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baseball genius who chews up America RAW novel - Chapter (298)
미국 씹어먹는 야구 천재 298화(298/400)
연습 투구가 끝난 직후 아돌니스가 마운드를 방문했다.
“헤이.”
“넵.”
“어때? 기분이.”
“글쎄요. 사실 별생각 없어요.”
도진은 헤헤 웃었다.
아돌니스도 덩달아 피식 웃었다.
이 새파랗게 어린 신인이 에인절스를 대표해서 디비전 시리즈 1차전 마운드에 올랐다.
얼마나 떨리겠는가?
하지만 그는 마치 한참 선배인 자신의 긴장을 풀어주기라도 하듯 해맑은 미소를 보여주고 있었다.
“져도 괜찮으니 너무 부담 느끼지 마라. 네가 마운드에 오른 것만으로도 선수들은 고마워하고 있거든.”
선수들은 루틴이 꼬이는 걸 극도로 싫어한다.
루틴이 한 번 꼬였다가 시즌 자체를 망칠 수도 있었으니 말이다.
한번 무너진 밸런스가 내년과 내후년까지 이어질 수도 있다.
그러니 선발로 나선다는 도진의 결단은 정말 큰 것이었다.
“에이. 뭐 어려운 일이라고. 그저 해야 할 일을 할 뿐이에요.”
“그래. 살살 가보자. 내려간다.”
아돌니스는 마운드를 벗어났다.
혼자 남은 도진은 고개를 좌우로 풀며 어제 조 캐넌 감독님과의 대화를 떠 올렸다.
‘감독님. 이 방법은 어때요?’
‘어떤 방법이지?’
‘제가 선발로 나가겠습니다.’
그때 감독님과 코치진들의 표정은 꽤 볼만 했다.
눈알이 튀어나올 만큼 매우 놀라셨으니 말이다.
조 캐넌 감독은 호흡을 가다듬고 물었다.
‘오프너?’
‘네. 뭐 그렇다고 볼 수 있죠. 불펜이 선발로 나서는 게 오프너잖아요?’
‘그렇지. 하지만 괜찮겠나?’
‘네. 사실 지금 방법이 없잖아요. 선발 투수를 끌어다 쓴다고 해도 결국 저희 선발 로테이션이 꼬여요. 안 그래도 불리한데 이 작전이 아니라면 1차전 크게 참패할 수도 있어요.’
‘사실 코치들과 자네를 오프너로 쓰는 게 제일 낫다는 말이 나오기는 했다. 문제는 체력이야. 자네는 올 시즌 그 어떤 메이저리거보다 더 많은 경기를 뛰었어.’
도진은 그레그의 시그니처 포즈인 이두박근 자랑을 했다.
미국에서는 어른들과도 거리낌 없이 지냈기에 나온 행동이었으며 안심시키기에도 안성맞춤이었다.
‘어리잖아요. 이럴 때 해보지 또 언제 해보겠어요. 당장 내년부터 머리가 커서 몸을 사릴 수도 있어요.’
‘킴. 난 자네를 믿어. 하지만 지금 에인절스의 상황은 좋지 않아. 자네가 오프너로 나서서 실점을 최소화할 수 있다는 걸 알지만, 다른 선수들은 자네가 애써 지킨 점수에 찬물을 끼얹을 수도 있어.’
도진은 미소를 숨겼다.
‘괜찮아요.’
’뭐?‘
‘괜찮다고요. 그래도 상관없어요.’
’왜지?‘
‘팀이잖아요.’
조 캐넌 감독은 도진의 어깨에 손을 얹었다.
‘그래. 그렇게 하자. 대신 오프너의 정의가 뭔지 알지?’
’잘 알고 있어요. 모든 구위를 쏟아부어 실점만 지키면 되잖아요. 완급 조절을 하는 선발 투수와는 다르죠.‘
’그래. 기껏해야 1이닝. 길어야 2이닝 던질 거다.‘
그렇게 대화는 끝이 났다.
하지만 오늘 마운드에 오른 도진은 성급히 글러브로 입을 가렸다.
