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baseball genius who chews up America RAW novel - Chapter (311)
미국 씹어먹는 야구 천재 311화(311/400)
시범 경기 날이 다가왔다.
에인절스는 화이트삭스를 마주하게 됐다.
도진은 첫날부터 명단에서 빠졌지만 개의치 않았다.
초반에는 주전이 확정된 선수보다 마이너리거나 이제 갓 메이저리그를 밟은 선수들에게 기회가 더 돌아가기 때문이다.
몸이 아직 다 올라오지 않은 주전 선수가 무리하게 출전을 강행했다가 부상이란 변수를 초래할 수도 있었으니 말이다.
‘오히려 잘됐어.’
벌써 세 번째 스프링 트레이닝이다.
‘이전에는 주전이 확정되지 않아서 죽기 살기로 뛰었지. 그래서 오버 페이스가 되기도 했고.’
올 시즌엔 그런 걱정 따위 할 필요가 없게 되었다.
이곳에서는 성적을 일절 신경 쓰지 않고 그저 페이스만 천천히 끌어올리면 된다.
‘이래서 사람은 여유가 있어야 한다니까?’
경쟁보다는 백번 낫다.
메이저리그에서의 경쟁은 사람의 피를 말리기 때문이다.
하지만 도진은 한층 여유가 생겼음에도 양옆에 앉아 있는 선수들 때문에 자세만큼은 전혀 편하지 않았다.
‘왜 벨이랑 호세가 내 옆에 앉아 있냐.’
다리도 좀 펴고 반쯤 누운 채로 경기를 직관하려고 했더니.
두 레전드 선수 때문에 오히려 각을 딱 잡고 앉아 있는 상황은 한숨이 나왔다.
호세는 그런 도진을 바라보며 피식 웃었다.
“빠져 가지고.”
“제, 제가 뭘요.”
“이제 풀 타임 2년 차로 접어선 놈이 뭘 그리 편하게 있으려고 하냐?”
도진은 눈을 끔뻑이다가 이내 한숨을 내쉬었다.
‘쩝. 이걸 읽히네.’
도진이 입맛을 다시는 사이 벨이 기지개를 켰다.
“그나저나 호세. 이 친구는 뭘 담당하기로 했냐?”
“글쎄. 아직 정하진 않았지.”
둘은 사악하게 미소를 교환했다.
도진은 영문 모를 눈빛으로 양옆을 번갈아 가며 쳐다봤다.
“담당이요?”
호세는 고개를 끄덕였다.
“너도 이제 주축이 됐으니, 뭐라도 해야 하지 않겠어?”
“그러니까 뭘요?”
벨이 대신 대답했다.
“선수 관리 말이야.”
“제, 제가요?”
“너도 해야지.”
“제가 무슨 관리를 해요. 아까 호세가 말했듯이 저 이제 풀 타임 2년 차에 접어들었어요.”
“그래도 성적만큼은 팀 내 1위잖아? 에인절스 유일한 수상자기도 하고.”
“에이. 그건 작년에나 그랬죠. 올해는 어떻게 될 줄 누가 알겠어요.”
“어쨌든 올해만큼은 네가 팀의 주축은 맞잖아?”
도진은 결국 아랫입술을 깨물고 고개를 주억였다.
벨이나 호세에게 말싸움으로 덤빈다?
100이면 100 지는 그림밖에 그려지지 않았다.
“그런데 선수들이 제 말을 들을까요?”
“전부 듣진 않겠지.”
“그런데 왜 절…….”
“그래도 네 말을 듣는 선수 몇몇은 있잖아?”
도진은 깨달았다며 입을 동그랗게 말았다.
“아. 상우와 그레그요?”
이번에는 호세가 대신 대답했다.
“윌리엄, 마르셀로 그리고 제롬과 라이언도 있지.”
도진은 손가락을 하나씩 접다가 포기했다.
‘도대체 몇 명이나.’
타선의 절반인데?
그나저나…….
도진은 버럭 목소리를 높였다.
“아니. 상우와 그레그는 그렇다 쳐도 나머지 선수들은 전부 저보다 나이도 경력도 많은데요?”
“그 전에 네가 생각하는 관리가 뭐냐?”
“글쎄요. 저도 잘 모르겠어요.”
“쉽게 조를 짠다고 생각해. 지금 언급한 친구들은 네가 맡는 거야.”
“그러니까 맡아서 뭘 어쩌라는 거예요.”
“쟤들 성적이 안 좋으면 전부 네 책임이야.”
“네? 그건 좀…….”
너무 억지 아닌가?
무엇보다 그건 주장인 벨 그리고 부주장인 아돌니스에 레전드인 호세가 맡아서 하는 게 당연한 거잖아?
호세는 생각을 읽었다는 듯이 대답했다.
“난 타자 조 나머지 선수들을 맡을 거고 벨은 투수조를 맡을 거다. 공평하지?”
“네. 공평하네요.”
참 공평하다.
도진은 반어법으로 내뱉었다.
