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baseball genius who chews up America RAW novel - Chapter (280)
미국 씹어먹는 야구 천재 280화(280/400)
한창 축제 분위기인 에인절스 라커룸이지만.
이번 확장 로스터에 포함된 선수들은 즉시 짐을 싸서 떠나야 했다.
도진은 라커룸 안에서 맥주 5캔을 연달아 원샷 때리는 호세의 옆에 다가가 섰다.
“저 나갔다 올게요.”
“이 좋은 날 어디가?”
“친구들 배웅 좀 해주려고요.”
호세는 추가로 맥주 한 캔을 더 원샷 때리더니 손목으로 입가를 닦았다.
그러고는 챙긴 짐가방을 어깨에 멘 상우와 그레그에게 다가오라며 손짓했다.
상우와 그레그가 쭈뼛쭈뼛 다가왔다.
호세는 둘의 등짝을 강하게 후려쳤다.
언제나 도진에게만 했던 행동을 두 선수에게 했다는 것.
그들의 활약이 마음에 들었다는 의미가 담겨 있었다.
물론 호세는 속으로 삭이는 성격은 아니었다.
“잘했다. 고생 많았다. 덕분에 우리가 순위를 유지할 수 있었어.”
상우와 그레그는 동시에 고개를 저었다.
“저희는 아무것도 하지 않았는걸요.”
“맞아요. 여전히 부족하다고 느꼈습니다.”
호세는 고개를 저었다.
“아니. 생소한 메이저리그 무대에서 충분히 잘해줬어. 내 예상보다도 훨씬 더! 내가 장담하는데, 네놈들은 다음 시즌에 이 무대를 밟을 것 같네.”
상우와 그레그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호세는 입꼬리를 올린 채 말을 덧붙였다.
“거짓말 아니다. 네놈들에게도 자리가 있을 거다. 그러니 몸 잘 만들어 놓으라고. 아. 그나저나.”
호세는 상우를 위아래로 훑어봤다.
그러고는 쓴웃음을 지었다.
“네가 올라오면 내 자리는 없을 수도 있겠군.”
“아니요. 제가 호세 자리를 대체할 만큼 아직 실력이 뛰어난 건 아닙니다.”
상우는 단호했다.
호세도 더는 이들을 붙잡아 두지 않았다.
“가봐. 그리고 기회가 되면 또 보자고.”
상우는 허리를 굽혔고 그레그는 고개를 끄덕했다.
도진은 이 둘을 배웅하고자 뒤를 따라나섰다.
“호세 말처럼 내년에는 둘 다 메이저리그에서 볼 수 있으면 좋겠네.”
도진은 먼저 그레그를 와락 안았다.
“고마워요. 덕분에 힘이 났어요.”
“징그러워 임마.”
그레그는 도진을 밀어냈다.
도진도 순순히 밀려났다.
“그나저나. 이제 뭐 할 거예요?”
“글쎄. 조금 쉬고 바로 훈련해야겠지? 호세 말처럼 기회가 있는 거면 더 열심히 해야지.”
“확실히 많이 바뀌었네요. 예전에는 게을렀는데.”
“그야…… 뭐 그렇지?”
그레그는 말을 아낀 듯 보였지만 도진은 굳이 캐내려고 하지 않았다.
“네 뭐. 에인절스 응원하실 거죠?”
그레그는 상우의 목에 팔을 감았다.
“당연하지 임마! 이놈이랑 뉴욕으로 날아갈게.”
에인절스는 와일드카드 1위 뉴욕 양키스와 양키스 스타디움에서 와일드카드전을 치른다.
총 3전.
2승을 먼저 가져간 팀이 디비전 시리즈에 진출하게 된다.
여기서 홈 어웨이 방식은 없다.
세 경기 전부 더 나은 성적을 낸 양키스 스타디움에서 치러진다.
“고마워요. 와주시면 정말 힘이 될 것 같아요.”
“그러니 꼭 이겨라. 신인왕도 따고.”
“그건 제 소관이 아니긴 하네요.”
“쯧. 약한 척하기는.”
그레그는 상우와 인사를 나누라며 한 발짝 뒤로 물러섰다.
“고생 많았다.”
상우는 어깨를 으쓱했다.
“고생. 하긴 했지.”
“메이저리그는 어땠냐?”
“말도 마라. 한 달이 이렇게 빨리 간다고는 생각도 하지 못했다. 잠깐 눈을 감았다 뜨니 끝났네.”
“호세가 그랬듯이 운 좋으면 내년에 자리를 차지할 수 있지 않을까? 고작 한 달이었고 출전이 많다고는 할 수 없었지만 그래도 잘했잖아?”
상우는 한숨을 내쉬었다.
“잘한 건가?”
