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baseball genius who chews up America RAW novel - Chapter (274)
미국 씹어먹는 야구 천재 274화(274/400)
“스트라이크 아웃!”
세 타자 연속 삼진.
에인절스 배터리가 1회에 이룬 결과였다.
더그아웃으로 향하던 선수들은 잘했다는 의미에서 상우의 등짝을 한 대씩 툭툭 쳤다.
상우는 감사합니다! 연발하며 활짝 미소를 지었다.
그리고 그가 더그아웃 입구에 다다랐을 때 두 팔 벌려 환영하는 이가 있었으니.
“친구야. 환영한다.”
상우는 도진을 와락 안았다.
“고맙다. 정말 고맙다.”
“뭐가 고맙냐? 네가 잘한 건데.”
“그런 게 있어 임마.”
“어쨌든. 확실히 성장했네.”
상우의 미소에는 진심이 담겨 있었다.
제일 친한 친구이자 롤모델이나 다름없는 도진에게서 진심 섞인 칭찬이 들려와서 그랬다.
한편, 메이저리그 데뷔라 긴장 너무했던 나머지 목이 바짝바짝 타들어 갔던 그레그는 스포츠음료를 벌컥벌컥 들이켰다.
그러고는 두 한국인 선수를 시야에 담았다.
자연스레 미소가 지어졌다.
하지만 이내 어금니를 꽉 깨물었다.
‘잘했다. 브라더. 하지만 그건 그거고.’
메이저리그 데뷔전이다.
동생이라고. 아직 멀었다고 생각한 친구가 훌륭하게 1회를 마무리했다.
말 그대로 너무나도 훌륭했다는 단어밖에 떠오르지 않았다.
‘만약 1회에 내게 타구가 왔다면.’
확실히 처리할 수 있었을까?
그레그는 속으로 고개를 저었다.
불가능했을 테니까.
그저 서 있는 것만으로도 중압감에 눌려 몸이 잔뜩 얼어붙어 있었다.
그러니 단순한 타구에도 에러가 나왔을 테지.
‘하. 부럽네.’
한국인들은 원래 저런가?
긴장 따위는 안 하는 거야?
‘그럴 리가 없지.’
상우와 자신은 닮은 점이 있다.
바로 김도진이라는 선수를 잘 안다는 것이다.
친구이자 동료지만 닮고 싶은 선수 중 한 명만 뽑으라면 고민 없이 그의 이름을 내뱉을 것이다.
‘한마디로 그냥 대단하지.’
처음에는 열등감을 느꼈다.
규격 외의 선수를 옆에 두었을 때의 심정은 당사자 말고는 모른다.
‘한없이 작아질 뿐.’
하지만 지금은 아니다.
도진을 옆에서 봐온 사람이라면.
그의 노력만큼은 절대 깎아내릴 수 없는 법.
덕분에 그와 함께 훈련하며 열등감까지 극복했다.
‘그러니 이제는 나도 너와 나란히 서고 싶다.’
상우도 이런 마음가짐으로 메이저리그 데뷔라는 숨도 제대로 쉴 수 없는 무대에서 완벽히 극복해 낸 거겠지.
안다. 아직 설레발인 것을.
경기가 끝날 때까지 실수가 나오지 말라는 법은 없다.
‘하지만 이미 브라더는 전역에 제 잠재력을 알렸잖아?’
이것만으로도 구단은 그를 키울 가치가 있다는 것이다.
‘그러니 나도. 잘할 수 있는 걸 해야겠지.’
타석에서 죽 쑤더라도 절대 기죽지 않을 것.
그레그의 표정이 후련해졌다.
지금까지 메이저리그를 밟은 이상 성적을 내야만 한다는 부담감에 몸이 얼어붙었지만, 지금은 아니다.
상우가 몸소 보여줘서 그랬다.
‘내기에서 이미 졌어. 그래도 상관없지. 브라더니까.’
고맙다. 덕분에 시멘트처럼 단단하게 굳었던 몸이 풀렸다.
그러니 자신 있는 수비에서만큼은 최선을 다하겠다.
에인절스는 1회 점수를 내지 못했다.
그렇게 찾아온 2회 초 수비.
따-악!
좌타자인 4번 타자가 몸쪽 투구를 강하게 당겨쳤다.
그레그는 1, 2루 간을 꿰뚫겠다며 굉음을 내지른 타구에 즉시 몸을 움직였다.
1루수의 다이빙 캐치는 실패로 돌아갔지만, 그레그는 포기하지 않았다.
‘닿아라!’
바운드 된 타구가 정확히 그레그가 뻗은 글러브 안으로 들어갔다.
그 즉시 그레그는 발이 다소 느린 주자를 힐끗 쳐다봤다.
루에 다다르려면 절반밖에.
아니 절반이나 남아 있었다.
방금 다이빙 캐치로 배가 땅에 닿는 바람에 통증이 이만저만이 아니다.
그런데도 그레그는 솟구치는 아드레날린으로 통증을 억누르며 양 손에 힘을 주어 몸을 벌떡 일으켰고.
완벽한 송구를 뿌렸다.
