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baseball genius who chews up America RAW novel - Chapter (269)
미국 씹어먹는 야구 천재 269화(269/400)
해설들은 박정환의 퍼포먼스에 열광했다.
[와우! 도발! 도발이 나옵니다!] [야구에서 도발은 이따금 접할 수 있는 부분이긴 합니다만 팍의 도발은 그 궤를 넘어섰다고 볼 수 있습니다.] [어째서일까요?] [타격을 확신하는 저런 도발은 실패했을 시 리스크가 크기 때문이죠.] [동의합니다. 하지만 오늘 팍의 페이스는 결코 무시할 수 없습니다. 그는 이 승부를 승리로 가져가 팬들에게 자신을 각인시키려고 할 모양입니다. 무엇보다 팬들은 이런 재밌는 볼거리들을 좋아하지 않습니까?] [물론입니다. 저 역시도 심장이 뛸 만큼 흥분되니까요. 팍이…… 메이저리그에서 꾸준히 활약해 준다면 팬층이 단단히 생길 것 같은데요?] [팍을 제외. 야구 선수들도 이런 퍼포먼스가 팬들을 즐겁게 해준다는 걸 알고 있습니다만 그리 자주 볼 수 있는 장면은 아니잖아요?] [감정의 골이 깊어져 싸움으로 번질 수도 있기 때문이죠.] [그런데도 팍은 도발했어요. 왜 그랬을까요?] [둘은 먼 나라 미국 땅으로 날아온 한국인이니까요. 반갑기도 할 테고. 도발해도 부담이 적을 테죠.] [요즘 메이저리그도 배트 플립 같은 세레모니성 퍼포먼스가 많이 완화되긴 했지만, 오늘 같은 장면을 기존 메이저리거들이 배웠으면 합니다. 팬들의 환호가 들리지 않습니까? 여기는 에인절스 홈입니다! 그런데 저들은 적을 향해 열광하고 있어요!]그런데 그때.
도진에게서 예고 삼진이 나왔다.
팬들의 함성은 하늘을 가득 메웠고, 해설의 입에서는 헉! 소리가 나왔다.
[제, 제가 지금 잘못 보고 있는 겁니까?] [와우. 한국 선수들이 얌전하다는 말은 거짓으로 판명된 것 같습니다. 무엇보다 킴은 저희가 알던 모습이 아니에요!] [일반적인 예고 삼진이 아닙니다. 그립을 보십쇼! 저건 패스트볼 그립입니다.] [그러고 보니 킴이 팍을 상대할 때 인터벌이 굉장히 빨랐죠. 무엇보다 호세는 사인도 내지 않았어요. 애당초 패스트볼 하나만으로 팍을 잡겠다는 무언의 의미가 담겨 있지 않았을까 싶습니다!] [이 두 한국 선수에게 존경심을 표합니다! 감사합니다!]팬들이라고 다를까?
SNS, 커뮤니티. 다 난리가 났다.
피부, 머리카락 색도 다른 인종이 미국이라는 홈 그라운드에서 팬들을 열광시키는 퍼포먼스를 보여주었으니 말이다.
-Holy Shi*. 내가 지금 뭘 보고 있는 거야!
└미쳤다! 미쳤어! 누가 야구가 재미없대!
└누가 이기든 상관없다. 그저 고마울 뿐.
└다른 선수들도 배워야 해. 간단한 동작 하나지만, 덕분에 이렇게 흥미진진해지잖아?
└인정한다. 요즘 아무리 세레모니성 퍼포먼스를 보여주는 선수들이 많다고 해도, 이건 차원이 달라! 코리안! 사랑한다!
미국보다 더 열광하는 나라가 있었으니.
한국 커뮤니티는 그 어느 때보다 글이 폭발적으로 생성됐고, 그에 달리는 댓글도 만만치 않았다.
-나라 망신 아니냐?
라고 생각하는 병신들이 있지는 않겠지?
└와. 소름 돋았어. 팔에 닭살 돋은 거 보이냐?
└보이겠냐? 근데 오늘만큼은 한국인으로서 부끄러움 한 점 없다. 이게 진정한 한국인이지.
└이거지! 이게 세계 최고 무대에서 활약하는 한국인에게 바라는 모습이지!
└그동안 메이저리그에서 뛰는 한국인들은 너무 얌전했어. 배트 플립에 일가견 있는 선수들도 메이저리그 가면 그런 퍼포먼스를 한 번도 보여주지 않았잖아?
└인정. 묵은 때를 한 번에 벗겨주는 기분임.
└그나저나 누가 이길까?
└누가 이기든 뭔 상관이냐?
└난 박정환.
└정환 팍! 한 표.
└김도진!
