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baseball genius who chews up America RAW novel - Chapter (334)
미국 씹어먹는 야구 천재 334화(334/400)
상우는 오물거리는 입을 힘겹게 떼었다.
“도진이에게 야구를 권한 게 저였어요. 아주 어렸을 때죠. 저는 야구에 관심이 있었지만, 도진이는 아니었어요. 축구에 관심이 많았거든요.”
상우는 스스럼없이 자신의 과거를 얘기해준 호세 덕분에 편해진 표정으로 말을 덧붙였다.
“저도 처음부터 포수를 꿈꾼 건 아니에요. 당연히 투수를 꿈꿨죠. 왜냐면 제 눈엔 제일 멋있었으니까요. 하지만 그때 당시 야구를 같이할 친구가 도진이 하나였어요.”
하지만 글러브는 하나.
공도 하나밖에 없었다.
“결국 누군가는 공을 던지고 누군가는 글러브로 받아야 하는 역할을 해야 하는데. 아무것도 모르는 애한테 글러브를 건네긴 힘들더라고요. 어쨌든. 그날이 제가 투수를 포기한 날이었어요.”
“왜?”
“저는 도진이에게 야구를 권하기 전에 혼자서 벽에다 공을 수백 번은 던져봤어요. 그런데 도진이는 처음 야구공을 던졌는데 그 위력이 남달랐거든요.”
“그놈도 참 개자식이라니까? 살살 좀 하지.”
“어렸을 때니 뭘 알았겠어요. 하여튼 그때 저는 야구에 대한 지식이 있었어요. 노력해도 되는 게 있고 안 되는 게 있다는 걸 알았고, 제가 투수의 재목이 아니라는 걸 어렸지만 바로 깨달아 버렸죠.”
상우는 조금 더 후련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포기를 후회하진 않아요. 도진이의 성장을 옆에서 지켜보면 후회 따위를 할 수가 없었거든요.”
“어땠는데.”
“도진이는 초등학교 때 130km. 80마일을 던졌어요. 말도 안 되죠.”
“무슨 페드로 마르티네즈의 재림이네.”
페드로 마르티네즈.
외계인이라고 불렸던 그 선수도 초등학교 때 80마일을 넘게 던졌기로 유명했었다.
“그래도 할만했어요. 야구에는 투수만 있는 건 아니잖아요? 적어도 도진이보다 하나는 더 잘하고 싶다. 그게 타자면 된다. 이렇게 스스로를 위로하고 야구를 쭉 해왔죠. 전문적으로 야구를 배운 중학교 때는 제가 도진이보다 타격 성적이 좋았어요. 왠지 아세요?”
“너 타격에 재능 있어. 거짓말이 아니라 진짜로. 그러니까 그런 거 아니겠어?”
“아니에요. 제가 앞 타순에 도진이가 있었어요. 위기의 상황 때마다 투수들은 도진이를 거르고 저를 상대하더라고요. 성적이 더 좋았는데도 말이에요.”
호세는 흠! 짧게 침음했다.
“상대 선수들이 애송이 놈에게 범접할 수 없는 무언가를 느꼈나 보네.”
상우는 고개를 끄덕였다.
“네. 도진이는 그 후 미국으로 떠났어요. 그때 한국에서 혼자 남게 된 저는 중학교 때 맞붙었던 친구들과 한 팀이 되거나 다시 적이 됐어요. 그때마다 왜 나를 걸렀냐고 몇 번이나 물어봤었는데 대답은 한결같았어요.”
너와 붙는 선택지 말고는 없었다.
네가 못해서가 아니라 네 앞에 있는 놈이 더 문제라서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고.
“아마 놈의 피칭이 워낙 완벽해서 타자로 상대할 때도 압박감을 느꼈나 보군.”
“정확한 이유는 저도 모르지만, 그랬던 것 같아요. 어쨌든. 도진이 한국을 떠나고 저도 나름 잘 풀렸어요. 일단 에인절스와 이렇게 계약하기도 했고요.”
한 번쯤은 도진을 능가하고 싶다는 생각에 열심히 배트를 휘둘렀다.
물론 그때 당시 상우는 도진이 야구를 접은 줄 알았지만 아무래도 상관없었다고.
“그리고 애송이를 미국에서 다시 만나게 됐다?”
“네. 특히나 제가 한국에서 알던 김도진과는 완전히 다른 사람이 되어 있었어요. 괴물을 넘어선 범접할 수 없는 무언가가 느껴졌어요. 그래도 견딜만했어요. 도진이는 미국에서 저는 한국에서 야구를 해왔으니까요.”
한국은 아무리 날고 기어도 절대 미국의 시스템을 따라잡을 수 없다.
100년이 지나도 격차가 줄어들기는커녕 더 벌어져 있겠지.
“그게 그때의 핑계였어요. 도진이는 미국에서 야구를 해와서 이렇게 된 거구나. 나도 지금부터 이 시스템을 접목하면 잘할 수 있겠구나.”
호세는 볼을 빵빵하게 불린 채 고개만 끄덕였다.
상우는 말을 이어나갔다.
