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baseball genius who chews up America RAW novel - Chapter (354)
미국 씹어먹는 야구 천재 354화(354/400)
카운트는 1-1.
타석을 소화해야만 하는 박정환의 정신이 가출했다.
‘이, 이게 말이 되나?’
박정환 하체에 힘이 풀려 몸이 기우뚱한채로 전광판을 확인했다.
104.
저 숫자는 킬로미터가 아니라 마일이었다.
킬로미터로 환산하면 무려 167.
인간이 던질 수 있는 영역은 맞지만, 도진은 선발 투수였다.
무엇보다 지금은 8월이다.
선발 투수의 구속이 2마일 줄어들어도 모자랄 판에 오히려 2마일이 더 올랐다.
꿀꺽.
박정환은 침을 꼴딱 넘겼다.
공이 그저 빨라서만 그랬던 건 아니었다.
미트에 공이 꽂히자, 좌측 고막에서 찢어질 듯한 통증이 느껴져서 그랬다.
그만큼 방금 투구는 대포가 미트에 꽂힌 걸로 착각할 정도였다.
‘제대로 맞춰도 치지 못한다…….’
박정환은 그간 수많은 패스트볼을 접해왔다.
KBO에서는 160km의 공도 곧잘 쳐 냈다.
메이저리그에 와서는 더 빨라지고 위력적인 공에 초반에는 애를 먹었지만.
그래봤자 패스트볼은 패스트볼.
갖다 맞출 수만 있다면 안타 이상의 결과를 낼 자신이 있었다.
게다가 이번 시즌에 들어와서는 패스트볼에 대응하는 훈련을 쉬지 않았고, 벌써 18개의 홈런을 치며 결과를 내고 있었다.
‘난 조이 히메네즈를 상대로도 2안타를 기록했어.’
조이 히메네즈가 누구던가?
아메리칸 리그 최고의 투수.
그의 평균 패스트볼 구속은 98마일이지만, 최고 구속은 100마일을 넘긴다.
그런 공도 제대로 받아쳐서 안타를 기록했다.
그러니…….
‘이건 꿈이야.’
일어나서는 안 될 일이 눈앞에서 펼쳐졌다.
박정환은 바들바들 떨리는 시야를 강제로 붙들고 도진을 쳐다봤다.
어리다. 여전히 새파랗게 어리다.
그런데 어떻게 이런 공을 던질 수 있는 거냔 말이다!
‘졌다.’
아직 승부는 끝나지 않았지만, 박정환은 포기했다.
이 공.
지금은 칠 수 없다.
그간의 야구 경력이 자신에게 그렇게 일러 주었다.
조이 히메네즈의 패스트볼을 접했을 때도 느껴보지 못한 감정을 말이다.
그저 구속만 빨라서가 아니다.
타자는 미트에 꽂히는 음색만으로 저 공의 구위가 어느정도인지 가늠이 가능한데.
저놈은 야구공을 던지는 게 아니라 돌을 던지고 있었다.
그것이 아니라면 설명이 불가능했다.
‘나, 나중에는 칠 수 있을까?’
박정환은 희망을 손에 쥐려고 노력했다.
하지만 쥐려는 희망은 펼친 손바닥을 우습게 외면하고 있었다.
‘아…….’
박정환은 타격 자세를 잡았다.
하지만 어떤 힘도 들어가지 않았다.
‘내가…… 졌다.’
넌 나보다 위구나.
박정환은 그만 인정하기로 했다.
저놈은 한국 최고의 재능.
아니.
메이저리그에서조차.
역대 최고의 재능이었으니까.
“스트라이크.”
“스트라이크 아웃!”
