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baseball genius who chews up America RAW novel - Chapter (348)
미국 씹어먹는 야구 천재 348화(348/400)
에인절스는 연패를 끊고 1위를 지켰지만, 라커룸 분위기는 뒤숭숭했다.
누구는 안도했고, 누구는 분노했다.
다만 상반된 분위기는 팀이 하나가 되지 못했다는 의미.
그렇기에 도진은 결국 라커룸 중앙에 서서 선수들의 이목을 집중시켰다.
“해야 할 말이 있습니다.”
내리깐 도진의 목소리가 라커룸을 메웠다.
언제나 밝고 긍정적인 에너지를 선사하는 도진에게서 전혀 다른 모습이 나오자, 선수들의 표정에 비장함이 서렸다.
대신 오늘 경기 결과 때문에 그 누구도 도진의 눈을 똑바로 바라보지 못했다.
오늘 경기 8이닝 무실점에 결승 홈런을 친 도진은 혼자서 승리로 이끌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나머지 선수들의 존재 여부를 의심할 만한 기록이 나왔던 것이었다.
야구에선 간혹 한 선수가 경기를 쥐락펴락하기도 한다.
대개 그날 컨디션이 좋은 선수가 원맨쇼를 펼치며 팀을 승리로 이끄는 것이다.
다만 야구는 혼자 하는 스포츠가 아니므로 그런 상황은 시즌 중에 고작 한두 번 정도 나올까 말까이며, 그런 상황이 나오는 게 결코 좋은 일도 아니다.
1군 인원만 26명으로 그 어떤 스포츠보다 인원수가 제일 많은 스포츠가 야구이기에.
그러니 오늘 같은 결과가 나왔을 때야말로 목소리를 높일 수 있는 유일한 타이밍.
도진은 이 기회를 놓치기 싫었다.
“제가 여러분들의 고충을 전부 안다면 그건 거짓말이겠죠. 성적이 나오지 않을 때의 착잡함은 저도 잘 알고 있습니다.”
야구에서 선수가 매번 잘할 수 없다.
컨디션이 아무리 좋아도 성적이 나오지 않는 경기 또한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지금 에인절스는 성적이 문제가 아니었다.
시장통 같은 단합되지 않은 분위기.
이것이 문제였다.
“압니다. 2위 레인저스가 저희 뒤를 바짝 쫓고 있죠. 줄곧 2위를 하던 저희가 1위로 올라섰을 때 그 기세를 이어 나갈 새도 없이 올스타 브레이크를 맞이하기도 했고요.”
1위를 달성했을 시기엔 모든 선수가 하나가 되었다.
전반기 에인절스는 그런 모습을 보여줬지만, 후반기 들어서는 티끌도 찾아볼 수 없었다.
“이유도 제각각 다르겠죠. 다만 1위를 지키고 싶다는 마음만큼은 변치 않았으리라 믿습니다. 여기엔 저보다 선수 생활을 더 많이 경험한 선수들이 대부분이죠. 그러니 지금 이 분위기가 유지되면 어떻게 될지 전부 아시리라 믿습니다.”
선수들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들 역시 수긍하고 있었다.
어찌 모를 수 있겠는가.
1위를 달리던 팀이 하반기 들어서자마자 서부 꼴찌팀에게 위닝 시리즈를 내줬다.
컵스에는 스윕을 내줄 뻔했다.
다만 선수들은 대답하지 않았다.
마땅한 해결책이 없어 못 했다고 보는 것이 정확했다.
“일단 제가 생각을 먼저 말해보겠습니다. 현재 에인절스는 리더의 부재가 큽니다. 모두가 아시겠지만, 벨은 좋은 리더이며 팀의 가장 중요한 역할을 맡는 선수죠. 그런 그가 빠졌으니 어쩔 수 없는 부분도 있다는 걸 알고 있습니다. 저 역시도 벨의 빈자리가 크게 느껴지니까요.”
선수들은 고개를 끄덕였다.
도진은 자신들이 느끼는 부분을 처음부터 시원하게 긁어주었기 때문이다.
도진은 이에 대한 추가 설명을 덧붙였다.
“스포츠뿐만이 아니라 리더는 중요한 법이죠. 하지만 저희가 어린아이는 아니잖아요? 어머니 혹은 아버지가 집을 비우셨다고 끼니를 거를 정도의 나이는 이미 지났잖아요? 저희를 잡아줄 주축선수가 없다고 해야 할 일을 미룰 필요는 없다고 봅니다.”