입 주변에 피어오르려는 사악한 미소를 감추기 위함이었다.
‘감독님. 어쩌죠? 약속을 못 지킬 것 같아요.’
오프너? 전력투구?
‘안 할 거다. 적어도 5회까지는 마치고 내려가고 싶어.’
패배는 상관없다.
대신 에인절스는 이빨이 없다면 잇몸으로도 싸울 수 있는 팀이란 걸 증명하고 싶었다.
에인절스의 관계자들과 서포터즈들에게 앞으로를 더 기대해달라는 메시지만 전달하면 그만이니까.
‘자. 가보자.’
와인드업 후 던진 패스트볼은 바깥쪽에 정확히 꽂혔다.
“스트라이크!”
아군 적군 가리지 않고 사방에서 탄성이 쏟아져나왔다.
전광판에 찍힌 96마일이란 본래 도진에게서 기대할 수 없을 만큼 느린 구속 때문이었다.
* * *
“스트라이크 아웃!”
[킴! 선두 타자를 삼진으로 돌려세웁니다! 처음이라 생소할 텐데 오프너로서의 출발을 완벽하게 해냅니다.] [이, 이건 오프너가 아닙니다.] [네?] [패스트볼 구속이 96마일이 찍혔습니다. 저흰 킴의 구속을 아주 잘 알잖아요?] [네. 평소의 그라면 이보다 훨씬 빠른 공을 던지죠. 하지만 킴은 지쳤습니다. 그리고 지쳤을 때 구속 감소는 당연하잖아요? 시즌 중 몇 번 보기도 했고요. 최근 양키스 전에서도 그랬습니다.] [맞습니다. 하지만 킴은 짧지만 휴식을 취했습니다. 단 1구라도 일시적으로 구위가 회복됐어야 합니다.] [그렇다는 건. 설마 완급 조절을 하고 있다는 건가요?] [네. 특히나 선두 타자를 상대로 삼진을 잡을 때 패스트볼을 2번 던졌는데 두 번 다 96마일이었습니다. 구속이 일정하다는 것. 그리고 그의 표정이 평온하다는 것. 그는 완급 조절을 하는 게 맞습니다.] [그럼 오프너가 아니라 선발이잖아요!] [저도 잘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지금 에인절스 더그아웃을 보십시오. 조 캐넌 감독조차 벌어진 턱을 다물지 못하고 있습니다.] [감독도 예상하지 못했다? 킴은 선발 등판을 위해 그마저도 속였다는 이야기가 되겠군요?] [그렇게 유추해 볼 수 있지 않을까요? 킴이 팀에 헌신하는 선수라는 건 그의 플레이를 보면 알 수 있습니다. 더군다나 헌신의 대명사인 동양인. 바로 한국인이죠.] [의심이 확신으로 돌아서는 순간이네요. 하지만 괜찮을까요? 불펜과 선발은 엄연히 다릅니다!] [그렇죠. 하지만 그는 선발 경험이 있습니다. 고등학교에서 말이죠.] [여긴 메이저리근데요?] [네. 메이저리그죠. 하지만 킴이 누굽니까? 그는 첫 풀 타임 시즌에서 기존 메이저리거들보다 웃도는 성적을 낸 선수입니다. 그러니 한번 지켜보도록 하죠.]선두 타자를 삼진으로 돌려세운 도진은 주름 한 줄 그이지 않은 표정으로 공을 되돌려 달라며 글러브를 들어 올렸다.
마스크 사이로 아돌니스의 환희 섞인 표정이 삐져 나왔다.
‘진짜 정신 나간 놈이군.’
오프너인 줄 알았는데 완급조절이라니.
어이가 없어서 다리에 힘이 풀릴 지경이다.
더그아웃으로 시선을 돌렸다.
감독님 표정이 볼 만하다.
예상하지 못했던 모양이다.
아돌니스는 어깨를 들썩했다.
‘어쩔까요?’
괜히 물었나?
굳이 대답을 묻지 않아도 결과는 알 수 있었다.
