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baseball genius who chews up America RAW novel - Chapter (3)
미국 씹어먹는 야구 천재-3화(3/400)
도진은 그동안 숨기고 부정하려 했던 속마음을 처음으로 털어놨다.
이에 감독은 잠시 말없이 도진을 바라보며 어깨를 다독여주었다.
감독 덕분일까.
도진의 뺨을 타고 흘러내리던 눈물이 차츰 잦아들기 시작했다.
그리고 도진은 메인 목을 천천히 풀며 말을 꺼냈다.
“하지만 제 여건이 좋지 않습니다.”
“그건 걱정하지 마세요. 얼마든지 지원하겠습니다.”
“얼마든지요?”
“그래요. 물론 조건부이긴 하지만요.”
“조건부라면…….”
“야구부에서 뛰어난 능력을 보여줄 것. 아, 물론 공부도 게을리해서는 안 됩니다.”
두 가지 모두 어차피 도진이 생각하던 것이었다.
이번에 다시 야구를 하게 된다면 정말 본격적으로 해보고 싶었다.
한국에서 못 이룬 꿈을 이 미국에서 펼쳐보고 싶었다.
반면 도진은 현실도 명확히 자각하고 있었다.
주변 사람들이 자신의 재능을 극찬해주고 있지만, 그게 미국에서 온전히 먹혀 메이저리거까지 보장이 되는 건 아니라는 걸 잘 알고 있었다.
그렇기에 도진은 야구부에 들어간다고 할지라도 공부에서 손을 놓을 생각이 없었다.
“그것뿐인가요?”
“그렇습니다.”
까다로운 조건도 없다.
그저 도진이 열심히만 하면 야구 물품은 물론 장학금까지 받을 수 있다.
이러한 사실에 도진의 심장이 거세게 뛰기 시작했다.
하지만 이내 한 가지 잊고 있던 사실이 떠오르며 뜨겁게 뛰던 가슴이 싸늘해졌다.
“……제안은 감사하지만 한 가지 걸리는 게 있습니다.”
“그게 뭔가요?”
“부모님이 허락하지 않으실지도 모릅니다.”
아무리 좋은 조건을 제안받았다고 할지라도 과연 부모님께서 도진이 야구를 다시 하는 것을 허락할지는 미지수였다.
“…….”
교장과 감독 역시 도진의 말에 입을 다물었다.
미국에서 보호자의 권위라는 건 절대적이었다.
아무리 교장이라 할지라도 보호자가 거절하면 도진을 야구부로 끌어들일 방법이 없었다.
“설득은 안 될 것 같습니까?”
“……모르겠습니다.”
“그런가요…….”
교장과 감독의 표정이 침통해졌다.
도진의 표정 역시 한없이 우울해졌다.
그러다 도진이 이를 꽉 깨물었다.
부모님의 마음을 모르는 건 아니다.
그럼에도 야구를 반드시 하고 싶었다.
애초에 부모님이 야구를 반대하는 이유가 무엇인가?
도진의 안정적인 미래를 위해서다.
그렇다면 도진의 미래가 안정적일 거라는 확신만 주면 된다.
‘그러니 그때까지만 숨기자.’
도진의 양심이 조금 아파져 오긴 했으나, 이번만큼은 부모님을 거역하고서라도 꼭 야구를 하고 싶었다.
“당장은 아니지만…… 반드시 부모님을 설득해보겠습니다. 그러니 당분간 용병으로 뛰면 안 될까요?”
* * *
도진이 자리를 떠나자 교장은 곧장 입을 열었다.
“용병으로 뛰는 거긴 하지만, 도진 학생이 야구를 한다고 하니 다행입니다. 그런데 정말 도진 학생에게 그만한 혜택을 줄 정도로 재능이 있는 겁니까?”
도널드 감독은 교장의 질문에 일말의 고민조차 하지 않고 대답했다.
“네. 교장 선생님도 90마일 이상의 패스트볼 가치를 아시겠죠?”
“알고는 있습니다. 굉장하죠. 하지만 구속이 모든 것을 대변해주지는 않잖아요?”
