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baseball genius who chews up America RAW novel - Chapter (267)
미국 씹어먹는 야구 천재 267화(267/400)
박정환은 도진의 뻗은 다리를 시야에 담고 히죽 웃었다.
잘하는 선수, 혹은 미운 선수를 거칠게 다뤄 부상을 입힌다.
흔히 담근다는 표현을 쓴다.
물론 야구는 축구나 농구만큼 상대를 담그는 것이 쉽지 않다.
그렇기에 박정환은 이 천금 같은 유일한 기회를 놓칠 수 없었다.
‘다리를 부숴버려 주지.’
포수의 악송구가 없었다면, 이런 기회는 꿈도 꾸지 못했을 테니까.
‘공중에 떠 있는 선수가 착지할 때 사람을 밟는 건 불가항력이지.’
만약 김도진의 다리가 아작 난다고 한들 이건 고의가 아니다.
박정환은 숱한 경험을 통해 알고 있었다.
그러니 여기서 이놈을 시즌 아웃시킨다.
‘잘가라.’
박정환은 도진에게 향하는 스포트라이트를 자신의 것으로 만들고 싶었다.
이 외로운 미국 땅에서 버티려면 늘 그래왔듯이 모든 스포트라이트는 자신만 비춰야만 했다.
공중에 떠 있던 박정환은 발에 힘을 가득 주었다.
한국의 미래가 어떻게 되든 제 알 바는 아니었으니 말이다.
“위험해!”
“젠장!”
사방에서 탄성이 터져 나왔다.
양 팀 더그아웃에서 나온 소리였다.
누구는 차마 볼 수 없다며 눈을 질끈 감았고, 누구는 이를 갈며 부상자가 나오지 않기만을 빌었다.
그리고 이럴 때 부상을 입는 선수는 100이면 99. 주자였다.
그런데 이게 웬걸?
박정환의 몸이 공중에서 180도 돌아갔다.
도진의 슬라이딩 방식 때문이었다.
본래 주자가 1루에서 2루로 도루를 할 때 슬라이딩 방법은 여럿 있다.
보편적으로 송구와 박빙의 상황이면 머리부터 들어가는 헤드퍼스트 슬라이딩을 선택하지만.
다소 여유가 있을 때는 발부터 들어가는 슬라이딩을 선택하며, 여유가 넘칠 때는 슬라이딩을 아예 하지 않는다.
여기서 발부터 들어가는 슬라이딩도 두 가지로 나뉜다.
하나는 간신히 베이스에 닿는 슬라이딩.
하지만 도진은 이 방식이 아닌 다른 방식의 다리 먼저 들어가는 슬라이딩을 선택했던 것.
‘이야. 호세. 사람 잘 보네요?’
도진은 앞선 두 경기에서 박정환의 부담스러운 눈빛을 계속해서 염두에 두고 있었다.
‘우리가 자주 만난 사이도 아니고.’
오히려 처음 보는 사이였다.
처음 보는 사람을 계속해서 쳐다본다?
물론 이곳은 한국이 아니다.
한참 후배가 메이저리그에서 뛰는 게 대견스러워서 그럴 수도 있겠지.
‘박정환이 뿜어내는 눈빛은 그런 의미가 아니었지만.’
분노. 혹은 질투심.
그의 머리를 들여다보지 못해 정확히 알 수는 없었지만, 대충 이런 계열이었다.
그렇기에 추진력을 통해 몸을 벌떡 일으켜 세우는 슬라이딩을 선택했던 것이며.
그 때문에 둘의 몸이 엉키더니 중심을 잃은 박정환의 등은 바닥으로 떨어졌다.
쿵.
“크헉!”
박정환은 고통스러운 신음을 내뱉었다.
대비가 되지 않았기에 마치 야구 배트로 등을 후려 맞은 통증이었다.
반쯤 사경을 헤매는 그때.
익숙한 언어가 박정환의 고막을 간지럽혔다.
“허얼! 괜찮으세요? 선. 배. 님?”
박정환은 알았다.
지금 놈은 자신을 비꼬고 있다는 것을.
하지만 통증이 너무 심했던 지라 입만 뻐끔거릴 수 있을 뿐.
어떠한 단어도 입 틈을 통해 나오지 않았다.
“으으으.”
아프다. 너무 아프다. 박정환은 죽을 맛이었다.
어둠에서 벗어나겠다며 꾹 감은 눈을 서서히 떠보았다.
실눈 사이로 익숙한 얼굴이 자신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김도진. 그가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자신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하지만 그가 내뱉는 단어는 걱정과는 거리가 아주 멀었다.
