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baseball genius who chews up America RAW novel - Chapter (39)
미국 씹어먹는 야구 천재-39화(39/400)
“타! 타임!”
샌프란시스코 포수 딕은 심판에게 양해를 구한 뒤 서둘러 마운드를 방문했다.
“야! 괜찮아?”
친구이자 샌프란시스코를 대표하는 선발 투수 스테픈은 지금 정상이 아니었다.
그도 그럴 것이 3이닝까지만 해도 스테픈은 상당한 자신감을 내비쳤다.
오늘 경기에서 노히터를 달성하겠다는 포부까지 내비쳤다.
그만큼 오늘 그의 투구는 타자가 쉽게 건드릴 수 없을 만큼 환상적이었다.
하지만 자신감을 내비친 지 불과 몇 분도 되지 않아 스테픈의 멘탈이 바사삭 무너져내렸다.
딕은 2루 주자를 힐끗 쳐다보며 어금니를 갈았다.
‘저 개 같은…….’
이번에도 스테픈의 멘탈을 부순 건 저 아시아인이었다.
하지만 2점 앞서는 샌프란시스코가 벌써부터 경기를 포기할 이유는 없었다.
딕은 이 위기를 유일하게 타개할 수 있는 주인공의 멘탈부터 추스르겠다며 미트로 입을 가렸다.
“스테픈. 어쩔래?”
툭툭.
스테픈은 눈을 번뜩이더니 정신을 차리겠다며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그러고는 글러브로 자신의 입을 가렸다.
“미안하다.”
“미안하긴. 아직 우리가 2점 리드하고 있어. 그리고 너도 알다시피 무사 1, 2루지만 무실점으로 막을 수 있다는 거 알잖아?”
무사 만루도 충분히 무실점으로 틀어막을 수 있고, 무사 1, 2루는 가능성이 훨씬 컸다.
하지만 둘은 동시에 한숨을 뿜어냈다.
지금 타석에 들어선 타자 때문이었다.
딕은 은연중 두려움을 느끼며 투수에게 해서는 안 될 말을 건넸다.
“거, 거를까?”
베일 것 같은 스테픈의 날카로운 목소리가 딕에게 향했다.
“장난해?”
딕은 자신의 실수를 인정하며 빠르게 사과했다.
“미안.”
무사 1, 2루에서 어떤 투수가 주자를 걸러서 무사 만루를 만드는가?
약팀이라면 모를까.
강팀인 자신들이 내릴 판단은 아니었다.
더군다나 도망가는 피칭은 당장, 그리고 미래에도 좋지 않다.
‘투수는 홈런이나 안타를 맞더라도 절대로 도망가는 피칭을 해서는 안 되지.’
비록 사소한 행동일지라도 분명 스카우팅 리포트에 기록될 것이며, 메이저리거를 꿈꾸는 스테픈에겐 오점이 될 게 뻔했다.
“젠장.”
스테픈은 입에서 욕설이 절로 튀어나왔지만, 분노는 상황을 타개해줄 만한 대책이 되지 않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하지만 감정을 추스르려고 해도 쉽지 않았다.
‘알렉산더……’
그의 표정은 평온했다.
긴장해도 모자랄 판에 저런 표정을 짓다니.
알렉산더의 표정을 본 스테픈의 눈동자에 뜨거운 화염이 타오르기 시작했다.
그의 자신감은 스테픈의 투지를 끌어올렸다.
위기의 상황에서 투수는 대개 두 가지 부류로 나뉜다.
수세에 몰릴 때 대부분 형편없어지지만, 괴력을 발휘하는 투수도 존재한다.
메이저리거를 꿈꾸는 스테픈은 후자였다.
“알렉산더. 내가 잡는다.”
위기는 자신이 자초했다.
주자를 신경 쓰지 않고 오로지 타자에 집중했더라면 이런 상황이 오지 않았을 것이다.
자신이 벌인 상황인 만큼 자신이 수습해야 한다.
‘타자에만 집중하자.’
알렉산더를 잡지 못해도 상관없다.
전체적인 수준은 샌프란시스코가 우위에 있었다.
혹여 이번 이닝에서 2점을 먹혀도, 3점을 실점해도 충분히 재 역전을 할 수 있는 저력 있는 팀이었다.