└먼저 도발해 준 박정환을 칭찬하긴 하는데, 김도진도 장난 아니네? 대놓고 직구 던지겠다고 한술 더 떠서 도발한 거 아니냐.
└엥? 직구 그립이었음?
└직구 그립임.(사진)
└참고로 1, 2구 전부 직구였음.
└박정환 새파랗게 어린애한테 개 무시당했네?
└ㄹㅇㅋㅋ. 근데 개 멋있음. 여기서 구종까지 알려줬는데 삼진을 잡는다? 앞으로 김도진 팬한다.
└난 종신.
└나도.
└박정환 데뷔 때부터 쭉 팬인데. 김도진이 이기면 바로 갈아탄다.
└구종까지 알려줬는데 못 치면, 실력 차이가 심각하다는 거지. 갈아타도 인정한다.
* * *
꿀꺽.
박정환은 도진의 행동에 몸이 얼어붙어 마른침을 꼴깍 넘겼다.
‘예고 삼진이라고?’
그의 동공이 비바람에 휘몰아치는 파도처럼 크게 흔들렸다.
전혀 예상할 수 없는 행동이었으니 말이다.
‘저 어린놈이……’
한국인이 얌전하다는 걸 모를까?
자신 역시 한국에서는 다양한 세레모니를 해 왔지만.
이 낯선 땅에서는 그럴 용기가 나지 않았다.
그리고 그래서도 안 됐다.
괜히 상대를 도발하는 아시아인으로 낙인찍힐 수는 없었으니 말이다.
하지만 지금은 도진에게 향하는 스포트라이트를 가져올 유일한 기회.
일면식 하나 없지만, 상대는 한국인이며 어쨌든 자신보다 한참 후배였다.
얌전하게 당해줄 줄 알았는데 예측을 훤히 빗나갔다.
‘오히려 한술 더 뜬다고?’
도진의 예고 삼진에 팬들의 함성이 경기장을 덮었다.
앞서 자신이 먼저 도발했을 때의 함성은 이미 묻혀버린 지 오래.
때문에 박정환은 당황했다.
‘다 가져가겠다는 건가?’
실력. 세레모니. 팬들의 관심.
자신은 무엇하나 도진에게 앞서는 게 없었다.
‘이래서는 안 된다.’
제대로 무시당하고 있는 지금 완벽히 박살을 내버려야 한다.
하지만 방법이 떠오르지 않는다.
‘칠 수 있을까?’
박정환은 이 승패에서 지면 잃을 것이 너무 많았다. 그렇다고 착각했다.
곧이어 도진의 발을 뗀 왼발과 공을 던지기 위한 몸이 힘차게 튀어 올랐다.
빠르게 손을 떠난 공은 아우성을 내지르며 공중을 갈랐고, 동시에 박정환의 배트가 나왔다.
하지만 애석하게도.
퍼억.
미트에 폭탄 터지는 듯한 소리만이 경쾌하게 울릴 뿐이었다.
박정환은 벌어진 턱을 다물지 못했다.
그 감정을 그대로 떠안고 도진을 힐끗 쳐다봤다.
졌다. 완패다. 치욕스러워 뒈지겠다!
이런 불순한 감정이 전신을 지배한 박정환은 결국 고개를 푹 숙였다.
곧이어 울려 퍼지는 심판의 목소리.
“스트라이크 아웃!”
심판의 콜에 호세는 마스크를 바닥에 내팽개치고는 도진에게 다가 주먹을 내밀었다.
도진은 호세가 내민 주먹을 두 번 툭툭 치며 펼친 손가락을 꿈틀댔다.
세이브를 올릴 때마다 세레모니 성 핸드 쉐이크였다.
세레모니를 끝낸 호세가 실실대며 물었다.
“어이. 도대체 뭘 한 거냐?”
“비밀이요.”
“뒈질래?”
호세는 의미를 대충 알고 있었다.
그런데도 도진이 직접 말해주길 바랐다.
도진은 뒤통수를 벅벅 긁었다.
막상 말하려니 부끄러웠기 때문이다.
“도발이었지?”
“네.”
퍼억.
답답했던 호세는 도진의 등짝을 후려쳤다.
“그러니까. 뭐였냐고!”
도진은 결국 못 이기는 척 나지막이 속삭였다.
“예, 예고 삼진이요.”
호세의 치솟은 입꼬리가 만족스럽다는 감정을 가득 담았다.
도진은 호세의 시선을 외면하고자 고개를 휙 돌렸다.
“이야. 우리 애송이. 많이 컸네? 대놓고 도발도 할 줄 알고 말이야.”
“그만 놀려요.”
“놀렸냐?”
“그런 말투였는데요?”
“아닌데?”
도진은 입술을 툭 내밀었다.
역시 호세와의 말싸움에서 이기는 건 불가능했으니 말이다.
