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baseball genius who chews up America RAW novel - Chapter (34)
미국 씹어먹는 야구 천재-34화(34/400)
글렌데일의 타자들은 도진에게서 벽을 느꼈다.
압도적인 실력을 의미하는 벽이었다.
우타자가 당겨치면 타구는 3루수와 유격수 방면으로 향한다.
하지만 3루수와 유격수를 맡는 선수가 다름 아닌 알렉산더와 도진이었다.
그들은 캘리포니아 내에서도 최고의 수비력을 갖추고 있었다.
제대로 당겨친 타구도 2명의 수비를 통과하지 못했다.
1회 말. 공수 교대.
선두타자의 잘 맞은 타구가 중견수 정면으로 날아갔다.
도진은 아쉬워하는 선두타자의 어깨를 톡톡 도닥인 후 곧바로 타석에 들어섰다.
‘자! 붙어보자고!’
도진은 지금 자신감이 하늘을 찔렀다.
상대도 이를 모를 리가 없었다.
여태까지 도진의 활약은 그와 맞붙어야 하는 상대라면 전부 알고 있었다.
그래서일까?
포수는 자리에서 일어나더니 한 발자국 옆으로 빠졌다.
[고의사구입니다!] [아. 킴은 아쉽겠어요. 타격감이 오를 대로 올라왔거든요? 이번 타석에서도 좋은 모습을 보여주고 싶었을 겁니다.] [물론 슬퍼할 일만은 아닙니다. 그의 위상을 대변해주는 광경이니까요.] [그렇습니다. 고작 10경기도 치르지 않은 시점에서 벌써 캘리포니아를 대표하는 타자가 된 것이라고 볼 수 있겠습니다.]채팅창은 아쉬워했다.
-그냥 걸러버리네?
-3홈런 10타점이 레전드긴 하지.
-그래도 이거 맞냐? 다음 타자들을 너무 무시하는 거 아니야?
-근데. 솔직히 이제는 알렉산더보다 킴이 더 기대되긴 함.
-어쩔 수 없어. 배트도 휘두르지 못하는 알렉산더보다 이번 시즌 계속 증명해준 킴이 더 기대되는 것은 사실이지.
-인정. 난 알렉산더 타격자세도 까먹음.
도진은 타격 장비를 바닥에 살포시 내려놓고 묵묵히 1루로 걸어 나갔다.
홈팬들은 도진을 걸렀다는 아쉬움에 원정팀에 야유를 보냈다.
더그아웃의 선수들도 어금니를 꽉 깨문 도진의 표정을 바라보며 아쉬움이 크겠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들은 오해했다.
도진은 솟아오르려는 입꼬리를 제어하겠다며 어금니를 꽉 문 것이었다.
‘이거지! 이거라고! 이게 원래 한국에서도 늘 상 있던 일이라고!’
누군가 자신에게 아쉽지 않냐고 묻는다면 전혀 아쉽지 않다고 자신 있게 대답할 수 있었다.
오히려 지금은 마이크와 알렉산더에게도 균등하게 차례가 주어지는 것이 자신에게도, 팀에게도 도움이 됐다.
한편.
타석에 들어선 마이크의 구겨진 미간은 되돌아갈 생각이 없어 보였다.
‘가, 감히. 내 앞에서 걸러?’
물론 이유에 대해선 그 누구보다 잘 알았다.
도진은 마운드에서도. 타격에서도.
심지어 처음 유격수 수비를 선보였음에도 완벽한 모습을 보였다.
‘하아. 나만 증명하면 되겠네. 아니 증명해야만 한다.’
직전 경기까지만 해도 마이크의 생각은 대개 이랬다.
‘나는 포수를 맡았으니 타격은 조금 부족해도 괜찮아.’
하지만 도진을 봐라.
유격수를 보면서도 뛰어난 활약을 보였다.
‘하. 언제까지 포수 포지션으로 우월감을 느낄래? 이 썩어빠진 생각을 뜯어고쳐야지.’