“후우.”
생각이 정리되자 스테픈의 머리를 차갑게 식었다.
이제는 위기를 모면할 방법을 모색하면 될 터.
“생각해보면 지금까지의 투구 패턴은 굉장히 단조로웠지.”
“인정한다. 상대를 잠깐 물로 봤어.”
상대를 너무 무시하고 있었다.
FS니까.
그들은 늘 중위권에 이름을 올리는 놈들이었으니 말이다.
“볼 배합을 바꾸자. 이번 이닝 완벽히 틀어막고 KO 펀치를 날린다.”
딕은 자신의 친구이자 샌프란시스코의 에이스가 기운을 되찾자 입꼬리를 힘껏 올렸다.
“오케이. 가보자고.”
* * *
[1사 1, 2루. 타석엔 알렉산더.] [오늘의 승부처라고 볼 수 있겠습니다. 하지만 쉽지 않아 보이죠?] [그렇습니다. 포수가 타임으로 분위기를 끊었습니다. 덕분에 투수도 자신감을 찾은 것으로 보입니다.] [오늘 스테픈이 공이 좋다는 건 누구라도 인정할 수밖에 없죠. 아무리 알렉산더라도 쉽지 않은 승부가 될 것입니다.]-역시 샌프란시스코는 강팀이네.
-그러게. 넋 나간 투수의 표정이 완전히 돌아왔어.
-돌아온 것도 모자라 더 불타는데?
FS는 2:0으로 지고 있다.
더군다나 7이닝 경기.
이번 이닝에서 점수를 내지 못한다면 기회가 그리 많지 않다.
당연히 수세에 몰린 FS 응원단은 걱정이 앞설 수밖에 없었다.
뛰어난 타자와 뛰어난 투수의 승부가 벌어지면 보통 투수 쪽이 더 유리하니까.
하지만 타석에 들어선 알렉산더는 이미 수많은 미식축구와 야구 대회를 통해 적응이 된 듯 어떠한 긴장감도 찾아볼 수 없었다.
껌을 질겅질겅 씹어대던 알렉산더는 투수를 힐끗 바라봤다.
멘탈은 어느 정도 추스른 것처럼 보였다.
그래도 이렇게 중요한 경기에서 실수를 완전히 잊고 새롭게 출발하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확신했다.
알렉산더는 스위치 히터.
우완 투수 스테픈을 상대로 좌타석에 들어서며 타격 자세를 잡았다.
안정을 되찾은 투수 또한 세트 포지션으로 공을 던졌다.
초구.
투수와 타자에게 모두 중요한 공.
알렉산더는 참았고 스테픈의 패스트볼은 몸쪽 꽉 차게 들어왔다.
볼과 스트라이크의 경계선에서 어떤 콜이 들려와도 이상하지 않았지만, 심판은 홈팀의 손을 들어줬다.
“스트라이크!”
관중들은 자신 있게 스트라이크를 꽂아 넣은 자신들의 선발투수를 응원하고자 환호를 보냈다.
스테픈은 성원에 힘입어 2구 역시 자신감 있는 투구를 선보였다.
바깥쪽 아슬아슬하게 존을 걸치는 패스트볼.
심판의 선언은 스트라이크였다.
“스트라이크 투!”
0-2 카운트.
알렉산더는 예상치 못한 일격을 맞았다.
스테픈이 위기 상황에서도 완벽한 공을 던지자 알렉산더의 무표정에 균열이 갔다.
‘젠장. 칠 수 없는 코스로 공을 던져대는군.’
투구를 건드렸다면 병살타가 나올법한 뛰어난 공이었다.
투수가 도진을 신경 쓰며 자멸할 줄 알았다.
하지만 치기 좋은 실투를 던지는 대신 더욱 완벽한 공을 던졌다.
고작 2번의 투구였을 뿐이지만 FS의 기회가 위기로 변했고, 샌프란시스코는 위기가 기회로 바뀌었다.
동요를 보이지 않던 알렉산더는 타석에서 벗어나 장갑을 매만지며 턱이 빠르게 움직였다.
껌을 씹는 속도가 빨라졌다는 건 수세에 몰렸다는 증거.
하지만 그때.