미국에는 100마일을 던지는 고등학생 선수들도 있었으니까.
“도진 학생은 과거에 분명히 야구를 해봤을 겁니다. 그리고 그가 전문적으로 야구를 하는 순간. FS 고등학교는 예전의 명성을 조금이나마 되찾을 수 있을 겁니다.”
FS 고등학교는 한때 야구 명문이었다.
하지만 신흥 강자들에게 자리를 서서히 뺏기기 시작하다가 어느덧 완전히 자리를 내주었다.
더는 야구에 재능 있는 학생들이 FS 고등학교에 입학하려고 하지 않는다.
끝없는 지원을 해주겠다고도 해봤지만, 야구 유망주들의 선택은 FS 고등학교가 아니었다.
그리고 이러한 상황을 뒤집기 위해선 한 가지 방법뿐이었다.
바로 하이스쿨 인비테이셔널 토너먼트에 나가는 것.
15,000개의 학교에서 최고의 성적을 낸 16개의 팀을 뽑아 치르는 대회.
전미 최고의 대회라고 불리는 이 대회에 진출만 하면 예전의 명성을 되찾고 다시 야구 명문 학교로 거듭날 수 있다.
그럼 자연스레 위상은 올라가게 될 것이며 입학하려는 학생들이 많아질 것이다.
물론 미국 최고의 대회를 나간다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니지만.
FS 고등학교는 그 한 번의 대회 진출이 필요했다.
“이미 학기가 시작되기 전 몇몇 학생들을 포섭했지만, 전미 대회를 노리기엔 부족합니다. 저희는 어떻게서든 도진 학생을 잡아야 합니다.”
하이스쿨 인비테이셔널 토너먼트에 나가기 위해선 리그 우승과 더불어 몇몇 우승 트로피가 필요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러한 업적을 이루기 위해선 도진이 반드시 필요하다고 도널드 감독은 확신했다.
“그만한 가치가 있는 학생이라는 거군요.”
“네. 물론 제가 틀렸을 수도 있겠죠. 하지만 충분히 걸어봄 직합니다. 한 번만 믿어 주신다면 성적으로 보답하겠습니다.”
사립학교도 결국 사업이나 다름없다.
학교를 알릴 수만 있다면 뭐든 할 수 있다.
교장은 도널드 감독에게서 이런 모습을 처음 접했다.
그가 그토록 누구를 원하는 모습을 내비친 적이 있던가?
“좋습니다. 어차피 정식 계약을 체결한 것은 아니니 당분간 지켜보도록 하죠. 대신. 연습 시합을 잡아서 저 학생의 기량부터 파악하는 것이 좋겠습니다.”
“네. 그럼 제가 다른 학교와 연습 시합을 잡도록 하겠습니다.”
교장은 고개를 저었다.
“아뇨. 제가 잡도록 하죠. 첫 경기는 산타모니카 하이스쿨과의 경기면 되겠습니까?”
도널드 감독의 눈이 번뜩였다.
산타모니카 고등학교.
캘리포니아 내에서도 둘째가라면 서러운 야구 명문.
작년에 전미 대회에 아쉽게 참가하지 못했지만, 재작년에는 참가했을 만큼 실력 있는 학교였다.
“그 정도 수준이면 도진 학생의 재능을 제대로 알아볼 수 있지 않겠습니까? 그리고 도진 학생뿐만이 아니라 이번에 영입한 학생들의 실력도 파악할 더할 나위 없는 상대라고 생각합니다.”
교장은 여유롭게 말을 이었다.
“그리고 상대가 산타모니카라면 이사장님께 지원 요청을 할 때 좀 더 편해지긴 합니다.”
도널드 감독은 고개를 끄덕였다.
“네. 준비해보도록 하겠습니다.”
* * *
교장실을 나온 도널드는 점심시간에 도진을 찾았다.
그는 도진에게 피자 2조각을 사주며 함께 벤치에 앉았다.
“첫 번째 연습 경기는 산타모니카 하이스쿨과의 경기라네.”