하지만 저들은 이미 뱉은 말을 회수하지 않겠지.
“알았어요. 방법이나 알려주세요.”
“너 잘하는 거 있잖아.”
“제가 잘하는 거요?”
호세는 그라운드를 향해 턱짓했다.
오늘 경기 1번과 2번으로 나선 상우와 그레그는 첫 타석부터 범타를 기록하더니 더그아웃 입구에서 한숨을 내쉬고 있었다.
도진은 결국 자리에서 일어나 둘에게 다가갔다.
“첫 타석부터 힘이 너무 들어갔어.”
그레그는 한숨을.
상우는 아오! 분노를 표출했다.
도진은 둘의 어깨를 톡톡 도닥였다.
“긴장하지 마. 아직 시범 경기야.”
“너 같으면 긴장이 안 되겠냐? 어?”
“에이. 알지.”
상우와 그레그는 메이저리거가 되었지만, 성적이 좋지 못할 시 다시 마이너리그로 강등될 수도 있다.
‘시범 경기에서의 결과로 강등될 일은 없겠지만, 좋은 성적을 거둬 기세를 이어 나가고 싶은 거겠지.’
무엇보다 여기서 활약만 제대로 할 수 있다면?
단번에 주전으로 도약할 수도 있다.
‘내가 그랬으니까.’
그러니 마음은 이해한다.
다만 이 둘이 원하는 목표를 달성하려면 의욕을 오히려 죽여야만 한다.
그래야지 자신들의 실력이 나오게 될 테니까.
도진은 문뜩 벨과 호세의 말이 떠올랐다.
‘이것 때문에 나한테 선수들을 맡으라고 했구나?’
그래도 그 숫자가 많다는 생각에는 변함이 없었다.
* * *
상우와 그레그는 두 번째 타석에서도 사이좋게 삼진으로 물러섰다.
도진은 이번에도 잔소리를 늘어놓았다.
“하아. 둘 다 100%는커녕 10%도 발휘하지 못하고 있어. 누구한테 쫓기기라도 해요? 상우 너도. 왜 제구가 안 되는 투수의 초구부터 배트를 휘둘러서 카운트를 불리하게 가져가냐?”
그레그와 상우는 입맛만 다실 뿐 어떠한 반박도 내뱉지 못했다.
‘오늘 경기 안타를 만들지 못하면 더 쫓길 텐데.’
도진의 걱정은 이어졌다.
무엇보다 시범 경기라 두 타석 혹은 세 타석만 치르고 교체될 가능성이 높다.
아직 교체 사인이 나오지 않았기에 다음 타석이 오늘 마지막 기회.
‘여기서 성적을 내지 못한다면 시범 경기 내내 좋지 못한 기세를 이어 나갈 수도 있겠지.’
갓 메이저리그를 밟은 선수에게는 독이었다.
‘어떻게 타개해 나가야 하지?’
하지만 상우와 그레그도 본인들이 조급하다는 것을 알고 있을 터.
대신 타석에 들어서면 머릿속이 새하얘져서 본능적으로 스윙이 나갔던 것이었다.
‘이대로 가다간 다음 타석 똑같을 거야.’
이대로는 안 된다.
내일 죽 쑤더라도 오늘만큼은 기필코 출루를 기록해야 한다.
도진은 도움의 눈빛으로 나란히 앉아 있는 벨과 호세를 쳐다봤다.
그들은 그저 씨익 웃고 말았다.
‘아오! 마음대로 떠넘기더니 이제 나 몰라라 하네?’
조까지 만들어서 관리시키라고 하지 않나!
어? 잠깐만.
묘수가 떠오른 도진은 더그아웃 구석구석을 살폈다.
오늘 경기 출전하지 않는 마르셀로는 아돌니스와 여유롭게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제롬과 라이언 역시 오늘 선발 명단에서 제외됐기 때문에 경기를 지켜보고 있었다.
도진은 조 캐넌 감독 앞에 섰다.
“감독님.”
“무슨 일이지? 출전하려고? 미안하지만 오늘은 참아주게.”
“그게 아니라 타선이 두 바퀴 돌았는데 누구 교체하실 거예요?”
“글쎄. 적어도 1번과 2번에게는 한 번의 기회가 더 돌아갈 거다.”
“그럼 돌아오는 8번과 9번 타선에서 선수 교체를 좀 해주실 수 있나요?”
“누가 들어갔으면 하는 거지?”
“제롬과 라이언이요.”
조 캐넌은 피식 웃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내 마음대로 할 수 있는 권한이 있다지만, 당사자들에게 허락받는 게 먼저 아닌가?”
“감독님 말씀이 맞습니다. 다녀올게요.”
말은 이렇게 했지만, 도진은 감독의 허락부터 받고 둘의 허락을 구하려고 했다.
어쨌든 첫 번째 단계는 통과했으므로 도진은 둘 앞에 섰다.
제롬과 라이언은 도진을 환한 미소로 맞이했다.
“여! 무슨 일이야!”