“아웃!”
안타가 될 뻔한 타구를 호수비로 막았다.
에인절스 선수들은 손바닥으로 글러브를 치며 주체할 수 없는 기쁨을 표현했다.
* * *
“나이스! 나이스 수비!”
도진의 목소리가 떠나갈 듯이 울려 퍼졌다.
편히 쉬려고 했던 초기 목적과는 상반되는 행동이지만 상관없었다.
친구들이 완성된 기량을 선보이는데 어찌 가만히 앉아 있을 수 있겠는가.
어느덧 더그아웃 난간에서 잘했다고 소리를 지르는 도진의 옆으로 호세가 다가왔다.
“편히 쉬라니까.”
“어떻게 쉬어요. 경기가 이렇게 재밌는데.”
호세의 광대가 꿈틀댔다.
“분명히 30분 전에는 아주 울상이었는데. 이중인격이 따로 없네.”
에휴. 도진은 한숨을 내쉬었다.
“제가 잘못 생각했어요.”
“그래도 반성은 빠르네.”
“당연히 반성해야죠. 제가 친구들을 너무 저평가했어요. 그런 평가를 당할 이들이 아닌데.”
도진은 순간 울상이 되었다.
호세는 괜찮다며 도진의 등을 도닥였다.
“반성이 빠른 건 좋은 거야. 발전 가능성이 있다는 거니까.”
“위로 감사해요.”
“위로라기보단 사실이지.”
“그나저나 예상보다도 훨씬 잘해주고 있어서 나 역시도 기분이 좋아. 겨울에 함께 훈련한 친구들이 벌써 이렇게나 성장하다니. 그때는 코흘리개였는데 말이야. 난 적어도 저들이 메이저리그 무대를 밟으려면 3년은 더 걸릴 줄 알았어.”
도진은 묵묵히 고개를 끄덕였다.
“솔직히 저도 그래요. 제가 저 둘과 마지막 훈련을 했을 때가 겨울이었으니까요. 그때 기량만 생각해서 메이저리그에서 통하지 않을 줄 알았어요.”
“뭐. 아무렴 어때. 결국 에인절스에 날개가 달린 건 희소식이잖아?”
도진은 입꼬리가 치솟았다.
“맞아요. 없던 힘도 샘솟는 것 같아요.”
“까불지 마라. 쉴 때는 좀 쉬어.”
한결 마음이 편해진 도진은 걸친 난간에서 손을 뗀 후 다시 더그아웃 의자에 몸을 맡겼다.
호세는 도진이 이제는 진짜로 마음 편히 쉴 수 있다고 생각했기에 이제는 그라운드를 지키는 상우와 그레그에게 시선을 돌렸다.
‘그나저나. 진짜 잘해주네.’
호세는 상우, 그레그가 느끼는 감정을 알고 있었다.
이미 프로 생활을 15년이 더 했기 때문에 모르는 게 더 이상했다.
메이저리그는 괴물들만 모이는 곳이다.
그런 괴물들 사이에서도 천재는 있다.
호세는 그런 천재들과 수없이 마주했고.
‘나도 한때는 좌절에서 벗어나지 못했지.’
하지만 그걸 극복할 수만 있다면?
결국 메이저리그에서 살아남을 수 있게 되는 것이다.
‘도박이긴 했는데. 도박 수가 통했어.’
도박 수는 언제나 하이리스크가 걸리는 법.
대신 통할 때는 리턴도 크다.
지금 에인절스 선수들의 눈빛은 이글이글 타오르고 있었다.
상우와 그레그의 활약 덕분이었다.
‘어린 선수들이 저렇게 활약해 주는데 타오르지 않고 배기겠어?’
15년 차가 넘는. 어쩌면 이제는 메이저리그가 질릴 법한 자신도 몸이 근질근질해 미칠 지경이었으니까.
* * *
점수는 0:0으로 팽팽한 균형을 유지하는 가운데 어느덧 8회 말이 되었다.
