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baseball genius who chews up America RAW novel - Chapter (40)
미국 씹어먹는 야구 천재-40화(40/400)
4회 말.
2사 만루.
타석엔 카일리.
산타모니카의 데이브, FS의 알렉산더와 비교되는 캘리포니아 강타자.
그는 불펜에서 나오는 도진에게 시선을 고정했다.
‘올 것이 왔군.’
지금 이 타석은 오늘 경기의 승패를 좌지우지할 만큼 중요한 타석이었다.
오늘 자신은 2타수 2안타 1홈런 2타점.
타격감이 하늘을 찌르고 있었다.
타자가 컨디션이 좋은 날에는 공이 평소보다 훨씬 잘 보이는데, 운이 좋게도 그날이 오늘이었다.
그 덕에 이미 여러 메이저리그 구단이 군침을 흘리는 페드로를 상대로 2타수 2안타에 홈런 하나를 기록했다.
이제는 그의 뒤를 잇는 FS의 핵심 투수만 쓰러뜨린다면 샌프란시스코는 오늘 승리를 확정 지을 수 있었다.
‘이 승부는 내게 유리하다. 2아웃이라도 만루라면 타자보다는 투수가 더 부담을 느끼니까.’
카일리의 입꼬리가 치솟았다.
‘저 아시아인을 무너뜨리고 샌프란시스코는 오늘 승리한다. 원정에서의 패배는 이 타석 하나로 전부 갚아주지.’
하지만 카일리는 도진이 무덤덤한 표정으로 마운드에 오르자 미간을 찌푸렸다.
‘오늘 내가 죽 쑨 것도 아닌데…… 어찌 저렇게 아무렇지 않다는 표정일 수가 있지?’
그의 눈동자엔 두려움도, 혀가 바짝 말라 침 넘어가는 모습조차 보이지 않았다.
누구라도 오늘 자신의 타격감이 최고조라는 것은 누구나 알고 있을 터.
‘개 같은. 정말 어마어마한 자신감이군.’
저 자신감의 원천은 그의 실력이었다.
그는 미국 야구에서는 절대 볼 수 없는 올라운드 플레이어지만 포지션별로 성적이 전부 뛰어났다.
자신마저도 그의 실력을 인정하고 있었다.
‘하지만 오늘 경기는 내가. 그리고 우리 샌프란시스코가 이긴다.’
저 아시아인에게는 미안하지만, 운동은 미국인이 우월했다.
구기 종목에선 백인이나 흑인들이 세계를 호령했으니 말이다.
‘무엇보다 메이저리그에서도 규격 외의 아시아인이 존재하기는 했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단 한 명뿐.’
도진은 그 레벨까지는 아니었다.
그렇다고 그를 얕봐서는 안 된다.
그가 완전히 무릎을 꿇을 때까지는 말이다.
카일리는 도진의 일거수일투족을 감시하듯 연습 투구마저 뚫어지게 쳐다봤다.
도진은 카일리의 베일듯한 날카로운 시선에 미간을 찌푸렸다.
‘어우. 뚫리겠어. 뭐 저리 쳐다보냐. 부담스럽게.’
물론 그럴 수밖에.
2아웃 만루.
승부처였다.
이 승부가 오늘 경기에 승패를 좌지우지할지는 경기가 끝날 때까지는 모른다.
타자가 이긴다면 경기가 어려워지겠지만, 자신은 이번 타석을 막아봤자 여전히 동점이었다.
‘하지만 기필코 넘어서야만 하는 산이지.’
연습 투구를 끝낸 도진은 심호흡을 뿜어내며 로진백을 주물렀다.
* * *
연습 투구가 끝나자 마이크가 마운드를 방문했다.
“어쩔래?”
도진은 피식 웃었다.
“잘 던지면 이길 테고 잘 치면 질 테고. 둘 중 하나 아니냐?”
정말 무책임한 대답이네.
마이크의 표정이 딱 그랬다.
도진은 그의 어깨를 툭 건들며 긴장을 풀라고 했다.
“전쟁 나가? 표정이 왜 그래? 우리 둘이라면 막아낼 수 있지 않겠어?”
