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baseball genius who chews up America RAW novel - Chapter (45)
미국 씹어먹는 야구 천재-45화(45/400)
인종차별.
다인종이 모여드는 미국에서는 빈번히 일어나는 일이다.
미국만이 아니었다.
유럽은 이보다 심하면 심했지, 덜하진 않았다.
아시아라고 다를까?
한국은?
은연중에 분명 일어나고 있었다.
다만 다른 나라와 미국이 다른 점이 있다.
미국 사회는 결코 인종차별을 묵인하려 들지는 않는다는 점이다.
노란 원숭이.
이 발언은 라이브 방송을 타고 미국 전역에 방송될 만큼 시끄러운 목소리였다.
FS 해설은 이를 바로잡고자 서둘러 입을 열었다.
[절대로 들려와서는 안 될 말이 들려왔습니다.] [그렇습니다. 물론 저 학생이 얼마나 자신의 학교를 좋아하고 야구부를 응원하는지는 몰라도, 아닌 건 아닙니다!] [누군가 제지를. 아니 주의라도 줘야 합니다.]하지만 그 누구도 발언의 주인공을 제지하지 않았다.
그저 턱을 떡하니 벌린 채 발언의 주인공을 쳐다볼 뿐이었다.
그들 모두 타석에 들어선 한국인이 오늘 하루를 망쳤으면 하는 바람은 똑같았으니까.
물론 인종차별까지 원한 것은 아니었지만, 적어도 산타모니카 측 응원단은 그랬다.
하지만 아까까지만 해도 진중했던 FS측 채팅창은 불타올랐다.
-뭐라고? 노란 뭐라고?
-저 개 같은 새끼가! 감히 누구한테 인종차별을 해?
-백인 원숭이 새끼가 뒈지려고 진짜!
-얼굴 기억했다. 길거리에서 한 번만 만나자.
-인종차별적 발언을 한다는 것 자체가 미개하다는 걸 모르나? 같은 미국인으로서 부끄럽다.
산타모니카 해설 측도 별반 다르지 않았다.
적어도 해설을 맡은 어른이라면 있어서는 안 될 일이라는 것을 알았다.
[어긋난 팬심은 좋지 않습니다.] [인정합니다. 상대를 존중할 줄 알아야 합니다.]하지만 채팅창 반응은 달랐다.
그들은 익명 뒤에 숨어 있는 자들이었다.
-솔직히 인종차별은 있어서는 안 될 일이긴 해. 그런데 오늘은 괜찮지 않을까?
-그래. 잘못하긴 했어도 반성하고 사과하면 되는 거잖아?
-경기 끝나고 가서 미안하다고 해라.
이들이 이런 반응을 보인 이유는 화면에 잡힌 도진의 당황한 표정 때문이었다.
인종차별이 먹혀들었구나.
산타모니카의 앞길을 막는 저 빌어먹을 아시아인의 멘탈이 깨졌구나.
오늘은 하이스쿨 인비테이셔널에 초청받을 수 있는 그 어느 경기보다 중요한 경기.
그저 누군가 총대를 메서 다행이라고 생각할 뿐이었다.
* * *
카운트는 여전히 2-1.
하지만 심판의 타임은 무려 3분이었다.
도진은 타석에 벗어나 한숨을 푹 내쉬었다.
‘젠장. 다 꼬여버렸네.’
도진은 새어 나오는 욕설을 꾹 삼켰다.
이 타임은 당황한 투수에게 시간을 준다는 것.
이런 일이 있어서는 안 됐다.
상대는 흔들리고 있었다.
흐름이 끊기지 않았다면 선취점을 올릴 절호의 기회였다.
‘인종차별? 그딴 건 관심 없으니까. 경기나 빨리 진행하지.’
도진은 정말로 인종차별에는 큰 관심이 없었다.
어차피 미국 땅에서 야구를 하는 순간 자주 겪을 거라고 예상했다.
고작 이것 때문에 무너질 거라면 애당초 미국에서 야구 자체를 시작하지 않았을 테니까.
무엇보다 고작 노란 원숭이 같은 발언으로는 자신의 멘탈을 깰 순 없었다.
도진은 투수를 힐끗 쳐다봤다.
