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baseball genius who chews up America RAW novel - Chapter (286)
미국 씹어먹는 야구 천재 286화(286/400)
도진이 타석에 들어서자, 양키스 더그아웃도 가만히 지켜만 보고 있지 않았다.
감독이 직접 마운드를 방문했다.
“보르네오. 여기까지다.”
“감독님! 이번 이닝까지는 해결할 수 있습니다.”
“널 믿지 못하는 건 아니다. 하지만 지금 분위기가 다시 넘어가고 있어.”
보르네오는 관중석을 스윽 훑어보았다.
팬들의 표정에는 근심 걱정이 가득했다.
자신을 믿지 못해서가 아니다.
1선발을 믿지 못한다면 누굴 믿겠는가?
보르네오는 원흉인 도진을 슬쩍 훔쳐봤다.
‘내 컨디션은 더할 나위 없이 최고였어. 그런데 저놈만큼은 첫 타석에서부터…….’
어금니를 까득 깨문 보르네오는 나지막이 물었다.
“누가 나옵니까?”
“제나츠.”
보르네오는 입 틈을 비집고 새어 나오려는 말을 강제로 틀어막았다.
제나츠라면 필승 불펜.
셋업맨으로 활약하고 있었다.
하지만 아직 6회다.
여기서 자신이 물러선다면?
이번 이닝을 포함해 4이닝이나 더 남아 있었다.
필승 불펜을 미리 당겨써서 결과를 낸다고 한들.
나머지 이닝이 문제였다.
보르네오는 눈에 각오를 담았다.
“제가 해결하겠습니다.”
“하아.”
양키스 감독은 눈을 질끈 감고 난감하다는 제스처를 보였다.
그도 그럴 것이 그 역시도 투수를 당겨 썼을 때의 리스크를 알고 있었으니 말이다.
“놀란. 어떡하는 게 좋을 것 같지?”
놀란은 입을 오물거리더니 이내 고개를 끄덕였다.
“보르네오 뜻대로 가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그런가?”
“네. 1선발이니까요. 또한 제나츠라도 주자 때문에 부담감이 클 겁니다.”
“확실히. 좋다. 보르네오. 네게 맡긴다. 다만 실점하면 바로 교체하겠다.”
“알겠습니다.”
감독이 마운드에서 내려가자, 보르네오는 놀란에게 감사의 인사를 전했다.
“믿어줘서 고맙다. 이왕이면 내가 해결하고 싶었거든.”
놀란은 어깨를 으쓱하고는 유격수 방면으로 돌아갔다.
등을 돌리고 있었기에 보르네오는 보지 못했지만, 놀란은 반쯤 해탈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누가 올라오든 어차피 똑같아.’
보르네오는 지금까지 고작 3개의 안타만 허용하며 호투를 펼치고 있었고 아주 잘하고 있었다.
‘그런데 상대가 상대잖아?’
도진이다.
누가 마운드를 지키든 달라지는 건 없을 것이다.
그는 그만의 방식으로 어떻게서든 투수를 물어뜯으려 할 테니까.
지금까지 그를 쭉 지켜봐 왔기 때문에 알 수 있었다.
놀란은 타석에 선 도진의 표정을 살폈다.
그 즉시 미소와 허탈한 감정의 표정이 지어졌다.
투수와 타자의 싸움에서 투수가 유리하다.
그런데 지금도 그렇게 말할 수 있을까?
저 자신감 넘치는 도진을 보고도?
‘젠장. 그저 행운의 여신이 우리 양키스를 향해 미소를 지어주길 빌어야겠군.’
* * *
도진은 시야를 넓혔다.
먼저 조 캐넌 감독의 사인을 기다렸다.
없다. 타격으로 가자는 의미다.
‘무사 1루지만, 여유로운 상황은 아니야.’
그렇기에 1루에 나가 있는 윌리엄과 눈을 맞췄다.
‘윌리엄. 2루 훔칠 수 있어요?’
윌리엄은 턱을 살짝 당겼다.
‘혼자만의 힘으로는 부족해. 네가 타석에 들어선 이상. 나 역시도 견제당할 거다.’
윌리엄은 발이 빠른 편은 아니다.
그렇기에 도진처럼 그린 라이트가 부여되지도 않았다.
하지만 주자가 1루에 있느냐 2루에 있느냐는 천지 차이.
2루에 주자가 있다면 짧은 안타 하나로도 득점이 가능해지니 말이다.
그리고 병살타도 머릿속에서 지울 수 있었기에 타자의 부담감은 줄어든다.
도진은 눈을 두 번 끔뻑여 윌리엄에게 다시 사인을 보냈다.
‘2구째 뒤도 보지 말고 그냥 뛰세요.’
‘초구도 아니고 2구?’
윌리엄이 되물었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초구에 스트라이크가 꽂힌다면?
그리고 2구에 뛰어 도루에 성공한다고 한들 그 2구마저 스트라이크가 된다면?
주자가 스코어링 포지션이라도 0-2에서 찬스를 맞이해야만 하는 도진이다.
어떤 타자가 스트라이크 하나면 아웃 되는 상황을 맞이하고 싶겠는가?