“몸까지 좋아진 킴! 부탁이라도 있어?”
도진은 뒤통수를 벅벅 긁으며 입맛을 다셨다.
“죄송한데 돌아오는 타석에서 8번과 9번 타순을 대신해서 타석에 들어가 주실 수 있나요?”
도진은 미안한 표정을 가득 담았고, 진심이었다.
이제 풀 타임 2년 차가 메이저리그에서 몇 년을 뛴 선수에게 부탁한다는 것 자체가 있어서는 안 된다고 고지식하게 생각했다.
하지만 제롬과 라이언은 동시에 미소를 지었다.
“문제없지!”
“안 그래도 몸이 근질근질하던 참이었어.”
도진은 연거푸 허리를 굽혔다.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감사하긴. 우리가 원하는 건데?”
“그러니까. 누가 들으면 네 부탁 들어주는 줄 알겠네. 뭣보다 진짜 부탁이 있으면 언제든 말하라고. 네 부탁은 목숨 거는 일만 아니면 웬만해선 들어줄 테니까.”
제롬과 라이언은 몸을 풀겠다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도진은 둘에게서 어떠한 싫은 내색도 찾아볼 수 없었다.
제롬과 라이언은 도진을 만나게 되면서 자신들의 장점을 발휘하는 야구를 할 수 있었기 때문에 그럴 수밖에.
하지만 속내를 알 수 없었던 도진은 둘이 너무나도 고마웠다.
‘다음에 꼭 보답할게요.’
도진은 재빨리 조 캐넌 앞에 다시 섰다.
“허락했어요.”
“그래. 나도 눈이 있어서 아주 잘 보이네.”
“교체해 주실 건가요?”
“벌써 얘기 끝났잖아?”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그나저나 이유를 물어봐도 될까?”
조 캐넌은 이미 이유를 알고 있는 눈치.
하지만 도진은 개의치 않고 즉각 대답했다.
“리와 그레그는 메이저리거로서 첫 시범 경기에요. 첫 번째와 두 번째 타석에서 본 모습을 보여주지 못해 아쉬워서요. 세 번째 타석에서라도 손맛을 보면 앞으로 팀에 더 도움이 될 것 같아서 그랬습니다.”
“구체적으로는? 왜 제롬과 라이언을 선택했지? 자네나 마르셀로 혹은 호세나 아돌니스도 있잖아?”
“제롬과 라이언의 출루율이 제일 높아서 그랬습니다. 둘 앞에 주자가 생기면 제대로 집중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굳이 교체하지 않아도 가능한 부분 아니던가?”
지금 8번과 9번을 맡은 선수는 트리플 A와 더블 A에서 초청받은 선수였다.
조 캐넌의 말마따나 저 둘이 출루할 확률도 충분히 있었다.
하지만 도진은 고개를 저었다.
“이런 말을 해도 될지 모르겠는데요.”
도진은 머뭇거렸다.
조 캐넌 감독은 즉답했다.
“해도 된다네.”
“그럼 사양하지 않겠습니다. 마이너리거들이 출루하면 오히려 갓 메이저리거가 된 신인들이 부담을 느낄 수도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루에 나간 주자가 메이저리거라면 더 집중할 수 있다? 이 말이네?”
“네. 마이너리거들을 무시하는 건 아닙니다만 저들이 출루하면 오히려 위축될 수도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답변이 참 마음에 드는군. 결과까지 따라줄지는 모르겠지만.”
도진은 확신에 찬 표정으로 대답했다.
“결과가 나오지 않아도 상관없습니다. 대신 오늘 경기 말아먹어도 그만큼 두 선수도 깨닫는 게 있을 테니까요. 그럼 앞으로 에인절스에 큰 도움이 되리라고 생각합니다.”
“팀을 위해서라니 더는 할 말 없다. 좋다. 한번 지켜보도록 하지.”
도진은 다시 한번 허리를 굽혀 ‘감사합니다!’ 연발했다.
오늘 도대체 몇 번이나 허리를 숙이는 건지 헤아릴 수 없었지만 딱히 상관없었다.
친구를 위해서.
에인절스가 더 높은 곳에 도달하기 위해선 이것이 정답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조 캐넌과 도진의 대화를 지켜보던 호세가 헹! 하고 코웃음을 쳤다.
“잘할 거면서. 빼긴.”
벨이 맞받아쳤다.
“이야. 네 생각 그대로네?”
“어. 너도 알다시피 쟤는 리더 감이야. 개인 성적? 좋다 이거야. 하지만 진심으로 더 높은 곳을 원한다면 이제는 가진 리더쉽을 발휘할 때지.”
호세와 벨은 에인절스에 부족한 팀을 휘어잡는 능력을 도진이 메꿀 수 있다고 확신했다.
그렇기에 시범 경기인 지금이야말로 그가 자신의 또 다른 능력을 개화하면 좋겠다는 바람에서 제안을 건넸던 것.
그리고 도진은 언제나 예상을 벗어나는 인물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