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baseball genius who chews up America RAW novel - Chapter (392)
미국 씹어먹는 야구 천재 392화(392/400)
조엘은 한없이 고요해진 경기장의 분위기가 생소하지 않았다.
월드시리즈 반지를 거머쥐었을 때 한 번 느껴봤기 때문이다.
다만 그때와는 조금은 달랐다.
뭐가 다를까.
조엘은 그 이유를 알 것 같았다.
상대가 달랐으니까.
도진과 같이 뛴 적은 없지만, 그는 고등학교 후배.
어느덧 그가 부쩍 자라 자신의 자리를 위협하고 있었다.
피식.
조엘은 미소가 새어나가지 않도록 글러브로 입을 가렸다.
껌을 질겅질겅 씹어대며 타석에 들어서는 도진에게 어떤 감정도 읽을 수 없어서 그랬다.
‘대단하다니까?’
이 무대가 어떤 무대인가.
월드시리즈다.
그런데 상대의 감정이 읽히지 않는다는 건 떨지 않는다는 것.
‘마치 이 무대에 몇 번 와본 것처럼 말이야.’
어쩌면 앞으로 자주 올 무대라고 생각해서 그런 걸 수도 있겠지.
‘뭐. 너라면 그럴 만해.’
조엘은 도진이 밟은 역사를 알았다.
그는 월드시리즈 자체는 처음이 맞다.
그러나 그의 아마추어 시절부터 쭉 커온 과정을 한번 뜯어보자.
한국에서도 우승을 거머쥐었다고 들었다.
미국에 와서는 캘리포니아 리그에서 우승했다.
U-18. 거기에 하이스쿨 인비테이셔널 우승까지.
그 긴장감 넘치는 무대들을 전부 경험한 선수였고 타이틀까지 거머쥐었다.
‘그러니 큰 경기에 절대 약하지 않아.’
다른 에인절스 선수들은 그럴지 몰라도 도진은 아니었다.
더욱이 그는 작년 와일드카드전 승리의 주역이자 월드 시리즈 챔피언 레드삭스에도 밀리지 않은 유일한 선수였다.
이제는 매해 그를 두려워하는 선수들이 생겨나고 있었다.
찬란한 재능을 지닌 선수들이 그의 그늘에 가려져 상대적으로 빛을 보지 못하고 있었고.
기존 선수들마저 서서히 그의 그늘에 잠식되어 가고 있었다.
다만.
‘야구는 혼자 하는 스포츠가 아니야.’
에인절스는 약팀이다.
저기에 소속된 선수들은 전부 자신에게 약했다.
그러니 이번 월드시리즈는 어쩌면 손쉬운 승리가 될 수 있을 것이다.
‘너만 잡는다면 말이지.’
다른 한편.
조엘 오스틴을 맞상대하게 된 도진은 타석에 앞에 서서 헬멧을 벗고 심판에게 꾸벅 인사했다.
그러고는 사방에 한 번씩 허리를 굽혔다.
팬들에게도 인사를 건넨 것이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미소를 띤 채 조엘을 바라보며 허리를 굽혔다.
“잘 부탁드립니다!”
목청을 뚫고 튀어나오는 그의 목소리엔 자신감이 서려 있었다.
물론 무대도 그렇고 상대가 상대인지라 평소만큼 편했던 건 절대 아니었다.
도진은 조엘의 눈을 들여다보았다.
그가 뿜어대는 안광은 자신이 내뱉은 자신감을 순식간에 집어삼켰다.
하지만 도진은 당황하지 않았다.
자신은 엄연히 도전자였다.
‘조엘의 벽이 높다고는 예상은 하고 있었어.’
또한 이러한 경험은 오늘이 처음이 아니었다.
‘사토를 처음 만났을 때였지.’
그리고 U-18 때 놀란을 처음 상대했을 때도 그랬다.
메이저리그에 올라와서도 대단한 선수들은 줄곧 만나봤다.
조이 히메네즈, 후안 라미레즈나 에스리우스 로자리오 또한 벽이 무엇인지 알려준 선수였다.
그래서인지 편하지는 않지만, 불편하다는 느낌도 없었다.
‘가보자고.’
척.
도진은 타격 자세를 잡았다.
1아웃. 주자 없음.
여기서는 출루가 필요했다.
조엘은 곧장 투구 동작에 들어갔다.
손을 떠난 그의 투구는 도진에게는 멀게 느껴졌다.
하지만 홈 플레이트 부근에 도착할 때쯤 뱀처럼 꿈틀대더니 바깥쪽 끝에 걸렸다.
“스트라이크!”
휘유!
동그랗게 오므린 도진의 입에서 휘파람이 튀어나왔다.
분명히 빠졌다고 생각했는데.
마지막에 스트라이크 존에 걸쳤다.
‘이건…… 보고 칠 수 없겠는데.’
끝에 가서야 스트라이크인지 알았다.
하지만 공이 끝에 다다를 즘 깨달아봤자 스윙하기에는 이미 늦었다.
‘괜찮아.’
도진은 자신을 다독였다.