평소의 마이크는 배트를 짧게 잡아 컨택 위주의 스윙을 했지만, 이번만큼은 배트를 길게 잡았다.
시원하게 장타를 날려서 더는 무시를 받지 않겠다는 포부였다.
공은 투수의 손을 떠났고.
마이크는 스윙에 분노를 모두 담았다.
부웅.
하지만 의욕이 앞섰던 것인지.
크게 헛스윙하며 몸이 한 바퀴 빙글 돌아가더니 엉덩이가 바닥에 찧었다.
[헛스윙. 크게 헛스윙합니다.] [마이크 선수가 자존심이 많이 상했나 봅니다. 평소와 다른 스윙이었어요.]채팅창도 낄낄대며 맞장구쳤다.
-이야. 맞았으면 타구가 지구 끝까지 날아갈 것 같은 스윙이긴 했어.
-맞았으면 말이지.
-맞아야지 말이지.
마이크는 엉덩이를 툭툭 털고 일어나더니 심판에게 잠깐 타임을 외친 후 타석에서 벗어나 장갑을 더욱 꽉 조였다.
하지만 꼴사나운 모습을 보였던 탓에 얼굴이 울긋불긋 올라오려는 찰나 투수와 눈이 마주쳤다.
‘하. 내 위상.’
마이크는 투수의 입꼬리가 살짝 올라가자 이마에 핏대가 섰다.
‘야구. 접지 말았어야 해.’
자신도 중학교 때는 알렉산더급으로 이름을 날렸다.
물론 본인 생각이었다.
자신만의 생각이란 것을 인지하며 재차 증거를 늘어놓았다.
‘그래도 최소 비빌 만하지 않았나?’
알렉산더는 중학 MVP 출신이며 자신은 캘리포니아 포수 유망주 1위였다.
물론 MVP가 더 잘한 것은 맞지만 포수의 가치는 결코 무시할 수 없었다.
그런데 도대체 이게 무슨 일이던가.
‘나를 상대하겠다고 앞 타자를 걸러?’
마이크는 심호흡을 길게 내뿜고는 평정심을 되찾았다.
‘나도 증명하면 그만이야.’
이글이글 타오르는 눈동자와 함께 배트를 더욱 움켜쥐었다.
2구.
부웅.
또 헛스윙.
첫 스윙 때처럼 엉덩이가 바닥에 닿거나 하지는 않았지만.
크게 휘청인 자신의 몸뚱이는 스윙에 힘이 들어갔다는 걸 모두에게 알리는 꼴이었다.
‘진정해. 진정하라고! 이런 일이 비일비재하게 일어날 거야!’
무조건 보여줘야 한다.
더는 자신을 무시할 수 없게 이 타석에서 보여줘야만 한다.
하지만 카운트는 평정심을 되찾기 힘든 0-2.
그러자 그때.
1루에 나가 있던 도진의 씨익 웃는 모습이 시야에 들어왔다.
마이크는 도진이 자신을 비웃는 것이 아니라는 건 단숨에 알아챘다.
‘오호라. 알겠다.’
3구.
투수가 무릎을 치켜올리자 도진은 뛰기 시작했다.
이를 눈치챈 2루수는 베이스 커버를 들어가겠다며 움직였다.
마이크는 1루와 2루 사이에 드넓은 비어있는 공간을 인지하며 스윙했다.
따-악!
타구는 원래 2루수가 있어야 할 자리로 향했지만, 도진이 뛰는 바람에 그 자리는 휑했다.
[쳤습니다! 안타! 안타입니다! 킴이 2루로 달리는 바람에 2루수가 베이스 커버를 들어간 곳을 마이크가 정확히 노렸습니다.] [주자는 2루 돌아 3루! 타자는 1루에 안착합니다. 이야! 좋은 작전이었어요. 킴이 뛰지 않았다면 4-6-3 병살타로 이어지는 코스 아니었습니까?] [그렇습니다. 하지만 둘만의 작전이 있었던 걸로 보입니다.]-와 작전 뭔데?
