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baseball genius who chews up America RAW novel - Chapter (283)
미국 씹어먹는 야구 천재 283화(283/400)
양키스의 선발 투수 보르네오는 언제나 사이 영 컨텐더인 만큼 기복이 없는 투수로 잘 알려져 있다.
벌써 메이저리그 경험도 8년이 됐고.
포스트 시즌도 무려 6번 진출했다.
그렇기에 이 무대가 그리 긴장되거나 하지는 않았다.
도진이 타석에 들어서서 자신들을 향해 배트를 겨누기 전까지는 그랬다.
‘빌어먹을. 상당한 중압감을 내뿜는군.’
보르네오의 미간이 살포시 구겨졌다.
덩달아 식은땀이 등골을 타고 흘러내렸다.
저게 신인이라니.
본래 신인이라면 이 무대에서 발발 떨어야 하는 게 정상이다.
그런데 도진에게서는 그런 모습이 보이지 않았다.
‘괜히 선수들이 호들갑 떨던 게 아니었어.’
시합에 앞서 양키스는 여타 다른 팀과 마찬가지로 회의했다.
선수에 대한 데이터를 다시 한번 점검하기 위함이었다.
그리고 그 회의에서 도진의 성이 몇 번이나 나왔다.
양키스 감독 케인 코싯은 이런 말도 했다.
-우리가 경기에서 쉽게 이기려면 킴을 틀어막아야 한다. 그리고 그냥 틀어막아서는 안 된다. 완벽하게 막아야만 한다.
볼넷조차 절대 허용해서는 안 된다.
그는 볼넷을 2루타로 둔갑시킬 능력을 갖추었기 때문이다.
그때 자신은 이렇게 반박했다.
-그래도 신인입니다. 정규 시즌에 좋은 성적을 냈다고 해도 와일드카드는 다르죠. 그보다 마르셀로, 아돌니스 혹은 30홈런을 때린 호세를 더 경계해야 합니다.
선발 투수가 긴 이닝을 끌고 나가려면 매번 전력투구를 할 수 없다.
물론 이마저도 플레이오프나 다름없었기에 투수들이 매회 불펜에 대기하고 있겠지만.
1선발은 팀에서 제일 잘던지는 투수다.
자신이 긴 이닝을 끌고 가야지만 승리할 확률이 높아진다.
그런데 자신의 입담을 반박한 선수는 차세대 슈퍼스타 놀란이었다.
평소 팀 회의에서 조용했던 그가 자리에서까지 벌떡 일어나서 발언권을 가져갔다.
-홈에서 치러지는 3연전. 저희가 유리한 건 맞습니다. 하지만 저 역시도 감독님 말씀에 동의합니다. 저 친구는 긴장 따위 몰라요. 에인절스의 선봉장이라면 킴일 테고. 그는 시작하기도 전에 저희를 짓누르려고 들 겁니다.
-짓눌려? 아직 새파랗게 어린 애송이에게 우리가?
-웃기죠? 저도 웃깁니다.
그런데 이게 웬걸?
보르네오는 주위를 훑어보았다.
놀란 카브레라. 그는 히죽 웃고 있었다.
그런데 다른 선수들의 표정은 전부 어둡다.
‘나를 포함 은연중에 저 애송이를 무시한 거야.’
언제나 예상치 못한 상황은 대처가 힘들다.
그나마 보르네오는 다양한 경험을 토대로 요동치는 감정을 억눌렀지만, 쉽지 않은 싸움이 되리라 확신했다.
‘여기서 맞는다면 시작부터 끌려갈 수도 있다.’
포수의 사인이 나왔다.
제자리를 찾았던 보르네오의 표정이 다시 구겨졌다.
‘시작부터 볼 한 개를 빼자고?’
보르네오는 포수 칼렙에게 표정으로 물었다.
칼렙은 첫 사인을 다시 내며 둘의 암묵적인 대화가 이어졌다.
‘이 아이. 심상치 않아. 감독님의 말마따나 쉽게 가면 힘들어질 것 같아.’