원래도 무표정이었던 선수였지만, 무언가 달라졌다.
‘젠장. 페이스를 되찾았네.’
은연중에 나오는 그의 행동으로 알 수 있었다.
아까까지만 해도 투수는 경직되었다.
삐거덕거리는 몸짓은 그가 긴장했다는 증거였다.
하지만 이제 옛말이 되었다.
투수는 자신의 페이스를 되찾았다는 듯.
팔을 빙빙 돌리며 목을 좌우로 푸는 여유도 부렸다.
‘이런 중요한 경기에서 고작 이딴 이유로 경기가 중단되어야 해?’
도진은 분했다.
하지만 자신이 할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었다.
불합리함을 느낀다고 심판에게 항의라도 할 것인가?
그럴 순 없었다.
자신을 위한 경기 중단이었다.
항의를 한다면 오히려 자신에게 주의나 경고.
잘못하면 퇴장까지 당할 수도 있다.
‘침착하자. 침착해야만 한다.’
하지만 아무리 되뇌어도 침착해질 수 없었다.
흔한 바람조차 피부로 느껴지지 않았던 그 집중력은 완전히 자취를 감췄다.
“경기 재개!”
도진은 결국 마음을 완전히 추스르지 못한 채 다시 타석에 임했다.
4구.
패스트볼이었다.
아까의 분위기라면 절대 던지지 못했을 구종.
예상대로라면 노리던 체인지업이 왔어야 했다.
부웅.
헛스윙.
체인지업에 맞춰 휘둘렀지만, 공은 포수 미트에 꽂혀 있었다.
2-2.
‘슬라이더…….’
칠 수 없다.
도진은 확신했다.
하지만 이미 기세가 넘어간 자신이 할 수 있는 건 그냥 물러서지 않는 것뿐이다.
‘슬라이더를 직접 보는 것만으로 만족하자.’
5구.
역회전을 잔뜩 머금은 공은 스트라이크 존으로 날아왔다.
도진은 스윙했다.
하지만 슬라이더는 홈플레이트 부근에서 커브처럼 뚝 하고 떨어졌다.
도진이 휘두른 배트를 외면한 투구는 포수 미트에 그대로 꽂혔다.
“스트라이크 아웃!”
도진은 아쉬워하며 타석에서 물러섰다.
1사 여전히 주자는 2, 3루.
산타모니카는 여전히 위기였다.
하지만 무조건 잡아야 하는 타자를 잡았다.
이것만으로도 산타모니카는 넘어갔던 분위기를 완전히 가져왔다.
물론 선수들이나 관중들은 겉으로 기뻐하는 대신 주먹을 불끈 쥐었다.
경계 대상 1호가 정신적으로 무너졌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럴 수밖에.
그가 더그아웃으로 향하는 발걸음엔 힘이 실리지 않았으니까.
이겼다.
오늘 경기 수월하게 흘러가겠다.
산타모니카를 응원하는 그 누구라도 그렇게 생각했다.
하지만 도진은 그들의 바람대로 경기를 쉽게 내줄 생각은 일절 없었다.
그가 심각한 표정으로. 그리고 힘없는 발걸음으로 더그아웃으로 이동했지만 그럴만한 이유가 있었다.
‘슬라이더에 또 당할 수는 없지.’
몇 번이나 머릿속에서 그 궤적을 곱씹었기 때문이다.
* * *
FS는 1회 득점하지 못했다.
1사 2, 3루에서 산타모니카는 알렉산더를 고의 사구로 내보냈다.
1루가 비어있는데 굳이 그와 승부할 이유는 없었다.
결국 5번과 6번의 연속 삼진으로 이닝은 마무리됐다.
선취점으로 분위기를 가져올 수 있었던 FS는 절호의 기회를 놓쳤다.
분위기가 가라앉았다.
이것을 다시 끌어올릴 수 있을까?
일차적으로 도진에 대한 걱정이 너무 컸다.
‘괜찮을까?’
‘저런 발언을 들었는데 오늘 경기 쉬어야 하는 거 아니야?’
‘멘탈이 많이 무너진 거 같은데?’
FS측 선수들은 도진에게 위로라도 건네고 싶었지만, 공수교대를 해야 할 시간.