도진의 말에 마이크의 표정도 사르르 녹아내렸다.
투수와 타자, 단둘의 싸움이 아니다.
배터리는 하나이며 투수는 포수라는 든든한 조력자가 존재한다.
‘넌 긴장하면 제 위력을 발휘하지 못하잖아?’
도진은 마이크가 긴장을 풀도록 최대한 아무렇지 않은 척했다.
마이크가 이를 눈치챈 것인지 그의 표정이 조금은 풀렸다.
“한 방 맞으면 네 잘못. 잘 막으면 내 덕이다?”
“좋아. 좋아. 잘 막으면 네 덕. 못 막으면 내 탓. 오케이?”
마이크는 홀가분한 표정으로 마운드에서 내려갔다.
홀로 마운드에 남게 된 도진은 목을 좌우로 풀고는 타자를 쳐다봤다.
역시나.
여전히 그의 눈빛은 심상치 않았다.
먹잇감을 찾은 야수의 눈빛이었다.
“어휴. 무서워라!”
도진은 긴장을 풀고자 가벼운 농담을 지껄였다.
그러고는 허리를 살짝 숙이며 사인을 기다렸다.
때마침 타자도 타석에 완전히 들어섰고 마이크의 사인도 나왔다.
패스트볼이었다.
‘친구야. 미안.’
도진은 사인에 고개를 저었다.
미간을 잔뜩 구긴 마이크는 커브 사인을 냈지만, 이번에도 고개를 저었다.
마이크의 어이없다는 표정.
그도 그럴 것이 자신은 패스트볼 혹은 커브밖에 던질 줄 몰랐다.
그 두 가지의 사인을 전부 무시했으니 당연한 반응이었다.
‘근데 타자를 교란하려면 이 방법뿐이다.’
샌프란시스코는 새로 장착한 커브의 첫선을 보인 상대.
도진은 고개를 두 번 저어 또 다른 구종이 있다고 허세를 부린 것이었다.
3주간의 휴식기에 신 구종을 익혔다는 허세였다.
‘이제는 쐐기를 박아야겠지.’
도진은 오른쪽 손의 검지를 제외한 손가락 4개를 펼친 후 팔뚝에 가져다 댔다.
패스트볼 사인이었다.
마이크가 미간을 찡그린 모습이 포수 마스크 사이로 삐져나왔지만 금세 이해했는지 고개를 끄덕였다.
도진은 재차 타자의 표정을 힐끗 확인했다.
자신감이 활활 타오르는 표정은 온데간데없었고 살짝 미묘한 표정이었다.
‘작전이 조금은 통한 것 같네.’
이내 도진은 전신을 적시는 바람을 온몸으로 느꼈다.
긴장감이 싹 가실 만큼 기분 좋은 느낌이었다.
이 감정을 유지한 채 양팔을 치켜들었다.
와인드업.
손을 떠난 공은 몸쪽 꽉 찬 코스로 향했다.
타자는 배트를 휘두르지 않았다.
“스트라이크!”
‘됐어.’
도진은 고개를 돌려 전광판에서 구속을 확인했다.
95마일.
평소보다도 어깨에 힘을 빼고 던졌기에 나온 구속이었다.
어깨에 힘을 빼고 던지려고 지금까지 상대와 아군 모두 교란하는 사인을 보낸 것이었다.
‘완벽한 시작이야.’
정말 그랬다.
도진은 이보다 빠른 공을 던질 줄 안다.
하지만 초구가 중요한 이 시점에서 95마일의 공을 던졌다는 건 상대 타자를 혼란에 빠트릴 수 있는 플레이다.
긴장해서 95마일을 던지는 건가? 아니면 몸을 제대로 풀지 못해서 95마일밖에 못 던지는 건가?
이러한 잡생각들이 타자의 머릿속에 스며들 터.
‘2구째 패스트볼을 노리더라도 95마일에 맞춰 스윙할 테니까.’
도진은 마이크에게서 공을 건네받고 심호흡을 내쉬었다.
승부는 이제부터 시작이었다.
