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baseball genius who chews up America RAW novel - Chapter (376)
미국 씹어먹는 야구 천재 376화(376/400)
호세는 고개를 갸우뚱했다.
화났다는 상우의 말뜻을 도무지 이해할 수 없어서 그랬다.
‘화났다고?’
저게 도대체 어딜 봐서 화난 거지?
아무리 봐도 그냥 멘탈이 나갔…….
도진의 표정을 힐끗 살핀 호세는 침을 꼴딱 넘겼다.
부들부들 떨고 있지만, 눈빛만큼은 여전히 살아 있었다.
멘탈이 나갔다고?
착각이었다.
도진의 눈빛은 무엇이든 찢어발길 준비가 된 야수와도 같았다.
멀리서 쳐다보고 있는 것만으로도 오금이 지릴 지경이다.
호세는 도진과 2년 내내 함께했다.
2년이란 시간은 짧다면 짧겠지만, 그래도 알 건 아는 사이였다.
호세는 도진의 저런 모습을 처음 본다.
‘저 순둥이가…… 아니 저게 화가 난 거라고?’
도진의 성격을 평가하자면 순하다는 단어밖에 떠오르지 않았다.
그가 가진 승리욕과는 별개로 말이다.
원래 인간이라면.
모든 프로는 승리에 대한 욕구가 있다.
이것을 가지고 있지 않다면 프로 자체가 될 수 없었다.
하지만 여태 도진은 승리욕과 화를 별개로 두었다.
원래도 별개인 게 맞지만, 메이저리거 대부분이, 그리고 자신마저도 승리욕과 화를 구분하지 못해 헷갈릴 때가 있었다.
하지만 도진은 그 두 가지를 명확하게 나눴다.
적어도 승리에 대한 욕구가 찾아왔을 때도 평정심을 유지했으니까.
‘그러니 저건 화가 난 게 맞겠지.’
승리 욕구를 채우지 못한 선수가 화가 났을 때 어떻게 되는지 호세는 잘 알고 있었다.
평정심을 잃고 무너져 내리거나…….
아니면 상대를 찢어발겨 죽인다거나 둘 중 하나다.
하지만 어디까지나 전자일 가능성이 크다.
야구처럼 멘탈 스포츠에서 화에 지배당한다면 본래의 모습을 보여주기 힘들다.
그리고 누구보다 자신이 경험해 봐서 잘 알고 있었다.
하지만.
‘저 화의 대상이 그 누구도 아닌 자신이라면?’
다시 한번 침이 꼴딱 넘어갔다.
자신도 나름 메이저리거다.
무려 15년을 넘게 이 무대에 박혀 있었기에 자신에게 화가 났던 적이 수두룩했다.
그렇기에 극복하는 방법 또한 알고 있었다.
‘성장 말고는 없어.’
성장. 호세는 도진에게 대입해 봤다.
그가 남 탓하는 걸 본 적이 없다.
오히려 자기 잘못으로 돌리며 계속해서 성장하려고 했던 선수였다.
하지만 어디까지나 추측. 호세는 정확한 정답을 원했다.
“야. 넌 애송이 화난 거 본 적 있어? 있으니 알아차린 거겠지만.”
“솔직히 말씀드리면요. 한 번밖에 없어요.”
호세의 표정에 순간 실망이 드리웠다.
한 번. 제일 친한 친구가 가진 표본이 너무 적었다.
그러니 화를 주체하지 못할 때의 문제를 생각하자니 걱정될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이어서 들려오는 온화한 상우의 목소리에 호세의 긴장이 사그라들었다.
“걱정하지 마세요. 도진이 화난 게 10년 가까이 됐는데 여전히 머릿속에 또렷이 남아 있거든요.”
“어땠는데? 무슨 상황이었는데?”
상우는 빙그레 미소 지었다.
“입 아프게 말해서 뭐 하겠어요? 곧 보실 텐데요.”
사실 상우도 정확히 몰랐다.
다만 한 가지 확신할 수는 있었다.
‘양키스. 너네 *됐어.’
* * *
5회 초 2아웃에 주자는 없었고 스코어는 여전히 1:4.
