌한 스윙을 휘두른 도진이 1타점 적시 1루타를 기록하자.
“젠장. 저놈 올스타에 다녀오더니 실력이 더 늘었네.”
호세는 푸념을 내뱉더니 이내 미소를 지었다.
“결국 네 선택이 옳았네? 우리 에인절스가 더 높은 곳까지 도달하려면 오늘 같은 정답이 자주 필요할 거다. 그러니 이곳에 온 걸 격하게 환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