아무리 조엘 오스틴이라고 한들 이런 공을 백날 백번 던질 수는 없을 테니까.
하지만 이는 도진의 오산이었다.
2구.
몸쪽으로 날아오는 포심 패스트볼은 스트라이크 존에 걸칠 듯 말 듯 좀처럼 판단이 서지 않았다.
애매한 공은 안 치는 게 낫다고 판단한 도진은 배트를 휘두르지 않았다.
퍼억!
“스트라이크 투!”
도진의 볼이 빵빵하게 불었다.
‘아니. 진짜 긴장도 안 하시나?’
어떻게 이렇게 자로 잰 것처럼 완벽하게 제구할 수 있는 거지?
조엘 오스틴은 강력한 공을 던지는 투수로 정평이 나 있지만, 그 내면에는 훌륭한 제구가 바탕이 되어있었다.
‘그래도 이건 해도 해도 너무하잖아?’
투수는 보편적으로 스트라이크 존을 4분할을 했다.
제구가 매우 뛰어난 투수는 9분할까지도 가능했다.
그리고 역사상 최고의 제구력을 가진 그레그 매덕스라는 투수는 16분할을 했다.
조엘 오스틴은 그 16분할이 가능한 선수였고, 직접 경험해보니 사실이었다.
요즘 같은 시대에 강속구를 뿌려대면서 제구를 완벽히 잡는다는 건 불가능에 가깝다.
공은 빠를수록 제구력이 말을 듣지 않게 되니까.
그런데 조엘 오스틴의 방금 포심 패스트볼은 98마일.
100마일을 던지지 못하는 투수였음에도 최고의 자리에 군림할 수 있었던 이유가 바로 이것이었다.
빠르면서 정확하다.
어쩌면 105마일의 패스트볼보다 더 강력한 무기였다.
‘이러면 구종 하나를 노리는 수밖에 없는데?’
2스트라이크에서 구종을 노리라고?
헛스윙할 확률만 높아지는 거다.
다만 눈을 믿고 상대하기엔 상대의 제구력이 너무 훌륭했다.
도진은 이런 경험이 처음이었다.
조엘만큼 제구력이 훌륭한 선수를 메이저리그에서 만나본 적이 있다.
하지만 다른 점이라면 역시 구속이었다.
그들은 기껏해야 90마일 초반대의 공을 던졌다.
‘어쩌지?’
어쩌긴 뭘 어째.
도진의 입꼬리가 씰룩댔다.
절대 쉽게 물러설 수 없다.
물러서기만 한다면 오늘 에인절스에 승산은 없었으니까.
아웃을 당하더라도 후속 타자에게 공을 조금 더 보여주는 것.
주자가 없는 자신이 해야 할 일이었다.
3구.
공이 날아왔다.
코스는 바깥쪽 하단.
지금껏 줄곧 미동하지 않았던 도진의 배트가 움직였다.
그런데 여기서 문제가 생겼다.
구종은 포심을 빙자한 서클 체인지업이었다.
‘젠장.’
공이 아래로 가라앉는다.
도진은 끝까지 공에서 시선을 떼지 않았다.
어퍼스윙으로 걷어 올리겠다는 초기의 생각도 머릿속에서 지웠다.
뇌는 한번 행동을 확정 짓는 순간 변화를 꾀하려 하지 않는다.
하지만 도진은 그 어려운 걸 해냈다.
배트는 사선을 그렸고.
틱.
공을 스칠 수 있었다.
“파울!”
홈 팬들은 그저 아쉬움의 함성을 내질렀다.
다만 내면을 알고 있었던 다저스 배터리는 순간 벙쪄버린 감정을 표정으로 드러낼 수밖에 없었다.
‘이걸 커트해?’
배터리는 삼진을 확신했었다.
바깥쪽 아래로 낮게 깔려오는 체인지업은 포심과 구분할 수 없어서 그랬고.
바깥쪽 낮은 공에 대응하는 방법은 결국 어퍼스윙밖에 없다.
레벨 스윙이나 다운 스윙은 범타로 이어질 가능성이 컸으니까.
그런데 이 체인지업은 포심과 다르게 마지막에 결국 아래로 낙하한다.
그러니 어퍼스윙은 곧 삼진으로 이어질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상대는 궤적을 변경했다.
애당초 커트하겠다는 듯이 사선으로 배트를 그렸다.
그 누가 낮은 공에 다운스윙하겠는가?
잘 맞아도 땅볼이고 맞지 않으면 삼진이다.
일부러 아웃 되려는 게 아니라면 이런 선택을 내릴 선수는 없었다.
그러니 도진은 막판에 결단을 바꾼 것이 확실했다.
그리고 이 장면 하나가 배터리를 크게 흔들었다.
여전히 카운트는 0-2.
투수가 압도적으로 유리한 카운트.
다만 이 한 번의 결과 때문에 그 어떤 시련에도 난공불락이었던 조엘 오스틴이 순간 흔들렸다.
자칫 잘못했다가는 맞을 수도 있다는 두려움.
조엘 오스틴은 생전 두 번째로 느껴보는 감정이었다.