‘그건 나도 인정한다. 그래도 초구부터 볼로 빼는 건 오히려 타자에게 좋아. 놈은 눈이 뛰어나다. 우리가 도망가는 피칭을 통해 놈의 기를 살려주면 오히려 더 위험해질 수도 있어.’
‘초구부터 노리고 들어오면? 이놈은 그럴만한 배짱이 있어.’
보르네오는 도진의 표정을 살폈다.
아무것도 읽히지 않는다.
포수의 말도 일리가 있었다.
결국 보르네오는 고개를 끄덕였다.
초구. 슬라이더가 홈플레이트 앞에서 크게 요동쳤다.
제대로 긁혔기에 속을만했음에도 도진의 배트는 나오지 않았다.
“볼!”
심판의 콜이 들려옴과 동시에 배터리의 표정이 와락 구겨졌다.
반면 도진의 표정은 여전히 평온했다.
‘모험을 걸었는데. 잘됐네.’
초구가 스트라이크로 꽂히면 끌려다녀야 한다.
그리고 보르네오는 이 무대에서도 충분히 초구로 스트라이크를 꽂을만한 선수였다.
하지만 도진은 존을 벗어나는 것에 걸었다.
보르네오 그리고 놀란을 제외한 양키스 선수들의 표정이 밝지 못했기 때문이다.
‘중요한 경기에서 선발 투수를 빠르게 무너뜨리면 승리에 가까워진다.’
마운드 운용에 차질이 생기면 오늘 경기는 물론 다음과 다다음 경기에도 영향을 주기 때문이다.
투수를 무너뜨리는 방법은 여럿 있다.
‘최대한 후속 타자들에게도 도움이 되게끔 공을 많이 봐야 해.’
홈런을 쳐서 일시적으로 투수를 무너뜨리는 방법은 그야말로 일시적이다.
1점으로 입은 타격은 손쉽게 회복할 수 있기 때문이다.
‘대신 주자가 쌓여있을 때는 달라져.’
1실점과 2점 이상의 실점은 천지 차이.
아무리 대투수라도 부담을 느낄 수밖에 없다.
그러므로 도진의 목표는 출루.
‘특히나 발 빠른 주자가 출루했을 시 투수는 신경이 분산될 수밖에 없어.’
혼자서 양키스를 무너뜨릴 수 없다.
만약 가능하다고 한들 이 한 경기뿐일 것.
‘모두가 힘을 내주지 않는다면 결국 질 수밖에 없어. 그러니 팀 전체의 포텐을 끌어올린다.’
고로 출루한다.
초구가 볼이 선언된 이상 50%의 성공을 거두게 됐다.
이제 마무리만 잘 지으면 될 터.
2구. 공은 던져졌다.
홈플레이트 앞에서 뚝 떨어지는 체인지업. 도진의 스윙은 허공을 갈랐다.
“스트라이크!”
휘유.
도진은 입을 오므려 휘파람을 불고 잠깐 타석에서 벗어났다.
‘여기서 다시 한번 변화구를 던진다고?’
만약 휘두르지 않았다면 2-0.
타자에게 확실하게 유리해진다.
그런데 배터리의 선택은 다시 한번 유인구.
‘역시. 쉽지 않네.’
무대가 무대인지라 상대도 신중하다.
여기까지는 도진도 예상하지 못했다.
카운트는 이제 1-1.
순식간에 쫓기는 처지가 됐음에도 도진은 이를 악물고 평정심을 유지했다.
‘내 할 일만 하자. 큰 거 필요 없잖아?’
3구. 중요한 승부를 앞둔 도진은 머리를 빠르게 굴렸다.
‘스트라이크를 잡으러 올 때가 됐는데.’
대신 여기서 다시 한번 유인구가 온다면?
완전히 말려버리게 된다.
팀의 선봉장이 말리면 다른 선수에게도 영향을 끼치게 된다.
‘더욱이 두 번째나 세 번째 타석에서도 제 역할을 다하지 못할 가능성이 크다.’
하지만 상대의 생각이 읽히지 않는다.
1선발이 초구와 2구를 전부 볼로 뺐으니 말이다.