그가 하고 싶어 하는 대로 내버려 둬라.
도진이 없었다면 에인절스는 이 자리에 올라오지 못했을 테니까.
‘하긴. 우리 에인절스가 디비전 시리즈에 진출하다니. 정말 만족스러운 결과지.’
하지만 도진은 만족하지 못한 모양이다.
승패를 떠나서 아직 팬들에게 더 많은 희망을 심어줄 생각이었으니까.
‘인생 2회차라도 되는 거냐?’
어찌 저 어린 선수의 속이 저리 깊을 수 있는 거지?
아돌니스는 포수 마스크를 방패 삼아 굳이 미소를 숨기지 않았다.
도진에게 공을 넘겨주고는 재빨리 사인을 냈다.
‘공격적으로 가자.’
하지만 결국 도진은 체력에 허덕일 수밖에 없다.
그러니 그가 바라는 많은 이닝을 던지게 하려면 최소한의 공으로 최대한 많은 스트라이크를 만들어야 한다.
도진은 고개를 끄덕이고는 타자의 몸쪽을 향해 공을 던졌다.
몸쪽으로 향하던 투구가 더욱 타자의 몸쪽으로 파고들었다.
따-악!
타자는 도진의 투심을 제대로 공략하지 못했다.
타구는 3루수 방면으로 데굴데굴 굴러갔다.
3루수 윌리엄이 타구를 손쉽게 처리했다.
“아웃!”
이어지는 3번 타자와의 승부.
의도치 못한 에인절스의 오프너 전략.
그런데 막상 뚜껑을 열어보니 도진은 오프너가 아니었다.
당황을 머금은 타자의 스윙엔 자신감이 보이지 않았다.
따악!
둔탁한 소리.
완전히 먹힌 타구는 중견수 플라이가 되었고.
도진은 공 6개로 1회를 마무리 지었다.
도진은 모자를 푹 눌러 쓰고 더그아웃으로 돌아갔다.
호세가 그를 찾았다.
“어이. 애송이. 따라와.”
그의 낮디낮은 목소리는 오감을 지리게 했다.
도진은 한숨을 푹 내쉬며 호세의 뒤를 따랐다.
호세는 라커룸과 더그아웃을 연결해 주는 통로로 도진을 데려갔다.
이곳은 카메라가 비치지 않는다.
“앉아.”
도진은 나무 벤치에 앉아 눈치를 살폈다.
그를 내려다본 호세는 무릎을 굽혔다.
“뭐냐. 너 오프너 아니었냐?”
“죄송해요.”
도진은 고개를 들 수 없었다.
1회를 아무리 완벽하게 막았다고 한들 결국 팀을 속이게 된 셈이었으니까.
팀을 속인다는 건 원 팀을 꿈꾸는 에인절스가 하지 말아야 할 규칙.
백번 욕먹어도 싸다. 도진은 체념했다.
그런데 이게 웬걸?
“1회는 어찌어찌 잘 막았다. 대신 2회부터 지금 패턴은 통하지 않을 거다.”
꾸중은커녕. 호세는 경기 운영에 관한 얘기를 꺼내고 있었다.
도진은 너무 놀란 나머지 턱이 벌어진 채로 물었다.
“안 혼내요?”
“삼자 범퇴했잖아? 혼내라고?”
“그게 아니라…….”
“에인절스를 대표해서 마운드에 올랐으면 제대로 된 모습을 보여줘야 할 거 아니냐! 이대로 똑같이 가다간 2회에 두들겨 맞는다.”
“네! 넵!”
“어쨌든 처음부터 다시 얘기할게. 1회는 상대가 당황해서 치지 못했어. 하지만 너도 알다시피 2회부터는 공이 서서히 눈에 익어. 그러니 공이 눈에 익지 못하게 패턴을 바꿔야해. 아돌니스도 와서 얘기를 들으면 좋겠지만, 놈은 2회초 첫 타석이라 그게 좀 안타깝네. 물론 어련히 잘 알아서 하겠지만.”