* * *
[킴! 104마일을 기록합니다!] [본인의 구속을 우습게 깨버리네요! 그것도 8월에 말이죠! 정말 대단한 선수예요!] [타자가 의기소침한 모습이 여기까지 전달되지 않았습니까?] [팍을 탓할 수 없습니다. 야구 선수는 데이터를 기반으로 경기에 임하죠. 킴의 최고 구속은 102마일이지만, 2마일이 더 올라서 104마일을 올랐어요. 또한 단순히 구속이 빨라져서 타자의 의욕이 사라진 건 아닐 겁니다.] [그럼 무엇이 문제일까요?] [일단. 존재하지 않은 데이터를 대응하기는 힘들죠. 이게 첫 번째 이유입니다.] [더 있습니까?] [아마…… 팍은 재능의 차이를 느껴 버린 것 같습니다.] [재능의 차이라. 정확히 무슨 말씀일까요?] [인간이 언제 좌절하는지 아십니까? 인간은 손에 잡힐 듯 말 듯 할 때 희망을 품지만, 그것이 평생 잡히지 않는다는 것을 깨달을 때 좌절합니다.] [팍이 킴에게 열등감을 느낀다. 이런 말씀인가요?] [열등감이라고 표현하기는 좀 그렇네요. 다만 저 역시도 직접 느껴본 적은 없어서 명확한 표현은 어렵습니다.] [그렇다면 팍이 아니라 다른 애스트로스 타자들도 영향이 가는 거 아닙니까?] [아마. 그럴 겁니다.]경기는 해설의 예상대로 흘러갔다.
당장 한 경기라도 더 잡아서 순위를 끌어올려야 하는 애스트로스 타자들의 방망이는 허망함을 담아 허공을 드나들고 있었다.
“스트라이크 아웃!”
[삼진 또 삼진입니다! 사실 킴은 갱신한 최고 구속을 매번 던지는 게 아니거든요?] [네. 하지만 타자들은 이미 의욕이 꺾여버렸죠. 원래 그런 날이 있습니다. 투수가 긁히는 날에는 무슨 수를 써도 저 투수를 이길 수 없다고 타자는 직감하거든요. 그게 오늘인 겁니다.] [사실 킴에게서 이런 경기가 몇 번 나왔었잖아요?] [네. 제 기억만으로 벌써 올 시즌 세 번째네요. 스플링커, 퀵 피치 그리고 오늘입니다.] [하하. 이번 시즌에만 도드라지는 성장을 벌써 세 번이나 보여준 셈이네요?] [어이가 없죠? 사실 저 역시도 보면서 믿기지 않네요. 하지만 이것만큼은 알아두셔야 합니다. 왠지 킴의 완전체를 보는 날이 그리 멀지 않았다는 거죠.] [방금 구속도 입이 떡하니 벌어질만큼 놀라운데, 아직 공략되지 않은 스플링커와 타이밍을 뺏는 퀵 피치가 어우러진다면 정말 위력적인 투수가 되겠군요.] [그렇습니다. 아메리칸 리그 구단은 지금 비상이 걸렸을 겁니다. 에인절스는 지금 서부 1위이며 현 1선발이 바로 킴입니다. 그를 넘어서지 못하면 위를 바라볼 수 없을 테니 말이죠.]* * *
도진은 5이닝을 끝내고 마운드에서 내려왔다.
겨우 규정 이닝을 채우고 내려온 것일 뿐이지만, 이미 점수가 9:0으로 크게 앞서 아쉽지는 않았다.
조 캐넌이 도진을 불렀다.
“킴. 고생했다.”
“아닙니다. 감독님. 실험에 도움을 주셔서 감사해요.”
“허허. 고맙긴. 오늘도 손쉽게 승리를 가져가게 돼서 나야말로 고맙네.”
본래 감독이란 경기가 끝날 때까지 방심을 해서는 안 된다.
그런데도 조 캐넌은 아직 절반이나 남은 오늘 경기에서 승리를 확신했다.
이미 위축된 타자들이 9점을 뽑아낼 확률은 없다고 봤다.
그것보다는 도진의 기를 살려주기 위함이 더 컸다.
‘오늘만큼은 자네가 원하는 목표에 다가섰군 그래.’
도진은 범접할 수 없는 선수가 되고 싶어 했는데 이번 경기에서만큼은 그 꿈을 이루지 않았던가?
‘원래 처음이 어려운 법이야.’
한 번 걸어본 길을 다시 걷는 게 어려운가?
도진은 오늘을 기점으로 더 대단한 투수가 될 것이다.
조 캐넌은 눈동자에 확신을 담았다.
하지만 입 틈을 비집고 흘러나오는 말은 생각과는 정 반대의 뜻을 담고 있었다.