고개를 끄덕이던 호세는 열변을 토하는 도진에게 도움을 주고자 대화에 참여했다.
“그렇지. 다만 뒤숭숭한 분위기를 바로 잡는 게 쉽지만은 않아. 이런 부분을 잡는 게 바로 리더고.”
“하지만 이대로 손가락만 빨고 있을 수는 없죠. 리더가 없을 때도 돌아갈 수 있는 프로세스를 만드는 게 급선무라고 생각해요.”
“우리만의 규율을 만들자?”
도진은 고개를 돌려 선수들과 일일이 한번 눈을 마주쳤다.
“네. 사실 제가 이 위치에 서서 말할 수 있는 입장은 아니라는 것 또한 압니다. 다만 저희는 에인절스라는 공동운명체. 1위를 달성했으면 하는 바람에서 이렇게 서게 됐습니다.”
도진은 일단 선수들의 생각을 떠봤다.
그들이 앞에 선 자신을 어떻게 생각하는지는 매우 중요한 부분.
이제 루키를 벗어난 새파랗게 어린 선수가 너무 나대는 건 아닐지.
이렇게 생각하는 선수가 있다면 이 자리에 서서는 안 된다는 걸 알고 있었다.
그런 선수를 직접 설득하거나 주변 선수들이 대신 자신의 입지를 탄탄하게 해줄 테지만, 그래도 인정이 먼저다.
목소리가 모이지 않는 상황에서 떠들어대는 건 무용지물이었으니까.
다만 혼자서 경기를 승리로 이끈 도진은 오늘만큼은 발언권이 있다는 것 또한 잘 알고 있었다.
몇몇 선수들이 목소리를 높였다.
“우린 네 노력을 알고 있어.”
“팀을 위해 누구보다 헌신하는 네가 그렇게 생각하면 나머지 선수들은 전부 입을 다물어야겠지.”
“킴. 밤을 새워서라도 전부 듣고 라커룸을 떠날 테니 편하게 말해.”
도진은 허리를 굽혔다.
“정말 괜찮으니까 혹시 상반된 의견을 가진 분들이 있으시다면 말씀해 주시길 바랍니다. 저 역시도 완벽하지 않다는 걸 압니다. 고칠 점도 많겠지요. 여러분들 눈에는 그게 보일 수도 있을 테고 저는 겸허히 받아들일 준비가 됐습니다.”
도진의 초롱초롱한 눈동자에는 그 어떤 거짓도 섞여 있지 않았다.
무엇보다 그는 벨과 달랐다.
동방예의지국 출신인 그는 그만의 예의를 보여주고 있었다.
도진은 말을 내뱉고 조금 더 기다려 봤지만, 그 누구도 나서지 않았다.
‘의견은 모였군.’
각오를 떠안은 도진은 슬슬 입 밖으로 생각을 내뱉기 시작했다.
“그럼 시작하겠습니다. 제가 팀에게 바라는 첫 번째 규율은 바로 선수 간의 대화입니다.”
아돌니스는 미간을 찌푸렸다.
“대화? 우리 선수들이 대화가 부족하다는 건가?”
“네.”
“그건 아닐 텐데?”
“야구 외적으로 대화가 활발하다는 건 저도 압니다. 다만 야구 내적으로의 대화는 부족합니다.”
“예를 들어?”
도진은 놀란과 사토를 만나서 경험한 부분들을 설명해 주었다.
“그 친구들은 적어도 경기장 내에서는 끝까지 야구에 관한 토론만 하더군요.”
“정말 그렇게까지 한다고?”
아돌니스의 눈동자 초점이 갈피를 잃었다.
다른 선수들도 예상치 못했는지 턱이 벌어졌다.
도진은 확신에 차서 고개를 끄덕였다.
“네. 그들은 어떻게서든 상대 선수를 집요하게 노리더라고요.”
“상대가 조엘 오스틴이라서 그런 건 아니었을까?”
“아뇨. 너무나도 익숙해 보였습니다. 처음부터 상반된 의견이 계속해서 충돌하게 되면 어떤 그림이 그려질지 아시잖아요?”
“아마…… 싸울 확률이 높지.”
