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baseball genius who chews up America RAW novel - Chapter (356)
미국 씹어먹는 야구 천재 356화(356/400)
그라운드에서 상우와 캐치볼을 하던 도진은 내내 심각한 표정이었다.
‘이 자리를 두고 벨과 경쟁을 하라고?’
정신을 차려보니 상우가 어느덧 코앞까지 다가와 있었다.
“뭐야? 왜 왔어? 가서 공이나 받아.”
“뭐야. 왜 날 탓해? 네 눈동자의 초점부터 바로 잡고 말해. 어디 이쁜 여자 있냐? 먼 산이나 처 보고 있게.”
도진은 한숨을 푹 내쉬었다.
“아. 미안.”
“왜. 무슨 일인데?”
“벨이 돌아온대.”
상우는 경멸 섞인 표정을 지었다.
“뭐야. 근데 뭐가 고민인데? 무조건 좋은 거 아냐?”
“좋지. 그런데 말이야.”
도진은 호세와 나눴던 이야기를 상우에게 들려주었다.
상우 역시 금세 심각해졌다.
“아…… 심각할 만하네. 내부 경쟁 뭐 그런 건가?”
“이 자리를 두고 다투는 느낌은 아니고 선의의 경쟁 느낌이겠지.”
“그렇겠지. 호세가 너와 벨 사이에 파벌을 만들 사람도 아니고. 근데 이 중요한 상황에서 경쟁이라. 정확히 무슨 뜻일까?”
“몇 가지 떠오르는 게 있긴 한데.”
상우는 듣고 있을 테니 계속해 보라며 턱짓했다.
“일단 레인저스의 추격이 매서워. 아직 30경기나 남은 시점에서 세 경기 차이는 언제든지 뒤집힐 수 있어. 다만 이 자리를 위해서 벨과 경쟁을 하게 된다면 적어도 둘 다 최고의 퍼포먼스를 낼 수 있겠지.”
“이게 오프 시즌처럼 주전 경쟁하는 것도 아닌데 경쟁이 되려나?”
“될 것 같아. 에인절스 선수들 모두가 그렇겠지만, 나와 벨은 저번 시즌보다 더 나은 시즌을 보냈으면 하는 마음이 커. 우리 둘이 경쟁이 붙으면 다른 선수들도 힘을 내줄 거야.”
“틀린 말은 아니네. 팀 내 에이스를 정하는 자리에서 선의의 경쟁이 펼쳐진다? 보고만 있어도 피가 끓을 것 같다.”
“그리고 또…….”
“또 뭐?”
도진은 미간을 구부린 채 턱을 매만졌다.
“사실 지금은 선발 순번이 그리 중요하지는 않잖아?”
“그렇지. 구단마다 스케쥴이 다 다르고 우천 연기 같은 변수 때문에 1선발이 1선발을 만날 일도 적지.”
“그러니 이번 경쟁은 아마도 포스트 시즌에서의 1선발을 정하는 자리겠지. 경쟁에서 이긴 사람이 1선발로 마운드에 서게 될 테고.”
상우는 고개를 끄덕이며 동의했다.
“체제가 다시 바뀔 수도 있고 지금 그대로 유지될 수도 있다? 하긴. 내가 작년 9월에 확장 로스터로 여기 왔을 때랑 이번 시즌이랑 분위기 자체가 완전히 달라.”
벨은 시즌 첫 경기에서 부상당했다.
그 후로 잠깐 방황하던 에인절스는 도진이 그 자리를 대신하며 안정을 찾았지만, 분위기가 완전히 뒤바뀌어 있었다.
“난 내가 훌륭한 리더라고 생각하지는 않아. 아직 배울 게 많거든. 솔직히 벨이 이 자리를 대신해줬으면 하는 마음이 있어. 하지만 호세의 말로는 내가 이 자리를 쉽게 내어주면 팀에 악영향을 끼칠 거라고 했어.”
상우는 도진의 어깨를 툭툭 쳤다.
“나나 그레그는 벨보다 너를 더 믿는다. 우리 둘뿐만이 아니라 몇몇 선수들도 그렇겠지. 그 외 선수들은 벨이 더 믿음직스러울 테고. 확실히 어렵네. 그래도 결국 팀을 위해서니 너무 신경 쓰지 마.”
도진은 상우의 위로에도 가슴이 먹먹해졌다.
신경을 쓰고 싶지 않아도 쓰인다.
그만큼 이 자리의 무게를 견뎌내는 것이 여간 힘든 게 아니었다.
‘만약 내가 이 자리를 지켰다가 팀이 무너지게 된다면…….’
그때의 상실감을 이루 말할 수 없을 테니까.
도진은 지금까지 쭉 벨의 대체자로 이 자리를 견뎌왔다.