지금 당장 그라운드로 나가야 했으므로 그 누구도 입하나 뻥긋하지 못했다.
무엇보다 이런 상황에서 어떻게 아군을 위로해야 하지?
방법을 몰랐다.
아군이 인종차별 발언을 듣는다?
흔한 경우는 아니었으니까.
만약 메이저리거에서 도진 정도의 에이스에게 이런 일이 발생했다면 곧바로 벤치 클리어링이 일어날 수도 있는 일이다.
하지만 도진은 묵묵히 글러브를 들고 중견수 방면으로 향했다.
선수들은 안쓰러운 표정으로 함께 더그아웃을 벗어났다.
FS의 주축 멤버들도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결국 FS 선수들의 사기는 바닥으로 축 가라앉았다.
그리고 깎인 사기는 경기력에서 전부 드러났다.
1회 말.
마운드에 선 페드로는 평소와 달랐다.
웬만해선 화를 내지 않는 그였지만, 마운드 상태가 마음에 들지 않는다며 애꿎은 흙을 발로 찼다.
핑계였다.
‘FS의 주장이 되어서 뭐 하는 짓이냐?’
도진에게 어떠한 위로도 건네지 못한 자신이 한심스러웠다.
이러한 복잡한 심경은 투구에서 고스란히 드러났다.
따-악!
선두 타자부터 안타를 맞았다.
마이크는 진정하라는 제스처를 보냈다.
페드로도 고개를 끄덕였다.
‘투구에만 집중하자.’
하지만 하필이면 선두 타자로 출루한 건 캘리포니아 도루 1위였다.
주자를 신경 쓰자니 타자가 신경 쓰이고.
타자를 신경 쓰자니 주자는 도루할 것만 같았다.
잡생각은 페드로의 발목을 비틀었다.
평소답지 않은 페드로의 구위는 하찮았다.
따-악!
2루수와 유격수를 빠져나가는 안타.
주자는 1, 2루.
3번 타자 찰스가 타석에 들어서자 페드로는 눈을 번뜩였다.
‘정신만 차리자. 충분히 무실점으로 이닝을 끝낼 수 있어. 그럼 분위기를 되찾아올 수 있다.’
하지만 페드로의 바람을 이뤄지지 않았다.
이런 싱숭생숭한 상황에서 정신을 차릴 수 없었다.
더군다나 불행한 일은 연달아 찾아오는 법.
5구 승부 끝에 유격수 강습 타구가 나왔다.
병살타 코스.
하지만 유격수의 실수가 나왔다.
그는 공을 한번 더듬었다.
에러.
주자 올 세이프.
병살타를 만들 수 있는 절호의 기회에서 무사 만루가 되었다.
그리고 다음 타자가 타석에 들어서자 침묵을 유지하던 관중들도 더는 새어 나오는 환호를 참지 못했다.
산타모니카의 자랑 데이브.
무사 만루에서 그가 타석에 들어섰다.
관중들은 더는 침묵하지 않았다.
“데이브! 데이브! 데이브!”
소수의 외침으로 시작된 연호였지만, 이제는 너나 할 것 없이 산타모니카를 응원하겠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그들의 목소리는 하늘에 닿을 만큼 거셌다.
그도 그럴 것이 선두 타자가 출루한 순간부터 연속 안타에 에러까지.
환호를 내지를만한 상황에서도 애써 참았으니까.
지금까지는 인종차별적 발언에 대한 미안한 마음을 표현하는 건 이제 충분하다고 여겼다.
더는 참지 않겠다는 그들의 목소리에 FS 선수들은 잔뜩 위축됐다.
고작 1회 말.
경기는 이제 시작됐을 뿐이지만 FS는 전의를 상실했다.
투수, 야수 할 것 없이 전부 패배가 드리웠다.
초구.
따-악!
그리고 결국.
데이브는 힘이 실리지 않은 페드로의 투구를 놓치지 않았다.
타구는 도진의 위로 쭉쭉 뻗어나가더니 그대로 담장을 넘겨 버렸다.
[그랜드 슬램! 데이브가 1회부터 만루 홈런으로 4타점을 챙겨갑니다!]데이브를 연호하는 관중들의 목소리는 거세졌다.
