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baseball genius who chews up America RAW novel - Chapter (333)
미국 씹어먹는 야구 천재 333화(333/400)
어느덧 5월도 벌써 보름이나 지났다.
에인절스는 레인저스에 두 경기 뒤진 2위에 안착해 있었지만, 선수 대부분이 성적에 만족하고 있었다.
벨 조이스가 자리를 비웠음에도 여전히 훌륭한 성적을 내고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도진은 2위로 만족하지 않았다.
‘결국 야구는 시즌이 끝날 때까지 모르는 법이야.’
지구 2위로 시즌이 끝나도 와일드카드전에 포함되지 않을 수도 있다.
만약 포함된다고 해도 와일드카드전에서 무조건 승리한다는 보장 또한 없었다.
‘작년보다 더 나은 시즌을 보내고 싶다. 아니. 그래야만 한다.’
그러므로 어떻게서든 지구 1위를 해서 작년에 실패했던 디비전 시리즈를 확정 짓는다.
이것이 도진이 에인절스와 함께 달성하고 싶은 올해의 목표였다.
다만 말처럼 쉽지는 않았다.
‘벨의 복귀는 아직 정해지지 않았어.’
최소 2개월 많게는 4개월까지도 기다려야 하는데, 하염없이 벨이 돌아오기만을 기다리는 건 너무나도 머나먼 이야기였다.
‘애스트로스의 추격도 매서워.’
애스트로스는 한 경기 뒤진 3위.
에인절스의 뒤를 바짝 쫓고 있었다.
‘이제 요행도 슬슬 힘이 빠질 때가 왔어.’
여기서 요행이란.
스플링커가 세상에 드러나며 개인적인 성적과 팀 전체의 사기를 올라간 점이다.
하지만 이 분위기가 시즌 끝까지 쭉 유지된다고는 보기 힘들다.
희귀 구종도 결국 계속 보다 보면 감흥이 사라지기 마련이었다.
그렇기에 지금은 주장인 벨의 빈자리가 뼈저리게 다가왔다.
‘팀의 사정이 좋지 않을 때 기둥이 되어줄 벨이 없는 게 크네.’
그 역할을 지금 자신이 맡고 있다.
하지만 도진은 벨과 달랐다.
한눈에 봐도 앳돼 보이는, 여전히 어린 선수였다.
‘에인절스는 이제 원팀이라 불려도 손색은 없어. 서로를 믿고 있고 플레이에서도 드러나고 있어. 하지만…….’
대신 이것도 어디까지나 전체적인 팀 분위기의 이야기다.
개인적으로 일일이 파고들면 불만이 있을 수도 있다.
‘역할이 불만족스럽던가. 아니면 개인적인 부진이라던가.’
다행히 아직까진 역할에 불만을 품는 선수는 없었다.
에인절스는 도진의 장점을 최대한 살릴 수 있는 방향으로 팀을 구성했고, 덕분에 합류한 선수들의 장점을 경기에서 최대한 살릴 수 있도록 배치됐다.
‘하지만 부진이라면 말이 또 다르지.’
야구 선수라면 누구라도 잘하고 싶은 개인적인 욕심이 있다.
그런데 뜻대로 되지 않을 시엔 조급함을 느끼게 되며 더 나아가 밸런스가 깨져버릴 수도 있다.
‘밸런스가 깨져버리면 시즌을 통째로 말아먹을 수도 있어.’
그걸 막아야 하는 게 주장이자 팀 기둥의 역할.
임시지만 도진은 지금 호세와 함께 그 역할을 이행해야 한다.
‘나도 최근에는 투구에 신경을 쓰느라 팀 분위기를 등한시했지.’
때마침 오늘 휴식이 주어졌다.
도진은 이참에 선수들을 세세하게 살피기로 했다.
경기는 5회. 어느덧 중반으로 흘러가고 있었다.
도진은 경기에 신경을 쏟는 대신 선수들의 표정을 살피는 데 심혈을 기울였다.
‘대부분 표정이 좋네.’
경기에 출전한 몇몇 선수들은 넘어져도 오뚜기처럼 벌떡 일어설 준비가 되어 있었다.
하지만 모두가 그런 것은 아니었다.
‘요즘 마르셀로의 타격감이 그다지 좋지 못하지.’
그나마 마르셀로는 크게 걱정은 되지 않았다.
그는 여태껏 훌륭하게 프로 생활을 해왔고, 잘 극복해 낼 것이다.
다만 도진의 시야를 사로잡는 두 선수가 있었다.