고민은 결정을 늦추는 법.
투수가 던진 3구째 공은 패스트볼.
바깥쪽 높은 코스에 시원하게 꽂혔다.
“스트라이크!”
카운트는 1-2.
스트라이크 하나면 타석에서 물러나야 하므로 심장이 요동쳤다.
접하지 못한 탁한 공기는 도진을 덮쳐왔고.
그 때문에 전신에 철근을 단 것처럼 무거웠다.
‘젠장. 버텨야 한다.’
버텨야지만, 오늘을 포함 양키스와의 연전에서 제 위력을 발휘할 수 있다.
하지만 쉽지 않다.
근육이 꿈틀대는 것을 제외.
몸이 마음대로 움직이지 않는다.
야구에서의 경험은 이렇게나 중요한 법이다.
4구. 패스트볼이 바깥쪽을 향했다.
분위기에 휩쓸려 타구 판단이 쉽게 이뤄지지 않아 배트조차 내지 못했다.
퍼억.
정적이 흘렀다.
도진은 마른침을 삼키며 미트의 방향을 살폈다.
홈 플레이트에서 살짝 벗어나 있었다.
“볼!”
철렁 내려앉았던 심장이 되돌아왔다.
동시에 도진은 여유를 되찾았다.
고개가 절로 끄덕여진다.
그래. 그랬었지.
‘너도 나를 경계하고 있구나.’
야구에서 경험만큼 중요한 건 선수의 성적이다.
자신은 올 시즌 최고의 성적을 냈다고는 할 수 없지만.
‘그래도 괜찮은 성적을 냈잖아?’
메이저리그 평균. 그 이상이었으니까.
상대도 자신을 절대 내보낼 생각이 없다.
내보내면 들이닥칠 재앙을 알고 있을 테니 말이다.
‘그러니 이번에도 신중할 터.’
5구.
공은 던져졌다.
스트라이크 존으로 정확히 향하는 투구에도 도진은 배트를 내지 않았다.
‘체인지업이다. 저런 대 투수가 이렇게 쉬운 공을 던져줄 리 없어.’
도진의 예상대로 투구는 홈 플레이트 앞에서 힘을 잃더니 바닥까지 낙하했다.
“볼!”
카운트는 3-2.
투수에게 6개의 공을 강제했다.
하지만 아직 만족할 수는 없다.
도진은 1루 베이스를 힐끗 쳐다봤다.
‘어떻게서든 저기에 도달해야 한다.’
스트라이크냐. 볼이냐.
결단이 섰다. 그리 어렵지 않았으니 말이다.
동시에 도진의 입꼬리가 치솟았다.
6구. 공은 던져졌다.
몸쪽을 파고드는 패스트볼.
‘그럼 그렇지. 여기까지 와서 도망칠 리 없지.’
아직 서로의 힘을 확인하지도 못했으니까.
도진은 움켜쥔 배트를 휘둘렀다.
따-악!
공이 배트와 만났다.
타구는 유격수 방면으로 총알처럼 날아갔다.
그 즉시 도진은 배트를 내동댕이치며 1루 베이스를 향해 전력질주 했고, 타구에 시선을 떼지는 않았다.
유격수 놀란이 몸을 날렸다.
깊은 코스였음에도 바운드가 된 타구는 글러브 안으로 쏘옥 들어갔다.
놀란은 손바닥으로 바닥을 짚어 몸을 벌떡 일으켜 1루수 글러브를 향해 정확히 송구했다.
어려운 타구를 완벽하게 처리하며 연계 동작까지 군더더기 없었다.
퍼억.
송구가 글러브에 꽂혔다.
도진이 베이스를 밟은 것도 그때였다.
심판은 쉽사리 판정을 내리지 못했다.
잠깐 고개를 갸웃한 그는 주먹을 쥐려고 했던 손을 펼쳤다.
“세이프! 세이프!”
놀란은 혀를 날름거리며 아쉬워했다.
지나친 1루에 도달한 도진은 안도의 한숨을 꾹 삼키더니 그를 향해 손가락 8개를 펼쳤다.