“아이고. 이걸 어째. 너어무 아프시겠어요.”
“너, 너.”
박정환은 이를 바득바득 갈았다.
사람을 다치게 해놓고 저런 반응을 보이다니.
원망스러운 감정을 눈동자에 담고 그를 노려보았다.
도진은 박정환의 눈을 똑바로 쳐다보며 씰룩대는 안면 근육을 최대한 제어했다.
“그러니까. 왜 사람 다리를 아작 내려고 들어와요? 치사하게.”
박정환의 눈동자가 당황으로 물들자 도진은 예측이 맞았다고 확신했다.
‘진짜 밟으려고 했네.’
도진은 왜 처음 보는 사람을 해치려 드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
하지만 이유가 중요한가?
놈의 행동은 용서할 수 없었다.
‘그래도 어쩌겠냐?’
격투기도 아니고.
여기서 마운트 자세로 놈의 위로 올라가 면상에 주먹을 날릴 수도 없는 노릇이지 않은가?
그렇기에 도진은 계속해서 그를 비꼬았다.
“지가 무슨 격투기 선수야? 야구 선수가 야구로 말해야지.”
도진은 입에서 뿜어져 나오는 말과는 다르게, 표정은 여전히 근심 걱정이 가득했다.
카메라에 비쳐도 상관없게끔 말이다.
“실력이 없으면 실력을 키우세요. 사람 담가서 괜히 나라 망신시키지 말고요.”
때마침 코치와 선수들이 전부 2루 베이스 근처로 모여들었다.
도진도 더는 그를 도발하지 않았고 박정환은 충격이 꽤 심했는지 들것에 옮겨졌다.
‘쐐기를 박아볼까?’
도진은 실려 나가는 박정환을 스윽 쳐다보고는 서둘러 소매로 눈을 가리고는 어깨를 파르르 떨었다.
“헤이. 헤이. 울지마. 괜찮아. 사고였잖아!”
“그래. 이건 네 잘못이 아니야. 일단 송구부터가 위험했어. 누구도 너한테 뭐라고 하지 않을 거다.”
에인절스도 아닌 애스트로스 선수들이 도진을 감싸고 돌았다.
그는 어린 선수였기 때문이다.
미국인들이 아무리 이기적이라지만 적어도 메이저리는 동업자 정신은 투철했다.
무엇보다 이 장면에서 도진의 잘못은 없었으니 말이다.
뒤늦게 뛰쳐나오던 호세는 진작에 발을 멈추고 멀리서 도진을 지켜보기만 했다.
그는 혀를 날름거리며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와. 저 새끼 X나 무섭네.’
호세는 도진이 연기하고 있다는 것을 알았으니 말이다.
‘그래도 뭐. 다행이네.’
호세는 곧이어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어쨌든 도진은 조언을 흘려듣지 않았고. 덕분에 에인절스의 중심이 다치지 않았으니 말이다.
* * *
들것에 실려 나간 박정환은 2분 뒤에 정신을 되찾았다.
등허리를 짓누르는 통증은 여전히 고통스러웠지만, 어떻게서든 일어나겠다며 몸을 떨며 들것에서 벗어났다.
“아임 오케이.”
박정환은 어눌하게 대답했다.
거구의 몸이 180도로 꺾이면서 등부터 바닥에 떨어졌으니 교체되어도 이상하지 않은 장면이다.
‘젠장. 커뮤니티 반응이 예상되는군.’
더그아웃 의자에 걸터앉은 박정환은 심호흡을 고르며 아군 적군 가리지 않고 전부 뛰쳐나가 어수선한 그라운드로 시선을 돌렸다.
정확히는 도진을 눈동자에 담았다.
‘개 같은. 이걸 예상했다고?’
부끄러움이 전신을 감싸자 몸이 파르르 떨렸다.
자신의 잘못된 욕망이 상대에게 들켰을 때 그 치욕은 이루 말할 수 없었다.
박정환은 이내 어금니에 힘을 주었다.
‘이제는 경기 결과로 말하는 수밖에 없다.’
무너진 자존심을 지키려면 오늘 경기에서 안타 3개는 쳐야 체면을 되찾을 수 있었으니 말이다.
“저 계속 뛰겠습니다. 이제 괜찮아졌습니다.”
코치가 걱정스럽게 물었다.
“정말 괜찮나?”
“네. 지금은 완전히 괜찮습니다.”
박정환은 파르르 떨리는 손을 숨기고자 주먹을 꽉 쥐었다.