“패턴을 바꾸라는 건 변화구 위주로 승부하라는 뜻이에요?”
“어. 아돌니스는 초구를 접한 순간부터 널 오프너가 아닌 선발 투수로 생각했을 거다. 그러니 네가 조금이라도 더 많은 이닝을 던지게 하고 싶겠지. 그러려면 결국 투구 수를 최소한으로 줄이면서 최대한 스트라이크를 많이 꽂는 방법밖에 없거든? 그러니 만약 2회에도 패스트볼 위주의 사인이 나오면 네가 거부해.”
“그래도 될까요?”
호세는 굽힌 무릎을 피더니 도진에게 등을 돌렸다.
“지가 어쩔 건데?”
지금 에인절스 1선발은 너잖아?
* * *
2회 말. 도진은 다시 마운드에 섰다.
아돌니스와는 대화를 나눌 시간이 없었다.
그는 2회 초 선두 타자로 출루했고 이닝이 변할 때까지 루에 나가 있었다.
그가 패스트볼 사인을 냈다.
도진은 고개를 저었다.
즉각 사인이 변했다.
커브였다.
‘바로 알아듣네?’
의문을 품을 시간도 아까웠던 도진은 즉각 커브를 던졌다.
그리고 예측 못 한 구종에 타자는 헛스윙했다.
부웅.
“스트라이크!”
2구. 이번에는 체인지업.
도진은 사인에 고개를 젓고 곧장 공을 던졌다.
타자의 배트가 패스트볼 스윙에 맞춰 나왔지만.
퍼억.
“스트라이크 투!”
3구. 이번엔 패스트볼이다.
그런데 타자의 가슴 높이를 원하는 하이 패스트볼.
도진은 곧장 공을 던졌다.
타자는 스윙하지 않았다.
퍼억.
“볼!”
4구.
사인을 교환한 도진은 치솟겠다는 미소를 억제하겠다며 아랫입술을 꽉 물었다.
와인드업.
공은 던져졌다.
사이드 스핀을 잔뜩 머금은 그의 슬러브는 타자의 헛스윙을 끌어냈다.
퍼억!
“스트라이크 아웃!”
도진은 올스타출신인 레드삭스의 4번 타자마저 삼진으로 돌려세웠다.
레드삭스 선수들은 도진을 잘 알았다.
같은 아메리칸 리그라서 몇 번 마주쳤기 때문이다.
그러니 구위와 구속 위주의 피처가 변화구 위주의 피칭을 선보여 버리는 바람에 혼이 가출했다.
“스트라이크 아웃!”
“스트라이크 아웃!”
다시 한번 삼자범퇴.
도진은 마운드를 벗어나기 전 더그아웃을 힐끗 쳐다봤다.
모두가 자신을 향해 엄지를 치켜세웠다.
‘모두가 날 믿어주는구나.’
더그아웃을 밟았다.
호세는 다시 도진을 뒤편으로 데려가 경기 운영에 관해 설명하기 시작했다.
“잘했다. 3회는 말이야…….”
“풋. 푸하하!”
도진은 결국 웃음을 참지 못했다.
‘호세는 알고 있었구나.’
그가 점심시간에 했던 말이 떠올랐다.
호세의 바빠진다는 말은 사실이었다. 지금 호세를 보면 누구보다 바빠 보였다.
호세는 도진을 미친놈 보듯 경멸스럽게 쳐다보더니 금세 함께 웃었다.
* * *
도진은 레드삭스를 상대로 5이닝 3피안타 무실점으로 자신의 역할을 완벽하게 수행했다.
하지만 이미 양키스전에서 모든 걸 쏟아부은 에인절스는 그가 마운드에서 내려간 후 속수무책으로 무너졌다.
3전 0승 3패. 도진의 활약이 무색하게도 에인절스는 레드삭스에 대패했다.
하지만 에인절스 관계자들과 서포터즈. 그 누구 하나 실망하지 않았다.
태양만큼이나 강렬한 빛을 내뿜는 미래가 기다리고 있었으니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