“하지만 현실을 최근에 깨달았어요. 미국과 한국의 차이가 아니구나. 그냥 사람의 차이였구나. 다시 태어나도 결과가 뒤바뀔까? 절대 그럴 리 없다고.”
“그래서 이렇게 꽁해 있었던 거냐?”
“사실 저는 누구보다 도진이의 성공이 기뻐요. 이건 진심이에요. 배가 아픈 건 어렸을 적에 전부 겪었거든요. 그래서 이 감정이 뭔지 잘 모르겠어요.”
호세는 고개를 살포시 젓더니 직설적으로 내뱉었다.
“그 정답을 내가 알아.”
“뭐, 뭔데요?”
“자격지심이야.”
상우의 미간이 와락 구겨졌다.
호세는 그런데도 눈하나 깜빡하지 않았다.
“정말이다.”
“자격지심이라니. 설사 자격지심이라고 해도 그렇게 당사자 앞에서 대놓고 말해도 되는 거예요?”
“어. 너 조오오온나 자격지심 덩어리 그 자체야.”
상우의 턱이 서서히 벌어지기 시작했다.
미국인들이 직설적이라는 걸 알고 있었지만, 남의 감정 따위는 생각도 하지 않는 쓰레기였던가?
“어이. 자격지심. 내가 대놓고 이렇게 말하는 이유는 아주 단순해. 네 문제를 정면으로 마주하지 않고 계속 도망만 친다? 너 평생 이거 못 고쳐.”
“자격지심이라니. 그런 거 아니라니까요?”
“아니긴 뭐가 아니야? 나도 애송이를 볼 때마다 가끔 회까닥하는데.”
“그게 무슨 말씀이세요.”
호세는 진지한 표정으로 말했다.
“나 역시도 애송이의 성장을 보면서 놈과 같은 세대에서 태어나지 않은 걸 다행이라고 생각했어. 만약 내가 놈과 함께였다면 난 야구를 때려치웠을 것 같거든. 메이저리그는 괴물들이 즐비하지만, 그 괴물들 사이에 야구의 신 같이 느껴지는 그런 미친 존재들이 몇 있어. 그런 선수들을 가까이서 바라볼 때마다 누구라도 위축이 될 수밖에 없어. 내 경우에는 그게 벨 조이스였지.”
하지만 어렸을 때부터 메이저리그의 관심을 모두 받았던 벨 조이스를 가볍게 능가하는 선수가 나타나 버렸다.
그게 도진이었다.
“이제 짬밥도 좀 처먹은 직후라 아무렇지 않은 척하는 거지. 너처럼 같은 세대였다면. 더군다나 어렸을 때부터 쭉 같이 지내왔다면 더할 나위 없이 좌절했겠지. 놈은 Three way player라는 메이저리그에서도 볼 수 없는 선수야. 같은 노력을. 아니. 더 많이 노력해도, 더군다나 하나만 열심히해도 능가할 수 없다는 생각이 네 머릿속에 있겠지.”
“그, 그건…….”
상우는 고개를 떨궜다.
전부 맞는 말 같았다.
자격지심이라니. 아니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호세의 말을 가만히 듣자니 맞는 것 같다.
“미스터 자격지심.”
“아! 그만 좀 해요! 자격지심이 맞다고 해도 거참 듣기 뭐하네!”
“듣기 싫으면 고쳐라. 자격지심.”
상우의 속이 꿀렁댔다.
처음 저 말을 들었을 땐 솔직히 울분이 치솟았다.
그런데 자꾸 듣다보니 이제 아무렇지도 않았다.
오히려 웃음이 튀어나올 뻔했기에 버럭 소리까지 질러서 감추기 급급했다.
누군가에게는 이 사태가 죽을 만큼 괴로울 정도로 심각하지만, 끝까지 장난스럽게 다가오는 호세 덕분이었다.
결국 상우는 웃음을 참지 못했다.
“풉. 푸하하하!”
호세는 어이없다며 히죽 웃었다.
“자격지심이 그렇게 좋냐?”
“좋겠어요?”
“근데 왜 웃냐?”
“그냥. 호세의 말마따나 문제를 깨달아서 마음이 편해져서 그래요. 좋다는 건 아니에요. 진짜예요.”
“나도 다 겪어봐서 알아. 대신 난 너만큼 빠르게 겪지는 못했어. 하지만 이걸 극복하면…… 굳이 말 안 해도 알지?”
성장에 박차를 가하게 되리라고.
상우는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알면서도 그랬다.
“몰라요. 그러니 해결 방법을 제시해주세요.”
“날로 먹네? 내가 뼈를 깎는 고통을 견뎌내며 얻은 정답을 그냥 가져간다고?”
“알려주세요. 자격지심을 없애려면 성적을 내는 것밖에 없다고 생각해요.”
“오? 그거 정답인데. 어떻게 알았냐?”
“그야…… 저도 잘해야지 남이 잘해도 딱히 상관없으니까요.”
“그래서 나도 그때부터 수비를 갈고 닦았거든.”
상우의 표정에 착잡함이 더해졌다.
“저는 수비가 괜찮다면서요.”
“어. 그러니까 다른 분야에서 노력해야지.”
