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baseball genius who chews up America RAW novel - Chapter (276)
미국 씹어먹는 야구 천재 276화(276/400)
상우는 도진의 평소다운 모습에 미간을 찌푸린 채 마운드를 방문했다.
“어이.”
“왜.”
“뭐야. 긴장 안 돼?”
“글쎄.”
상우는 푸념했다.
“야. 여기서 한 대 맞으면 우리 골로 가는 거 모르냐?”
“그럴 것까지 있나.”
“왜 없냐? 코리안 배터리가 메이저리그에서 첫선을 보이는 자리다. 그리고 넌 저놈과 신인왕 경쟁도 하고 있지. 거기에 한일전이야!”
“알아.”
“알아? 알아아아? 뭐 대답이 그리 싱겁냐? 젠장! 나만 떨려?”
도진은 피식 웃었다.
상우는 저 웃음의 의미를 알았다.
“개 같은 놈. 또 나한테 떠넘기네.”
“그건 미안하게 생각한다.”
“이제 놀랍지도 않다. 어쨌든. 이제 현실로 좀 돌아와 보자. 나는 메이저리거가 아니야. 알지?”
“뭐. 알긴 알지.”
상우는 에휴! 한숨을 쉬었다.
“젠장. 더럽게 솔직하네. 당분간 메이저리그 무대에서 뛰는 마이너리거지. 어쨌든 너무 기대하지 말라는 거다.”
“기대. 하는데?”
“진짜 개자식이네? 난 호세처럼 뛰어난 리드 능력을 갖추지도 않았고, 아돌니스만큼 타격이 뛰어나지도 않아. 거기에 지금 상대는 일본의 홈런왕 출신. 알잖아. 일본 야구 꽤 하는 거.”
도진은 묵묵히 고개를 끄덕였다.
“잘 알지.”
“너는 나를 믿는다고 했지만, 내가 나를 못 믿어서 그래.”
“첫날엔 손쉽게 요리했잖아.”
“그건 첫날이라서 그런 거고. 이번이 두 번째 만남이야. 놈이 쉽게 당해줄 것 같냐?”
야구에서는 타순이 2바퀴째 들어서는 순간 타자가 해볼 만하다는 말이 나온다.
그만큼 공이 눈에 익은 것도 있지만, 배터리의 패턴을 슬슬 파악하기 때문이다.
배터리도 그에 맞서 패턴을 다양화하지만, 지금은 상황이 달랐다.
안타 하나면 경기가 뒤집힐 수도 있는 위기였으니까.
“난 이미 저놈 잡겠다고 첫날 경기에서 여러 패턴을 보여줬어. 놈도 나에 대한 데이터가 조금은 쌓였겠지. 그나마 다른 점이 있다면…….”
상우는 도진을 힐끗 쳐다봤다.
말을 흐렸던 정답이 상우의 눈동자에 비쳤다.
“젠장. 그래. 그 다른 점이 좀 크긴 하네.”
투수가 도진이었으니까.
이놈이 긴장하지 않는다는 것.
긍정적인 조건이다.
지지 않겠다는 의지를 내뿜는 도진은 단 한 번도 져본 적이 없었으니까.
“내려간다. 리드는 내 방식으로 할 테니 기대 말고.”
“그래서 믿는 거야.”
“늦었어. 처음부터 자신감 좀 심어주던가.”
마운드에 홀로 남은 도진은 돌아가는 상우의 뒷모습을 시야에 담았다.
‘진짠데. 이걸 안 믿네.’
상우와 배터리를 이뤄서 져본 적이 없었기 때문이다.
‘난 네 노력을. 그리고 네가 가진 능력을 믿는다.’
겉으로는 잘 드러나지 않지만.
상우 역시 눈을 뜬 순간부터 잠이 들 때까지 타자들과 수 싸움을 계속해서 한다.
다양한 시뮬레이션을 머릿속에 그려놓고 볼 배합을 연구해 왔다.
‘뭣보다 혼자 고민하지 않고 주위 사람들에게 질문도 많이 했었지.’
그를 믿지 못한다면 패배할 테고.
믿으면 이길 것이다.
3연속 패스트볼을 던지라고 해도 도진은 따를 준비가 되어 있었다.
