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baseball genius who chews up America RAW novel - Chapter (369)
미국 씹어먹는 야구 천재 369화(369/400)
‘아니. 씹.’
상우는 세상이 미웠다.
제발 자신의 차례까지 오지 말았으면 했는데, 그 바람은 이루어지지 않아서 그랬다.
‘이게 왜 하필 나한테…….’
분명히 무사 1, 3루였다.
정신을 차려보니 2사 1, 3루.
자신에게 시련이 와버렸던 것이었다.
물론 앞서 결과를 만들지 못한 선수들을 원망하고 싶지는 않았다.
무사 만루에서 점수를 내지 못하는 일도 야구에서는 허다했으니 말이다.
‘그래도 이건…….’
상우는 좀처럼 정신을 차릴 수 없었다.
첫 시즌부터 디비전시리즈를 밟게 되었다.
신인 선수로서 정말 뜻하지 않은 행운이었다.
그런데 이 커다란 무대에서 5번 타자로 나선 것도 모자라 첫 타석부터 위기가 찾아왔다.
2아웃이다.
여기서 해결하지 못하면 모든 책임을 져야만 할 것 같았기에.
신인에게는 너무나도 가혹했다.
‘투수가 정신을 차려버린 게 제일 문제야.’
분명히 KO 직전까지 갔던 투수가 어느덧 완벽하게 회복했다.
회복한 걸로는 모자랐는지 반격에 나서고 있었다.
무엇보다 머릿속에 담긴 데이터는 자신이 투수를 이길 확률이 희박하다고 일렀다.
‘젠장.’
어느덧 타석에 도착한 상우는 심호흡을 내뱉었다.
후우.
그런데 이 숨이 한숨인지 심호흡인지 분간이 가지 않을 만큼 자신은 떨고 있었다.
자연스레 시선이 3루 측으로 향했다.
언제나처럼 위기 때 도진을 찾는 습관이 나왔던 것이었다.
그가 고개를 끄덕였다.
상우는 오만상을 찌푸렸다.
‘고개 끄덕여서 해결될 일이냐?’
정답을 달라고! 정답을!
물론 도진은 정답을 보내왔다.
저 끄덕임은 직접 해결하라는 뜻이 담겨 있었으니까.
척.
상우는 타격 자세를 잡았다.
‘일단…… 상대가 완급조절을 할 건지 전력투구를 할 건지부터 파악해야 한다.’
만약 자신이 포수였다면 어땠을까?
‘완급조절을 하라고 했겠지.’
상대가 상대니까.
아무것도 이루지 못한 신인이니까 굳이 전력을 다할 필요는 없다고 판단했겠지.
‘전력투구만 아니면 해볼 만해. 초구를 노린다.’
상대 역시 초구 스트라이크를 잡고 싶을 터.
더욱이 자신은 초구부터 배트를 휘두르는 성격은 아니었다.
‘마이크의 말마따나 내 배팅은 팀 배팅에 치중되어 있거든.’
상대가 이를 모를 리가 없었다.
그러니 투수 입장에선 초구를 노리는 게 최선이다.
‘패스트볼이다.’
투수는 투구자세에 돌입하며 공을 던졌다.
상우의 눈이 번뜩 뜨였다.
몸쪽 높은 코스.
패스트볼이었다.
부웅.
상우는 배트를 휘둘렀다.
하지만 투구가 미트에 꽂혀버리는 순간 심장이 철렁 내려앉았다.
‘마, 망했다.’
분명히 수 싸움에서는 이겼다.
93마일의 패스트볼. 상대의 완급조절과 구종까지 전부 맞혔다.
그런데 헛스윙이 나왔다.
자신이 하나 간과한 게 있어서 그랬다.
‘젠장. 몸이 무거워.’
그랬다.
긴장감에 절여져 최고의 스윙은커녕 본래 자신의 스윙을 하지 못했다.
상우는 점점 어둠이란 그늘에서 허우적대고 있었다.
‘최고의 스윙을 선보였어도 칠 수 있었을까?’
그만큼 디비전시리즈에서의 투수는 자신이 알던 투수와는 완전히 달랐다.
