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baseball genius who chews up America RAW novel - Chapter (290)
미국 씹어먹는 야구 천재 290화(290/400)
벨과 대화를 끝낸 도진은 불펜 피칭으로 10구를 소화했다.
호세는 아리송한 표정의 도진을 찾아가 물었다.
“뭐야? 표정이 왜 그래?”
“아니에요.”
“아니긴 뭐가 아니야? 뭔데?”
도진은 앞서 벨과 나눈 대화를 호세에게 전달했다.
“음. 별것도 아니네.”
도진은 한숨을 내쉬었다.
“별 게 아니라뇨. 제게는 슬라이더를 배워야만 하는 이유가 명확해요.”
“하지만 안 되는 이유를 벨이 설명해 줬잖아?”
“그건 그렇죠. 그래도요.”
“나는 투수가 아니라서 잘 모르지만, 원래 구종 추가가 쉽지는 않잖아?”
“그건 맞죠.”
에휴.
도진은 한숨을 내쉬었다.
“그래도 불펜 투구 때 슬라이더 그립을 쥔 걸로 벨은 화까지 냈어요.”
호세는 침음하며 턱을 매만졌다.
“뭐래?”
“흉내 낼 생각조차 하지 말래요.”
“부상 때문에 그런 거 아닐까?”
“모르겠어요. 그렇다고 벨을 원망하는 건 아니지만 오늘 경기 지면 저흰 끝이잖아요.”
“그렇지. 그래도 괜히 슬라이더 던져서 부상이라도 입어봐라. 다음 시즌 통째로 날릴 수도 있는데 괜찮겠냐?”
도진은 고개를 저었다.
“괜찮진 않죠.”
“그래. 길게 봐. 길게. 물론 그게 쉽지는 않겠지. 벨도 누구보다 오늘 경기를 꼭 이기고 싶을 텐데 만류한 거 보면 분명 다른 이유가 더 있겠지.”
도진은 호세의 위로에도 좀처럼 기분이 풀리지 않았다.
그만큼 양키스와의 3차전에 대한 부담감은 컸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때.
아돌니스가 다가왔다.
도진의 몸이 순간 떨렸다.
아돌니스는 피식 웃었다.
“긴장하긴. 날 라인업에서 빼라고 한 이유가 있었을 거 아냐.”
도진은 오만상을 찌푸렸다.
“죄송합니다.”
“죄송하긴. 대안은 있냐?”
“솔직히 잘 모르겠어요.”
툭.
아돌니스는 손에 힘을 조금 주더니 도진의 어깨를 툭 건드렸다.
“네 체력 비축이 대안 아니냐?”
“죄송해요.”
도진은 죄송하다는 말만 연거푸 했다.
아돌니스는 팀의 핵심 타자다.
그런데 자신의 체력 비축을 위해 그가 라인업에서 빠지길 바랐다.
‘너무 성급했어.’
탈락할 수도 있는 마지막 3차전에서 흔쾌히 벤치를 지킨다니.
어떤 선수가 이를 용납할 수 있겠는가?
하지만 아돌니스는 도진을 나무라는 대신 위로를 건넸다.
“난 널 믿는다. 그래서 흔쾌히 허락했던 거야. 넌 분명히 우릴 디비전 시리즈로 데리고 갈 것 같거든.”
도진의 표정은 더욱 어두워졌다.
“솔직히 말씀드리자면, 자신은 없어요.”
“그건 나도 마찬가지야. 호세도 그럴걸?”
호세는 아돌니스의 언급에 고개를 끄덕였다.
아돌니스는 다시 말을 덧붙였다.
“지면 떨어지는 마지막 경기에서 자신 있는 선수는 최소 MVP급 선수밖에 없지. 그 정도 급의 선수가 아니라면 모두가 떨릴 거다.”
호세도 동의한다며 아돌니스의 말에 힘을 실었다.
“그 잘난 양키스 놈들과 놀란 카브레라도 벌벌 떨고 있을 거다. 그러니 네가 자신 없어 하는 건 당연해. 야구가 혼자 하는 스포츠더냐? 네가 잘해도 팀이 못하면 져. 팀이 잘해도 네가 못해서 질 수도 있고.”
“호세 말에 동의한다. 막말로 져도 돼. 지면 야구 인생 끝나냐?”
호세는 이를 갈았다.
“난 끝날 수도 있어! 이 자식아!”
“그러니. 평상시에 잘 좀 하지.”
아돌니스는 이만 간다며 등을 돌리더니.
“어떻게든 되지 않겠냐? 근데 이상하게 긍정적으로 흘러갈 것 같다.”
한마디를 남긴 채 자리를 떴다.
그 후 제롬과 라이언이 도진을 찾았다.
“헤이. 우리 심장이 시무룩해져 있으면 어떡하냐? 무슨 일 있어?”