도진은 세 번째 타석에 들어서고 있었다.
양키스의 선발 투수 프레드는 히죽 웃었다.
‘끝났어.’
그를 강판시켰다.
두 번째 타석에서도 그를 손쉽게 처리했다.
에인절스의 기둥이 무너지고 있었다.
‘우리 입장에선 잘 된 거지만.’
양키스가 원하는 건 월드 시리즈 우승.
이왕이면 에인절스를 손쉽게 처리하고 최고의 컨디션으로 상대를 대비하는 게 우승에 가까워질 수 있는 길이었다.
‘쯧쯧. 표정 봐라. 아주 멘탈이 나가버렸네.’
프레드가 바라보는 도진이 그랬다.
초점이 맞지 않았고 의욕도 느껴지지 않았다.
다른 양키스 선수들도 프레드와 비슷하게 생각했다.
팀을 지탱하는 중심이 무너졌다.
이제 전체가 무너질 일만 남았다고.
팬들이라고 다를까?
“Beat LA! Beat LA!”
LA를 무너뜨려라.
이 응원 구는 원래 다저스 전용이었다.
지금 메이저리그에서 공공의 적은 다저스였다.
비록 지구 우승을 밥 먹듯이 하며 최강이란 명성에 비해 월드시리즈 우승을 자주 거머쥐지는 못했지만, 그래도 그들이 최고의 구단이라는 걸 모르는 야구팬들은 없었다.
그런데 이 응원 구가 에인절스를 상대로 나오고 있었다.
에인절스가 두려워서?
아니. 도진이 두려워서였다.
그렇기에 도진이 흔들리는 지금이야말로 그의 멘탈을 부숴버릴 절호의 기회였기에 목 놓아 입을 모았다.
다만 단 두 명의 선수만큼은 생각이 달랐다.
도진을 정면으로 바라보던 놀란의 눈동자에 당황이 들어섰다.
‘뭐지?’
놀란은 도진을 잘 알고 있었다.
그의 아마추어 시절부터 쭉 지켜봐 왔기 때문이다.
지금 도진은 반쯤 혼이 나가 있었다.
그래서 더 이상했다.
저게 진짜 혼이 나간 게 맞나?
‘그럴 리가.’
그가 쉽게 포기하는 걸 본 적이 있나?
단 한 번도 없었다.
그런데 이 큰 무대에서 고작 몇 대 맞았다고 의욕을 잃는다고?
물론 도진은 오늘 실패했다.
1선발로서 제 몫을 해주지 못했으니까.
하지만 자신이 아는 도진은 고작 그따위 걸로 무너질 선수는 아니었다.
사토도 놀란과 생각의 결이 비슷했다.
‘왠지 찝찝하군.’
분명히 혼이 나간 게 맞다.
겉보기에는 그랬다.
하지만 뭘까. 이 불안감은.
도진이 아닌 이상 알 방법은 없었다.
* * *
도진은 타격 자세를 잡았다.
자칫 초점이 없어 보이는 그의 눈동자가 투수에 고정되어 있었다.
‘…….’
아직 1:4. 충분히 따라잡을 수 있는 점수 차다.
수 싸움을 해야 하는데 상대가 뭘 던질지 관심이 생기지 않는다.
텅 빈 머릿속은 어떤 생각도 담길 바라지 않았다.
이럴 땐 어째야 하는 거지?
어쩌긴 뭘 어째.
척.
도진은 타격 자세를 잡았다.
늘 하던 대로 하면 되는 거였으니까.
사람이 원래 그렇다.
화를 주체하지 못하면 머리가 띵해지며 멍해진다.
다만 지금은 그 지경에서 벗어났다.
‘화는 이미 많이 냈어.’
도진은 강판 후 자신을 계속해서 질책했다.
3회 초에 강판당하고 타석에 들어선 지금까지 계속해서 말이다.
병신 같은 놈이라고.
고작 이따위 실력으로 최고를 노린 거냐고.
체력이 부족해서 그런 거라고 탓 하고 싶지도 않다.
‘등판 전까지 푹 쉬었잖아.’