놈은 목숨을 걸고 던지는 듯했으니 말이다.
불안감 때문인지 백지장처럼 새하얘진 머릿속은 수 싸움이고 나발이고 아무것도 떠오르지 않았다.
다시 한번 시선이 도진에게 향했다.
그가 1루 측 더그아웃을 턱짓했다.
상우는 더그아웃 쪽으로 힐끗 시선을 돌렸다.
‘하.’
헛웃음이 나왔다.
안도해서 그랬다.
거기엔 자신이 당장 해야 할 일을 일러주는 마이크가 있었기 때문이다.
‘변화구를 노리라고?’
그래. 변화구를 노려야 한다.
지금처럼 잔뜩 굳어버린 몸뚱이로는 패스트볼을 따라가지 못한다.
상우는 한결 편해진 마음으로 타격자세를 잡았다.
투수가 투구에 돌입했다.
공은 백스핀을 잔뜩 머금은 투구였지만 패스트볼 같지는 않았다.
‘체인지업이다.’
부웅.
상우는 배트를 아래에서 위로 크게 걷어 올리는 스윙을 가져갔다.
이틀 전부터 당겨치는 훈련을 해와서인지 스윙의 궤적만큼은 완벽했다.
하지만 이번에도 배트는 크게 헛돌았다.
‘젠장!’
투수가 던진 공은 체인지업.
이마저도 예상했지만, 구질까지는 예상하지 못해서였다.
무엇보다 이번 체인지업은 마구였다.
홈 플레이트 앞에서 갑자기 사라져 버리더니 바닥까지 처박혔기 때문이다.
적당히 떨어지리란 자신의 예측을 빗나갔던 것이었다.
상우는 눈을 질끈 감았다.
턱에 힘도 잔뜩 들어갔다.
두 번의 완벽한 예측을 전부 놓쳤다.
그러므로 아무리 긍정적으로 생각하려 해도 부정적으로 돌아설 수밖에 없었다.
‘해결해야 한다. 여기서 해결하지 못하면…….’
까마득한 미래만이 보였다.
애써 가져온 분위기를 바로 내준다면 오늘 에인절스는 끌려 나갈 수밖에 없다.
기필코 승리를 챙기겠다는 계획이 꼬이는 순간 챔피언십 시리즈는커녕 디비전시리즈에서 탈락해 버릴 테니까.
‘무엇보다 도진이도 인간이다.’
아무리 그가 인간 같지 않더라도 그 역시도 실점한다.
득점 지원을 받지 못해 흔들리는 도진을 시즌 중 몇 번이나 봐오지 않았던가?
최소 20승 이상을 거뒀어야만 했던 투수가 17승에 그친 이유가 바로 이것이었다.
더욱이 승리를 충분히 챙길 수 있던 경기에서도 패전 투수가 된 적도 여럿 있었다.
그러니 결국 여기서 자신의 손으로 득점을 만들어야 하는데…….
‘하지만 무슨 수로? 이 난관을 도대체 어떻게 타개해 나가야 하지?’
상우는 순간 헛웃음이 튀어 나올 뻔했다.
여전히 수 싸움을 위해 노력하고 있는 제 모습을 보자니 그랬다.
‘나. 치고 싶구나.’
불평불만은 전부 쏟아내면서도 결과는 만들고 싶나 보네.
‘노력이나 더 하지 그랬냐.’
계속해서 자신에게 질문을 던지던 그의 눈빛이 일순 달라졌다.
‘그래도 노력…… 꽤 많이 했어.’
도진이와 비교할 순 없다.
저놈은 노력 그 자체였으니까.
그래도…….
메이저리그를 통틀어 노력만큼은 도진이 다음이라고 자부할 수 있었다.
남들 퇴근할 때 남아서 스윙했고.
남들 잘 때 데이터를 머릿속에 심었다.
잘하고 싶었으니까.
그리고 도진을 보면 알 수 있듯이 노력은 배신하지 않는다는 걸 아주 잘 알고 있었다.
‘다음 공은 패스트볼이다.’
가출했던 정신이 돌아온 상우에게 확신도 들어섰다.
‘여기서는 곧장 승부하러 들어올 가능성이 커.’