그 모습을 발견하지 못한 코치는 고개를 끄덕이며 박정환의 어깨를 도닥였다.
“그래. 힘들면 말해라. 언제든지 교체해 줄 테니까.”
“알겠습니다.”
충격이 가시지 않은 탓인지.
박정환은 첫 타석에서 삼진을 물러섰다.
하지만 이번만큼은 달랐다.
도진을 기필코 이기겠다는 분노는 그의 열등감을 씻어주었다.
* * *
[정환 팍. 다시 경기장 안으로 들어오네요.] [괜찮을까요? 충격이 심했을 텐데요?] [걱정되긴 합니다만, 뛰겠다는 의지가 강한 것 같습니다.] [예전부터 한국인들은 팀에 헌신하는 모습을 자주 보여 왔습니다. 아웃 카운트 하나를 위해 파울 타구를 처리하겠다고 몸을 날리는 경우도 다반사죠. 그 때문에 펜스에 자주 부딪히거나 하지 않았습니까? 그런데도 아무렇지 않다는 듯 경기에 임하고는 했습니다.] [저도 기억납니다. 한국인들은 좋게 말해서 악바리 근성이 있는 것 같습니다. 그런 부분들이 팀에 도움이 되잖아요?] [물론입니다. 저런 사소한 장면 하나하나가 팀의 활기를 불어넣어 주죠. 과연. 애스트로스는 반전의 계기를 만들 수 있을지.]에인절스는 1회 안타 한 개를 추가하며 도진의 득점으로 1:0으로 앞서나가고 있었다.
2회 들어 박정환이 타석에 들어섰고.
충격이 가시질 않았는지 첫 타석에서는 삼진으로 물러섰다.
그런데도 해설들은 오히려 칭찬했다.
[삼진이라는 결과는 좋지 못하지만, 뭔가 달라진 것 같지 않습니까?] [맞습니다. 그의 스윙이 달라졌습니다. 2차전까지는 솔직히 말해 메이저리그 레벨의 스윙이라고 보기 어려웠습니다만. 지금은 비록 삼진을 당했지만, 자신의 스윙을 가져갔어요!] [허허. 충격을 받으면서 기억이 돌아오기라도 한 걸까요? 앞으로가 기대되는군요.]해설의 예상대로 들어맞았다.
박정환은 두 번째 타석에서 당겨친 타구가 우익수 앞에 떨어지며 메이저리그 첫 안타를 신고했다.
그리고 이 한 개의 안타로는 부족했는지.
두 번째 타석에서도 떨어지는 슬라이더를 걷어 올려 펜스를 직격하는 2루타를 쳤다.
몸을 사리지 않는 박정환의 활약에 감동한 애스트로스 선수들도 함께 힘을 내주었다.
박정환의 2루타를 기점으로 6회까지 5:0이었던 스코어는 5:4가 되었다.
어느덧 8회 초.
애스트로스는 스윕승을 면하겠다며 최선을 다한 결과 2사 만루를 만들어냈다.
그리고 타석에는 6번 타자 박정환.
그는 어금니를 꽉 깨물며 타석에 들어섰다.
‘여기서 점수만 내면 된다.’
마지막에 이기는 자가 진짜 이긴다는 말도 있지 않던가?
‘앞서 두 번의 패배로 체면은 이미 구겼어. 그래도 자존심만큼은 지킬 수 있다.’
2사 만루.
한국에서 숱하게 경험해 본 찬스다.
상대가 메이저리거라고 한들 상관없다.
‘지금 이 감이라면 충분히 쳐낼 수 있어.’
여기서 기필코 타점을 올려 승리를 이끌겠다.
박정환의 눈동자가 의지로 활활 타올랐다.
이내 도진의 모습이 머릿속에 떠올랐다.
그를 인정했던 결과 앞서 두 번의 타석에서 좋은 결과가 나왔던 것.
‘그래. 놈은 나보다 나아. 네 실력과 재능은 진짜다.’
도대체 얼마나 큰 선수가 될지 도무지 감이 잡히지 않았다.
‘브레이크 없이 쭉쭉 커나간다면 내가 닿을 수 없는 곳까지 갈 수도 있겠지.’
이제는 아무래도 상관없다.
그때가 언제 올지는 아무도 몰랐기 때문이다.
그러니 오늘의 스포트라이트만큼은 내가 가져간다!
하지만 8회 초 2사 만루에서 박정환의 앞을 막아서는 이가 나타났으니.
에인절스 불펜의 문을 열고 나온 선수는 도진.
코리안 맞대결이 성사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