“이대로 만족할 건 아니지? 오늘 자네의 피칭은 어쩌다 운이 좋아서 나온 걸 수도 있어.”
조 캐넌은 도진의 눈치를 살폈다.
과연 어떻게 대답하려나?
대부분 미국인이라면.
이 정도의 실력을 가진 투수라면 그저 비웃고 넘길 테니까.
“그렇죠? 저 역시도 그렇게 생각합니다. 있는 힘껏 던지면 피로하거든요. 피로를 덜 느낄 때가 되야지만, 완전히 제 것이 되겠죠.”
조 캐넌은 도진의 대답에 입을 꽉 다물며 웃음을 강제로 참았다.
도진은 그저 예의가 버릇되어서 하는 말이 아니라 진심으로 그렇게 생각하고 있어서 그랬다.
그의 눈빛은 의기양양해도 모자랄 판에 아쉬움을 뿜어내고 있었으니 말이다.
“어쨌든. 새로운 무기를 획득한 걸 축하하네.”
경기는 에인절스가 2점을 대며 11:0으로 대승을 거뒀다.
도진은 경기 직후 즉각 조 캐넌 감독을 찾았다.
“감독님. 저 잠깐만 다녀와도 될까요?”
도진은 3루측 더그아웃을 향해 고갯짓했다.
조 캐넌 감독은 흔쾌히 고개를 끄덕였다.
“친구를 만나러 다녀오려는 모양이군.”
도진의 옆에서 기웃대며 함께 라커룸으로 향하던 상우에게 둘의 대화는 청천벽력의 소식이었다.
“야. 야. 김도진. 왜 그래?”
“왜?”
“아니. 애스트로스는 왜. 아는 사람 있어? 너 박정환 선배 만나러 가려는 거 아니야?”
“그런데?”
“미쳤어? 굳이? 그러니까 왜?”
“인사는 하고 와야지.”
상우의 입술이 파르르 떨렸다.
“싸, 싸움 나 임마!”
“안 나 임마. 하여튼 다녀올 테니 먼저 라커룸에 가 있어.”
도진은 가면 안 된다는 상우의 절규에도 유유히 더그아웃을 떠났다.
“적장이 여긴 무슨 일로?”
“팍을 만나러 왔나 보지.”
애스트로스 선수들은 자신들의 더그아웃 근처에서 기웃대는 도진을 반겨주었다.
“헤이. 팍. 누가 너 찾는다.”
그들은 직접 혼이 반쯤 나간 박정환의 어깨를 쥐고 흔들어 깨웠다.
그 모습을 지켜보던 도진은 볼을 살짝 불린 채 고개를 주억였다.
‘정신을 못 차리시네.’
하긴. 저럴 수밖에 없겠지.
속된 말로 박정환은 오늘 경기를 망친 장본인이었다.
박정환의 의지가 상실되지만 않았다면 오늘 경기 어떻게 흘러갔을지 모른다.
아무리 데이터에 없는 모습이 투수에게 나왔을 지라도, 타자가 최선을 다해 물고 늘어졌다면 결과는 달라졌을 것.
하지만 박정환은 칠 수 없다며 타석에서 포기했다.
도진마저도 손쉽게 그의 심정을 포착할 수 있었다.
‘선수 하나하나의 사기는 매우 중요한데. 꺾인 사기가 연쇄작용으로 다른 애스트로스 선수들에게도 이어졌어.’
도진은 이유를 알고 있었다.
박정환의 영어 실력이 그리 좋을 리는 없다.
한국과 문화가 다른 메이저리그에서 완벽하게 적응했다고도 볼 수 없었다.
그가 한국처럼 본 모습을 보일 수 있는 선수였다면?
이렇게 허망하게 포기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박정환을 먹잇감으로 선택했던 이유 중 하나였고.’
때마침 정신이 돌아온 박정환의 시선이 동료가 가리킨 손가락을 따라가자 그곳엔 도진이 있었다.
‘뭐, 뭐야? 저놈이 날 왜 찾아?’
박정환은 주위를 훑어 보았다.
자신을 흔들어 깨운 선수마저도 더는 자신에게 관심을 가지고 않고 있다.