데이브는 1루를 돌아 2루로 향할 때는 별다른 표정을 짓지 않았다.
하지만 2루를 돌아 3루를 향할 때는 미간을 살짝 구겼다.
그러고는 알렉산더를 지나치며 나직이 읊조렸다.
“흥이 식었다. 생각보다 별거 없군.”
* * *
마이크는 심판에게 타임을 요청했다.
마이크의 타임에 선수들은 전부 마운드에 몰렸다.
페드로는 어금니를 꽉 깨물었다.
입을 뻐끔댔지만 목소리는 나오지 않았다.
이럴 때 주장으로서 선수들에게 힘을 실어줘야 했지만, 만루 홈런을 맞은 건 다름 아닌 자신이었다.
하지만 1회부터 만루홈런으로 4점을 실점한 투수가 발언을?
아무리 주장이라도, 팀을 이끌어야 하는 선수라도 격려하는 발언을 내뱉기 쉬운 상황은 아니다.
그러자 그때 알렉산더가 눈에 불을 켰다.
“경기는 이제 시작됐다. 다들 정신 차려라.”
알렉산더의 목소리는 조곤조곤했지만, 분노가 담겨 있었다.
“선배도 마찬가집니다. 지금까지의 공은 정말 형편없었습니다.”
알렉산더는 실수를 저지른 유격수에게도.
그리고 타격음이 들려오는 순간 전의를 상실했다며 곧장 움직이지 않았던 우익수와 좌익수에게도 쓴소리를 건넸다.
“여기서 지면 정말 아무것도 남지 않습니다.”
알렉산더의 일침에 페드로는 정신이 번쩍 들었다.
‘내가 무너져서 어쩌겠다고.’
적어도 팀의 주장인 자신만큼은 무너져서는 안 됐다.
아직 경기는 1회다.
FS의 저력이라면 충분히 따라잡을 수 있다.
1회 말 5번 타자부터 7번까지 완벽히 틀어막았다.
그리고 2회.
하위 타순에게서 연달아 아웃카운트를 잡아내며 1번 타자까지 아웃을 잡아 삼자 범퇴 이닝을 만들어냈다.
2회 초. 알렉산더의 발언으로 FS의 정신은 서서히 돌아오고 있었다.
하지만 7번부터 시작하는 FS의 하위 타선은 출루하지 못했다.
하지만 그냥 물러선 것은 아니었다.
최대한 투수의 힘을 빼내겠다며 이 악물고 타선에 임했던 것이었다.
그렇게 3회가 다가왔다.
타순은 1회와 똑같았다.
1번부터 시작하는 타순이었다.
알렉산더는 타석에 들어서려는 도미닉을 불러 세웠다.
“어떻게든 출루만 해라. 내가 책임져줄 테니까. 마이크! 너도 마찬가지다. 출루만 해라.”
이로써 알렉산더는 모든 선수에게 한마디씩 한 셈이 되었다.
딱 한 명. 도진만을 제외하고.
도진은 그제야 침울한 팀 분위기의 원인을 깨달았다.
‘나 때문이었구나.’
인종차별 발언 때문에 그렇겠지.
자신은 괜찮았다.
하지만 이 사실을 팀에 알리지 않았다는 것은 엄연히 자신의 잘못이었다.
야구는 팀 스포츠다.
팀이 하나가 되어야만 했다.
말로 안심시키지 않을 거라면 야구로 보여줘야 했다.
그런데 찬스에서 삼진을 당하지 않았던가?
중요한 상황에서 타점을 올리지 못했잖아?
만약 불평 대신 더욱 집중했더라면?
불리함을 극복하고 점수를 냈더라면?
‘이 지경까지 오지 않았겠지.’
지금에라도 괜찮다고 말해줘야 할까?
도진은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말뿐인 해명 따위는 필요 없어.’
지금은 선수들이 필요한 건 집중이다.
더군다나 알렉산더의 발언으로 도미닉과 마이크의 눈동자는 뜨겁게 타오르고 있었다.
아직 포기하지 않은 선수들의 타석이었다.
기회는 또다시 올 것이다.