‘스트라이크. 2개 남았다.’
도진은 마이크의 사인을 믿고 기다렸다.
그에게서 사인이 나왔다.
패스트볼. 원하던 사인이 나왔다.
도진은 곧장 와인드업했다.
2구.
초구보다 어깨에 힘이 들어갔다.
그와 동시에 타자는 패스트볼을 노렸다는 듯 배트가 나왔다.
부웅!
거친 풍향이 그라운드를 가득 메울 만큼 거셌지만 그뿐이었다.
카일리는 크게 헛스윙했다.
“스트라이크 투!”
심판의 콜에 관중들은 한탄 섞인 탄성을 내뱉었다.
도진도 고개를 틀어 전광판에 표시된 구속을 확인했다.
97마일.
초구보다 2마일이나 빠른 공으로 타자의 스윙은 늦었다.
카일리는 속았다는 표정.
도진은 주먹을 불끈 쥐었다.
‘열받겠지. 놀아났다고 생각할 테니까.’
카일리는 똑똑한 타자다.
홈, 원정, 만루, 긴장감.
이런 부분들을 다 배제하고 무식하게 덤벼들었다면 초구부터 위험했을 테니까.
‘하지만 신중함 때문에 제 꾀에 속아 넘어간 거지.’
특히나 오늘 그의 컨디션은 최고조였다.
이렇게 허망하게 2스트라이크를 내줄지 몰랐을 터.
‘나도 모험을 한 거니까. 이 모험이 아니었다면 불리하게 끌려갔을 확률이 높아.’
물론 여전히 안심할 단계는 아니다.
마지막 스트라이크 1개가 남아 있었다.
“후우.”
도진은 마이크에게서 공을 건네받고 바닥에 떨어진 로진백을 들어 올려 가볍게 주물렀다.
손가락에 묻은 송진 가루를 후 불어내고는 마이크의 사인을 기다렸다.
동시에 관중들은 카일리의 이름을 연호했다.
도진은 자신이 아닌 다른 선수의 이름이 들려오자 미간을 찡그렸다.
그럴 수밖에.
응원은 초월적인 힘을 발휘하는 원동력이었다.
0-2 카운트.
투수가 유리한 카운트지만 응원을 등에 업은 카일리는 비장했다.
때마침 마이크에게서 사인이 나오자 도진은 고개를 가벼이 끄덕였다.
사인은 이번에도 어김없이 패스트볼이었다.
‘정면 승부. 좋지. 어차피 더 뛰어난 선수가 이긴다.’
3구.
도진은 와인드업했다.
관중들은 카일리의 이름을 연호하며 그에게 힘을 실어줬다.
그 목소리는 도진의 집중력을 흐트러뜨리려는 목적도 있었다.
하지만 도진은 외부에서 들려오는 소리를 원천 차단하며 이 한 구에 모든 힘을 담았다.
터억.
들어 올린 다리가 바닥을 강하게 내리찍었다.
공은 손을 떠났다.
얼마나 강하게 던진 것인지.
도진의 머리에 얹힌 모자는 역동적인 동작에 못 이겨 벗겨졌다.
투구는 일직선으로 포수 미트로 향했다.
타자는 이를 악물고 배트를 휘둘렀다.
하지만 관중들이 기대하던 배트의 둔탁한 소리 대신 미트에 꽂히는 소리만이 그라운드에 울려 퍼졌다.
“스. 스트라이크 아웃!”
타자, 관중들 샌프란시스코 더그아웃까지.
전부 벌어지는 턱을 통제하지 못한 채 고개를 떨궜다.
그들은 누구 하나 빠짐없이 전광판으로 시선을 돌렸다.
구속을 알려주는 전광판엔 98마일.
무려 158km가 찍혀 있었다.
* * *
도진은 3구 삼진으로 이닝을 마무리 지었다.
FS가 분위기를 휘어잡는 계기가 됐지만, 샌프란시스코는 역시 만만치 않았다.
그들은 자신들의 자랑 불펜을 올려 5회를 완벽하게 틀어막아 경기의 분위기를 다시 수평으로 맞췄다.