적어도 이 4실점은 체력이 부족해서 나온 건 아니었다.
‘내가 부족해서지.’
도진은 다시 전광판을 힐끗 쳐다봤다.
5회 초 1:4.
3점이면 언제든지 따라잡을 수 있지만, 말처럼 쉽지 않다.
분위기.
이게 전부 양키스로 넘어갔기 때문이다.
물론 에인절스 선수들은 실패한 자신을 위에 이 악물고 버텨주고 있었다.
따라가는 점수를 만들지는 못했지만, 적어도 실점은 하지 않고 있었으니까.
고개를 들고 다닐 수 없을 지경이었다.
1선발이란 무게를 견디지 못해 꼴사나운 모습을 보이는 자신이 부끄러웠다.
하지만 만회할 방법은 있다.
‘분위기를 다시 가져오면 돼.’
다만 여기서 문제라면 넘어간 분위기를 쉽게 되찾아 올 수 없다는 거다.
이미 상대에게 두들겨 맞은 지금의 기량으로 도대체 어떻게 분위기를 되찾아 올 수 있겠는가.
그래도 도진은 해결책을 알고 있었다.
‘지금보다 더 나은 선수가 되면 된다.’
자신은 지금 벽에 가로막혀 나가질 못하고 있었으니까.
물론 이 또한 말처럼 쉽지 않다는 것 또한 잘 알고 있었다.
하지만 정말 이 방법밖에 없었다.
‘벽을 처음 마주하는 것도 아니잖아?’
꽤 많았다.
처음 미국에서 야구를 시작했을 때도 그랬고.
사토나 놀란의 기량을 확인한 순간에도 그랬다.
‘미국이라 염두에 두고 있어서 충격이 덜 했을 뿐이지.’
다만 이와 똑같은 감정을 언제 한번 느껴본 적이 있다.
그게 언제였더라?
도진은 미소를 속으로 삼켰다.
‘나 첫 야구 시합에 나갔을 때였구나.’
야구 초보가 빠른 공 좀 던진다고 세상에 둘도 없는 천재라고 착각했었다.
첫 야구 시합에서 1이닝도 끝내지 못하고 5실점 강판당했을 때.
그때 이와 똑같은 감정을 느꼈었다.
‘분노하고 또 분노했지. 대신 분노만 하지는 않았어.’
그로부터 절대 지지 않겠다고 노력했다.
그 노력은 지금까지도 계속 이어졌다.
‘자다가도 벌떡 깨서 던지고 치고 할 수 있는 수준까지 왔잖아?’
그러니 그때랑은 또 다르긴 하네.
지금은 자신이 가진 장점을 한 치의 오차도 없이 보여주면 된다.
투수는 시간을 주지 않겠다며 곧장 초구를 던졌다.
도진은 당황하지 않았다.
오히려 너무나도 차분했다.
그래서일까.
바깥쪽으로 향하는 패스트볼은 공이 반 개 정도 빠질 거라고 일러주었고.
퍼억!
“볼!”
그의 예상대로 정말 반 개 정도 빠졌다.
2구. 슬라이더가 날아왔다.
바깥쪽 하단에 걸칠 듯 말 듯 한 애매한 투구지만 도진은 이번에도 휘두를 생각이 없었다.
까다로운 투구이자 존을 벗어나는데 굳이 휘둘러서 힘을 뺄 이유는 없었으니까.
퍼억!
“볼!”
카운트는 2-0.
투수는 고개를 끄덕이더니 공을 던졌다.
몸쪽 꽉 찬 패스트볼.
도진은 결단을 내렸다.
‘이건 휘두르지 않는 게 나아.’
너무 꽉 찼다.
기껏해야 단타나 나올 게 뻔한데 이걸 치는 건 의미가 없다.
자신 때문에 내준 분위기.
도로 제 손으로 가져와야만 했기에 지금 필요한 건 장타.
그중에서도 제일 가치가 높은 홈런이었다.
퍼억!
“스트라이크!”
배터리는 미소를 교환했다.
충분히 휘두를 법한 타구였는데 타자가 휘두르지 않아서 그랬다.