* * *
더그아웃에서 경기를 지켜보던 벨 조이스가 호세에게 물었다.
“호세. 어떻게 될 것 같냐?”
호세는 쉽게 정답을 내기 힘든 질문에 아랫입술을 혀로 핥았다.
“글쎄.”
벨 조이스는 피식 웃더니 아돌니스에게 물었다.
“아돌니스. 누가 이길 것 같아? 대답하기 힘들면 그냥 생각나는 대로 말해도 돼. 예를 들어 볼 배합이라던가.”
아돌니스는 눈초리를 가늘게 찢었다.
“하. 어렵군. 머리로는 유인구로 빼야 한다고 생각하지만, 9회 1사 2루. 초구 스트라이크를 잡지 못하면 배터리가 끌려갈 가능성이 높아.”
“그래서?”
“킴의 패스트볼은 훌륭하다. 하지만 지금 힘이 빠진 그의 패스트볼이 예전 같다고 볼 수 없어. 이런 문제들까지 고려하면 패스트볼로 초구 스트라이크를 가져가긴 힘들어.”
“그럼 볼 하나 빼겠다는 거네?”
“아니. 패스트볼을 선택할 거다.”
“왜?”
아돌니스는 복잡한 머릿속을 정돈했는지 술술 대답했다.
“어떻게서든 카운트를 잡아야 하니 역의 역으로 가는 그림이 나을 것 같아.”
“그러다 맞으면?”
“지겠지. 지금 킴의 공을 받아보지 못해 그의 패스트볼 위력이 어느 정돈지 가늠할 수 없어서 나온 대답일 뿐이니 너무 깊게 파지 마.”
벨은 다시 호세에게 물었다.
“넌 어때?”
“아돌니스 말에 동의한다. 하지만 패스트볼로 카운트를 잡을 것인지 묻는 거라면 잘 모르겠다. 나 역시도 지금 애송이의 위력이 어느 정돈지 몰라. 그리고 너도 알다시피 상대는 좋은 타자다. 패스트볼에 강점도 있고.”
“결국 카운트를 잡긴 해야 하는데 구종은 모르겠다는 거네? 킴은 투 피치 투수야. 패스트볼 아니면 체인지업밖에 없고.”
“그래서 힘든 싸움이지.”
“예상대로라면 질 확률이 높겠군.”
아돌니스와 호세는 동시에 고개를 끄덕였다.
지금 도진의 상태라면 류타가 이길 확률이 높았다.
그도 그럴 것이 조금 더 휴식을 취해야 하는 저 멍청이는 자진해서 마운드에 등판했기 때문이다.
“이길 방법이 있긴 해.”
벨은 호세가 넌지시 던진 혼잣말을 놓치지 않았다.
“뭔데?”
“한일전이라는 관계. 한국과 일본인들은 없는 힘도 발휘한다고 하더라고.”
“확실히. 들어 본 적 있어. 하지만 그게 근거가 되나?”
“그게 아니라면 수 싸움에서 상대를 압도하면 돼.”
“제일 어렵네. 상대는 일본 프로 무대를 휩쓸고 온 선수다. 하지만 킴과 리는 아니잖아? 데이터도 적고 경험도 적고. 그냥 모든 면에서 부족하지.”
“어. 아마 내가 마스크를 썼다면 이기지 못했을 거다. 아돌니스도 이 상황에서 마스크를 쓰는 건 원치 않았을 거고. 대신.”
호세의 눈동자에 상우의 모습이 비쳤다.
“지금 포수는 우리가 아니야.”
벨 조이스도 상우에게 시선을 돌렸다.
“킴과 동갑내기 친구지. 잘 맞겠지만 경험은 적어.”
“대신 패기는 있지.”
“패기만으로 상대를 잡는다고? 호세. 여기 메이저리그다.”
“아오. 시끄러워. 그냥 결과나 지켜보자고.”
벨 조이스는 피식 웃었다.
아돌니스도 어이없다는 듯 입꼬리를 올렸다.
지금 훈수밖에 둘 수 없어서 그랬다.
포스트시즌에 진출하고 싶었기에 도진이 이기길 희망했다.
호세도 미소를 지어 보이더니 이내 표정을 굳혔다.