언젠가는 한번 이기겠지. 라고 생각하는 그때.
“괜찮은데?”
“아 좀! 네?”
도진은 대답으로 준비해 뒀던 단어가 민망해지자 고개를 갸웃했다.
“괜찮았다고.”
“뭐, 뭐가요.”
“도발 말이야.”
도진의 눈이 휘둥그레 커지자 호세는 도진의 귀에 속삭이듯 말했다.
“너. 그거 자주 써라.”
“엥?”
“뭔 엥이야?”
“어떻게 자주 써요. 말이 되는 소릴 하세요!”
“뭐가 문젠데?”
“계속 도발하라는 게 말이 돼요?”
호세는 단호했다.
“네 시그니처로 만들면 되잖아? 너 솔직히 말해서 무색무취야!”
도진은 미간을 찡그렸다.
“말 심하게 하시네.”
호세의 목소리가 더 커졌다.
“틀린 말 했냐? 솔직히 말해줘? 팬들이 너를 좋아하는 건 맞지만, 아마 이렇게 볼걸?”
야구 열심히 하고 잘하지만, 재미는 없는 선수.
도진의 눈초리가 가늘게 찢어졌다.
“그건 진짜 상천데.”
“상처지만 사실이다.”
“야구 선수가 야구만 잘하면 그만이잖아요.”
“야구 선수니까 야구만 잘해서는 안 되지. 네 연봉 팬들이 주는 거야.”
도진은 쩝 입맛을 다셨다.
“어휴. 이 나라는 진짜 적응이 안 된다. 팩폭이 너무 심해요.”
“그래서. 하기 싫다고? 이건 네 시그니처로 딱이야. 나를 믿어라.”
“안 돼요. 계속 이러다 싸움 나요.”
“안될 건 뭐 있냐? 넌 솔직히 투구폼도 정석이라 재미없잖아.”
“투구폼이랑 이거랑 뭔 상관이에요.”
“예를 들어줄게. 크레이그 킴브렐이란 선수 아냐?”
“네. 독수리?”
크레이그 킴브렐.
투구 전에 독수리 자세를 취하며 자신만의 시그니처가 확실한 선수였다.
“그래. 그게 바로 시그니처야. 누가 봐도 딱 알잖아?”
“예고 삼진은 그거랑 다르게 도발이라니까요?”
“그냥 기합이라고 생각해. 자주 쓰라는 말은 하지 않을게. 대신 언젠가는 쓰일 날이 올 테니 조금씩 적응해 두라고.”
“이걸 또 언제 써요?”
“예를 들어. 상대의 멘탈을 부숴야만 할 때?”
“그러다 싸움 나면 나만 손해예요.”
“아냐. 한번 생각해 봐라. 투수가 삼진 잡고 포효하는 건 많이 봤지?”
“당장 어제만 해도 봤죠.”
위기를 모면한 투수는 기쁨을 주체하지 못해 포효를 내지르는 건 일상이다.
“그럼 배트 플립은?”
“요즘엔 확실히 완화되긴 했죠.”
“그렇지? 그럼, 일단 그런 선수들을 상대로만 해! 넌 포효나 배트 플립 대신 예고 삼진 하면 되잖아? 그런 퍼포먼스는 팬들이 좋아할 거야.”
도진은 설득되고 있었다.
“하. 묘하게 일리 있네.”
“날 믿어라. 쓰임새는 있을 거다. 달고 살 필요는 없지만, 적재적소에 해라.”
괜찮으려나?
도진은 고개를 절레절레 젓고 고민을 그만하기로 했다.
‘좋아할 만하기는 해.’
아까 팬들의 함성이 들려오지 않았던가?
지금까지 메이저리그에서 들어보지 못한 환호였다.
월드시리즈 우승을 해도 그만큼의 환호가 들려오려나?
도진은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호세의 말마따나 요즘 배트 플립을 하는 선수들은 꽤 많아. 팬들에게도 각인되어 있기도 하고.’
그들은 불문율이고 나발이고 팬들이 원하는 것을 선보이는 선수들이었다.
‘그래. 까짓것 해보지 뭐. 그나저나.’
도진은 애스트로스 더그아웃을 힐끗 쳐다봤다.
눈동자에 패닉을 담고 있던 그는 반쯤 혼이 나가 있었다.
‘아까 날 담그려고 했던 플레이에 대해 사과를 바라기엔 힘들겠네. 하긴. 사과하는 것도 모양이 빠지겠지.’
그래도 다음에는 이런 일이 일어나지는 않겠지.
도진은 아쉽지만 넘어가기로 했다.
공론화해도 확증이 없었기에 얻어갈 이득은 없다고 봤다.
오히려 상대와의 관계만 더욱 악화하겠지.
‘뭐, 결과적으로 내가 이겼으니 됐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