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baseball genius who chews up America RAW novel - Chapter (362)
미국 씹어먹는 야구 천재 362화(362/400)
“그레그. 잠깐 얘기 좀 해.”
그레그는 상우의 비장한 말투에 크게 당황했다.
“나?”
“어.”
그레그의 놀란 토끼 눈은 의문을 잔뜩 품었지만, 그는 금세 고개를 끄덕이며 상우의 뒤를 따랐다.
둘이 다다른 곳은 라커룸으로 이어지는 더그아웃의 출구였다.
그레그는 구석에 도착하자마자 재빨리 물었다.
“나보다 킴과 한마디라도 더 대화하는 편이 낫지 않아?”
도진은 7이닝 2실점에 그치며 환상적인 투구 내용을 선보이고 있었지만, 팀은 지고 있었다.
그렇기에 그레그는 상우가 도진에게 힘을 더 실어주는 게 낫다고 판단했다.
상우는 고개를 저었다.
“아니. 쟤는 잘하고 있잖아?”
도진은 에인절스에서 유일하게 조이 히메네즈의 투구를 건든 선수였다.
에인절스의 총 안타 개수 2개는 전부 도진이 만들었으니까.
상우는 다급하게 설명을 이어 나갔다.
“지금 제일 문제가 뭐냐면 우리 타자들이 조이 히메네즈에 겁을 먹고 있어.”
그레그는 고개를 끄덕였지만, 표정은 오묘했다.
겁을 먹는 게 잘못된 건가?
상대는 아메리칸 리그 최정상 투수였다.
무엇보다 오늘 그의 컨디션은 최상.
투수가 긁히는 날은 모든 구종이 마구와 같았다.
지금 조이 히메네즈는 단 한 번도 빠짐 없이 마구를 던지고 있었다.
구속도 구위도 로케이션도 전부 완벽했다.
“저 투수를 상대로 결과를 낸다는 게 쉽지 않다는 걸 브라더 너도 잘 알잖아?”
“저런 대투수를 상대로 결과를 낸다는 건 참 어렵지. 그래도 해야 하는 거 아니겠어?”
“마르셀로도, 호세와 켄도 전부 애를 먹고 있어.”
“그러니까 우리가 해야지.”
그레그의 눈동자가 파르르 떨렸다.
실질적으로 경험도 실력도 부족한 자신들이 해내야 한다고?
개똥 같은 소리로 들렸을 뿐이다.
더욱이 상우와 자신은 앞선 두 번의 타석에서 전부 삼진으로 물러섰었다.
그러니 이 대화엔 실낱같은 희망조차 없었다.
상우의 번뜩 뜨인 눈에는 분노가 담겨 있었다.
“그레그. 언제까지 저 도진이 놈 등에 빨대나 꽂을 거야. 지금 도진이 지고 있다고!”
그레그의 눈초리가 사늘하게 내려앉았다.
“맞는 말이지. 그래서 방법이 있는 거야?”
“없어.”
다소 힘이 빠질만한 대답이지만, 그레그는 진중해졌다.
조이 히메네즈를 상대로 방법이 있을 리가 없었으니까.
그런 게 있었다면 에인절스는 진작부터 치고 나갔겠지.
그레그는 나지막이 물었다.
“어떻게 해줄까?”
“일단 마음가짐부터 고쳐먹자. 그게 우리가 해야 할 첫 번째야.”
“마음가짐?”
“어. 에인절스 선수들은 도진을 빼면 단 한 명도 조이 히메네즈를 상대로 2할 5푼 이상도 치지 못하고 있어.”
“그건 좀 슬프네.”
그런데도 상우는 이 심각한 상황에서 피식 미소 지었다.
“괜찮아. 우리뿐만이 아니라 메이저리그 타자 대부분이 그래. 그런데 말이야 에인절스에서 유일하게 조이 히메네즈에게 좋은 타율을 기록할 선수가 있네? 그게 누굴까?”
“우리 둘?”
“맞아.”
“어, 어째서?”
“우린 그래도 타수 자체가 적으니까.”
그레그는 킥킥 웃었다.
“그렇네?”
“어. 안타 하나만 챙겨도 타율은 대폭 오를 거야.”
그레그는 양팔을 들어 올려 이두박근을 자랑했다.
“오케이 브라더. 아이 갓 잇! 우리가 MVP 한번 따보자!”
“기회는 8회 단 한 번. 그 기회를 놓치면 우리 에인절스는 오늘 경기 이길 확률이 대폭 줄어들어. 지금도 없는 수준이지만.”