그들은 마치 어둠에 둘러싸인 듯했다.
상우와 그레그였다.
도진은 몸을 일으켜 상우의 옆에 앉아 그의 옆구리를 툭 쳤다.
“상우야. 할만하냐?”
상우는 입맛을 다셨다.
“잘 모르겠다.”
도진은 낮디낮은 상우의 목소리에서 착잡함을 엿봤다.
“왜. 무슨 문제 있어?”
“문제라…… 잘 모르겠어. 요즘 컨디션이 안 좋나? 좀 그렇네.”
도진은 더욱 가라앉는 상우의 표정에 입을 꾹 다물었다.
‘그러고 보니 최근에 상우의 표정이 계속해서 어두웠던 것 같은데?’
혹시 경기에 출전하지 못해서일까?
원래 자신의 전담 포수인 상우는 최근 들어 그 자리를 아돌니스에게 빼앗기게 됐다.
‘하지만 어쩔 수 없었지. 아직은 상우가 아돌니스만큼 성장하지는 못했으니까.’
상우는 이제 갓 메이저리그를 밟았다.
그레그와 다르게 그의 경쟁자는 아돌니스였다.
‘하지만 그레그는 아니지.’
그레그는 비록 2할 2푼이라는 초라한 성적을 내고 있었음에도 붙박이 2루수였다.
일단 수비가 뛰어나서 그랬다.
상우는 아돌니스보다 수비적인 면에서 강점이 있지만, 타격에서는 아돌니스의 절반도 따라가지 못하고 있었다.
반쪽짜리는 메이저리그에서 환영받지 못하는 건 당연한 이야기였다.
‘물론 상우가 반쪽짜리가 아니야. 어떤 선수가 메이저리그를 밟자마자 성적을 내겠어.’
상우의 옆에 앉아있던 그레그는 도진을 발견하더니 도진의 옆으로 이동해 귓속말을 건넸다.
“헤이. 브라더가 요즘 많이 침울해 보여.”
도진은 대답 대신 고개를 끄덕였다.
그레그는 말을 덧붙였다.
“왜 그럴까. 브라더도 아돌니스에게 자리를 밀리는 건 당연하게 생각하고 있거든? 그래서 더욱 이해가 안 가.”
도진은 그만 말해도 된다는 의미에서 그레그의 허벅지를 톡톡 쳤다.
‘대화의 내용이 상우의 귀에 들리지는 않았겠지만, 혹여 그가 낌새를 알아차리면 괜히 더 착잡해질 수도 있어.’
다만 이대로 있을 수는 없다.
상우는 친구이자 에인절스의 일원이다.
그가 언제 어떻게 활약할지는 미지수였다.
무엇보다 야구는 무슨 일이 일어날지는 아무도 모른다.
‘아돌니스가 부상당할 수도, 아니면 갑자기 컨디션이 확 떨어질 수도 있을 때를 대비해 상우가 꼭 필요한데.’
하지만 허물없이 지냈던 친구가 고민을 얘기하지 않는다.
원래라면 불평불만을 전부 스스럼없이 내뱉는 성격이었음에도 그랬다.
‘나한테 말하고 싶지 않은 거겠지.’
여러 가지 이유가 있을 것이다.
그레그처럼 주전으로 뛰지 못해서일 수도 있고 메이저리그라는 벽이 너무 높아 성적이 나오지 않아서일 수도 있다.
‘전자든 후자든 결국 우리 에인절스 모두에게 좋지 못한 소식이야.’
팀이 어려울 때 신인선수가 해결사의 면모를 보여주면, 사기가 오르기 마련.
‘그러니 이걸 어떻게 해결하지?’
도진은 상우의 실력을 믿었다.
그는 충분히 메이저리그 주전으로 도약할 수 있는 선수였다.
그가 침울함에서 벗어나지 못하면 에인절스는 큰 손해를 보게 될 것이다.
도진의 눈동자에 결단이 섰다.
‘어쩔 수 없나?’
* * *
다음 날.
오늘 휴식하는 호세는 더그아웃 뒤편 통로의 벤치에 앉아있었다.
‘어휴. 대가리가 커도 너무 컸어.’
호세가 고개를 절레절레 젓는 사이 상우가 모습을 드러냈다.
“호세. 부르셨어요?”
“어. 그래. 와서 옆에 앉아라.”
상우는 긴장된 표정으로 터덜터덜 호세의 옆으로 걸어갔다.
그사이 호세는 순간 도진을 떠올렸다.