“잘한 거지. 24타수 6안타 홈런과 2루타도 1개씩 쳤잖아? 볼넷도 골라 나갔고.”
“성적만 놓고 보면 잘한 거 같지는 않은데.”
“적응도 못 했을 텐데 충분히 잘한 거야. 어쨌든 다음 시즌 잘 준비해라. 그레그랑 응원도 오고.”
“직관도 충분히 공부가 될 테니 그럴 생각이다. 그나저나 나 지낼 곳이 없는데…….”
도진은 뒤통수를 벅벅 긁었다.
“화분 하단에 열쇠 있어. 그거 따고 들어가라.”
“오케이! 집은 해결됐군! 그럼. 경기 잘해라.”
상우와 그레그는 주먹을 내밀었다.
도진은 그들과 주먹을 맞추고 다시 라커로 돌아갔다.
* * *
다시 26인이 된 라커룸 안으로 조 캐넌 감독이 방문했다.
“다들 고생 많았다. 내 목표는 작년보다 더 나은 시즌을 보내는 것이었다. 비록 와일드카드지만 우린 작년보다 훨씬 잘한 게 맞다.”
조 캐넌은 살포시 미소를 짓더니 표정을 굳혔다.
“하지만 지금부터 시작이라고 해도 과언은 아니다. 이왕 여기까지 올라왔으니 최소 양키스는 잡고 싶다.”
선수들도 얼굴에 담긴 미소를 서둘러 숨겼다.
더 높은 곳이라는 단어는 뛰는 심장을 더욱 헤집어 놓았기 때문이다.
“그럼 내일 만나도록 하지.”
에인절스는 내일 경기가 없지만, 그다음 날에 있을 양키스 원정을 떠나야 하므로 여전히 강행군이 예고되어 있었다.
조 캐넌이 자리를 떴다.
선수들도 김이 샌 축제 분위기를 뒤로 한 채 라커룸을 떠날 준비를 했다.
이미 준비를 끝마친 호세는 벤치에 앉아 도진을 쳐다봤다.
“어이. 애송아. 정규 시즌 동안 고생 많았다.”
“호세도 고생 많으셨어요.”
“고생 많긴. 내가 뭘 한 게 있다고.”
“잘하셨잖아요.”
도진의 말마따나 호세는 황혼기임에도 매우 좋은 성적을 냈다.
타율은 2할 2푼이지만, 홈런 30개에 타점도 85개를 기록했으니 말이다.
도진과 함께 오프 시즌을 보내면서 타격 메커니즘도 바꿨기에 나왔던 결과였다.
“마지막이라고 생각해서 그런가? 힘이 나더라고.”
“왜 마지막이에요. 지금 성적만 놓고 보면 몇 시즌 더 뛸 수 있겠는데요. 뭐.”
“뭐. 그렇지. 나도 아직 은퇴는 이르다고 생각해. 1년이나 2년 더 뛰면 좋겠는데 말이야.”
“그렇게 될 거예요. 구단이 레전드 대우를 제대로 해주겠죠.”
“레전드? 내가? 지나가는 개가 웃겠다.”
도진은 진지하게 고개를 저었다.
“한 팀에서 15년 이상을 뛰었는데 레전드 맞죠.”
“그러냐. 그러면 레전드로서 한마디 해줄게. 넌 한 팀의 레전드는 하지 마라.”
“왜요?”
“글쎄. 지는 팀에서 레전드라. 기분이 썩 좋지 않아.”
“이기는 팀이 됐잖아요.”
“그래도 하지 마. 프로는 곧 대우야. 레전드 전부 의미 없어.”
“전 아직 멀어서. 때가 되면 한번 생각해보죠. 뭐.”
호세는 묵묵히 고개를 끄덕이며 생각을 이어 나갔다.
‘한 팀에서 쭉 뛰며 레전드가 된다.’
낭만은 넘치지만, 낭만이 무조건 좋은 건 아니다.
도진의 위닝 멘탈리티는 남다르다.
그 때문에 에인절스는 와일드카드라도 나갈 수 있었다.
만약 그가 없었다면?
꼴찌. 불 보듯 뻔했다.
‘뭣보다 구단이 완전히 바뀌지 않는 이상은 더 나은 팀에서 나은 대우를 받는 게 낫지.’
선수로서 낭만을 챙긴다고 하면 할 말이 없다.
그래도 진짜 낭만이라면 구단의 레전드보다는 메이저리그 레전드가 되는 게 낫지 않겠어?
다수의 우승 반지를 차지하는 편이 여러모로 좋다.
물론 도진이 말한 것처럼 아직 머나먼 이야기.
지금 당장 깊게 파고들 필요는 없었다.