도진은 피자를 한입 베어 물었다.
‘산타모니카라.’
도진도 알고 있다.
처음 미국에 왔을 땐 그 학교를 제일 가고 싶었다.
“알고 있는 모양이군.”
“조금은 압니다.”
“그 학교의 전력은 꽤 강하다. 어려운 시합이 될 거야.”
도진은 여전히 덤덤했다.
“말씀대로 야구용품은 지원해주시는 거죠?”
“그래. 다만 알다시피 우리도 절차가 있어서 고가의 용품을 아직 지원해줄 수는 없다네. 대신 기본적으로 필요한 장비는 전부 지원해주겠네.”
도진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거면 충분했다.
애당초 최고의 장비를 지원받는다고 생각도 해보지 않았다.
한국에서도 최고의 장비를 껴 본 적은 없었으니까.
“충분합니다. 시합은 언제죠?”
“아마 이번 주 내로 잡힐 거라네. 그리고 대부분 수요일과 토요일에 경기를 진행하니 토요일일 가능성이 크겠지.”
“일단 오늘 글러브만 따로 받아도 되겠습니까?”
“글러브만? 왜?”
“훈련은 따로 진행하겠습니다. 아무래도 집안 사정이 있어서요.”
도진은 일찍 하교해야 했다.
1년 내내 집과 학교의 반복이었던지라 굳이 부모님의 걱정을 끼치고 싶지는 않았다.
물론 도널드 감독은 아쉬워했다.
FS 야구부가 비록 예전의 명성을 되찾진 못했더라도 훈련 시설만큼은 여전히 으뜸이다.
비록 며칠 남지 않았지만, 그가 제대로 된 훈련을 받을 수만 있다면?
기필코 연습 경기에서도 더 좋은 모습을 보일 수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도널드는 어른이다.
도진을 완벽히 책임질 수 없다면 그의 뜻대로 해줘야 한다며 고개만 끄덕였다.
* * *
도진은 하교 후 지원받은 글러브와 야구공을 들고 집 근처의 공원으로 이동했다.
예전의 감을 찾기 위해서는 연습이 필요했다.
공을 던질 공간은 어떠한 훈련 장비도 없는 이 공원뿐이었다.
도진은 금세 눈에 힘을 가득 담았다.
‘메이저리거? 당장은 바라지도 않아.’
도진은 냉정했다.
당장은 메이저리거를 노릴 생각이 없다.
괴물들이 득시글한 미국에서 아무나 프로가 될 수 있는 건 아니니까.
대신 도널드 감독이 말했던 장학금을 노리기로 했다.
미국 사립학교 특성상 다방면에서 돈이 꽤 많이 들어가는데.
장학금을 얻을 수만 있다면 집안 사정에 보탬이 될 수 있기 때문이었다.
그렇게만 된다면 부모님도 야구를 허락해주실지도 모른다.
‘몸은 좀 피곤하겠지만, 괜찮아.’
도진은 애꿎은 벽을 향해 계속해서 공을 던졌다.
퍼억. 퍼억.
공이 벽에 꽂힐 때마다 공원에 있는 다른 이들의 시선을 사로잡았지만.
도진은 그들의 시선을 외면한 채 계속해서 벽에 공을 던졌다.
고작 몸을 풀기 위해 공을 던졌을 뿐인데 계속해서 힘이 들어갔다.
정신을 차려보니 어느덧 이를 악물고 공을 던지는 자신의 모습을 봤다.
“젠장.”
돈 때문에 야구를 한다.
아직 프로가 아닌 유망주의 머릿속에 자리해야 하는 생각은 아니었다.
우울한 기분이 전신을 감싸자 미간이 자연스레 찡그려졌다.
도진은 결국 땀에 젖은 채 글러브와 공을 챙겨 집으로 돌아갔다.
현관에 들어서자 익숙한 목소리가 고막을 간지럽혔다.
“야구. 시작한 거냐.”
도진은 들려오는 아버지의 목소리에 어금니를 꽉 물었다.
제일 들키고 싶지 않은 상대에게 첫날부터 들켜버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