엎치락뒤치락하는 분위기에서 뒤늦게 분위기를 가져오는 쪽이 유리하다.
하지만 분위기가 넘어갔음에도 샌프란시스코는 무실점으로 응수했다.
이제는 경기가 어떻게 흘러갈지 그 누구도 예측할 수 없었다.
하지만 FS 선수들의 눈빛은 살아 있었다.
그들은 믿는 구석이 있었다.
‘우린 지지 않는다.’
도진이 마운드에 버티는 한 절대 실점하지 않으리란 굳은 믿음이 있었다.
그러므로 이번 경기에서 승리하려면 점수가 필요했다.
그리고 그 점수는 1점이면 충분했다.
[1번 도미닉부터 시작하는 타순입니다.]3주간의 맹훈련 덕분에 그리고 도진의 멋진 활약으로 긴장감이 풀린 도미닉.
투수가 던진 3구 커브를 갖다 맞춰 내야에 큰 바운드를 만들어냈다.
투수가 뒤늦게 바운드를 처리하며 1루에 송구해봤지만.
“세이프! 세이프!”
선두 타자가 출루하며 도진은 기분 좋게 타석에 들어섰다.
그러고는 감독의 사인을 기다렸다.
“응?”
사인이 나오자 도진은 고개를 갸웃했다.
재차 확인했지만, 감독의 사인은 달라지지 않았다.
‘알겠습니다.’
투수가 초구를 던졌다.
공이 투수의 손을 떠나는 즉시 도진은 번트 자세를 취했다.
톡.
번트 타구는 3루 쪽으로 데굴데굴 굴러갔다.
도진은 1루에서 살겠다고 전력으로 질주해봤지만, 아쉽게 아웃.
하지만 스코어링 포지션에 주자를 내보내며 작전을 완수했다.
‘아쉽네. 조금만 덜 굴러갔어도 살 수 있었을 것 같은데.’
도진이 아쉬워하며 더그아웃으로 들어가자 감독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왜 번트 지시에 관해 묻지 않지?”
도진은 당연하다는 말투로 대답했다.
“저는 그저 감독님의 지시를 믿고 따를 뿐입니다.”
도진의 대답에 감독은 그만 들어가 보라며 손을 휘휘 저었다.
믿고 따른다는데 더는 해줄 말이 없었다.
물론 도진에게 번트 지시를 낸 합리적인 이유는 있었다.
‘킴은 이번 경기 승리의 키 포인트.’
도진은 최소 2이닝이나 더 틀어막아야 했다.
그의 체력을 안배해주기 위한 번트였다.
지금같이 숨 막히는 혈투에서 도진이 주자로 나간다면 체력소모는 배가 될 터.
더군다나 도미닉이 안타를 치고 나갔다.
오늘 종일 몸이 무거웠던 선수들도 정상적인 컨디션으로 돌아오고 있다는 증거였다.
도널드 감독은 자신의 안목을 믿었다.
경기는 지속됐다.
마이크는 큼지막한 타구를 만들었지만, 중견수는 그 타구를 끝까지 쫓아 아웃을 만들었다.
다음 타자는 알렉산더.
2아웃 2루에서 샌프란시스코는 알렉산더를 거르겠다며 고의 사구로 내보냈다.
2사 1, 2루. 타석엔 5번 타자 벨론.
그리고 벨론은 오늘 경기의 주인공이 될 수 있는 타점을 올렸다.
따-악!
유격수와 2루수를 꿰뚫어버리는 안타.
점수는 3:2.
FS는 이번 경기 처음으로 리드를 가져왔다.
3주간의 노력이 헛되지 않았다는 걸 증명이라도 하듯.
FS의 주축 멤버가 아닌 다른 2명의 선수가 리드를 가져오는 득점과 타점을 만들어낸 것이었다.
도진은 그 광경에 의자를 박차고 일어나 소리를 고래고래 질렀다.
“나이스! 나이스 힛!”
그러고는 감독을 힐끗 쳐다봤다.
‘역시. 대단하신 분이라니까?’