하지만 도진은 생각을 바꾸지 않겠다는 듯, 흔들림 없는 그의 눈동자는 태산과도 같았다.
윌리엄은 따로 고개를 끄덕이거나 하지는 않았다.
암묵적으로 2구째 뛰겠다는 사인을 받아들였기 때문이다.
사인이 교환되자 도진은 오로지 투수에게 모든 신경을 쏟았다.
‘초구가 볼이 날아오기만을 기다릴 수밖에 없다.’
만약 스트라이크가 된다면?
그래도 어쩔 수 없다.
어찌 됐든 지금은 반드시 주자를 2루로 내보내야만 했다.
그래야지만 자신이 아웃 돼도 후속 타자의 안타로 동률을 기대해 볼 수 있었으니까.
도진은 어금니를 꽉 깨물었다.
미소가 치솟겠다고 발버둥을 쳤기에 나온 행동이었다.
‘초구는 볼일 거다.’
확신.
배터리는 지금 자신을 두려워하고 있다.
‘투수가 처음부터 그렇게 느꼈던 건 아니겠지.’
그런데 타석에 앞서 감독이 마운드를 방문했다.
고작 5이닝 동안 안타 3개밖에 허용하지 않은 투수에게 말이다.
컨디션이 좋고 자신감이 넘쳐도, 저런 행동에 투수의 기세가 꺾일 때도 있다.
‘특히나 이런 신중한 무대라면 더 그렇겠지.’
그러니 지금 마운드 방문은 투수에겐 역효과.
아무리 스트라이크를 던지고 싶어도 남은 양키스 선수들이 그를 만류하는 것이나 다름없었다.
초구. 공은 던져졌다.
한복판으로 날아오는 공은 종적인 무브먼트를 선보이며 크게 휘더니 스트라이크 존을 벗어났다.
“볼!”
빠드득.
포수의 이가 갈리는 소리가 들렸다.
그 즉시 도진의 표정은 생기가 돌았다.
양키스와는 외나무다리에서 만났고, 살아남는 팀은 단 하나.
도진은 더욱 배트를 움켜쥐며 투수를 노려봤다.
언제든지 담장을 넘겨버리겠다는 기세마저 내뿜고 있었기에 2구.
투수의 제구가 흔들렸다.
패스트볼은 포수가 요구하는 바깥쪽이 아닌 몸쪽으로 향했다.
그 즉시 윌리엄은 2루를 향해 내달렸다.
배터리도 도루를 염두에 두었지만, 포수는 느닷없이 몸쪽으로 공이 날아오자 밸런스가 크게 흔들렸고.
퍼억.
공을 받아내기는 했지만, 지금 2루로 송구해봤자 늦었다는 것을 깨달아 한숨만 푹푹 내쉬었다.
주자는 무사 2루.
카운트는 2-0.
양키스는 스트라이크를 꽂지 못할 시 큰 위기에 직면할 것임을 알았고.
결국 바깥쪽 낮은 코스로의 패스트볼을 선택할 수밖에 없었다.
공은 던져졌다.
도진의 배트도 나왔다.
따-악!
배트와 만난 투구는 타구로 변환되어 쭉쭉 뻗기 시작했다.
타구음만으로도 궤적을 파악한 도진은 배트를 내동댕이치며 내달리기 시작했고.
2루 주자는 여유 있게 홈인.
좌중간을 갈라버린 타구 덕분에 도진은 안전하게 2루에 안착했다.
스코어는 2:2. 에인절스는 동률을 이뤘지만 만족하지 않았다.
‘강판시켜주지.’
도진은 1회에 얻은 교훈을 그냥 넘길 생각이 없었다.
마르셀로가 타석에 들어섰다.
태업을 마친 그는 언제나 도진의 다음 순번으로 타석에 임했기에.
굳이 사인을 주고받지 않아도 도진의 행동을 훤히 읽고 있었다.
초구.
동점을 허용하자마자 분노에 휩싸인 보르네오는 몸이 부서지는 한이 있다고 한들.
역전은 내주지 않겠다며 전력으로 투구했다.
하지만 분노는 사람의 판단을 흐리게 한다.
그 때문에 도진은 여유롭게 3루를 훔쳤다.
“세이프! 세이프!”
도진이 유니폼에 묻은 흙을 털고 몸을 일으키자.
팬들은 그의 망설임 없는 결단에 억장이 와르르 무너져 내렸다.
* * *
무사 3루.
희생타 하나면 역전.
하지만 양키스 선수들의 정신이 번쩍 든 것도 그때였다.
놀란은 도진을 힐끗 쳐다보고는 목 놓아 소리쳐 선수들을 일깨웠다.
“다들 정신 안 차려?”
놀란의 목소리가 그라운드를 쩌렁쩌렁 메웠다.
그를 제외 모든 양키스 선수들의 몸이 움찔 떨렸다.
“충분히 틀어막을 수 있어! 여기가 어딘지 잊은 거야? 팬들에게 미안하지도 않아?”
양키스 선수들의 동공에는 거센 소나기에도 꺼지지 않을 것 같은 화염이 피어오르기 시작했다.