순간 외로움에 사무친 박정환은 터덜터덜 자리를 털고 일어나 도진에게 서서히 다가갔다.
“무슨 일로 날 찾았지?”
도진은 고민할 새도 없이 90도로 인사를 박았다.
“박정환 선배님. 늦게 인사드려서 죄송합니다.”
“어. 어……?”
“사실 제가 학창 생활을 미국에서 해서 이게 예의인지 몰랐습니다.”
박정환은 도진이 거짓말을 하고 있다는 것을 알았다.
그는 고등학교를 미국에서 나온 건 맞지만, 초등학교와 중학교는 한국에서 보냈고, 야구 선수로도 뛰었다.
그러므로 도진은 한국 야구판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모를 리가 없었다.
한 번 선배는 영원한 선배이며 그곳에서만큼은 벽을 허물 수 없다는 것 또한 말이다.
그러니…….
박정환은 도진이 지금 자신과의 관계 개선을 위해 먼저 손을 내밀었다는 것을 모를 수가 없었다.
박정환은 손으로 눈을 가렸다.
한심해진 자신의 눈동자를 성급히 가리기 위함이었다.
‘너는…… 정말 크게 될 선수구나.’
지금까지 그를 인정하고 싶지 않았다.
한국인으로서는 언제나 최고의 자리에 있었으니 그 자리를 내어주고 싶지 않았다.
더욱이 자신보다 새파랗게 어린 친구에게는 더더욱 더.
하지만 순간 자신의 성장 과정이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간 박정환은 어금니를 꽉 깨물었다.
‘나는 초심을 잃었구나.’
한국에서는 최고의 자리에 올랐어도 처음부터 그 위치에 올라섰던 건 아니었다.
다양한 선배들에게 배우고 또 배워서 그 자리에 올라설 수 있었던 것이었다.
그걸 잊고 있었다니.
이곳은 미국.
도진은 엄연히 여기에서만큼은 자신보다 선배였다.
무엇보다 그에게서 배울 점이 한두 가지가 아니라는 걸 아주 잘 알고 있었다.
이번만큼은 박정환은 먼저 도진에게 손을 내밀었다.
“작년 내 행동을 용서받을 수 없겠지만, 진심으로 미안하다.”
과오를 지우고 다시 시작하고 싶다.
대신 그러려면 당사자의 사과가 먼저였다.
만약 도진이 받아 주지 않는다면?
‘아니. 받아 주겠지.’
그러니 그가 자신 앞에 서게 된 것일 테니까.
프로는 사방의 시선도 신경을 써야만 한다.
마음에 없는 사과를 건넨 가해자든 그걸 강제로 받는 피해자든 이 생활을 이어 나가려면 어쩔 수 없었다.
그게 진짜 프로였으니까.
무엇보다 이런 모습은 적어도 한국 팬들만큼은 환호할 것이며 도진의 입지는 더욱 탄탄해지겠지.
그 때문에 자신이 가진 파이를 도진이 가져가게 돼도 이제는 정말 상관없었다.
도진은 박정환이 내민 손을 잡았다.
“저희…… 무슨 일이 있었나요?”
박정환은 서둘러 눈을 가린 손을 떼어냈다.
그러고는 도진의 눈을 들여다보았다.
호선을 그린 그의 눈초리는 진심을 말하고 있었다.
‘없던 일로 해주겠다고?’
넌 그게 가능한 거냐?
자칫 잘못했다간 네 선수 생활에 타격을 줄 수도 있었는데?
“저희 아무 일도 없었잖아요. 뭐. 어쨌든. 미국 생활 참 힘들죠? 앞으로 힘내십쇼. 누가 뭐래도 선배님은 한국 최고의 타자니까요.”
“그래. 가 봐라.”
“나중에는 경기 전에 상우와 함께 인사드리러 오겠습니다.”
박정환은 멀어지는 도진의 등을 하염없이 쳐다봤다.
아무 일도 없었다고?
박정환은 처음으로 그날 아무 일도 없어서 다행이라고 안도했다.
자신의 병신 같은 행동으로 자칫 한국 최고의 선수.
더 나아가 메이저리그 역사상 최고의 선수가 될 인재를 담가버릴 뻔했다.
야구인으로서 평생 반성하며 살아가야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