그레그는 상우의 어깨를 톡톡 도닥였다.
“걱정하지 마라. 솔직히 여전히 까마득한 미래밖에 보이지 않긴 한데. 이빨조차 없는 쥐라도 궁지에 몰렸으면 잇몸으로라도 물어버려야지.”
“평소엔 멍청한데 이럴 땐 참 똑똑하다니까?”
“왓?”
“아오. 시끄러워. 우리 둘만의 작전을 모두에게 알리려고?”
그레그는 조용하겠다는 수신호를 보냈다.
“오케이. 쉿. 쉿.”
하지만 그레그의 목청은 원래 크기로 유명했다.
그렇기에 둘의 대화를 엿듣지 않으려고 해도 이미 모든 선수가 듣고 있었다.
둘과 등을 지고 있던 도진의 입꼬리가 호선을 그린 것도 그때였다.
‘고맙다.’
솔직히 좀 외로웠거든.
상대는 조이 히메네즈.
그는 신인 선수들의 패기를 뭉개버릴 능력을 갖추고 있다.
그래도 상관없겠지.
당장 둘의 기백은 그 누구에게도 뒤지지 않을 테니까.
* * *
[8회 초. 스코어는 1:2. 에인절스와 레인저스 두 팀 모두에게 중요한 이닝입니다.] [그렇습니다. 조이 히메네즈가 다시 마운드에 오른 걸로 보아 이번 이닝까지는 책임지고 싶어 하는 것 같죠?] [네. 에인절스는 이번 이닝은 6번부터 시작하네요. 혹여 안타를 맞게 되면 조이 히메네즈는 오늘 유독 자신에게 강한 킴을 만나야 할 수도 있거든요. 그래서 이번 이닝 칼같이 마무리 짓고 9회에 자신들의 수호신을 불러내고 싶을 겁니다.]6번 타자 라이언이 타석에 들어섰다.
그는 아쉽게도 2루 땅볼을 기록하며 타석에서 물러섰다.
뒤이어 7번 타자 윌리엄이 타석에 들어섰다.
그마저도 좌익수 플라이를 기록하며 베이스를 밟지 못했다.
다만 초기의 목적은 달성했다.
두 선수 모두 조이 히메네즈를 상대로 6구나 던지게 했다.
꼴사납게 물러서고 싶지 않다는 의지에서 나온 결과물이었다.
신인들이 직접 해결하겠다며 각오를 다졌다.
그러므로 그들에게 조금이라도 보탬이 되어주고 싶었다.
더욱이 도진은 지금 패전 위기에 몰려 있었다.
2실점으로 패전 위기에 몰린다는 것부터가 아쉬운데 타선의 지원까지 받지 못하고 있었다.
8회 조이 히메네즈가 벌써 12구나 던져 그의 투구 수가 어느덧 98구에 도달했다.
이쯤 되면 아무리 조이 히메네즈라고 한들, 한 구 한 구 던질 때마다 피로를 느낄 수밖에 없었다.
“으랏차!”
그레그가 타석에 들어서며 헬멧을 두들겼다.
정신 차리고 해내겠다는 의미가 담겨 있었다.
요란하게 타석에 들어서는 그레그를 힐끗 쳐다본 조이 히메네즈의 표정에 주름이 생겼다.
‘시끄럽군.’
그리고 거슬렸다.
이제 고작 아웃카운트 4개면 경기에서 질 놈들이 파이팅이 넘쳐서 그랬다.
무엇보다 저건 마치 자신을 상대로 하나 치겠다는 의미가 아니던가?
그레그는 도진이 아니다.
시대를 아우를 슈퍼스타의 재목이 아니었다.
‘그런데 어디서 나오는 자신감이냐.’
혹시 자신의 공을 칠 수 있다는 건가?
그럴 리는 없다.
이번 이닝에서 무려 12구를 던졌지만, 여전히 조금의 힘은 보존되어 있었다.
혹시 모를 도진과의 승부를 대비해 놓았다.
‘하지만 이제 투아웃이다.’
혹시 도진을 만날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이 사라졌다.
아웃카운트 하나면 도진을 만날 일이 없어지기 때문이다.
포수가 사인을 보냈다.
조이 히메네즈는 고개를 끄덕이며 와인드업했다.
쉐에에엑.
한복판으로 향하는 공이 힘을 잃고 바닥으로 크게 낙차했다.
체인지업.