“그나저나 이번에 홈런이랑 타점도 추가했고 2차전에서 세이브도 올렸어. 어디 보자. 놀란 카브레라가…….”
호세는 핸드폰을 뒤적였다.
“홈런 1개 추가해서 30홈런이네. 요즘 애들은 도대체 뭘 먹어서 이렇게 야구를 잘하냐?”
“뭘 먹었다기보다는 놀란은 진짜 타격 천재니까 그렇겠죠.”
“놈과 같은 레벨인 너도 천재라는 뜻이겠지?”
도진은 대답 대신 에휴! 한숨을 내쉬었다.
호세는 큭큭 웃었다.
“어쨌든 내가 봤을 땐 네가 더 잘한 것 같은데. 넌 어떠냐?”
“전 잘 모르겠어요. 객관적으로 봐야죠.”
호세는 라커룸을 뜨려는 벨 조이스에게 넌지시 물었다.
“네가 봤을 땐 누가 낫냐?”
“킴.”
벨은 대답 직후 라커룸을 벗어났다.
호세는 도진을 바라보더니 어깨를 으쓱했다.
“그렇다네? 어때. 객관적이지?”
“벨은 에인절스잖아요.”
“쟨 그래도 빈말은 안 해.”
도진은 동의한다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건 그렇죠. 어쨌든 감사하긴 하네요.”
“우리끼리 왈가왈부해봤자 달라지는 건 없어. 이제 시즌이 끝났으니 내일이면 대충 얘기들 나올 거다.”
“무슨 얘기요.”
“기자들이 직접 언급할 거다. 내일 바로 떠나야 하니까 오늘은 가서 푹 쉬도록.”
* * *
도진은 뉴욕으로 향하는 전용기에 올라탔다.
옆에 앉은 호세는 즉시 핸드폰을 들이밀었다.
핸드폰을 건네받은 도진은 액정을 들여다봤다.
-여전히 우열을 다툴 수 없는 아메리칸 리그 신인왕 레이스. 승리기여도를 따지면 킴이 앞서지만, 놀란은 메이저리그 데뷔전에서 21세 미만으로 30홈런과 100타점을 기록. 우열을 다투기 힘들다.
-놀란이 우위에 있다고 봅니다. 30홈런과 100타점. 그는 이미 메이저리그의 슈퍼스타임을 증명하고 있습니다.
-킴이 우세하다고 봅니다. 20개가 넘는 홈런에 80타점. 도루는 40개 그리고 마무리투수로서 40개의 세이브를 올렸습니다.
-킴이 유력한 후보일 것 같습니다. 놀란과 비교해도 bwar, fwar. 모두 앞서고 있습니다. 승리기여도가 중요한 현대 야구에서 킴에게 표가 가지 않을까 싶습니다.
-양키스는 아쉽게 리그 1위를 놓쳤지만 디비전 시리즈에 진출할 가능성이 큽니다. 그 가운데 메이저리그 데뷔를 훌륭하게 치른 놀란이 양키스의 중심에 있습니다. 그래서 놀란이 수상을 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예상하기 힘듭니다. 두 선수 각자의 위치에서 정말 최선을 다해주었으니까요.
도진은 핸드폰을 건네며 호세에게 물었다.
“이게 뭐예요?”
“뭐긴. 최종 투표권이 있는 기자들의 말이지. 그리고 메이저리그 전문가들도 포함되어 있어. 저들 역시 표가 갈리지?”
“그렇네요.”
“그러니 애매하다는 거야. 솔직히 이게 애매한가 싶기는 하지만. 객관적으로 봐도. 수치로 봐도 타격 빼고는 네가 우위에 있어.”
“그렇게 말해주셔서 감사해요. 힘이 나네요.”
“난 네가 신인왕을 땄으면 좋겠다. 올해 새로 데뷔한 선수 중 제일 잘했다는 것을 의미하잖아? 그리고 신인왕을 딴 선수 대부분은 앞으로도 쭉 잘해. 야구에서는 특히 기세를 이어 나가는 게 중요하잖아? 그러니 양키스와 함께 놀란을 무너뜨려라.”
도진은 묵묵히 고개를 끄덕였다.
“최선을 다해볼게요.”
“최선 가지고는 안 되지만. 예상했던 답변이라 그냥 넘어가도록 하지.”
호세는 눈을 좀 붙이겠다며 안대로 눈을 가렸다.
도진은 등받이에 등을 편히 기댔다.
하지만 그의 눈빛엔 이채가 서려 있었다.
‘놀란과 외나무다리에서 만나게 됐네.’
지고 싶지 않다.
지지 않겠다.
원정에서 전부 경기를 치러야만 하지만, 그래도 기필코 이겨서 더 높은 곳을 향해 나아가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