‘벨. 아까도 말했지만 나와 아돌니스가 마스크를 썼다면 졌을 거다. 하지만 지금은 그보다 확률이 훨씬 높아. 저 포수. 생각보다 잘하거든.’
그는 메이저리그에 그 어떤 포수보다 도진의 기량을 잘 살릴 수 있는 포수였으니까.
그렇기에 도진이 지금 아무리 힘이 빠져 있다고 한들 상관없었다.
‘나도 끌어내지 못한 애송이의 100%를 볼 수 있을지도.’
* * *
타석에 들어선 류타는 장갑을 낀 손바닥이 흥건히 젖어 있었다.
‘젠장 사방이 지랄이네.’
앞으로도, 뒤로도 자신을 막아서는 두 한국인 때문이었다.
하지만 류타는 이내 배트를 움켜잡았다.
물러설 곳이 없다면 자신을 막는 상대를 무너뜨리면 그만이었으니 말이다.
류타는 곁눈질로 쪼그려 앉아 있는 상우를 힐끗 쳐다봤다.
‘이 포수는 상당히 공격적이야. 그리고 투수 역시…….’
메이저리그에서 둘째가라면 서러운 공격적인 투구를 선보이는 투수였다.
100마일을 넘나드는 패스트볼과 체인지업.
단 두 구종만을 들고 좋은 성적을 내고 있었으니까.
생소해서 그럴 수도 있다.
메이저리거들은 지금 도진의 데이터가 부족했으니 말이다.
‘그래도 대단하지만 여기서 무너뜨려 주겠다.’
목적을 달성하려면 초구가 제일 중요하다.
초구의 결과에 따라 끌려다닐 대상이 정해지기 때문이다.
류타는 배터리의 생각을 읽고자 더욱 머리를 굴렸다.
‘패스트볼? 아니면 변화구?’
두 아시아 나라의 맞대결.
신인왕.
경기의 승패.
이 승부에서 이토록 중요한 것들이 모두 걸려 있다.
대다수 배터리라면 일단 간부터 볼 것이다.
‘안타 하나면 역전도 돼. 호기롭게 스트라이크를 잡으러 들어오는 건 강심장이라도 힘들어.’
하지만 한일전이라는 특수한 상황 때문에 저 둘은 과감히 들어올 수도 있다.
‘그렇다면 패스트볼이겠지.’
한일전인 만큼 도망가는 피칭은 허용되지 않을 것이다.
괜히 도망가는 피칭을 하다가 볼넷이라도 줘버리면 욕먹기 십상이니까.
하지만 투수가 초구부터 시원하게 스트라이크를 꽂을 수만 있다면?
설사 얻어맞더라도 도망가는 피칭보다는 나은 결과를 얻는다.
맞더라도 승부해라.
야구에는 이런 말이 있기 때문이다.
‘분명 초구는 패스트볼이다.’
몸쪽일까. 바깥쪽일까.
아니면 볼로 빼낼 것인가.
어떤 공이든 상관없다.
패스트볼에는 잘 대처할 자신이 있었으니 말이다.
한편, 상우는 류타의 표정을 살폈다.
마치 전쟁터에 나가기 전.
각오를 다진 병사의 모습이었다.
‘쉽게 읽히지 않네.’
상우의 머릿속도 류타와 같은 고민으로 가득 차 있었다.
하지만 상우는 비교적 결단을 쉽게 내렸다.
‘도진이는 지금 한일전 따위는 안중에도 없어.’
적어도 이 승부에서는 그랬다.
한일전은 진짜 한국과 일본이 맞붙었을 때를 이야기할 테지.
상우는 도진이가 올 시즌 무엇을 목표하는지 알고 있었다.
신인왕.
그리고 당연하게도 팀이 더 높은 위치에서 시즌을 마무리했으면 하겠지.
‘초구는. 이거다.’
도진은 상우의 사인에 즉각 고개를 끄덕였다.
상우는 다시 재차 사인을 냈다.
앞선 사인과 같았다.
‘뭐야. 괜찮겠어?’
도진은 아무런 표정을 짓지 않고 상우에게 생각을 전달했다.
‘어. 문제없어.’
‘걸리면 넘어가. 실투 나오면 끝장이라고.’
‘상관없어.’
‘알았다. 제대로 던져라.’