팬들은 행동의 의미를 전혀 알지 못했다.
에인절스와 양키스 선수들 역시 감도 잡히지 않았다.
놀란은 잠깐 미간을 구겼다.
‘뭘 의미하는 거지?’
8개?
고민은 길지 않았다.
의미를 깨달은 놀란은 큭큭 웃었다.
‘그래. 그랬지.’
도진이 펼친 8개의 손가락은 8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었다.
80스케일. 메이저리그에서 그의 주력을 평가하는 수치였고.
메이저리그 탑 클래스였다.
* * *
[세이프! 1루에서 세이프가 선언됩니다!] [솔직히 아웃 될 줄 알았거든요? 시간상 그랬어요. 타구의 속도가 느린 것도 아니었고. 메이저리그 하이라이트 릴에서 나올 법한 수비였으니까요. 그런데 그보다 킴의 발이 더 빨랐습니다.] [정말 대단한 주력을 갖춘 선수예요. 주력뿐만이 아니라서 더 대단하죠. 그런데 손가락 8개를 펼치던데. 무슨 의미였을까요?] [타구 처리가 너무나도 완벽해 충분히 아웃이 될 법한 타구였음에도 세이프가 됐죠. 그만큼 자신의 발이 빠르다는 것을 의미했을 겁니다. 킴의 오른손 중지와 검지가 펼쳐지며 V자를 그리지 않습니까? V자를 그리면 다른 손은 오므리게 되며 자연스레 0이 만들어지죠. 아마 80스케일을 의미하는 것 같습니다.] [놀란의 어깨는 60스케일로 평가받습니다. 이마저도 굉장히 훌륭하지만, 80스케일은 메이저리그 탑이죠. 결국 도발을 한 것이겠네요?] [두 선수는 합동 인터뷰를 할 만큼 친분이 있습니다. 충분히 도발이라고 보입니다. 문제는 이다음이죠. 저 빠른 발의 선수가 지금 1루에 나가 있습니다.]1루에 나간 도진은 리드 폭을 크게 가져갔다.
투수는 한 번의 견제구를 던졌지만, 도진의 귀루가 빨랐다.
[저 보세요. 강타자인 마르셀로가 타석을 지키고 있음에도 결국 주자를 신경 쓸 수밖에 없어요.] [자칫 잘못했다가는 2루를 빼앗길 수 있다고 경고했기 때문이겠죠?] [네. 그리고 킴은 비록 이번 시즌 도루 개수가 40개로 아메리칸 리그 3위를 기록했지만, 성공률만큼은 1위거든요? 배터리는 절대 여기서 스코어링 포지션으로 주자를 보내고 싶지 않을 겁니다.]때마침 투수가 던진 패스트볼이 스트라이크 존에 꽂혔다.
“스트라이크!”
초구 스트라이크를 가져갔음에도 배터리의 표정은 좋지 못했다.
대신 도진과 마르셀로의 입꼬리는 꿈틀댔다.
여기서 변화구를 던진다면?
도진은 2루를 훔치게 될 것이기에.
이지선다.
에인절스에는 호재였고 양키스는 재앙이었다.
도진의 리드폭이 커질수록 배터리는 흐르는 식은땀이 유니폼을 적셨다.
투수는 포수에게서 변화구 사인이 나오자, 고개를 저었다.
덩달아 두 번이나 사인에 고개를 더 젓자 포수는 결국 투수의 뜻을 읽었다.
공은 던져졌다.
패스트볼은 스트라이크 존을 한참 벗어난.
피치 아웃.
포수는 투구가 미트에 꽂히자 히죽 웃었다.
하지만 그의 미소는 순식간에 자취를 감추었다.
도진은 어느덧 2루의 절반 이상을 가로질렀으니 말이다.
쉐에에엑.
포수의 송구가 정확하게 베이스 커버를 들어온 유격수 글러브에 꽂혔지만.
“세이프! 세이프!”
원하는 결과를 얻어가지 못했다.
1회 초 무사 2루.
유니폼을 툭툭 털고 일어난 도진의 표정은 여유가 넘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