어제 경기가 끝난 직후 도진이 자신을 찾아왔다.
상태가 좋지 못한 상우를 좀 도와달라는 부탁을 받았다.
‘도대체 왜 날 시키는 거냐. 어렸을 적부터 친구인 자기가 해결하지는 못할망정.’
물론 호세는 이유를 알고 있었다.
메이저리그에서 이미 20년 가까이 상주해 왔으므로 무슨 일이든 눈빛만 봐도 전부 알 수 있었다.
‘애송이 자식 똑똑하네. 성급히 해결하려고 들지 않은 건 잘했다.’
때마침 상우가 옆에 앉았다.
호세는 상우의 목에 팔을 걸었다.
“헤이. 요즘 힘들지?”
“아니에요. 경기도 안 뛰는데 힘들게 있나요. 뭐.”
“그게 힘든 거잖아?”
상우는 호세의 팔이 목에 둘린 채로 고개를 저었다.
“진짜 아니에요. 솔직히 제가 바로 아돌니스 자리를 대체하리라 생각해 본 적 없어요.”
“왜?”
“네?”
“왜 그렇게 생각했는데. 혹시 그러지 말란 법이라도 있어?”
상우의 입술이 파르르 떨렸다.
“그야…… 솔직히 누가 봐도 아돌니스가 저보다 뛰어나잖아요. 아직 제 실력이 부족한 건 사실인데 욕심을 부릴 생각은 없습니다.”
“그게 문제네.”
상우의 이마에 핏대가 섰다.
“호세. 말은 바로 해야죠. 저는 포수예요! 호세가 이 자리에 대해 누구보다 잘 알잖아요.”
“맞아. 포수는 참 개 같은 자리지. 투수 뒤치다꺼리하랴, 남들 안 입는 보호대 착용하랴. 똥개 훈련은 다 하고 얻어가는 건 또 적어. 거기에 포수 자리도 하필 또 한 자리밖에 없어. 주전 포수가 실력자라면 기회마저 적은 엿 같은 자리지.”
상우는 대답하지 않았다.
호세는 그러거나 말거나 말을 덧붙였다.
“물론 너같이 똑똑한 선수가 자리가 없다는 이유로 기분이 다운된 건 아니란 걸 잘 안다. 그래서 뭐가 문제냐? 얘기를 해봐야 문제를 해결하든 뭐든 할 것 아니냐. 애처럼 계속 꽁해 있으려고?”
“그건 아니죠. 저도 이 문제를 해결하고 싶어요. 대신 제가 느끼는 이 감정이 뭔지 모르겠어요.”
어떤 문제든 남이 이야기하는 것보단 본인이 그 문제를 인지하는 편이 해결하기도 좋다.
다만 지금 상우의 상태를 보아하니 정말 모르는 눈치였다.
호세는 씨익 웃었다.
“좀 재미없을 텐데. 내 이야기나 한번 들어볼래?”
상우는 짧게 고개를 끄덕였다.
호세는 상우의 목을 두른 팔을 풀더니 벽에 등을 기댔다.
“처음 내가 메이저리그를 밟았을 때의 이야기야. 벌써 한 17년 됐나? 난 너보다는 늦지만, 그래도 메이저리그를 꽤 빨리 밟은 편이었어.”
20대 초반에 메이저리그를 밟았다는 것.
메이저리그의 슈퍼스타급 포텐을 지닌 선수가 아니면 불가능했다.
“그런데 웃긴 게 뭔지 아냐? 난 그때 반쪽짜리 선수였어. 내 스카우팅 리포트에 이렇게 나와 있었지.”
타격은 괜찮은데 수비는 메이저리그를 밟기 턱없이 부족하다.
상우는 거짓말! 표정으로 말했다.
호세는 수비력이 뛰어나다는 평가를 받는 선수였으니까.
“웃기지? 나도 웃겨. 그런데 진짜였어. 나는 힘을 바탕으로 홈런을 치는 타자를 꿈꿨지. 하지만 메이저리그에 어디 힘으로 홈런을 넘기는 선수가 한둘이냐? 거기에 포지션도 포수야. 일단 내가 왜 포수를 하게 된지부터 알려줄까?”
“왜 포수를 했어요? 그랬다면 차라리 야수가 나았을 거 아니에요.”
“이유는 조오오온나 단순해. 그냥 포수를 해야 메이저리그를 빠르게 밟을 수 있겠다고 생각했어. 공격형 포수가 인기 있는 건 맞잖아?”
“그건…… 그렇죠.”