첫 번째는 메이저리그 최고의 타자 에스리우스 로자리오였고.
그 외에는 없었으니까.
“볼!”
“볼!”
칼날 같던 조엘 오스틴의 제구에 문제가 생겼다.
여전히 남들이 보기엔 위력적인 게 맞지만, 방금 두 개의 공은 포수가 요구하는 코스로 들어가지 않았다.
첫 번째 볼이 선언된 하이 패스트볼은 스윙을 유도하기 위한 유인구.
하지만 가슴 높이로 향해야만 했던 투구가 더 높게 형성됐다.
두 번째 볼이 선언된 투구는 바깥쪽 투심.
1구째와 같은 투구 결과를 기대했지만, 미세하게 존을 벗어났다.
카운트는 2-2.
도진은 여전히 껌을 질겅질겅 씹어대고 있었다.
표정 역시 처음 그대로였다.
조엘 오스틴도 표정만큼은 변화가 없었다.
다만 어디에 내놔도 자랑스러웠던 그의 제구력에는 실금이 가 있었다.
5구.
몸쪽 포심 패스트볼.
포심만큼은 아무리 멘탈이 흔들려도 제구력에 영향을 주지 않았기에 선택할 수 있는 구종.
코스는 2구와 마찬가지로 몸쪽을 걸칠 듯 말 듯 아슬아슬했다.
스윙하지 않는다면 삼진이 나올 것이고.
스윙해도 좋은 타구가 나오지 않을 것이다.
그런데 도진에게서 스윙이 나왔다.
배터리는 순간 환희에 휩싸였다.
타구음이 들려오기 전까지는 말이다.
따—악!
경쾌한 타구음이 경기장 내부를 가득 메웠다.
배터리의 두 눈동자가 당황을 머금은 것도 그때였다.
라인드라이브성 타구의 코스는 3, 유 간을 꿰뚫겠다며 쏜살같이 날아갔다.
포수는 마스크를 벗어 던졌다.
조엘의 고개는 타구를 확인하겠다며 우측으로 크게 꺾였다.
장타를 예감했을 때 나온 행동이었다.
도진은 타구에 시선을 고정한 채 배트를 내동댕이치며 발걸음에 힘을 실었다.
그러나.
터억.
그 힘찬 발걸음이 순식간에 굳어버렸다.
3루수 앤서니가 환상적인 다이빙 캐치로 도진의 안타를 강제로 갈취했기 때문이다.
“아웃!”
바닥에서 벌떡 일어난 앤서니는 2아웃을 의미하는 검지와 새끼손가락을 올렸다.
그는 도진을 스윽 쳐다보며 입꼬리를 올렸다.
도진의 입에서 헛웃음이 튀어나왔다.
‘호수비는 어쩔 수 없잖아?’
어이없어서 나온 웃음이 아니다.
생각보다 할 만해서였다.
더그아웃으로 발걸음을 돌린 도진은 자신에게 향한 시선에 어깨를 으쓱했다.
‘봤죠? 상대도 인간이에요.’
에인절스 선수들에게 조엘 오스틴이 인간임을 증명시켜 준 것만으로 1회는 충분했다.
* * *
1회 말.
공수 교대.
도진은 연습 투구를 앞두고 있었다.
“후우.”
숨을 크게 몰아쉬었다.
그 즉시 질끈 감은 그의 눈이 번뜩 뜨였다.
그러자 양쪽 입꼬리가 스멀스멀 치솟기 시작했다.
퍼억.
퍼억.
퍼억.
도진의 연습 투구는 몸쪽 바깥쪽 가리지 않았다.
연습 투구가 끝나자 상우가 마운드를 방문했다.
“야. 오늘 공 좋은데?”
상우는 흥분된 목소리로 말했다.
도진은 고개를 짧게 끄덕였다.
“알아.”
상우는 미간을 찡그렸다.
“아니. 월드시리즈라서 괜히 하는 말이 아니라. 진짜 공이 좋다니까? 구위만이 아니라 제구력이 달라졌어.”
도진은 묵묵히 고개를 끄덕였다.
“안다니까?”
“어?”
상우는 말을 잇지 못했다.
그도 그럴 게 도진을 이 세상 그 누구보다 잘 아는 게 바로 자신이었다.
도진은 진짜 오늘 자신의 공이 괜찮다는 걸 말하고 있었다.
이렇게 자신감 넘치는 그의 모습을 본 적이 있었나 싶을 정도.
그래도 오늘만큼은 평소처럼 그냥 물러서지는 않을 것이다.
상우는 그렇게 다짐했다.
여기는 월드시리즈.
도진이 혼자서 짐을 짊어진다면 경기에서 승리하지 못할 테니까.
“왜?”
상우는 이유를 물었다.
그리고 이유를 듣기 전까지는 마운드에서 내려가지 않겠다는 포부를 눈동자에 담고 있었다.
도진은 얄밉도록 한결같은 표정과 억양으로 대답했다.
“상우야. 오늘 스트라이크 존이 이상해.”
25분할이 가능할 것 같은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