언젠가 그가 돌아오면 고스란히 내어줄 준비가 되어 있었다.
그런데 그 계획이 단숨에 꼬여버렸다.
순간 도진의 눈동자에 각오가 들어섰다.
‘그래도. 해야겠지?’
어차피 언젠가는 도전해 볼 그리고 도달해야만 하는 자리였다.
그 시기가 앞당겨졌을 뿐.
‘해보자. 그나저나 벨의 생각도 궁금하긴 하네.’
* * *
9월도 어느덧 10일이나 흘렀다.
이제 20경기밖에 남지 않은 시점에서 에인절스의 라커룸에 반가운 얼굴이 등장했다.
“여.”
벨 조이스.
붉은색의 유니폼을 입은 그가 등장하자 선수들은 환호했다.
“드디어 돌아왔어!”
“왕의 귀환이네.”
벨은 히죽 웃더니 자신의 라커로 향했다.
가져온 스포츠 백을 라커에 쑤셔 박고는 우측으로 시선을 돌렸다.
벨은 자신을 바라보며 미소를 짓는 도진에게 엄지를 치켜세웠다.
“훌륭했다. 캡틴.”
도진은 고개를 저었다.
“전혀 그렇지 않아요. 레인저스에 순위도 다 따라잡혔고요.”
에인절스는 여전히 80승 62패로 리그 1위.
그런데 레인저스가 79승 63패로 한 경기 차이로 좁혀왔다.
벨은 어깨를 으쓱했다.
“그래도 1위잖아?”
“운이 좋았어요.”
벨 조이스의 한쪽 입꼬리가 올라갔다.
“정말 잘 해냈으니, 겸손은 거기까지만 해라. 오히려 불청객이 합류해 버려서 미안할 따름이다.”
“아니에요. 벨이 와서 정말 다행이라고 생각해요.”
둘이 가벼운 인사를 나누는 사이 조 캐넌 감독과 호세가 함께 라커룸 안으로 들어왔다.
조 캐넌은 벨을 향해 고개를 한번 끄덕였다.
“고생 많았다.”
“늦은 만큼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조 캐넌은 연이어 고개를 끄덕이더니 목소리에 힘을 주었다.
“일단 벨이 돌아왔으니 되돌릴 건 되돌려야겠지? 킴. 그동안 고생 많았다. 다시 벨이 캡틴을 맡는다.”
도진과 벨은 동시에 고개를 끄덕였다.
두 선수는 감독 의견에 반박하지 않았다.
“벨. 컨디션은 어떻지?”
“마이너리그에서 컨디션 조절은 끝내놔서 좋습니다.”
“오늘 연습 투구 내용을 보고 내일 당장 선발 로테이션에 들어갈 수 있을지 봐야겠군.”
“알겠습니다.”
조 캐넌은 좌측에 서 있는 호세에게 나지막이 읊조렸다.
“나머지는 자네가 따로 설명하도록 하지.”
호세는 고개를 끄덕이고는 벨을 노려봤다.
“벨. 잠깐 나 좀 볼까?”
“오자마자 데이트 신청이냐?”
“심각해.”
벨은 한쪽 눈썹을 치켜세운 채 양쪽 어깨를 들썩하더니 호세의 뒤를 따라 나갔다.
“왜 무슨 일인데?”
호세는 굳이 이야기를 빙빙 돌리지 않았다.
“애송이랑 경쟁해라.”
벨은 순간 멈칫했다.
그러더니 살포시 고개를 끄덕였다.
“예상은 했는데 결국 이렇게 됐군.”
“알고 있었다고?”
“어. 내가 널 모르냐? 우리 둘 경쟁 시켜서 1위를 지켜보자. 이거 아니냐.”
“쯧. 놀라 자빠질 줄 알았는데. 그래서 할 의향은 있지?”
“하기 싫다면 포기할 수 있는 거냐?”
호세는 눈을 감더니 고개를 저었다.
벨은 그럴 줄 알았다며 너스레를 떨었다.
“선택권도 주지 않을 거면서 묻긴. 어쨌든 당장은 불청객인 나는 네 말을 따라야겠지. 포스트 시즌에 1선발로 나설 선수도 이참에 정하는 게 좋겠고.”
“전부 알고 있군.”
“뻔하지. 솔직히 내키지는 않아. 킴은 지금 에인절스의 핵심이야. 굴러들어 온 돌보고 박힌 돌을 빼내라는데 좋겠냐?”
“야. 네놈이 더 박혀 있었어. 무려 15년이나.”
“적어도 올 시즌은 아니지. 물론 앞서도 말했듯이 경쟁은 할 수 있지만 나 역시도 부담스럽다.”
“어떤 면에서?”