[숨 막히는 투수전이 펼쳐지고 있습니다. 솔직히 말씀드리자면 오늘 경기 투수전이 나오리라고는 생각하지 못했습니다.] [그렇습니다. 가디언스의 방망이는 요즘 뜨겁죠. 탄탄한 기존 선수들 사이에 신인 선수들도 좋은 모습을 보여주고 있으니까요. 대표적으로 류타가 있죠.] [그는 신인왕을 경쟁하는 선수 중 한 명이고 일본에서의 성적을 바탕으로 잘해주리라 생각했지만, 역시나 잘해주고 있어요.] [하지만 최근 들어 매번 안타를 치고 나갔던 그가 이번 시리즈에서는 무안타에 그치고 있습니다.] [타자는 매번 안타를 칠 수는 없습니다. 좋았던 컨디션이 하루아침에 바닥을 향할 수도 있죠. 하지만 오늘 류타가 허덕이는 이유는 컨디션 때문이 아닙니다. 그의 스윙은 완벽합니다만, 공을 맞히지 못하고 있습니다.] [이유가 뭘까요?] [오늘 마스크를 쓴 포수 때문이라고 봅니다. 리. 로스터가 확장되며 메이저리그를 밟아 오늘 데뷔전을 치렀지만, 그가 보여주는 경기의 내용은 전혀 믿기지 않습니다.] [일단 굉장히 공격적인 피칭을 유도하는 것처럼 보이죠?] [그렇습니다. 투수가 공격적으로 피칭했을 때 좋은 점을 나열하라면 밤을 새워야 합니다. 하지만 그러기 쉽지 않죠. 메이저리그 타자들은 파워가 있으니까요. 자칫 잘못했다가 대량 실점으로 이어질 수도 있습니다.] [공격적인 피칭은 메이저리그 1선발급은 되어야 자유자재로 구사할 수 있죠. 그런데 지금 레이날도는 평소와 다르게 매우 공격적이에요! 왜일까요?] [이유를 좀 고민해 보면…… 두 가지로 좁힐 수 있습니다. 하나는 확장 로스터에 포함된 포수에 대한 정보가 타자에게 없다. 정보가 없는 선수는 언제나 상대하기 어려운 법이죠.] [그럼 다른 하나는요?] [솔직히 두 번째 이유는…… 만약 이 이유라면 그는 차후 메이저리그를 대표하는 포수가 될 수도 있습니다. 예를 들어…… 후안 라미레즈처럼이라든가?] [와우 MVP가 소환됐네요?] [네. 물론 아직은 너무 이릅니다. 하지만 저희가 아는 후안 라미레즈의 장점은 뭐가 있을까요?] [투수, 수비 그리고 리드. 무엇하나 빠짐없는 선수죠.] [무엇보다 그는 굉장히 똑똑한 선수죠. 혹시 그 인터뷰 기억하시나요?] [모든 선수의 데이터를 머릿속에 입력 해두는 능력 말씀이군요.] [맞습니다. 데이터를 머릿속에 그냥 입력 해두는 것도 아닌. 타자의 강점과 약점까지 전부 알고 있죠. 거기에 선수가 어떤 구종에 약한지까지 절대 까먹지 않아요.] [저도 그 인터뷰를 들었을 때 그 정도는 해야 포수 MVP가 되는구나 싶었죠.] [어쨌든 리의 공격적인 피칭은 그런 데이터가 기반이 되지 않는다면 그저 초심자의 행운일 뿐이겠죠. 앞으로 더 지켜보면 그저 운이었는지 아닌지 알 수 있을 겁니다.] [그렇다고 이 투수전이 오로지 배터리의 힘으로만 나올 수 있는 건 아니잖아요?] [네. 야수들의 수비도 따라줘야 하죠. 하지만 오늘 라인업에 이름을 올린 그레그 역시 메이저리그 데뷔전이지만, 데뷔전 같지 않은 좋은 활약을 보여주고 있어요.] [깔끔하고 군더더기 없는 수비. 벌써 호수비를 3개나 했습니다. 죄다 안타성 타구였잖아요!] [그렇습니다. 그래서 에인절스의 장래가 밝다고 생각합니다. 물론 아쉬운 점도 있습니다. 타석에서는 아직 결과를 내지 못했으니까요.]2안타에 1볼넷밖에 얻어가지 못한 에인절스.
8회 7번 타자 라이언이 타석에 들어섰지만, 아쉽게도 분위기를 뒤엎는 모습을 보여주지 못하며 범타로 물러서게 됐다.
앞서 그가 범타로 물러서기 전.
대기 타석에 있던 상우는 그레그와 대화를 나눴다.
“그레그. 어떻게든 출루하자.”
“하고 싶지 임마. 그게 쉽냐?”
“어렵긴 해.”
투수들이 던지는 공은 마이너리그에서는 접해보지 못한 공.
힘이며 속도며 로케이션이며.
전부 우위에 있었으니까.
“그래도 해야만 해.”
“출루하면 해결해 주냐?”
“어.”
“누가. 네가? 차라리 나를 믿겠다. 애당초 나보다 앞 타순인 놈이.”
상우는 버럭 소리를 질렀다.
“누가 내가 한대?”
상우는 더그아웃 안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그레그도 상우의 시선을 따라 등 뒤를 힐끗 쳐다봤다.
그곳엔 감독과 대화를 나누는 도진이 모습이 포착됐고.
안광이 활활 타오르는 눈동자는 출전을 예고하고 있었다.
“출루하면 대타로 나온 도진이 우릴 기필코 홈으로 불러줄 거야.”
그레그는 눈동자에 섞여 있던 의심을 서둘러 거뒀다.
“그래. 이왕 이렇게 된 거 오늘 첫 득점도 올려야지.”
상우와 그레그의 눈동자에 이채가 서렸다.
나가기만 한다면 도진은 불러들여 줄 거다.
그런 믿음은 자신감이 되어 돌아왔고.
상우는 4구 끝 노리는 공을 제대로 받아치며 중전안타를.
그레그는 초구부터 휘둘러 우전 안타를 기록했다.
그리고 역시나.
그들의 예상이 들어맞았으니.
도진은 윌리엄을 대신해서 타석으로 들어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