포수는 그레그의 선구안이 좋지 못해 헛스윙률이 높다고 일러주었기에 이 구종을 선택한 것.
예상이 그대로 들어맞는 듯했다.
그레그의 배트가 나올 때까지만 해도 그랬다.
하지만 그레그는 홈플레이트를 넘지 않도록 배트를 멈춰 세우더니 요란하게 배트를 회수했다.
그 광경은 마치 광대와 다름없었다.
관중석에서는 웃음도 터져 나왔다.
하지만 조이 히메네즈만큼은 웃지 못했다.
“볼!”
스트라이크가 아닌 볼이 선언됐기 때문이다.
요란하든 광대 같든 결국 타자에게 볼 카운트가 유리해졌다.
“어휴!”
그레그는 모두가 들으라며 크게 한숨을 내뱉었다.
고개를 좌우로 까닥이며 과한 리액션은 덤이었다.
‘어때?’
그레그는 놀란 척하면서 조이 히메네즈의 심기를 건드리고 있었다.
하지만 이건 늘 자신이 해오던 방법.
원래 이러지 않았다면 투수에게 도발이 될 수도 있겠지만, 원래 이런 사람이라고 메이저리그를 밟은 순간부터 쭉 어필해 왔다.
그레그는 헬멧을 매만지며 타격 자세를 잡고 조이 히메네즈를 노려봤다.
다만 일반적인 타자들의 진중한 눈빛과는 다르게 그의 안광에서 나오는 오묘함은 상대의 힘을 빨아들이고 있었다.
큭.
짧은 탄성을 내뱉은 조이 히메네즈는 2구를 던졌다.
슬라이더의 목적지는 바깥쪽 낮은 코스.
건들면 땅볼이 나올 테고 건들지 않아도 스트라이크가 될 것이다.
하지만.
퍼억.
“볼!”
그레그는 고개를 까닥하더니 이번에는 배트를 한 바퀴 돌리면서까지 요란하게 회수했다.
상대의 투구를 칭찬하는 듯한 과한 리액션이었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았다.
‘난 출루만 하면 그만이야. 짜증 나지? 짜증 나잖아? 혹시…… 맞추고 싶어? 맞춰도 되는데. 난 맞을 준비가 되어 있거든.’
조이 히메네즈는 왠지 촐싹거리는 듯한 그레그 때문에 간신히 붙들어 매던 이성의 끈이 끊어져 버렸다.
“심판!”
조이 히메네즈는 심판을 부르며 양쪽 어깨를 들썩했다.
저 과한 행동을 제지해달라는 의미가 담겨 있었다.
심판은 그저 미간을 찌푸리며 대답을 대신했다.
그레그가 지금 룰을 어겼나? 상대를 격하게 도발했나?
그의 눈에는 어떠한 해당 사항도 없었다.
결국 이 자존심 싸움의 승자는 그레그였다.
‘역시. 대 투수도 사람이었어.’
그가 흔들리고 있다.
기회가 보이기 시작했던 것이었다.
장난기 가득했던 그레그의 표정이 진중해졌다.
‘내가 해낸다.’
영웅심이 스멀스멀 피어오르기 시작했던 것이었다.
카운트는 2-0.
압도적으로 타자가 유리한 카운트.
여기서 상대가 던질 수 있는 공이라면 패스트볼.
볼넷은 절대 내주지 않을 테니까.
그레그의 예측이 들어맞았다.
조이 히메네즈는 3구로 패스트볼을 던졌던 것이었다.
코스는 몸쪽.
그레그의 배트가 나왔다.
따악!
“끄악!”
투구가 배트에 맞는 순간 그레그의 입 틈을 비집고 그의 허망한 감정이 고스란히 튀어나왔다.
완전히 밀려버려 한 번 튄 타구는 투수와 유격수 그리고 3루수 사이로 향하고 있었기에.
내야조차 넘기지 못했던 것이었다.
그래도 그레그는 부리나케 1루로 내달렸다.
타구는 확인하지 않았다.
오히려 베이스만 보고 내달렸다.
베이스가 가까워지자, 그레그의 몸이 붕 뜨더니.
털썩.
1루 베이스를 놔주지 않겠다며 끌어안았다.
“세이프! 세이프!”
그레그는 안도의 한숨을 푹 내쉬더니 순간 벌떡 일어났다.
그러고는 제일 먼저 대기타석에 있는 상우를 찾아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헤이! 브라더! 봤지! 봤잖아?’
봤어야 해 인마!