“넌 잘 알잖아. 난 에인절스를 단 한 번도 1위로 이끌지 못했어.”
호세는 혀를 찼다.
“야구가 혼자 하는 스포츠냐? 솔직히 그간 에인절스의 행보가 훌륭하다고 볼 수는 없었잖아? 오히려 그 반대지. 1라운드 1순위 픽도 4명을 뽑았는데 전부 망해버렸잖아?”
“그래도 킴은 그걸 해냈어.”
“그건…… 어디까지나 올해는 애송이 위주로 팀을 개편했…… 그래. 네 말이 맞아. 한 선수를 중심으로 팀을 개편한다는 거부터 말이 안 되지. 그 부담감을 이겨내고 잘 해내고 있기도 하고.”
“잘 아네.”
“그래서 진짜 포기하고 싶냐?”
벨의 눈동자에 자신감이 번졌다.
그는 팔을 빙빙 돌렸다.
“그럴 수는 없지. 그래도 이 일을 꽤 오래 해왔고 컨디션은 커리어 사상 최고다.”
“쉬다 오더니 자신감이 붙었네. 어쨌든 살살 해라. 애송이는 지쳤어.”
“글쎄. 과연 그게 될지는 모르겠네. 킴도 내가 살살하길 원하지는 않을 테고.”
호세는 목을 긁어내는 소리와 함께 바닥에 침을 뱉었다.
“퉤. 이거나 처먹어. 쟤 외견상 괜찮아 보이지만, 진짜 지쳤어. 던지랴 치랴 뛰랴 수비하랴. 혼자서 야구하고 있다는 걸 잘 알잖아?”
“넌. 킴이 이겼으면 하는 바람인가 보네?”
“당연한 소리. 왕관은 이미 넘어갔어. 그걸 다시 빼앗아 오는 것보다는 지탱해 주는 게 맞는데. 한편으로는 15년을 함께한 네가 이겼으면 하는 바람도 조금은 있다.”
벨은 주먹을 말아쥐며 호세의 복부를 툭 쳤다.
“이랬다가 저랬다가 무슨 소릴 하는 거냐?”
“몸이 부서지는 한이 있더라도 최선을 다해라. 그게 우리 운명을 결정 지을 테니까.”
호세는 그대로 라커룸 안으로 들어갔다.
혼자 남게 된 벨은 벤치에 털썩 주저앉고 벽에 등을 기댔다.
‘알지. 모를 수가 없지.’
자신과 호세의 꿈은 커리어 줄곧 월드 시리즈 우승이었다.
다만 그 꿈에 다가가지 못했다.
월드 시리즈. 그 문턱을 단 한 번도 밟아 본 적이 없었으니 말이다.
어쩌면 이번 시즌이 마지막 기회일 수도 있었으므로 절대 놓치고 싶지 않았다.
다만 월드 시리즈에 가려면 지금 에인절스로는 턱없이 부족하다.
‘우린. 승리 DNA가 없었거든.’
그런데 생겼다.
한 명뿐이지만, 도진은 그 DNA를 가졌으므로 그만이 유일한 희망이었다.
‘그러니 나 역시도 이 경쟁에서 최선을 다해야겠지.’
만약 도진이 자신을 넘어서지 못한다면?
에인절스는 이번 시즌에는 절대로 월드 시리즈를 밟을 수 없을 것이다.
‘나는…… 평생 수문장이었지.’
커리어 내내 다른 팀이 월드 시리즈 문턱을 밟지 못하도록 길을 막아서는 역할을 쭉 해왔다.
그런데 이제는 같은 팀의 길을 막아서야만 한다니.
‘벨. 그래도 괜찮은 거냐? 고작 커리어를 수문장으로 끝내도?’
괜찮다.
자신의 오감이 그렇다고 말하고 있다.
그의 눈에 한기가 맺힌 것도 그때였다.
‘애당초 나는 에인절스의 주인공이 아니었어.’
원래는 그렇다고 생각했다.
자신만이 에인절스를 구원할 수 있다고 확신했다.
진짜 구원자가 나타나기 전까지는 착각 속에 빠져 살았을 뿐.
‘킴. 그런 이유로 내가 널 최선을 다해서 막아설 생각이다.’
제발. 날 넘어서 주길 바란다.
그래서 네가 날 단 한 번만이라도 꿈의 무대로 인도해 구원해 주길 바란다.
자신뿐만이 아니다.
도진만이 이 어두컴컴한 저주받은 구단을 내리쬐는 한 줄기 빛이었다.
벨은 왼팔로 오른팔을 주물렀다.
‘그동안 고생 많았다. 그래도 조금만 더 견뎌보자.’
벨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라커룸 안으로 들어갔다.
그의 위풍당당한 뒷모습은 이렇게 말하고 있었다.
가보자. 최종장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