“왜겠냐. 우리 때문이겠지.”
“그것도 그렇네.”
도진은 고개를 저었다.
“그런 거 아니에요. 두 분 모두 잘해주고 계세요.”
“그럼, 힘 좀 내라.”
“그래. 우리도 더 힘낼게.”
도진은 미소를 지었다.
“그래요. 꼭 이겨서 올라가죠.”
마르셀로도 도진을 찾았다.
“출루만 해라. 기필코 불러들여 줄 테니.”
“믿을게요.”
마르셀로는 미간을 찌푸렸다.
“믿는다고? 2연전 내내 무안타에 그친 나를?”
“네. 그래도 믿어요.”
“나 새가슴이야. 몰랐어? 정규시즌과 다르게 타석에 지금은 들어서기만 해도 바들바들 떨려!”
“아닌 거 알아요.”
마르셀로는 머리를 쥐어 싸매는 시늉을 했다.
“들켰네? 그냥 운이 없었던 거뿐이야. 네가 알아줘서 다행이다. 혹시 내 욕하나 싶었거든.”
도진은 양 볼을 빵빵하게 불리더니 고개를 저었다.
“그럴 리가 있나요.”
“양키스가 정말 무서운 팀인 건 뼈저리게 느끼고 있지만 올라가는 건 우리야. 알지?”
마르셀로는 도진에게 주먹을 내밀었고.
도진도 주먹을 쥐고 톡 건드렸다.
마르셀로가 자리를 뜨자 타격 연습을 끝낸 윌리엄이 도진을 찾았다.
갑작스레 자신을 찾는 선수들 때문에 도진은 눈을 끔뻑이다 말고 호세를 쳐다봤다.
“혹시 호세가 시켰어요?”
1차전에 앞서 팀에게 힘을 불어넣어 주라는 호세의 조언이 떠올랐다.
호세는 미간을 구겼다.
“무슨 개소리냐?”
“아니. 저번에 저한테는……”
“그때랑은 다르지. 내가 일일이 놈들한테 찾아가서 아이고! 우리 애송이 새끼 기 좀 살려주자! 라고 말했을 것 같아?”
도진은 고개를 주억였다.
“그것도 그렇네요.”
가만히 듣던 윌리엄은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으로 말했다.
“무슨 말이에요?”
“그런 게 있어. 그나저나. 넌 왜 왔냐? 맥주 한잔할까?”
“호세 농담할 기분 아닙니다.”
“그럼, 왜 왔어?”
“글쎄요. 다들 킴에게 한마디씩 하던데요? 그래서 저도 왔어요.”
“그럼 한마디 해봐.”
윌리엄은 비장한 표정으로 말했다.
“미안하다. 부담을 같이 짊어지지 못해서.”
도진은 손사래를 쳤다.
“그게 무슨 말이에요. 그런 거 아니에요.”
호세가 거들었다.
“윌리엄. 다른 놈들은 사과 따위는 안 했어.”
윌리엄의 턱이 벌어졌다.
“뭐지? 분위기가 그랬는데…….”
호세는 히죽 웃었다.
“어쨌든 넌 그렇게 생각했단 거 아냐? 그러니 오늘 잘해라.”
“호세나 잘해요.”
“난 잘하고 있어 인마.”
윌리엄은 순간 기억을 더듬었는지 한숨을 내쉬었다.
“젠장. 호세한테도 밀리다니.”
“이 개자식이? 너 시즌 성적도 나보다 한참 못 미쳐!”
둘의 대화를 가만히 듣던 도진은 결국 웃음이 터졌다.
이유는 모르겠으나 그냥 웃겼다.
그리고 덕분에 부담감으로 짓눌렸던 어깨도 한층 가벼워졌다.
“고마워요. 진짜로 오늘 이기죠.”
도진의 표정이 밝아지자, 호세는 코웃음을 쳤다.
“끝까지 져도 상관없다는 말은 안 하네?”
윌리엄의 목소리도 한층 밝아졌다.
“킴이 호세와 같은 줄 알아요? 쟤는 이기는 것밖에 몰라요.”
“그건 그래. 그러니 이 애송이를 보유한 우리가 이긴다.”
호세는 주먹을 내밀었다.
윌리엄이 먼저 그 주먹을 쳤다.
호세는 도진에게 턱짓했다.
도진도 주먹을 쳤다.
실제로 모두가 도진을 찾아온 데는 호세의 지시 따윈 없었다.
그저 모두가 미세하게 뛰는 에인절스의 심장에 힘을 불어넣어 주기 위함이었고.
같은 메이저리거로서 언제까지 도진의 바짓가랑이만을 붙잡고 있을 수는 없기에 한 행동들이었다.
* * *
3차전을 앞둔 선수들은 마지막으로 그라운드에 나와 가볍게 몸을 풀었다.