-이게 야구지! 우리가 작년에 본 건 야구가 아니었어!
-새로운 얼굴 둘의 호흡이 정말 잘 맞는 것 같음.
-결국 킴이 해줬다는 거 아니냐.
-인정. 킴 아니었으면 병살타임.
-이 학교엔 아시아인이 단 한 명뿐인데. 요즘 채팅창 보면 한국 학교 같아. 다들 킴만 찬양해. 물론 나 포함.
-마이크 들을라. 안타를 친 건 마이크다. 지금은 마이크만 칭찬해.
-그래! 마이크를 칭찬하자! 유튭 다시 보기 찾아보고 슬퍼하면 어떡해?
-빈 공간을 노리고 타격하는 것도 실력임.
-인정. 결국 기록은 안타야. 아웃이나 병살타보다는 똑딱이가 백번 낫지.
-덩치가 상대를 속였어. 외야수들 전부 뒤로 물러난 것 보이지? 이것도 다 실력이다?
채팅창은 칭찬인지 조롱인지 알 수 없는 반응이 연달아 올라오고 있었지만, 이를 마이크가 알 리는 없었다.
과정이 어쨌든 안타를 기록했으며 이마저도 다 스카우팅 리포트에 올라갈 테니까.
마이크는 앞서 바닥에 엉덩이를 찧었던 건 기억은 모두 잊고 주먹을 불끈 쥐며 세레모니까지 했다.
그리고 이제는 모두의 시선이 타석에 들어서는 알렉산더에게 쏠렸다.
* * *
[1사 1, 3루. 타석엔 4번 타자 알렉산더입니다.] [솔직히 말씀드리자면 알렉산더의 타격감을 설명해 드리지는 못하겠습니다.]지금까지의 경기에서 타격 기회보다 고의사구가 많았던 알렉산더였다.
-웃프다.
-당사자는 어떡하냐.
-못 쳐도 그러려니 하자.
-맞아. 지금까지 타자는 알렉산더 투수는 페드로 둘이서 다 했었잖아? 부담을 주면 안 돼.
대개 알렉산더에 향한 관심은 너그러웠다.
그도 그럴 것이 지금까지 그가 보여준 모습 때문이었다.
대화 주제의 당사자는 목을 좌우로 풀더니 타석으로 유유히 걸어 나갔다.
질겅질겅.
자신의 트레이드 마크 껌을 씹는 것도 여전했다.
타석에 들어서기 전. 거대하게 만든 풍선을 펑 터트렸다.
타석에 들어서는 순간에는 3루 주자 도진과 1루 주자 마이크를 힐끗 쳐다보았다.
‘다들 야구부에 와줘서 고맙다.’
알렉산더는 이 상황이 너무나도 즐거웠다.
그러므로 주자로 나가 있는 그들에게 고맙다는 눈인사를 건넸다.
자신은 미식축구와 야구 두 가지의 스포츠를 모두 즐기지만, 본래 야구를 더 좋아했다.
하지만 작년까지만 해도 미식축구에 힘을 더 보탰다.
그도 그럴 것이 1학년 때와는 다르게 2학년 때는 견제가 너무 심했기 때문이다.
자신 앞에 출루해주는 주자들이 존재하지 않았으니 투수가 자신을 상대하려고 들지 않았다.
그 때문에 야구를 그만 접을까도 생각했다.
아마 도진과 마이크가 합류하지 않았더라면 그랬을 확률도 분명 존재했다.
자신은 야구와 미식축구 동시에 MVP를 거머쥔 장본인.
굳이 성적이 나오지 않는 야구를 계속 이어나갈 필요는 없었으니까.
알렉산더는 도진에게만 다시 한번 힐끗 시선을 가져갔다.
‘네가 와서 정말 다행이다.’
그러고는 배트를 빙글빙글 돌린 채 타격 자세를 잡았다.
