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baseball genius who chews up America RAW novel - Chapter (335)
미국 씹어먹는 야구 천재 335화(335/400)
경기가 중반으로 치닫는 사이 상우와 호세가 다시 더그아웃에 모습을 드러냈다.
도진은 한결 후련해진 상우의 표정을 시야에 담고 입꼬리를 올렸다.
‘뭔진 모르지만 해결됐나 보네.’
도진은 호세가 인상을 찌푸리며 하얀 이빨을 드러내자 고개를 까딱 주억였다.
‘죄송해요. 그리고 감사해요.’
호세는 볼일 보라며 손을 휘휘 저었다.
그때 상우가 도진의 옆에 서더니 전광판을 스윽 훑어봤다.
스코어는 2:1.
에인절스가 지고 있었지만, 여전히 1사 1, 2루로 득점할 기회는 남아 있었다.
“스트라이크 아웃!”
8번 타자로 나선 제롬이 삼진을 당했다.
그 즉시 상우의 쩌렁쩌렁한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제롬! 괜찮아요! 스윙 매우 좋았어요! 맞았으면 넘어갔을 텐데! 진짜 개 아깝다! 이게 안 맞네!”
도진은 웃음을 참겠다며 아랫입술을 씹었다.
상우의 멘트가 웃겨서는 아니었다.
기운을 되찾은 걸로도 모자라 팀에 활기를 불어넣어 주려는 노력이 가상해서였다.
상우의 뜻이 다음 타자 윌리엄에게 닿은 것일까?
따-악!
담장을 넘겨버리는 홈런이 나왔다.
‘오?’
도진은 홈런을 친 윌리엄보다 상우를 힐끗 쳐다봤다.
‘응원이 통했다.’
확신할 수 있었다.
원래 루키는 재롱을 떨어야 하는 자리다.
그 루키의 재롱이 비록 가식이 담겨 있어도 딱히 상관없었다.
기분만 좋으면 그만이니까.
‘앞서 제롬은 삼진을 당했지만, 상우의 말에 힘을 얻었을 거야.’
다음 타자로 나선 윌리엄 역시 칭찬 한번 듣겠다며 있는 힘껏 휘둘렀고, 결과는 완벽했다.
‘인간은 원래 칭찬에 약하지. 입에 침을 바르든 안 바르든, 욕보단 칭찬이 백번 낫잖아?’
근래 들어 도진은 신경 쓸 게 너무 많았다.
세 개의 포지션을 담당해야 하므로 마운드, 타석 그리고 수비까지 어떻게 해야 더 잘할 수 있을지 매일 같이 고민하고 있었다.
거기에 임시로 맡게 된 투수조도 신경을 써야 했으며, 원래 해오던 팀 분위기까지 살려야만 했다.
하지만 늘 하던 부분을 등한시했다.
‘내가 여유가 없어서였어.’
이 또한 경험이 없어서다.
갑자기 다양한 보직들을 맡게 되어 정신 사납다는 표현이 옳았다.
그런데 그 부분 중 하나를 상우가 대신 해결해 주려는 노력이 보였다.
그리고 역시나.
상우는 더그아웃의 입구에 제일 먼저 달려 나가 손을 번쩍 들어 올렸다.
득점과 타점을 올린 선수들과 일일이 하이파이브를 나눈 후 다시 목소리에 힘을 실었다.
“이대로만 가죠! 저도 최선을 다해보겠습니다!”
상우는 이거면 됐다.
도진은 우측에 멍하니 서 있는 그레그를 힐끗 쳐다봤다.
그의 동공이 파르르 떨리고 있었다.
갑자기 상우의 파이팅이 넘쳐서겠지.
도진의 시선을 읽은 그레그는 벌어진 입을 꾹 다물었다.
“뭐, 뭘 봐!”
“뭘 보긴요. 혼자 가만히 뭐 하는 거예요.”
“그, 그게 무슨 말이야.”
“누가 보면 메이저리그에 몇 년 썩은 줄 알겠네. 그레그. 본분을 잊지 마세요!”
“보, 본분이라니! 내 본분이 뭔데!”
도진은 악마같이 사악한 미소를 지었다.
“루키.”
“끄윽!”
가슴에 비수가 꽂힌 그레그의 몸이 부들부들 떨렸다.
그런데 그는 언제 그랬냐는 듯, 양손을 X자를 그리며 사타구니를 치며 소리를 질러대기 시작했다.
“호우! 호우!”
도진은 그 즉시 고개를 숙이고는 모자로 얼굴을 가렸다.
‘아오. 저질의 극치네.’
