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baseball genius who chews up America RAW novel - Chapter (289)
미국 씹어먹는 야구 천재 289화(289/400)
에인절스 선수들은 3차전을 앞두고 점심을 먹었다.
호세는 혼자 앉아서 음식을 먹고 있는 도진을 찾았다.
“어이. 괜찮냐?”
호세는 접시를 내려놓고 도진의 표정부터 살폈다.
그는 어제 뼈아픈 실점을 내줬다.
도진은 묵묵히 큐브 스테이크 한 점을 포크로 집어 입에 넣고 고개를 끄덕였다.
“괜찮아요.”
호세는 미간을 구겼다.
“괜찮긴. 다 죽어가네.”
“네. 사실 어제 컨디션이 그리 좋지는 않았어요. 호세는 알잖아요.”
“하긴. 어제는 타석에서도 비실대더라. 4타수 1볼넷이었던가?”
도진은 한숨을 내쉬었다.
“역시 양키스는 강하네요. 솔직히 운으로라도 틀어막을 줄 알았는데. 뜻대로 안 됐어요.”
“양키스. 강하지. 매번 플레이오프를 노리는 팀이 약할 리가 없으니까. 그리고 널 상대한 놀란 그 녀석도 확실히 강해.”
도진은 묵묵히 고개를 끄덕였다.
“확실히 대단하더라고요.”
호세는 히죽 웃었다.
“혹시 어제 호텔 방에 가서 울었냐?”
“안 울었어요. 놀란한테 맞은 게 놀랄 일도 아니었으니까요. 그게 하필 리드하고 있는 중요한 2차전이라서 문제였지만요.”
“맞을 만했어. 그리고 난 오히려 잘 맞았다고 본다.”
도진은 눈썹을 치켜올렸다.
“잘 맞았다뇨. 그게 무슨 망언이에요.”
호세는 포크로 파스타를 입에 욱여넣고 꿀떡 삼켰다.
“일단 첫 번째로 네 체력 때문이야. 난 어제 네가 1구만 던지고 내려와서 다행이라고 생각한다. 물론 우리가 어제 경기를 잡았다면 아예 통째로 쉴 수 있었겠지만, 분위기상 쉽지 않았어. 네가 틀어막았다고 한들. 다음 이닝에 다시 등판해도 맞았을 테고, 다른 투수가 올라왔어도 결국 역전됐을 분위기였다. 너도 그렇게 생각하잖아?”
“확실히…… 리드하고 있는데도 리드한다는 생각이 들지는 않았어요.”
“그리고 역시 경험 차이가 크다. 매번 이기면서 올라가면 이 무대마저 쉬워 보일 수도 있어. 그런데 너도 알다시피 우린 고작 와일드카드전을 치르고 있을 뿐이다. 아직 플레이오프는 발도 담그지 않았다는 거지.”
호세의 목소리 볼륨이 높아졌다.
“와일드카드는 여러모로 불리해. 우리가 진출한다고 한들 힘든 싸움이 될 거다. 왠지는 알지?”
“네. 저희가 피 터지게 싸우고 있는 동안 상대는 푹 쉬고 있으니까요.”
“맞아. 패배가 익숙하면 안 되지만, 맛은 봐야 할 거 아니냐. 그래야지 힘든 역경에도 힘차게 일어서거나 할 수 있는 거야.”
정규 리그에서 수많은 패배를 맛봤지만, 그것과는 다르다는 것을 의미.
도진의 눈동자가 호선을 그렸다.
“이해했어요. 조언 감사해요.”
“그나저나. 이제는 조언말고 정말 중요한 이야기나 해보자.”
“어떤 거요?”
도진의 눈이 초롱초롱해지자 호세는 사악한 미소를 지었다.
“어제 정말 집에 가서 안 울었냐?”
“안 울었다니까요.”
“조금도 꿍하지 않았어?”
“기분이 좀 싱숭생숭하긴 했죠.”
“에게. 그게 끝?”
도진은 고개를 한번 주억였다.
“그럴 시간이 없었어요. 당장 오늘이 경긴데 슬퍼할 수야 없죠.”
사실 도진은 괜찮지 않았다.
팀의 패배가 자신 때문이라고 생각했다.
1사 만루. 병살타로 충분히 이닝을 마무리 지을 수도 있었으니 말이다.
하지만 결과는 싹쓸이 2루타.
앞선 투수들의 주자가 들어온 것이라 도진의 평균자책점이 올라간 것은 아니지만.
아쉬운 건 아쉬운 거였다.
그래도 도진은 끝까지 표정관리를 하려고 들었다.
그렇기에 이번만큼은 호세도 그런 도진의 상태를 면밀하게 파악하지 못했다.
“너 메이저리그에 한 10년 있었나 봐? 다른 선수들은 자괴감에 심하게 빠지는데 아무렇지도 않네? 너도 봤잖아?”
“어제 라커룸 분위기가 말이 아니긴 했죠.”