완전히 끝났구나.
배터리는 지레짐작했다.
놀란과 사토는 미간을 찌푸렸다.
노릴만했고 충분히 휘두를 법한 투구를 도진이 놓쳤으니 말이다.
‘정말 끝난 건가?’
도진은 껌을 질겅질겅 씹어대며 풍선을 풀어대고 있었다.
다만 그에게서 무엇 하나 읽을 수 없었다.
야구는 상대의 생각을 읽어야만 하는 스포츠다.
그래야지만, 상대를 짓누를 수 있으니까.
그러므로 비록 어렵지만, 평소 도진을 상대할 때도 그의 생각을 읽으려고 했고.
최소 그의 생각은 읽지 못해도 어떤 감정인지는 읽혔었다.
그런데 지금은 아니다.
‘읽히지 않는다.’
양키스 전원이 머리를 맞대고 고민해 봐도 결론은 하나였다.
‘놈은 끝났다.’
상대는 그저 해탈한 것 뿐이다.
패배를 인정하고 물러서려고 하는 것이다!
투수는 이 기회를 놓치지 않겠다며 와인드업했다.
공이 날아갔다.
한 치의 오차도 없는 바깥쪽 꽉 찬 코스로의 패스트볼이었다.
도진의 눈이 번뜩인 것도 그때였고.
‘오랜만에 머리를 비워서 그런가.’
공이 무슨 수박만큼 커 보이네.
하긴. 그동안 너무 오지랖을 많이 부리긴 했어.
규칙도 만들고 선수단도 관리하고 투수와 타자 거기에 수비까지 하다보니 머릿속이 터질 지경이었다.
그런데 지금은 아니다.
티 하나 없는 깨끗한 머릿속은 지금 승부에 온전히 집중할 수 있게 해줬다.
그러니.
양키스 입장에서는 반송장이나 다름없던 그에게서 벼락같은 스윙이 나왔다.
따—악!
결대로 밀어친 타구는 우익수 방면으로 쭉쭉 뻗어나갔다.
투수는 고개를 크게 꺾어 타구를 확인하더니 이내 어금니를 뿌득 갈았다.
마스크를 벗어 던진 포수는 결국 고개를 떨궜다.
안도해서는 안 됐다…….
놀란도 사토도.
그리고 양키스 선수들도 방금 나온 결과에 크게 자책했다.
상대가 누군지를 잊어서는 안 됐었다.
그는 고작 2년 차에 MVP 반열에 오른 선수였으니까.
도진은 배트를 살포시 바닥에 내려놓고 천천히 베이스를 돌았다.
사토는 도진이 타석에서 1루로 이동하는 모습을 눈에서 떼지 않았다.
그가 부활했다.
‘아니. 애당초 죽지 않았던 걸 수도.’
사토는 순간 눈살을 찌푸렸다.
눈 앞에 있어야 할 도진이 보이지 않아서 그랬다.
거대한 벽이 그의 존재 자체를 가려버리고 있었다.
‘아…….’
사토는 결국 계속해서 멀어지는 도진을 시야에 담을 수 없어 고개를 떨궜다.
다른 한편, 놀란은 1루 베이스를 밟고 자신과 가까워지는 도진을 슥 쳐다봤다.
순간 밉다는 감정이 치밀어올랐다.
무뚝뚝하게 껌이나 질겅질겅 씹어대며 풍선이나 불어대는 그의 모습은 마치 자신은 안중에도 없다는 것처럼 보여서 그랬다.
그런데 어느 순간 시야에서 도진이 사라졌다.
자신을 지나쳐 3루로 향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놀란은 도진의 뒷모습을 쫓으려고 안간힘을 써 보았지만, 고개를 돌릴 수 없었다.
사실 그럴 수 없어서 그랬다.
지금 돌아보면 다시 멀어지는 도진의 뒷모습을 또다시 지켜보고만 있어야 한다는 생각이 들어서 그랬다.
도진은 홈을 밟았다.
스코어는 2:4.
최종 장으로 향하는 1차전의 행방은 슈퍼스타의 활약으로 여전히 묘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