뛰어난 감독이라는 것을 몸소 겪고 있었지만, 특히나 그의 혜안은 3주간의 겨울방학에서 나왔다.
선수들의 장단점을 완벽히 꿰뚫어 보고 있었으니 말이다.
고작 3주뿐이었지만, 선수들은 새롭게 태어났을 만큼 실력이 부쩍 늘었다.
그 광경을 3주간 늘 지켜봐 왔던 도진도 번트 지시에 군말 없이 이행했고, 결과는 최상이었다.
‘하지만 기뻐하긴 이르다.’
도진은 6회에도 마운드에 올라 깔끔하게 막았다.
그리고 마지막이 될 수 있는 7회 말.
또다시 마운드에 올랐다.
* * *
7회 말.
샌프란시스코는 2번 존부터 시작하는 타순.
3번 딕과 4번 카일리는 샌프란시스코가 어디에도 자랑스럽게 내놓을 수 있는 만만치 않은 타자였다.
‘아웃 카운트는 단 3개.’
도진은 모자를 매만지며 심호흡을 내쉬었다.
‘어려운 타선이지만, 충분히 할만하다.’
아웃 카운트가 3개 남았다는 건.
상대에게는 단 3번의 공격밖에 남지 않았다는 것.
‘더군다나 예상외의 인물에 불의의 일격을 맞았으니 정신이 혼미하겠지.’
도진은 그 부분을 이용하겠다며 곧장 투구했다.
퍼억.
“스트라이크!”
도진은 전신으로 던지는 법을 완벽히 깨달았다.
7회 말 초구 구속은 97마일.
4회부터 마운드에 올라 최고 구속에서 1마일 줄어들었지만, 타자에겐 여전히 위협적이었다.
퍼억.
퍼억.
2번 타자 존은 허망했다.
7회 말 마지막 이닝.
더군다나 투수는 여전히 강력한 구위를 뽐내며 연달아 강력한 패스트볼은 뿌려대고 있었다.
타자로서는 이러한 부담감 때문에 전부 헛스윙했다.
“스트라이크 아웃!”
다음 타자 딕은 타석에 들어서며 어금니를 갈았다.
‘이 경기에서 진다면…….’
플레이오프에서 뒤집을 수는 있겠으나 압도적으로 불리한 입장이었다.
더는 홈의 이점을 얻을 수는 없었다.
플레이오프는 더 높은 순위의 팀이 홈에서 경기를 치른다.
‘하지만 홈에서도 진 우리가 FS와의 원정을 이길 수 있나?’
벌써 한 번 지지 않았던가.
이기지 못한다고 봤다.
그러므로 어떻게 해서든 동점이라도 만들어야 한다는 사명감에 휩싸였다.
가능성? 있다.
야구는 끝날때까지 끝난 것이 아니었다.
ㄱ러나 딕의 자신감은 금세 자취를 감추었다.
마운드에 선 투수의 투구는 여전히 위력적이었으니 말이다.
퍼억!
눈 깜짝할 새 미트에 꽂혀 있는 투구.
딕은 허탈감에 젖었다.
‘나는…… 치지 못한다…….’
저 한국인을 잡지 못한다면 샌프란시스코는 승리하지 못한다.
이를 알았던지라 그에 대해 밤낮을 연구했다.
그는 최고 구속 97마일의 공을 던지지만 아주 가끔가다 그 구속을 찍을 뿐.
대부분 95마일에서 96마일의 공을 던지는 투수였다.
하지만 연달아 꽂히는 투구의 구속은 아직도 97마일.
무엇보다 영상으로 접했던 그 97마일의 공이 아니었다.
훨씬 더 위력적으로 다가왔다.
홈플레이트 앞에서 공은 하늘 끝까지 치솟는 것처럼 느껴졌다.
한풀 꺾인 딕은 도진의 투구에 억지로 공을 배트에 갖다 맞추기는 했지만, 타구는 내야를 벗어나지 못했다.
비실비실하게 굴러가는 공은 도진이 직접 처리해 1루로 뿌렸다.
“아웃!”
7회 말 2아웃.
타석엔 4번 타자 카일리.