상대는 투구 수를 최대한 아끼고 싶을 터.
더군다나 놈들은 작년 시즌 월드시리즈 우승 반지를 꼈다.
지금까지의 허접한 스윙을 선보인 자신을 비웃고 있을 것이다.
투수가 사인에 고개를 끄덕이는 순간 상우의 시선은 도진에게 향했다.
그가 치켜올린 엄지를 반대로 내리꽂았다.
생각 그대로 이행하라는 사인이자.
눌러버리라는 뜻이 담겨 있었다.
한때는 심심치 않게 봐오던 장면이었다.
‘김도진. 너 그거 아냐? 진짜 무책임하다는 거.’
상대는 아마추어가 아니라 메이저리거다? 그것도 1선발이고.
전부 내 밑이었던 아마추어와는 다르게 지금의 나보다 훨씬 대단한 선수라고.
도진의 흔들리지 않는 눈동자에 상우는 어금니를 까득 물었다.
‘그래도 해야겠지.’
아니. 할 수 있다.
나도 메이저리거니까. 노력했으니까.
공이 날아왔다.
투구는 포심 패스트볼.
코스는 몸쪽 무릎 높이로 날아오는 제구가 아주 잘 된 공이었다.
‘빠르다. 그런데 이상하게 빠르지 않다.’
지금까지 받아왔던 도진의 투구에 비하면 정말 아무것도 아닌 것만 같았다.
부웅.
상우의 스윙이 나왔다.
있는 힘껏 휘두른 그의 스윙은 자칫 배트가 빠질 수도 있었다.
하지만 그의 손에 깊게 박힌 굳은살은 배트가 빠지지 않도록 지탱해 주었다.
이것이 자신의 노력의 증거였다.
따—악!
맞는 순간 상우는 1루를 향해 전력 질주했다.
1루에서 2루를 돌 때도 그는 속도를 줄이지 않았다.
타구를 확인하지 않아서 그랬다.
그 어느 때보다 완벽한 손맛을 느꼈음에도 왠지 두려워서 그랬다.
결국 상우는 홈까지 전력 질주했다.
이상하다는 건 진작에 감지했다.
레드삭스 선수들은 전부 고개를 숙이고 있었고.
1루와 3루 코치는 잘했다며 주먹을 내밀었으며.
홈에는 루에 나간 모든 주자가 자신을 기다리고 있었으니까.
그런데도 상우는 속도를 줄이지 않았다.
저 홈을 밟을 때까지 안심할 수 없어서 그랬다.
“플레이오프 첫 타석 쓰리런 홈런. 축하한다.”
홈을 밟자 도진의 축하가 고막을 간지럽혔다.
홈까지 무리하게 전력 질주해서 그런 걸까?
아니면 긴장이 풀려서?
상우는 순간 하체가 휘청거렸다.
“나 해낸 거냐?”
“홈런 치고 전력 질주하는 건 좀 추했는데 그래도 영웅의 탄생이네.”
“쫑알쫑알 댈 힘이 있으면 나 오늘 진짜 영웅으로 만들어줘라.”
도진은 시큰둥하게 대답했다.
“뭐. 굳이 그럴 필요까진 없을 것 같은데?”
상우는 버럭 소리 질렀다.
“또! 또! 지 혼자 스포트라이트 다 가져가려고. 에휴. 됐다. 난 가서 조금 쉬고 장비나 착용해야겠다.”
상우는 미소를 감추더니 재빨리 더그아웃으로 이동했다.
무수한 축하를 받는 그의 뒷모습을 바라보던 도진은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이미 탄생했다니까 뭘 또 만들어달래?’
* * *
예상치 못한 불의의 일격을 맞게 되면 원래 정신을 차리기 힘든 법이다.
지금 레드삭스가 상우에게 홈런을 맞게 되며 딱 그랬다.
덕분에 도진은 2회에도 한결 편한 마음으로 투구에 임했다.
부웅.
“스트라이크 아웃!”
타자들의 스윙엔 여전히 따라가겠다는 의욕이 묻어 나왔다.
하지만 저 의욕이 오래 유지 될 수 없다는 걸 도진은 알고 있었다.