마무리 스트레칭을 끝낸 도진은 양키스 더그아웃을 힐끗 쳐다봤다.
그러자 호세가 풋 하고 웃었다.
“염탐하냐? 그리고 내 말이 맞지?”
“확실히. 양키스 선수들도 비장하네요.”
“어. 1차전 시작하기 전과는 다르게 표정에 여유라고는 찾아볼 수 없지. 그러니 다시 말하지만, 네가 자신 없는 건 당연한 거다.”
“그나마 조금 힘이 나는 것 같아요.”
호세는 턱을 매만졌다.
“경기가 어떻게 흘러갈지는 모르겠지만, 놈들이 죄다 죽 쒀서 편하게 갔으면 좋겠네.”
도진은 저도 모르게 고개를 끄덕였다.
남의 불행이 자신에게는 행복으로 돌아오는 것을 원하지는 않았지만.
오늘만큼은 상관없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호세는 에인절스 더그아웃으로 시선을 돌렸다.
그 즉시 미간이 찌푸려졌다.
“젠장.”
“왜요?”
도진은 호세의 시선을 따라갔다.
오늘 선발로 나서는 레이날도의 표정은 어두웠다.
“저 자식. 잔뜩 긴장했네.”
“그래도 레이날도는 경험이 꽤 있잖아요. 막상 마운드에 오르면 괜찮지 않을까요?”
호세의 눈초리가 더욱 가늘게 찢어졌다.
“글쎄다…… 네 말마따나 레이날도가 경험이 없는 건 아니지. 대신 레이날도도 이런 단두대 매치에서의 경험은 없어.”
도진은 다시 양키스 진영으로 시선을 돌리고는 쩝. 입맛을 다셨다.
“상대 선발은 표정이 꽤 괜찮아 보이네요.”
“그럴 수밖에 없지. 놈들은 월드시리즈 경험도 있으니까. 그 과정에서 디비전 시리즈와 와일드카드전도 몇 번을 치렀었지.”
“정말 저희가 앞서는 게 없네요.”
무대, 경험 그리고 전력.
뭣하나 상대보다 앞서는 게 없었다.
“그래도 어쩌겠냐. 올라가야지.”
호세는 도진이 묵묵히 고개를 끄덕이자, 말을 덧붙였다.
“한마디 해주자면. 지금 레이날도의 상태는 쉽게 좋아지지 않을 거다.”
“그럼 어떡하죠?”
“글쎄. 퀵후크도 생각해 봐야겠지.”
퀵후크. 빠른 선발 투수 교체를 의미했다.
“좋게 말하면 퀵후크가 될 수도 있는 거고, 나쁘게 말하면 강판까지 생각해야겠지.”
도진의 미간이 구겨졌다.
강판. 이 말 자체가 에인절스의 불펜 운용에 큰 문제가 된다는 것이다.
무엇보다 현 에인절스에서 믿을만한 투수는 극히 적다.
불펜 투수 자원만 놓고 보자면, 셋업맨과 마무리 투수인 자신 정도만 믿을만했다.
에인절스는 한 경기라도 더 승리를 챙기고자, 불펜 운용이 꽤 타이트한 편에 속했고.
그로 인해 선수들은 체력 부족에 시달리고 있었다.
도진이 걱정스러운 표정을 짓자 호세는 그의 등을 짝하고 쳤다.
“또 다른 방법이 아예 없는 건 아니야.”
“그 방법이 뭔데요?”
도진의 눈이 초롱초롱 빛났다.
호세는 그럴 줄 알았다며 여유롭게 말을 이었다.
“초 공격에서 점수를 내주면 레이날도도 힘을 좀 받지 않을까?”
도진은 주먹을 불끈 쥐었다.
“확실히 그렇겠네요.”
“어. 그러니 최선을 다해보자고.”
“넵. 알겠습니다.”
도진은 대답 직후 더그아웃으로 발걸음을 돌렸다.
혼자 남아 있던 호세는 솟아오른 입꼬리가 금세 제자리를 찾았다.
‘일 났군.’
선취점을 올린다고 레이날도가 부담감을 내려놓을 수 있을까?
1회부터 점수를 대거 뽑지 않는 이상 힘들겠지.
패배라는 감정은 호세의 시야를 어두컴컴한 어둠으로 인도했다.
지금 에인절스로는 양키스를 이기지 못한다.
지금까지의 메이저리그 경력이 자신에게 그리 일렀다.
다만.
이 어둠만이 가득한 공간에서도 한 줄기의 빛은 존재하는 법.
그 빛을 뿜는 존재는 도진이었다.
‘젠장. 결국 또 애송이 하나만 믿고 가야 하는 건가?’
그런데 어쩌겠는가? 에인절스가 이기려면 결국 그의 활약에 달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