“어떤…… 타격이요?”
“넌 가끔 보면 정말 말도 안 되게 똑똑한데, 아주 가끔은 완전 바보 같아. 포수라면 수비와 타격은 기본이야, 인마!”
“그건…… 그렇죠. 그럼 전 뭘 해야 하는데요…….”
“일단 너. 솔직히 연습량만 놓고 보면 에인절스 2위야. 거기에 타격 연습만 보면 네가 애송이보다 더 많고! 알아?”
상우는 대답하지 않았지만, 암묵적으로 동의했다.
“그런데 말이야. 네 노력에는 문제가 있어.”
“노력에 문제가 있다니요. 그게 무슨 말씀이세요. 그리고 제가 2위면 도진이가 1윈데. 걔는 저보다 더한 노력가잖아요.”
“둘의 차이가 뭔지 모르지?”
“인간…… 차이?”
“틀린 말은 아니긴 한데…….”
호세는 팔짱을 끼더니 고개를 좌우로 저었다.
“하. 이거 진짜 100억짜리 팁인데.”
“우승으로 보답할게요.”
“개소리하고 있네.”
호세는 금세 말을 정정했다.
“아. 가능할 수도 있겠네.”
상우도 그저 내뱉은 말이었다.
그런데 가능하다니.
도대체 어떤 팁이길래.
궁금증이 증폭하는 그때 호세가 힌트를 주었다.
“메이저리그에서 성공하려면 뭐가 중요하냐?”
“성적이죠.”
“맞아. 성적은 기본적으로 중요하지. 성적이 좋으면 결국 메이저리그에서 살아남을 수 있으니까. 하지만 여기서 더 나아가보자. 네 목표는 뭐냐? 무슨 목적으로 그렇게 노력하고 있냐?”
상우는 입을 뻐끔거리다 말고 고개를 푹 숙였다.
“모르겠…… 어요.”
“그래. 차이가 느껴지냐?”
“네…….”
도진의 노력에는 언제나 목적성이 따랐다.
하지만 자신은?
한때 도진이의 뒤를 따르겠다며 노력했다.
그런데 지금은 그런 목적성이 없었다.
“그에 대한 해답은 천천히 생각해 봐. 대신 힌트를 더 줄게. 야구 선수는 롤러코스터와 같아. 성적이 좋다가도 한순간에 망할 수도 있지. 그러니 성적이 좋지 않을 땐 뭘 해야 할까?”
하지만 상우는 금세 정답에 도달했다.
도진이를 떠올리자니 그리 어렵지 않았다.
“저만 할 수 있는 게 있다면…… 성적이 좋지 않아도 저를 메이저리그에 남겨두지 않을까요? 호세도…….”
호세가 상우를 대신해서 말을 끝맺었다.
“맞아. 난 벨 조이스 공을 받을 수 있는 포수로서 반쪽짜리임에도 메이저리그에서 살아남았어. 그리고 산 사람에게는 언제나 기회가 오는 법이다.”
“제가 살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네가 살아남은 이유가 뭐냐?”
“그야…… 도진이 덕분이죠. 하지만 지금 도진이는 아돌니스가 전담하고 있어요.”
“정답에 다 왔네.”
“아…….”
그 아돌니스도 절대 할 수 없는 걸 가지면 된다.
그게 뭐가 있을까.
상우는 심각하게 고민을 이어나갔다.
하지만 정답에 도달하기란 쉽지 않았다.
포수는 결국 수비와 타격 그리고 리드라는 지표로 평가받는다.
여기서 아돌니스보다 자신이 당장 확실하게 앞설 수 있는 건.
‘수비도 리드도 아니야. 압도적이라고 장담할 수 없어.’
차후 시간이 주어져서 경험이 쌓인다면 모를까.
갑자기 실력이 부쩍 향상할 건수는 당장에 없다.
물론 분위기를 타서 성적이 조금 더 좋아질 수는 있겠지만, 그건 근본적으로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 아니다.
‘분위기에 의존했다가 그 분위기가 치우치면 이도 저도 아니게 되기 때문이다.’
깨달음이 뇌리를 스쳐 지나간 상우의 눈이 번뜩 뜨였다.
“혹시…… 대화. 뭐 이런 걸까요?”
“정확히는 교감이라고 하지. 너와 애송이는 한국인이자 어렸을 때부터 친구지. 그걸 살리는 방향으로 나아가봐. 왜 그런 거 있잖아. 저 코리안 배터리는 달라도 뭔가 확실히 다르다. 그 코리안 배터리가 메이저리그 최초잖아?”
상우는 천 년 묵은 때를 시원하게 벗겨낸 듯한 환한 미소를 지었다.
“호세. 저 결정했어요. 도진이 키우기. 제가 해볼게요.”
“걔를 네가 키워? 가능은 하고?”
“안 될 건 뭐 있어요. 도진이 놈도 약점이 있는데 그 약점을 제가 보완해보면 되죠.”
호세는 자리에서 일어나 손을 털었다.
그러고는 상우의 어깨를 툭툭 도닥였다.
“그래. 잘해봐라.”
넌 정답을 찾아냈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