“맞아요. 하지만 둘은 서로를 이해하려고 들었어요. 결과가 나온 이후에 진 쪽은 수긍하려고 들었고요. 물론 둘은 동갑내기 친구여서 조금 더 편하게 이런 부분을 주제로 토론할 수 있기는 했겠죠.”
에인절스는 경기 내적으로 큰 대화를 나누지 않는다.
이것이 잘못됐느냐?
그건 아니다.
아돌니스가 언급했던 것처럼 서로 싸움을 유발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팀 내에서 싸움이 터진다면 그 또한 걷잡을 수 없게 된다.
더욱이 개인주의 성향이 강한 미국이다.
자신만의 노하우가, 방식이 있다.
무엇보다 정말 극소수의 구단을 제외 대개 훈련도 자발적으로 참여한다.
잘하면 살아남고 못하면 강등당한다.
메이저리그 대다수의 구단은 이것이 팀의 성장 동력이라고 믿고 있었다.
성인에게 강요가 필요한가?
더욱이 메이저리거들은 프로였다.
도진은 말을 덧붙였다.
“양키스는 규율이 있고 다저스도 규율이 있어요.”
대신 양키스는 감독이 선수들을 꽉 잡는다.
다저스는 슈퍼스타들이 즐비해 직접 본보기를 보여준다.
“하지만 에인절스가 양키스가 될 수는, 다저스가 될 수도 없죠.”
에인절스는 에인절스니까.
다만 에인절스만의 정체성은 현존하지 않았다.
“그리고 자유는…… 가진 자들만 누릴 수 있어서라고 생각해요.”
도진의 말이 다소 강압적으로 들릴 수도 있었기에 호세가 재빨리 치고 들어왔다.
“그래서 넌 에인절스가 어떻게 됐으면 좋겠는데?”
“여러분들의 눈은 좋습니다. 메이저리거고, 현재 1위 팀의 일원이죠. 만약 한 선수가 타석이나 마운드에서 아쉬운 모습을 보여주면, 지적해 주는 건 어떨까요?”
“지적이라. 이게 잘못됐을 땐 문제가 될 수도 있다.”
“압니다. 모두의 스타일과 장점은 다르죠. 하지만 앞서 말했듯이 여러분들은 최고의 리그에서 뛰고 1위 팀의 일원이에요. 몇몇 아쉬운 부분들이 나왔을 때 꾹 삼키고 있겠고요. 전 이게 바로 불협화음의 원인이라고 봐요. 대신.”
도진의 눈이 희번덕였다.
“말에는 힘이 있습니다. 이것이 날카로운 날붙이가 되어 심장을 후벼팔 수도 있지만, 반대로 사람을 살릴 희망이 될 수도 있어요.”
상대의 흉을 보는 말은 비수가 된다.
다만 말 한마디가 사람의 인생도 바꿀 수 있다.
따뜻한 말이 죽기 직전의 사람을 살리는 숱한 예가 있었다.
“저희는 굳이 말에 비수를 담을 필요는 없겠죠. 선수가 선수를 보는 장점은 다 다르고 그중에 분명히 정답이 있으리라 믿습니다. 유하게 다가가면 전부 겸허히 받아들이리라 믿습니다.”
“예를 들어봐라.”
도진은 호세의 눈을 똑똑히 들여다보았다.
“호세. 오늘 두 번째 타석에서 마르셀로가 출루했을 때. 수 싸움에 능한 호세는 조금 더 차분하고 유리하게 대처할 수 있었을 거예요.”
“이 개자식이?”
도진의 눈이 동그랗게 떠지더니 턱이 떡하니 벌어졌다.
저런 반응을 기대했던 것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선수들은 큭큭 웃었다.
가라앉은 분위기가 웃음바다가 된 것도 그때였다.
호세는 장난스럽게 부라리던 눈동자를 성급히 감췄다.
“틀린 말은 아니지. 사실 답답한 면이 있어서 조금 서두른 면이 없지 않아 있었어. 내가 수 싸움에서 이겼다면 주자가 더 쌓였을 테고 투수가 느끼는 압박감이 컸겠지. 아마…… 여기 있는 다른 선수들도 그 결과에 대한 아쉬움이 있었을꺼야. 아닌가?”
선수들은 침묵을 유지했다.