그 역시도 홈 경기에서마저 진다는 의미를 잘 알고 있었다.
원정경기라는 점을 고사해도 플레이오프는 단판이었다.
그 중압감을 이겨낼 수 있을까?
아니.
리그에서 2패를 하게 되면 중압감이 훨씬 큰 플레이오프에서 상대를 이길 확률은 현저히 낮다.
‘어떻게서든 무조건 이 경기를 잡아야 한다. 그게 아니라면 최소 동점이라도…….’
동점을 만들려면 큰 거 한방이 필요하다.
카일리는 그 한 방을 노리기로 했다.
하지만 초구를 맞이하는 순간 카일리는 허탈감에 빠져 허우적댔다.
패스트볼에 맞춰 배트를 스윙했더니 커브가 날아왔다.
“스트라이크!”
2구를 맞이하는 카일리는 혼돈에 휩싸였다.
수세에 몰려 정신을 차리기 힘들었지만, 자신은 샌프란시스코의 4번 타자.
그 말을 연달아 되뇌자 머리는 차갑게 식었다.
머리가 차갑게 식더니 시야가 훤히 트였다.
그리고 시야가 트이자 오히려 불안감이 스며들었다.
1루가 비어있었으니까.
카일리는 1루에서 시선을 거두지 못했다.
‘정말 대단한 자신감이구나.’
자신을 거르고 다음 타자를 상대해도 된다.
다른 누구라도 충분히 그럴만했다.
그리고 그편이 이길 확률을 높이는 것이다.
그런데 마운드에선 저 투수는 자신을 거를 생각이 없었다.
‘꼴사납게 물러설 수 없지.’
카일리는 배트를 말아 쥐었다.
‘나는 작년 하이스쿨 인비테이셔널에서 이와는 비교할 수 없는 압박감을 접해봤다.’
카일리는 입을 굳게 다물고 투수를 노려봤다.
‘이번에는 패스트볼. 기필코 큰 거 한방 쳐낸다.’
하지만.
“스트라잌 투!”
2구 연속 커브.
카운트는 0-2.
단 한 개의 스트라이크면 이닝은 종료.
카일리는 마른침을 꼴깍 삼켰다.
‘젠장! 젠장! 패스트볼이었다면!’
그랬다면 칠 수 있었을 텐데.
푸념밖에 하지 못하는 자신이 증오스러웠다.
하지만 카일리는 무너질 수 없다며 마음을 애써 다잡았다.
‘상대는 4회부터 올라와서 지금까지 던지고 있다.’
그 역시도 지쳤을 터.
아무리 4회에 지명타자로 포지션이 변경되고 체력을 안배했지만.
그는 타석과 수비까지 소화했다.
‘연달아 커브를 던지지는 않겠지. 이번만큼은 기필코 패스트볼이다.’
그리고 힘이 빠진 투수의 공은 갖다 맞추기만 해도 쭉쭉 뻗어나갈 것이다!
카일리는 타격 자세를 잡았다.
도진은 와인드업했다.
공은 손을 떠났다.
카일리는 패스트볼을 예측하며 스윙을 빠르게 가져갔다.
동시에 눈이 번뜩였다.
원하던 구종.
패스트볼이었다.
‘됐다!’
부웅.
몸이 크게 돌아갈 만큼 빠르고 강력한 스윙.
하지만 둔탁한 소리를 만들지 못했다.
스윙이 완전히 돌아가기 전.
투구는 이미 포수의 미트에 꽂혀 있었으니 말이다.
퍼억.
“스트라이크 아웃!”
카일리는 손에 힘이 풀려 배트를 바닥에 떨궜다.
남은 힘을 전부 쥐어 짜내 고개를 치켜세웠다.
전광판을 확인하자, 허망함에 재차 고개를 떨궜다.
‘이럴 수가. 도대체 어떻게 돼먹은…….’
지쳤을 거라고?
아니. 그저 카일리 자신의 바람이었다.
전광판에 찍힌 숫자는 자신이 첫 타석에서 삼진당한 그 구속과 단 1마일의 오차도 없었다.
98마일.
경기는 그대로 종료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