그래도 뭐.
선수들이 좋아하고 있다.
이런 광대 같은 포지션도 한 명 있어야 팀에 활기가 생기니까.
‘고맙다. 그리고 고마워요. 그레그.’
도진은 덕분에 부담을 덜었다.
그러니 이제 다시 본분으로 돌아올 때였다.
‘내 문제점이나 다시 짚어보자.’
자신은 스플링커를 장착했다.
그로 인해 최근 경기력은 매우 좋았지만 이제 신 구종에 대한 감흥이 슬슬 떨어질 시기가 오고 있었다.
‘무엇보다 나는 1선발의 역할을 제대로 해내고 있지 못하고 있어.’
스플링커를 장착하고 나서 단 한 개의 자책점도 내주지 않았다.
근 한 달 동안 무적에 가까운 포스였지만, 그 경기에서 승리를 전부 쟁취한 것은 아니었다.
이닝을 길게 소화하지 못해 다음 불펜 투수들이 실점을 내줘서였다.
‘불펜 투수들을 탓할 수 없지.’
선발 투수에게 이닝은 생명이나 다름없었다.
불펜 투수의 체력을 아낄 수 있다면, 그들이 차후 더 좋은 퍼포먼스를 펼칠 수 있다.
체력을 비축한 투수가 더 좋은 퍼포먼스를 펼칠 수 있다는 건 팀 방어율이 떨어진다는 의미였다.
‘더욱이 메이저리그 1선발에 기대하는 이닝은 아무리 못해도 최소 6이닝이야.’
그런데 최근 등판에서는 5이닝 많아야 6이닝만 던지고 마운드에서 내려왔다.
‘감독님이 강제로 강판시킨 것도 있긴 한데…….’
가장 큰 이유는 몸에 무리가 갈 수 있는 새로운 변화구를 시즌 중에 장착해서 던졌으니까.
‘차근차근 준비해서 몸이 완전히 적응한 상태라면 또 모를까. 갑자기 몸에 무리가 가면 밸런스가 무너질 수도 있어.’
하지만 도진은 핑계를 대고 싶지 않았다.
‘애초에 잘했으면 됐잖아?’
변화구를 장착한 건 본인 선택이었다.
애초에 변화구를 장착하지 않고 잘 던졌다면 여기까지 올 필요도 없었겠지.
‘그런데 이미 물은 엎질러졌고, 스플링커도 마음에 드니 이제는 이닝만 더 소화하면 된다.’
선발 투수로서의 경기 운영이 필요한 시점이었다.
호세처럼 수비가 뛰어난 선수가 마스크를 썼다면, 이렇게까지 고민할 필요는 없었다.
그는 정말 세세하게 지시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호세가 다시 마스크를 쓸 일은 없어.’
이제는 아돌니스 혹은 상우가 포수다.
그들과 호흡을 맞추면서 알맞은 경기 운영을 깨닫는 게 먼저였다.
‘이건 단순히 경험이 쌓인다고 되는 건 아니야.’
적어도 도진에게는 그랬다.
물론 경험이 쌓이면 언젠간 문제를 해결해 줄 것이다.
그런데 그 경험이 언제 쌓일지. 얼마나 걸릴지는 알 수 없었다.
지금 당장 성적을 내기 위해선 기다리는 건 정답이 아니었다.
‘틀부터 잡자. 뼈가 있어야 살을 붙이기 쉬우니까. 그러니 다음 목표는 경기 운영을 장착해서 더 많은 이닝을 노리자.’
틀을 잡기란 쉬웠다.
잘 던지는 투수들을 유심히 관찰하면 된다.
지금까지는 너무 정신이 없어 다른 선수를 관찰할 틈이 없었다.
그러니 그들이 어떤 방법을 사용하는지, 어떻게 운영하는지 깨닫고 나서 자신만의 틀을 갖춰놓으면 된다.
그 틀을 바탕으로 포수와도 계속해서 대화를 나누면 금세 완성할 수 있겠지.
* * *
도진의 다음 등판 상대는 미네소타 트윈스.
그다음 등판 상대는 보스턴 레드삭스였다.
오늘 경기는 아돌니스의 휴식으로 상우가 마스크를 쓰게 됐다.
상우는 경기에 앞서 몸을 풀면서 도진과 대화를 나눴다.
“오늘 트윈스 1선발 토란이랑 붙네. 이 선수. 공은 메이저리그 평균인데 평균 자책점이 좋아.”
“몇인데?”
“3.08.”
“잘 던지네.”
상우는 어이없다며 고개를 저었다.