“그래서 포수로 시작했던 거였어. 마이크 피아자, 버스터 포지. 이런 선수들을 보며 꿈을 키우기도 했고.”
“정말 단순하게 메이저리그를 빨리 밟기 위해서였어요?”
“어. 너도 알다시피 투수나 야수는 경쟁자가 많아. 하지만 포수는 자리가 적은 대신 경쟁자도 훨씬 적지. 이유는 단순해. 난 하루라도 빨리 돈을 벌고 싶었으니까.”
돈을 위해 움직인다.
대부분 유복하지 못한 환경에서 자라면 돈이 1순위가 된다.
호세는 자신이 그런 부류라는 걸 굳이 부정하지는 않았다.
“그래서 포수로 해야할 일은 그냥 무시하고 타격으로 고등학교를 제패…… 까지는 못했지만, 꽤 쳤어. 덕분에 에인절스와 계약을 하게 됐지. 하지만 너도 알잖냐. 공격만 잘하는 포수? 이딴 게 메이저리그에서 통하겠어? 적어도 현대 야구에서는 불가능해. 난 그걸 너무 뒤늦게 깨달았지.”
“그런데…… 결국 메이저리그에서 활약하고 있잖아요. 무엇보다 호세 정도의 커리어면 성공이잖아요.”
“그게 중요한 게 아니야. 내가 어떻게 메이저리그를 밟게 됐는지 알려줄까?”
상우가 관심을 보이자, 호세의 입꼬리가 치솟았다.
“벨 조이스. 놈이 내 머리끄덩이를 잡고 메이저리그로 끌어 올렸어.”
“그, 그게 가능…….”
아. 불가능할 건 또 뭘까.
상우는 고개를 푹 숙였다.
자신 역시 내용은 조금 다르지만, 비슷한 면이 있지 않던가.
“그때 벨 조이스는 나보다 늦게 드래프트 되었지만, 알아주는 유망주였어. 던질 때마다 100마일을 훌쩍 넘겨버리는데 당연히 그럴 수밖에. 그런데 어떻게 수비에 약점을 보이는 내가 메이저리그를 밟게 됐냐면, 아 쑥스럽네.”
“뭔데요?”
“그냥 내가 놈의 공을 제일 잘 받아줘서였어. 웃겼던 게 마이너리그 포수들은 벨의 공을 받기 무서워했거든. 무엇보다 그때 벨 놈 제구가 최악이었거든.”
100마일을 넘기는 공이 제구가 안 된다?
포수뿐만이 아니라 타자나 심판도 두려움을 느낄 수밖에 없다.
혹여 그 공에 맞기라도 한다면 병원행이 예약되어 있었으니 말이다.
“솔직히 보호대를 해도 공에 맞으면 더럽게 아프잖아? 그런데 난 끝까지 벨 놈의 투구에 쫄지 않았어. 그냥 내가 야구를 끝까지 하려면, 돈을 벌려면 이렇게라도 해야겠구나 싶었거든. 맞고 뒈지기라도 하겠어? 이런 마인드였고.”
호세는 미소에 승리를 담았다.
“결국 난 놈의 전담 포수가 됐지. 벨 자식도 그때 당시 새가슴이어서 내가 아니면 공을 제대로 못 던졌었거든.”
그 이후에는 피나는 노력 끝에 약점을 극복해서 주전 자리를 꿰찬 것도 모자라 이 자리까지 왔다고.
“그런데 말이야. 넌 그때의 나보다 훨씬 앞서고 있어. 적어도 포수로서 해야 할 일을 명확하게 알고 있고 포텐도 뛰어나지. 지금 우리 에인절스의 1선발은 애송이야. 놈이 무너지면 우리 에인절스가 무너지고 놈의 중심을 잡아 줄 수 있는 건…….”
도진은 어린 나이에 너무나도 중책을 떠안고 있다.
그런 그는 팀을 위해 헌신하고 있지만, 원래 그런 선수가 제일 먼저 무너지는 법이다.
도진 역시 이 부분을 알지 못한다.
경험해 보지 못했으니까.
자신의 밥그릇만 챙기는 건 쉽다.
하지만 모두의 밥그릇을 챙기기란 밤하늘의 별 따기만큼이나 어렵다.
“우리 에인절스 중에 너밖에 없어. 이것만큼은 확실해.”
상우는 눈을 질끈 감았다.
아랫입술도 강하게 씹었다.
이내 번뜩 뜨인 눈동자엔 각오가 서려 있었다.
“호세. 지루하겠지만 제 얘기 좀 들어보실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