상우는 몸쪽으로 붙어 앉아 미트를 내밀었다.
도진은 그 즉시 세트포지션으로 공을 던졌다.
타자의 몸쪽으로 휘어져 들어가는 공.
확신을 머금은 류타의 배트가 나왔다.
하지만 홈플레이트 앞에서 공이 사라지는 바람에 그의 몸이 크게 헛돌았다.
퍼억.
“스트라이크!”
류타의 동공이 팽창했다.
체인지업. 그의 예상 밖을 벗어난 구종이었으니까.
‘젠장!’
이뿐만이 아니었다.
체인지업은 위력적인 구종이 맞지만, 방금 공은 궤를 달리했다.
공이 눈앞에서 사라져 버렸기 때문이다.
도진의 체인지업은 훌륭하다.
하지만 이렇게까지 완벽하다고는 생각 안 했다.
‘그런데 지금 이런 궤적의 공을 던진다고?’
이 위기에서?
류타는 어금니를 꽉 깨물더니 서둘러 생각을 고쳤다.
몸쪽 체인지업.
실투가 나오는 순간 홈런을 내어줄 수도 있는 투구.
‘배터리의 선택은 진흙탕 싸움으로 들어가더라도 이기겠다는 의지가 크다.’
류타의 표정을 살핀 상우는 어금니를 꽉 깨물었다.
‘의도 파악이 빠르네.’
상우도 머릿속을 정리했다.
그 역시도 류타와 비슷한 생각을 했다.
‘맞더라도 도망가는 피칭은 하지 말라고?’
그 말에는 모순이 있다.
도망가는 피칭으로 상대를 무조건 잡을 확신이 있다면?
‘백번 천번 도망쳐서라도 상대를 잡아야지.’
도망가는 피칭을 상대가 예견했다.
이미 상대가 수를 파악한 이상 불리한 건 배터리다.
하지만 수를 파악당해도 통할 방법은 있는 법.
그러니. 2구는 이거다.
상우가 사인을 냈다.
도진은 지체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고는 곧장 투구하겠다며 다리를 들어 올렸다.
인터벌이 빨라도 너무 빨랐다.
타자는 그 때문에 침을 꼴깍 넘겼다.
머릿속이 정돈되지 않았는데 바로 다음 투구가 날아왔기 때문이다.
쉐에에엑!
바람을 가로지르는 투구는 바깥쪽으로 향했다.
패스트볼처럼 보인 타자의 배트는 다시 한번 힘차게 돌아갔다.
그런데 타자가 기대했던 둔탁한 소리 대신 고요하기만 했다.
시야에서 갑자기 사라져 버리는 체인지업은 배트를 손쉽게 외면했기 때문이다.
퍼억!
“스트라이크!”
카운트는 0-2.
쫓기는 타자든.
앞서는 배터리든.
아직 긴장의 끈을 놓을 때는 아니다.
하지만 지금 승부에서 타자에게만 해당하는 이야기.
다시 한번 도진의 인터벌은 너무나도 빨랐으니 말이다.
체인지업? 패스트볼인가?
스트라이크 안으로 꽂나? 아니면 벗어나나?
이런 복잡한 심경을 지닌 타자에게 시간을 주지 않겠다는 듯.
손을 떠난 공은 타자가 치기 좋은 한복판으로 날아왔다.
타자의 배트가 무심결에 나왔다.
지금까지 프로 무대를 오랫동안 경험해 왔던 덕분에 몸은 패스트볼을 확신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미 두 번이나 당한 머리는 몸뚱이와 생각을 달리했다.
패스트볼 궤적에서 조금 더 아래쪽을 향해 스윙하라고 일렀기 때문이다.
앞서 두 번의 체인지업.
그리고 대부분의 패스트볼은 홈플레이트 끄트머리에서 가라앉아서 그랬다.
하지만 도진의 포심 패스트볼은 가라앉지 않는다.
그 덕에 공은 배트를 지나쳤고.
퍼억.
“스트라이크 아웃!”
관중들.
선수들.
구단 관계자들.
그들의 시야에는 한국인 배터리가 주먹을 불끈 쥔 모습이 담겨 있었고.
어쩌면 신인왕을 확정지을 수 있는 도진의 마지막 퍼즐을 맞춘 듯 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