“네가 할 소리는 아니지. 너 지금 평균 자책점 2.58이야.”
“평균 자책점이 투수의 전부를 대변해 주는 건 아니잖아?”
“개소리. 그럼, 뭐가 대변해 주냐? 너 지금 아메리칸 리그 평균 자책점 1위야. 물론 이제 슬슬 몸이 올라오는 1선발급 선수들도 빠르게 평균 자책점이 낮아지고 있지만 어쨌든 1위잖아?”
“이닝에서 크게 차이 나. 많게는 벌써 16이닝이야.”
아직 시즌이 중반도 되지 않았는데 16이닝이나 차이는 절대 무시할 수 없는 수치였다.
‘타고난 이닝이터들과의 비교지만, 그래도 분발해야겠지.’
상우는 놀란 눈으로 도진을 쳐다보다가 이내 시선을 회수했다.
“네가 그렇다면 그런 거겠지. 어쨌든 그 이닝이터가 오늘 네 상대야. 너보다 벌써 11이닝이나 더 던졌네.”
“평균 자책점 3점을 유지하면서 11이닝을 더 던졌다. 그만큼 불펜 투수의 11이닝을 아낀 거니 정말 대단하네. 그래서 말인데.”
도진은 상우에게 다음 자신의 목표를 설명했다.
“이닝을 많이 먹는 경기 운영을 하고 싶다고?”
“응.”
“쉽지 않네. 넌 엄연히 파워피처야. 이닝을 더 소화하려면 지금보다 힘을 더 빼야 할 수도 있어. 괜찮을…….”
상우는 말을 멈췄다.
괜찮지 않으면 어쩔 건데? 그의 표정이 금세 자신감으로 뒤바뀌었다.
도진은 피식 미소 지었다.
“그러니까. 해보자.”
“패턴을 갑자기 바꾸면 오늘 경기 말아먹을 수도 있다는 건 알지.”
“말아 먹지 않는 선에서 바꿔보자.”
상우는 경멸스럽다는 눈빛을 띠었다.
“일단 내 데이터와 네 장점을 접목하게 시켜서 사인을 낼게. 대신 너는 감이 좋잖아? 아니다 싶으면 언제든지 알려줘. 내가 습관적으로 네 강점 위주로 리드할 수도 있으니까.”
“좋아. 오늘 잘 부탁한다.”
상우와 도진은 오늘 나란히 8번과 9번에 서게 됐다.
1이닝부터 대량 득점이 나지 않는 이상 1회부터 타석에 들어설 일은 없었다.
둘은 경기 운용 방법을 익히겠다며 눈을 부릅뜨고 있었다.
2사 주자 없는 가운데 호세의 타석에서 흔치 않은 장면이 나왔다.
투수의 와인드업이 너무나도 빨랐기 때문이다.
마치 전쟁이라도 터져서 당장 도망이라도 가야 한다는 듯이, 순식간에 공을 던졌다.
“와. 미친.”
상우가 중얼거렸다.
도진 역시 생소한 장면에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저건…….’
원래 투수들은 공을 던지기 전 타자의 타이밍을 조금이라도 더 뺏고자 뜸을 들이는데, 그와 정반대였다.
야구에서는 이것을 변칙 와인드업. 퀵 피치라고 불렀다.
그 때문일까?
메이저리그에서 사골을 아주 깊게 우린 그 호세도 당황하며 속수무책으로 삼진을 당했다.
도진의 눈동자가 빛난 것도 그때였다.
‘투수가 저런 방식으로 경기 운영을 할 수도 있구나.’
사실 와인드업이나 세트 포지션은 현대 야구에서 큰 차이를 보이지 않는다.
다만 와인드업의 장점이란 본인만의 동작으로 타자의 타이밍을 조금이라도 빼앗을 수 있었다.
그런데 토란이 방금 선보인 퀵 피치는 본래 그의 와인드업과는 확연히 달랐다.
‘본래 와인드업은 다른 투수들처럼 천천히 던졌지만, 그의 퀵 피치는 세트 포지션으로 던지는 거보다 더 빨랐어.’
트위스의 선발 투수 토란은 앞서 말했듯이 평균 구속을 던지는 투수이자 1선발이었다.
‘가진 하드웨어가 평범한데도 이상하리만치 이닝을 많이 던졌고 자책점도 좋았던 비결이 이거일 줄이야.’
도진의 입꼬리가 치솟았다.
그 모습을 지켜본 상우는 흠칫 놀랐다.
“너…… 설마.”
도진은 상우의 어깨에 손을 툭 하고 얹었다.
“잘 부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