알렉산더는 도진의 모습이 시야에 들어왔다.
도진은 그가 자신을 바라볼 수 있게 눈에 잔뜩 힘을 준 채 알렉산더를 지금까지 노려봤던 것이었다.
‘휴우. 드디어 눈이 마주쳤네. 알렉산더. 너도 긴장되나 봐?’
도진은 서둘러 자신의 어깨를 털어 냈다.
스윙을 참아라. 도루하겠다는 뜻이 담겨 있었다.
알렉산더는 매우 미세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스트라이크 하나면 삼진을 당할 수 있다.
하지만 도진도 알렉산더도 정신을 되찾은 투수를 다시 무너뜨리지 못한다면 이번 이닝이 무실점으로 끝날 수도 있다고 확신했다.
도진은 한 발자국 두 발자국 천천히 2루 베이스에서 슬금슬금 멀어졌다.
‘샌프란시스코 배터리는 알렉산더에게만큼은 3구 승부를 걸진 않겠지.’
물론 앞서 자신의 타석에서는 예상을 빗나갔지만, 그때와 지금은 확연한 차이가 있었다.
지금은 주자가 1, 2루에 존재했으니 말이다.
‘유인구로 알렉산더의 눈을 현혹하려 하겠지.’
그러므로 3구는 떨어지는 공일 것이다.
그리고 떨어지는 공은 도루하기 딱 좋은 구종이었다.
3구.
투수의 손을 떠난 구종은 커브.
파파팟.
투수가 공을 던지는 순간 주자가 모두 뛰기 시작했다.
포수는 뒤늦게 눈을 번뜩이며 미트에 들어온 공을 손에서 빼내 주자를 잡으려고 했지만, 공을 던질 수 없었다.
도진은 이미 3루에.
그리고 마이크는 2루에 안착해 있었다.
짧은 단타 하나만으로도 동점을 만들 수 있는 2, 3루.
하지만 카운트는 1-2. 여전히 투수에게 유리한 카운트.
1루가 비어있지만 걸어내보내기엔 너무나도 아까운 카운트였다.
포수는 결국 몸쪽 패스트볼을 요구했고 투수는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샌프란시스코 배터리는 자신들을 너무 믿었다.
상대가 그 알렉산더라는 것도 잠시 잊고 말이다.
마침내 공은 던져졌고.
알렉산더는 거침없이 배트를 휘둘렀다.
따-악!
우중간을 갈라버리는 안타.
3루 주자는 홈으로.
2루 주자는 3루를 돌아 홈으로.
알렉산더는 1루를 돌아 2루에 안착했다.
4회 초. 스코어는 2:2.
도진과 알렉산더의 합작으로 FS는 동점을 만들었다.
* * *
엎치락뒤치락하는 분위기는 어느 한쪽으로 치우쳐지지 않고 수평을 유지했다.
샌프란시스코는 작년 하이스쿨 인비테이셔널 초청은 운이 아니라는 것을 증명이라도 하듯.
경기 내에서 완벽히 드러내고 있었다.
스테픈은 2점을 내줬지만, 무사 2루에서 남은 후속 타자들을 전부 깔끔하게 아웃시켰다.
샌프란시스코 더그아웃에서는 그 누구도 팀 내 에이스를 질타하지 않았다.
4번 타자 카일리는 별것 아니라며 팀원의 사기를 북돋웠다.
“이래야 야구 경기 답지. 스테픈 마음 쓰지 마라. 우리가 무조건 점수를 내줄 테니 믿어라.”
캘리포니아에서 손꼽히는 투수 페드로를 상대로 2점 홈런을 친 카일리.
점수는 동점이 됐지만, 그의 자신감은 하늘을 찔렀다.
딕 역시 한마디 거들었다.
“불펜진만 놓고 따지면 우리 샌프란시스코는 리그 최고다. 스테픈. 아시아인과 알렉산더를 상대로 고작 2점 실점이면 충분히 네 몫을 해냈어. 이제는 우리를 믿어라”
스테픈도 마음의 짐을 내려놓았다.
오히려 2점 실점 후 정신이 번쩍 들었다.
동점이 된 지금 팀원들의 투쟁심은 하늘을 찔렀다.