“지금 팀원들은 플레이오프를 자주 밟지 못한 선수들이 대부분이야. 다른 팀에서 밟아봤다고 해도 결국 주축 선수가 아니었지. 그래서 그래. 새로운 팀에서. 아니면 정말 오랜만에 맛보는 플레이오프가 정말 달콤하다는 걸 느끼고 있거든. 그러니 너는 생각보다 괜찮아서 다행이야.”
“그나저나 당장 오늘 경기가 걱정이에요.”
호세는 턱을 매만지며 흠! 침음했다.
“확실히 그렇네. 근데 뭐. 어떻든 간에 어렵게 흘러갈 거란 건 너도 예상했잖아?”
“예상은 했는데 그걸 뛰어넘고 있죠.”
호세는 진중한 표정을 지었다.
“그래서. 대안은 있냐? 이렇게 가다간 그냥 당하기만 할 거다.”
“대안이라…….”
도진은 의미심장한 표정을 지었다.
호세의 눈이 번뜩 뜨였다.
“뭔가 있나 보네?”
“그냥 어제 상우, 마이크와 얘기를 나눴거든요?”
“이야. 처맞아서 패전 투수가 되고도 야구 얘기를 했다고?”
호세는 어이가 없다며 혀를 내둘렀다.
도진은 이번 시즌이 첫 풀 타임이다.
어제 놀란에게 3타점이나 허용한 건 충분히 충격을 받을만했다.
자신이라도 그랬을 테니까.
그런데 도진의 눈빛을 보아하니 충격은커녕. 묘수가 있는 듯 보였다.
“뭐냐. 말해봐라.”
“호세. 하…….”
“왜. 뭔데. 말해.”
“저 오늘 경기 지명타자로 나가면 안 될까요?”
“지명타자?”
호세는 반문 즉시 고개를 끄덕였다.
도진의 생각을 곧바로 읽었기 때문이다.
“알았어. 마스크는 누가 썼으면 좋겠냐.”
“호세요.”
“아돌니스가 섭섭하겠네.”
“어쩔 수 없죠. 점수를 덜 내더라도 덜 두들겨 맞는 게 더 중요해요.”
“알았다. 내가 아돌니스 데리고 함께 감독님과 얘기하러 갈게. 이거면 됐냐?”
“고마워요.”
“결과는 다녀와서 말해줄게.”
호세는 성급히 음식을 비우고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지명타자로 나서서 힘을 조금이라도 비축하려는 모양이군.’
그 힘을 바탕으로 이닝을 더 소화하고 싶은 거겠지.
이제는 기회가 단 한 번뿐이다.
공격도 중요하지만, 이럴 때일수록 실점을 줄이는 게 더 중요하다.
지금 에인절스의 불펜은 영 말이 아니었으니까.
도진이 계속해서 9회가 아닌 8회 등판이 이유가 되었다.
‘뭣보다 놀란을 제일 잡고 싶겠지.’
그를 아주 오랫동안 봐왔다고는 할 수 없지만.
적어도 그는 당하면 갚아주는 성격이었다.
또한 양키스의 키 플레이어는 놀란 카브레라.
그를 잡아야지만 에인절스는 양키스를 잡을 수 있기 때문이다.
물론 말처럼 쉽지는 않다.
하지만 다른 방법 또한 없었다.
에인절스를 움직이는 심장을 그저 믿는 수밖에.
* * *
도진은 오늘 타격조에 합류하는 대신 투수조에 합류했다.
‘타격감을 끌어올리기보다는 마운드가 더 중요해.’
에인절스나 양키스 모두 뒤는 없다.
결국 총력전이 펼쳐진다.
총력전이 펼쳐진다고 한들, 에인절스는 믿을만한 투수는 극히 적었다.
‘와일드카드전에 대한 경험 부족과 중압감은 우리 선수들을 짓누르고 있어.’
오늘 선발은 3선발 레이날도.
도진은 피칭을 이어나가는 그를 힐끗 쳐다봤다.
‘최대한 이닝을 길게 끌고 가야 할 텐데.’
그 옆에는 벨 조이스가 몸을 풀고 있었다.
당장 엊그제 선발로 나섰음에도 불펜 피칭을 한다는 것은 이번 경기에 등판할 수도 있다는 의미.
벨 조이스는 10구를 던지며 가볍게 몸만 풀고는 자리에서 물러섰다.
도진은 그런 그를 또렷히 쳐다봤다.
“왜. 할 말 있어?”
벨 조이스는 도진과의 거리를 좁히고 그의 어깨를 팔로 감았다.
도진은 그대로 고개를 끄덕였다.
“네.”
“일단 그 전에.”
벨 조이스는 도진을 감은 팔을 풀더니 등을 도닥였다.
“너무 비장하잖아? 긴장 좀 풀어.”
도진은 눈초리를 가늘게 찢었다.
“어떻게 그래요. 당장 오늘 지면 짐 싸야 하는데.”
“맞는 말인데. 어차피 경기 시작하면 잔뜩 긴장해야 할 거다. 지금부터 괜히 진 빼지 말라는 거야.”
“아…… 알겠어요.”
벨 조이스는 코치에게서 스포츠음료를 건네받고 비어 있는 구석을 가리켰다.