아직은 이 방식이 어색해서 그랬다.
그래서 대표로 마르셀로가 대화에 끼어들었다.
“사실 호세가 출루할 거라고 조오오온나 믿고 있었어. 팀이 연패를 끊어내려면 하나가 되어야만 하는데 호세도 개인플레이를 했어. 알아. 솔직히 타석에 들어서면 팀플레이를 생각하는 게 잘 안 되잖아. 누구라도 자신이 해결사가 되고 싶은 걸 알지만, 그래도 아쉽긴 했지. 그런데 하필 상대가 호세야. 조언이랍시고 말했다고 얻어터지면 야구 인생 끝이라고. 나이도 많은데 힘도 세. 아무리 내가 버릇이 없어도 저 사람은 무서워.”
호세의 눈썹이 지렁이처럼 꿈틀댔다.
“늙은 것도 서러워 죽겠는데 그렇게까지 생각하고 있었다고?”
“나만 그럴까?”
호세는 ‘아니지?’라는 생각에 선수들과 눈을 맞추려고 노력했지만, 모두가 그의 눈을 피했다.
호세는 에휴! 한숨을 내쉬었다.
“알았다. 알았어. 내가 미안하다. 만약 경기 도중에 누가 나를 지적했는데 반대로 내가 화를 낸다? 그러면…… 잠깐. 나한테 공격적으로 말하는 놈들이 있을 거 아냐? 그럼 어떡해?”
도진이 대신 답변했다.
“그러니 좀 더 유하게 말하면 되죠. 이 방법 또한 연습해야겠고요.”
도진은 예를 들었다.
“호세. 걸렸으면 넘어갔을 스윙이라 아쉽긴 한데. 그래도 장점을 살려 투수를 흔드는 방향으로 갔다면 더 좋은 결과가 나오지 않았을까? 이렇게요.”
호세는 뒤통수를 벅벅 긁었다.
“음. 좋네. 그럼…… 내가 분노에 이기지 못해 수긍 못하면 그땐 어떻게 하지? 페널티가 있어야 할 거 아니냐.”
“바로 엎드려뻗치죠?”
“그래. 엎드려뻗…… 뭐? 그건 아니지!”
“호세는 준비가 되어 있지 않네요.”
호세는 쳇! 혀를 찼다.
“알았어. 애송이 네놈 자식이 엎드려뻗치라고 해도 바로 할게.”
“경기하다 보면 눈이 뒤집어 까질 만큼 화가 날 수도 있겠지만 그래도 참으세요. 팀을 위해서요.”
타격감이 좋지 못한 선수를 나무라는 일원들은 없을 것이다.
하지만 최고의 타격감을 가지고도 아쉬운 판단을 내리는 선수는 있어야 한다.
그리고 메이저리거라면 타격감이 좋은지 안 좋은지를 충분히 판단할 수 있을 것이다.
“그래. 에인절스의 첫 번째 규율이 이거지? 자유를 비교적 반납하는 이 규율. 꼭 지키도록 하지. 대신 팀이 바뀌어야 할 거다. 아니면 시즌 끝나고 알지?”
도진의 미소에 확신이 들어섰다.
“네. 저는 여러분들을 굳게 믿고 있으니 질 일은 없다고 확신하지만, 그래도 각오는 하고 있을게요.”
사공이 많으면 배가 산으로 간다는 말이 있다.
하지만 하나보다 둘이 낫고 둘 보다 셋이 낫다는 말 또한 존재한다.
이곳에 있는 선수들은 전부 전문가다.
전부가 정답을 내놓을 수는 없겠지만, 단 한 명이라도 정답을 낼 수 있다면?
‘통해야 한다. 아니. 통할 거다.’
혼자 끙끙 앓는 것보단 이게 백번 천번 낫다.
‘비록 미국 스타일에서는 크게 벗어나는 방식이지만. 괜찮을 거야.’
에인절스는 슈퍼스타의 부재가 크다.
그러니 한 선수에 의존하는 대신 모두가 힘을 발휘해야 할 때였다.
이건 당장 에인절스만이 가능한 전략이었다.
잔잔해진 라커룸 분위기만큼 앞으로 선수들도 안정을 찾아가겠지.
순위나 개인 타이틀같이 하반기에 잔뜩 걸린 상품들을 전부 타내려면 팀의 안정이 먼저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