2점을 실점하지 않았다면 좋았겠지만, 이미 벌어진 일을 왈가왈부 할 일은 아니었다.
이럴 때 어떻게 해야 하는지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지금보다 더 초월적인 힘을 발휘해 상대를 누르면 된다.
“우리가 이긴다.”
한마음 한뜻이 된 샌프란시스코를 이제는 FS가 막아서야만 했다.
그리고 FS에게도 아직 묘수는 남아 있었다.
4회 말.
감독은 그라운드에 나가려는 도진을 불러 세웠다.
“킴. 지금부터는 지명타자다. 불펜으로 들어가라.”
도진은 고개를 끄덕인 채 투수 글러브를 손에 쥐었다.
불펜으로 향하는 그의 발걸음은 평소보다 무거웠다.
‘역시 쉽지 않네.’
불펜에 들어선 도진은 곧장 어깨부터 빙빙 돌려 풀었다.
상대측 기세를 보아 당장 등판해도 전혀 이상하지 않았다.
‘실점으로 풀이 죽기는커녕 오히려 타오르고 있네.’
샌프란시스코는 역전하겠다며 더욱 불이 붙었다.
지금은 어느 한쪽으로 경기가 확 치우쳐도 이상하지 않은 분위기.
대부분 이럴 때 응원을 등에 업는 홈팀이 유리함을 가져갈 수 있었다.
“와아아아아!”
투구 준비를 끝마친 도진은 샌프란시스코 관중들의 환호에 미간을 잔뜩 구겼다.
그로 인해 도진은 어렴풋이 안타가 나왔다는 걸 알 수 있었다.
‘4회 말. 저쪽은 타순이 2바퀴나 돌았지. 이제는 페드로 선배의 공이 눈에 완전히 익었을 거야.’
오늘 페드로는 대개 이닝당 2명 이상의 주자를 내보냈다.
그의 컨디션은 첫 이닝 홈런 때문에 온전치 않았다.
‘원래 주장은 슬로우 스타터지만 1회 실점이 크긴 컸어. 투구 밸런스가 완전히 무너져버렸으니까.’
선발투수는 긴 이닝을 소화해야 한다.
하지만 FS에는 믿을만한 불펜 투수가 도진뿐이었다.
그렇기에 페드로는 오늘 경기에서 이기고자 평소보다 페이스를 앞당겼다.
하지만 1회부터 홈런을 맞아 투수의 리듬이 전부 꼬여버린 것이었다.
‘그런데도 주장은 많은 주자를 내보냈음에도 2실점밖에 하지 않았지.’
그의 위기관리 능력이 얼마나 뛰어난지 직접 증명했다.
‘하지만 선배는 3회부터 오버페이스로 지쳐 있었어. 아마 부담감이나 긴장감도 평정심을 유지하기 힘든 거겠지.’
아무리 뛰어난 선수라도 몸이 피로하면 제 위력을 발휘하지 못하는 건 매한가지.
그리고 그때.
다시 한번 관중들의 떠들썩한 환호.
도진은 페드로가 위기를 맞았다는 것을 확신했다.
‘2번의 탄성. 그리고 2번의 환호.’
2아웃. 그리고 2번의 출루.
들리는 소리만으로 알 수 있었다.
도진은 어금니를 꽉 깨문 채 피칭을 이어나갔다.
‘이왕이면 투수 코치님이 나를 찾지 않아야 할 텐데.’
그가 자신을 찾지 않는 이상 이번 이닝을 안전하게 막아냈다는 뜻일 테니까.
하지만 세상일이 어디 뜻대로 되는 법이던가?
투수 코치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킴.”
“네.”
“페드로는 여기까지다.”
그와 동시에 관중들은 다시 한번 환호를 뿜어내며 발을 동동 굴렀다.
‘3번의 환호. 그리고 2번의 탄성.’
올 것이 왔구나.
도진은 불펜의 문이 열리자 제일 먼저 마운드에서 내려가는 페드로를 쳐다봤다.
베이스도 일일이 살폈다.
1루, 2루, 3루.
전부 샌프란시스코의 주자로 가득 채워져 있었다.
‘2아웃. 만루. 그리고 타석엔.’
샌프란시스코 4번 타자 카일리가 배트를 빙글빙글 돌리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