초구.
투수가 와인드업했다.
“볼!”
심판의 사인이 울려 퍼지자 관중석 그리고 채팅창은 한탄 섞인 탄성을 내뱉었다.
알렉산더에게 초구 볼은 늘 접했던 일이다.
이번 시즌에는 알렉산더에게 초구가 볼이 들어오면 어김없이 걸어 나갔다.
이번에도 거르겠네.
안타까운 생각으로 돌변했다.
하지만 당사자인 알렉산더는 개의치 않았다.
비록 초구가 볼이 선언됐지만, 고의로 자신을 걸어내보내는 피칭은 아니었다.
바깥쪽 패스트볼이 아슬아슬하게 나간 것이니 말이다.
이마저도 앞선 주자가 2명이나 존재했으니까.
저들이 없었다면 고의로 걸러졌을 확률은 100%였다.
알렉산더는 여전히 껌을 질겅질겅 씹어대며 투수를 한 번 힐끗 쳐다봤다.
당황한 표정이 얼굴에서 여실히 드러났지만, 그래서 다행이었다.
‘볼넷은 없다.’
2구.
포물선을 그리는 커브.
알렉산더는 배트를 내지 않았다.
“볼!”
2-0 카운트에서 이어지는 투구도 볼.
3볼 노스트라이크는 누구라도 걸어내보낸다고 생각할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알렉산더는 묵묵히 감독을 힐끗 쳐다봤다.
그 역시도 스윙해도 괜찮다는 사인을 냈다.
4구.
투수가 던진 공은 몸쪽 패스트 볼.
알렉산더는 볼과 스트라이크의 경계에 아슬아슬 들어오겠다고 확신하며 스윙했다.
따-악!
맞는 순간 투수와 야수는 동시에 고개를 떨궜다.
알렉산더는 배트를 허공에 집어 던지더니 유유히 베이스를 돌았다.
홈 관중들은 그의 이름을 연호했다.
“알렉산더! 알렉산더! 알렉산더!”
3루를 돌아 홈으로 향하던 알렉산더는 관중들을 향해 주먹을 불끈 쥐었다.
홈 베이스를 밟은 후에는 마이크와 도진에게 불끈 쥔 주먹을 내밀었다.
도진과 마이크도 주먹을 말아쥐며 톡 건드렸다.
툭. 툭.
그러고는 더그아웃으로 향하던 마이크가 입을 열었다.
“나이스 홈런.”
도진도 이에 질세라 말을 이었다.
“이걸 담장을 넘겨 버리네? 이러면 투수는 뭘 먹고 사냐? 몸쪽 완전히 꽉 찬 공으로 보였는데.”
알렉산더는 애써 태연한 표정을 지었지만, 끝내 입꼬리가 솟아올랐다.
“가자.”
비록 의미가 생략된 짧은 한마디였지만, 마이크와 도진은 고개를 끄덕이며 입을 모았다.
“가야지. 미국 최고의 무대로.”
* * *
전반기를 끝낸 FS의 성적은 8승 1패.
첫 경기 1패를 제외. 나머지 경기를 전승하며 전반기를 마감했다.
리그의 팀들은 더는 도진, 마이크 알렉산더 그 누구 하나 고의사구로 내보내지 못했다.
그러므로 나머지 경기에서 수많은 찬스가 찾아온 FS 핵심 멤버의 기록은 눈이 부실 만큼 훌륭했다.
페드로: 4승 1패. 방어율 1.50
알렉산더: 타율 5할 5푼. 홈런 15개. 25타점.
마이크 타율 4할 5푼 5리. 홈런 7개. 17타점.
도진: 타율 6할. 홈런 12개. 35 타점.
6경기 10이닝. 방어율 0.
FS는 겨울 방학이 끝나면 산타모니카 그리고 샌프란시스코와의 원정 경기에서 승리해야 했다.
더 나아가 최고의 무대로 진출하기 위해선 플레이오프 우승 트로피도 필요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