꾸준히 유지되려면 득점이 필요한데 도진은 점수를 내줄 생각이 없었고.
상대가 느끼는 부담감은 이닝이 흐를수록 거대해질 테니까.
‘실점은 없다. 여기서 숨통을 끊어버려야지만, 다음 경기가 편해져.’
상우의 3점 홈런으로 부담이 줄었다.
투수는 부담을 느끼지 않을 때 더 위력적인 투구를 선보일 수 있었다.
여기에 자신감을 완전히 되찾은 상우의 리드가 더해졌기에 레드삭스 타자들은 속수무책으로 떨어져 나갔다.
“스트라이크 아웃!”
도진은 2회도 삼자범퇴로 이닝을 마무리 지었다.
더그아웃에 돌아와서는 상우와 함께 마이크를 찾았다.
이미 마이크와 대화를 나누던 호세는 만족스럽다며 껄껄 웃었다.
“애송아. 오늘은 지금 페이스를 끝까지 유지해라. 잡은 승기를 절대 놓지 마라.”
“알고 있습니다. 이왕이면 최대한 많은 이닝을 던져 불펜 투수들의 어깨를 가볍게 해줘야겠죠.”
“그래. 그래. 알면 됐다.”
내일은 벨 조이스가 등판한다.
체력을 온전히 보존해 놓은 벨 조이스를 심신 미약한 타자들이 쉽게 공략하지는 못할 터.
두 경기를 내리 잡을 수만 있다면 계획했던 스윕에 가까워지는 것이며.
당장 오늘 경기에서 상대의 기세를 전부 짓눌러버리는 게 도진의 역할이었다.
“그런데 말이에요. 아직 3:0이에요. 솔직히 상우 말고 아직 타점을 올린 선수도 없고요. 조금 더 분발해야 하면 좋을 것 같아요.”
호세의 눈썹이 꿈틀댔다.
“뭐라?”
“맞잖아요. 특히 호세는 최근 들어 페이스가 좀…….”
“돌려 말하지 말고 똑바로 말해!”
“하나 해달라는 말이죠. 아. 어깨 무거워. 이러다가 실점하는 거 아닌지 모르겠네요.”
“야! 아직 한 타석밖에 안 섰어!”
야구에서 3점은 언제든지 뒤집힐 수 있다.
물론 당장 가져온 분위기가 넘어갈 리는 없겠지만, 안전장치는 필수였다.
무엇보다 선수들은 타격감을 끌어올려야 한다.
전체적으로 타격감이 올라와야지만 연전연승을 이어 나갈 수 있다.
도진은 순진무구한 표정을 지었다.
“어? 호세. 화내는 건가요? 규칙을 어기는 거예요?”
“아, 아니? 그냥 이기고 있어서 조금 흥분했을 뿐이야.”
“진짜 화낸 거 아니죠?”
“아니라고.”
“화낸 것 같은데?”
“이놈 자식이? 너 딱 기다려. 다음 타석에서 하나 쳐줄 테니까.”
“마이크랑 잘 상담하셔야겠어요.”
“하고 있었잖아. 안 그래도 뭘 노리면 좋을지 얘기하고 있었어. 저놈들 몸쪽으로 안 던져. 너도 봤잖아.”
“투수가 원하는 공을 던져주지는 않죠. 그렇다고 실투만 노리기에도 좀…… 바깥쪽 공에 대응해야지 다음 라운드 진출을 노려볼 수 있을 것 같은데…….”
“이 자식. 규칙이라면서 돌려 까는 거 같냐.”
도진은 손바닥을 절도 있게 펼쳤다.
“오해입니다.”
“뭐. 틀린 말은 아니니까. 최선을 다해보마.”
대화는 그대로 끝이 났다.
도진은 호세와의 대화로 이대로 가만히 있을 수는 없다고 판단했다.
‘팀원 모두가 힘을 낼 수 있도록 바쁘게 움직여야겠는걸?’
레드삭스. 그리고 챔피언십 시리즈에서 만날 다음 상대도.
‘딱 대라. 확 바뀐 에인절스를 보게 될 테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