그제야 놀란도 만족스럽다는 표정을 지었다.
그러고는 도진을 힐끗 쳐다봤다.
그 역시도 자신을 쳐다보고 있었다.
하긴. 경기 도중 시끄럽게 떠들어댔는데 안 쳐다보는 게 더 이상하겠지.
놀란의 입꼬리가 미세하게 꿈틀댔다.
‘그런데 말이야. 이렇게 안 하면 네가 홈을 밟는 걸 가만히 지켜봐야만 할 것 같거든.’
놀란은 글러브를 툭툭 치면서 선수들의 집중을 요구했다.
“보여주자. 우리 양키스의 저력을.”
양키스 팀 전체가 도진에게 흔들린 건 맞다.
하지만 이미 그 주자는 3루에 있었고, 더 나아갈 때가 없었다.
오로지 후속 타자들이 불러주기만을 기다리는 입장이 되었기 때문이다.
야구에서 누가 위기를 맞고 싶을까?
위기는 곧 팀의 패배와 직결되기 때문이다.
하지만 반대로 말하면?
‘탈락을 면하려면 이 위기를 극복할 수밖에 없다.’
3루에 나간 도진이 홈을 밟지 못하게 한다.
그것이 양키스가 오늘 경기 승리할 수 있는 유일한 공식이었다.
그리고 인간이라면 원래 위기 때 없던 힘도 나오는 법이다.
선수들의 정신이 번쩍 든 모습을 보아 충분히 이번 이닝 무실점으로 틀어막을 수 있다.
근거도 있었다.
‘외야 플라이만 주지 않으면 된다. 오늘 에인절스의 자랑 상위 타순부터 클린업까지 이어지는 라인이 킴을 제외. 그리 상태가 좋지는 않아.’
기가 눌렸겠지.
누가 뭐래도 여기는 양키스 스타디움이었고.
‘아직 경기는 끝나지 않았다.’
기껏해야 동점이다.
길게 끌고 나가면 오늘만큼은 도진을 제외 전혀 위협적이지 않은 에인절스가 양키스를 이길 수 없을 것이다.
그리고 현실이 되는 듯했다.
힘이 빠졌다고 생각한 투수의 초구가 바깥쪽 높은 코스에 시원하게 꽂혔고.
“스트라이크!”
무려 99마일이 찍혔기 때문이다.
놀란의 미소에 광기가 서렸다.
자신감에 비롯된 것이었다.
‘이쯤 하면.’
도진의 좌절하는 표정이 궁금해져 그를 힐끗 쳐다봤다.
그런데 이게 웬걸?
놀란은 거대한 폭풍우를 마주친 것처럼 전신이 굳었다.
‘크, 큰일이다.’
좌절은커녕.
저 의미를 알 수 없는 미소는 도대체 무엇일까.
‘무사 3루라서?’
희생타가 나온다고 확신하는 건가?
아니 이건 정답이 아니다.
‘뭘까. 젠장! 모르겠다. 그런데 위험하다.’
오감이 전신을 덮쳐오는 불안감이 무엇인지 알 수 없다.
하지만 이 불안감은 도진을 만날 때마다 느껴봤으며.
결과는 언제나 좋지 못했다.
놀란은 사인을 교환하고 투구에 돌입하려는 투수의 모습이 시야에 들어오자.
“아…….”
짧은 탄성을 내뱉는 것 말고는 달리 방법이 없었다.
뒤늦게 알아차렸지만 이미 늦었다.
무사 3루.
투수가 와인드업에 들어가는 순간 곧바로 3루 베이스를 버리고 홈으로 뛰쳐나갔기 때문이다.
“호, 홈 스틸!”
타자를 잡겠다며.
온 신경을 세웠던 배터리는 놀란의 외침에 그제야 홈으로 쇄도하는 도진을 발견했다.
이번 투구는 바깥쪽으로 휘어나가는 슬라이더.
포수가 포구 후 홈 베이스로 헤드퍼스트 슬라이딩을 가한 도진을 향해 미트를 뻗었다.
퍼억.
거센 모래바람이 사라지자 홈 베이스 위에 도진의 손이.
그 위에 포수의 미트가 올라가 있는 장면에 심판은 양팔을 풀어 해쳤다.
“세이이이이프!”
스코어는 3:2.
에인절스가 또다시 역전했다.
* * *
에인절스가 재차 역전 후 8회까지는 추가 점수가 나지 않았다.
하지만 이대로 경기가 쉽게 끝날 기미는 없었다.
양키스는 어떻게서든 첫 경기를 잡고 가겠다는 의지를 내비쳤고, 덕분에 그 기회가 8회 말에 왔다.
9번부터 시작하는 양키스의 공격.
타격에 능한 선수를 연달아 대타로 내보내 연속 안타가 나오며 무사 1, 2루.
거기에 다음 타자는 놀란 카브레라.
타석에 들어선 그는 불펜의 문을 열고 도진이 모습을 드러내자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었다.
‘나오는구나. 그래. 이래야 재밌지.’
2036년 황금 드래프트 1순위와 2순위.
그리고 이번 시즌 신인왕 유력후보자인 두 선수의 맞대결이 성사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