그 대단한 조이 히메네즈를 상대로 안타를 빼앗았으니까.
내야 안타면 어떠리.
꼴사나우면 또 어떠리.
‘야구는 결과가 중요한 거야.’
상우는 그레그의 부름에 응답했다.
그는 엄지를 치켜세우더니 타석으로 유유히 걸어갔다.
다만 그는 그레그와는 달랐다.
그의 진중함이 관중석을 지배하고 있었다.
‘나만 출루하면 된다.’
그러면 도진이 전부 해결해 줄 거야.
초구.
퍼억.
전부를 쏟아내겠다는 조이 히메네즈의 투구가 미트에 꽂혔다.
그 순간 상우의 각오는 수증기가 되어 날아갔다.
‘뭐, 뭐야?’
젠장! 젠장!
너무 쉽게 봤다.
상대는 당장 도진보다 한 단계 위의 선수였다.
숨통을 끊을 때까지 방심해서는 안 됐는데…….
‘아……’
머리가 하얘졌다.
상우는 공황에 허우적대고 있었다.
원하는 결과가 보이지 않았기 때문이다.
상우는 애써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여기서 무너질 수 없어.’
도진이에게 연결해야 한다.
그게 오늘 내가 존재하는 이유니까.
하지만 이미 화가 머리끝까지 난 조이 히메네즈는 그 감정을 전부 투구에 담아 더욱더 완벽한 공을 던졌다.
상우의 몸쪽 낮은 코스로 향하는 투구.
99마일의 패스트볼은 처음 접하는 상우에겐 당장 공략법이 존재하지 않았다.
퍼억!
“스트라이크 투!”
실낱같은 희망을 손끝으로 쥐던 상우는 결국 그 희망을 완전히 놓아버렸다.
그러자 자연스럽게 도진을 찾게 됐다.
‘젠장. 도진아…….’
미안하다. 내가 당장 칠 수 있는 공이 아니다. 여전히 난 많이 부족한가 보다.
이 의미를 그에게 눈빛으로 전달해 주려는 찰나.
도진은 자신을 향해 엄지를 치켜세웠다.
그 즉시 상우는 어이없다는 웃음이 튀어나오면서 어깨가 들썩했다.
‘이야. 넌 이런 날 믿는 거냐?’
넌 나중에 사업만큼은 하지 마라.
크게 사기당할 것 같으니까.
상우는 타격 자세를 잡았다.
앞서 두 번의 투구에 위축됐던 감정은 온데간데없었다.
도진이 치켜올린 저 엄지의 의미를 아는 사람이라면 그럴 수밖에.
그리고 의미를 아는 사람은 오로지 자신뿐이었다.
3구.
공은 던져졌다.
앞선 코스와 비슷하게 날아오는 패스트볼.
죽었다 깨어나도 칠 수 없을 것 같은 그 투구가 다시 한번 날아오고 있었지만, 상우는 자신감을 잔뜩 머금고 배트를 휘둘렀다.
‘나는 동대중 출신 이상우다.’
모두가 김도진과 상대하기 싫다고 거를 때 그 찬스를 도맡아 해결해야만 했던 이상우라고!
따-악!
타구가 쭉쭉 뻗어나갔다.
평정심을 끝까지 유지하려고 했던 조이 히메네즈의 고개가 타구를 확인하겠다며 크게 돌아갔다.
포수마저 마스크를 벗어 던지면서까지 타구를 확인하려고 했다.
좌익수와 중견수가 발 빠르게 타구를 쫓았다.
두 선수는 글러브를 뻗어 보았지만, 한창 역부족이었다.
터엉.
타구가 펜스를 맞고 튀어나왔다.
상우는 1루를 돌아 2루에 안착.
2아웃이라 이미 스타트를 끊은 그레그는 3루를 돌아 홈을 밟았다.
“세이프!”
상우는 주먹을 불끈 쥐었다.
그러고는 곧바로 도진을 찾았다.
‘고맙다. 순간 꺾일뻔했어.’
상우는 모든 학교가 도진을 걸렀을 때.
그 찬스를 살리지 못해 슬럼프가 왔을 때가 떠올랐다.
그럴 때마다 도진은 자신을 믿는다며 엄지를 치켜세웠다.
‘도진아. 여기 메이저리그지만, 보답했다.’
아무리 김도진이라도 혼자서 야구하기엔 다소 무리가 있었으니까.
8회 말. 2아웃.
스코어는 2:2.
도진은 위풍당당한 기세로 타석에 들어서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