“저리로 가자.”
그곳에 도착한 둘은 바닥에 털썩 주저앉았다.
벨 조이스는 스포츠음료를 들이켠 후 입을 열었다.
“일단 내가 에인절스를 대표하지는 않지만 그래도 주장으로서 네게 미안하다.”
도진은 고개를 갸웃했다.
“네? 뭐가요?”
“그냥. 어제 우린 정말 등신 같았어. 뭐. 상태를 보니 오늘도 그렇겠지만.”
“맞은 건 전데요?”
“그게 문제가 아니야. 어제 표정들 봤지? 리드하고 있었음에도 누군가에게 다급히 쫓기는 표정을 하고 있었어.”
도진은 어제 경기를 떠올리며 고개를 주억였다.
그러고 보니 그랬던 것 같다.
‘나도 마찬가지지만.’
한 경기만 이기면 올라갈 수 있는 상태에서 마음이 너무 급했다.
그 때문에 4타수 1볼넷이라는 선봉장으로서 해줘야 할 역할을 다하지 못했다.
무엇보다 에인절스는 리드하고 있었음에도 벨의 말마따나 선수들의 표정에는 생기가 없었고 지금까지 쭉 이어졌다.
벨이 말했다.
“물론 난 이 팀이 더 좋아지리라 믿는다. 이것 또한 경험이라 내년에는 이런 꼴사나운 모습을 보이지는 않을 거야. 문제는 그게 올해가 아니라 내년이라는 거지.”
벨은 다시 한번 목을 축이더니 말을 덧붙였다.
“피곤하지? 그래도 우리가 올라가는 게 백번 좋아. 디비전시리즈에서 상대에게 세 경기를 내리 패해도 먹는 경험치 양 자체가 다르거든. 나와 호세가 그런 케이스였고. 지금 에인절스 선수들도 그랬으면 좋겠어. 물론 나나 호세는 강해진 에인절스와 함께 오래할 수는 없겠지만.”
도진은 아랫입술을 까득 깨물었다.
벨과 호세는 앞으로 몇 년이나 더 선수 생활을 이어 나갈지 모른다.
정상급의 기량을 유지해도 나이가 너무 많았다.
갑작스러운 부상으로 선수 생활을 접어야 할 수도 있는 황혼기였다.
‘그러니 기필코 우리가 이겨야 해.’
도진은 벨과 호세의 황혼기가 뜻깊었으면 했고.
‘올라갈 수만 있다면 앞으로 내 커리어에 큰 도움이 될 거다.’
도진은 눈동자에 각오를 담았다.
그 눈빛으로 벨을 쳐다봤다.
“이럴 때가 아닌 것 같아요. 바로 본론으로 들어갈게요.”
도진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코치님. 저 공 하나만 던져주시겠어요?”
멀찍이 떨어져 있던 코치는 도진의 외침에 야구공이 쌓여 있는 카트에서 공 하나를 꺼내 도진에게 던졌다.
공을 건네받은 도진은 눈동자에 각오를 담고 곧바로 벨에게 공을 내밀었다.
“벨. 저 슬라이더 알려주세요.”
벨의 눈이 번뜩 뜨였다.
하지만 그는 순간 피식 웃더니.
“슬라이더 그립은 이거다.”
벨은 도진에게 그립을 보여줬다.
공을 다시 건네받은 도진은 같은 그립을 쥐었다.
“이거 맞죠?”
“어. 그거야.”
벨 조이스는 낮게 깔린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네 재능이라면 당장 오늘부터 슬라이더를 흉내는 내겠지. 하지만 난 추천하지 않는다.”
도진의 눈동자에 좌절이 드리웠다.
“지금 놀란을 잡으려면 구종을 늘리는 것밖에 없어요. 벨도 알겠지만…….”
“어. 넌 지금 떨어진 체력 때문에 구속과 구위도 많이 떨어졌지. 그래도 슬라이더는 안돼.”
도진은 사정이 담긴 목소리로 읊조렸다.
“왜요……”
“미국에서 헛스윙을 유발하는 구종 가치 1위가 슬라이더야. 흉내만 내봤자 달라지는 건 아무것도 없어. 그 공이 스트라이크 존으로 향한다면 홈런을 맞을 테고 유인구로 사용하면 가볍게 골라낼 테니까.”
현실적인 답변에 도진은 어떠한 대꾸도 하지 못했다.
생각해 보니 그의 말은 전부 옳았기에 도진은 고개를 푹 숙였다.
“그래도 이대로 손가락만 빨고 있을 수는 없는데…….”
“하여튼. 슬라이더는 안돼. ‘슬라이더만’.”
벨은 패닉에 빠진 도진의 어깨를 톡톡 건드리더니 유유히 자리를 떠나며 침음했다.
‘나는 슬라이더만 안 된다고 분명히 했다. 너라면. 깨달을 수 있으리라 본다.’
벨 조이스는 대놓고 도진에게 정답을 알려주지 않았다.
아무리 마지막 3차전을 앞뒀다고 한들.
그만한 이유는 존재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