도진은 자신의 안목을 믿었고 예상대로 맞아 들었다.
도미닉의 스윙은 호쾌했다. 망설임 따위는 찾아볼 수 없었다.
타구는 2루수 키를 넘어 우익수 앞까지 도달했다.
선두 타자 출루.
마이크는 타석에 들어서기 전 도진을 힐끗 쳐다봤다.
“너. 괜찮지?”
그는 괜찮을 것이다.
지금까지 겪어본 도진이라면 그랬다.
하지만 확신할 수는 없었다.
마지막 경기다.
이 경기 하나로 하이스쿨 인비테이셔널이 걸려 있다고 봐도 과언이 아니었다.
도진은 대답 대신 양쪽 입꼬리를 띠었다.
마이크도 덩달아 미소를 띤 채 타석으로 이동했다.
울분을 담은 그의 방망이는 불을 뿜었다.
따-악!
초구 패스트볼을 노려쳤다.
타구는 쭉쭉 뻗어 좌중간을 꿰뚫었다.
1루 주자는 3루.
마이크는 2루에 안착 후 주먹을 불끈 쥐었다.
“으랏차!”
도진은 마이크의 포효에 덩달아 주먹을 말아쥐었다.
무사 2, 3루.
1회와 똑같은 주자, 똑같은 상황, 똑같은 상대.
하지만 완벽히 같다고 말할 수는 없었다.
점수는 0:4.
타순도 2바퀴째였다.
‘여기서도 점수를 내지 못한다면…….’
아마 FS는 오늘 질 것이다.
그렇기에 분위기를 뒤집을 한방이 필요했다.
도진은 타석에 들어서기 전 대기 타석으로 나오는 알렉산더를 힐끗 쳐다봤다.
그 역시 뿜어내는 기세를 보아 아직 포기하지 않았다.
도진은 올라간 입꼬리를 유지한 채 타석에 들어섰다.
관중들에게서 야유는 들려오지 않았다.
대신 투수에게 괜찮다는 응원을 보냈다.
그럴 수밖에.
타석에 선 아시아인의 멘탈이 무너졌다고 생각했으니까.
은연중에 인종차별 발언이 들려왔던가?
아니. 공개적이었다.
그 어떤 선수가 대놓고 자신의 인종을 비판하는데 괜찮을 수 있겠는가?
또한 그는 무사 2, 3루에서 선취점을 뽑아내며 분위기를 끌어낼 수 있는 찬스에서 삼진을 당했다.
‘저 아시아인은 끝났어.’
‘오늘 경기를 뛸 상태가 아니야.’
‘어려운 경기일 줄 알았더니 너무나도 쉽구나.’
0-2 카운트.
도진에게는 하나의 스트라이크밖에 남지 않았다.
투수는 여유로웠다.
그는 잡아먹을 듯한 눈빛으로 도진을 덮쳤다.
‘이걸로 숨통을 끊어주마.’
학교 측의 응원이 과했다는 건 자신도 인정한다.
그래서?
극복해야 하는 건 선수의 몫이었다.
극복하지 못한다면 잡아 먹혀야 하는 약육강식의 세계였다.
3구를 앞둔 도진은 심호흡을 뿜어냈다.
하지만 표정만큼은 투수 못지않게 자신감 넘쳤다.
‘미안해서 어쩌지?’
투수의 표정을 보아하니 상당히 오해한 모양이다.
‘내가 무너졌을 거란 믿음이 너무 과한데?’
난 정말 아무렇지 않거든.
대신 이 사실을 자신만 알아서는 안 된다.
자신을 걱정하는.
그리고 자신을 얕보는.
이 경기를 지켜보는 누구에게도 증명하고 싶었다.
대신 야구 선수는 말보다는 야구로 보여줘야 하는 법.
3구.
공은 투수의 손을 떠났다.
역회전이 잔뜩 걸린 공이었다.
도진은 입꼬리가 꿈틀댔다.
번뜩이는 안광은 자칫 광인을 연상케 했다.
투수는 그것을 보았다.
그와 동시에 온몸이 굳어버렸다.
도진은 떨어지는 공에서 시선을 끝까지 놓치지 않았다.
아래에서 위로 퍼 올리는 어퍼 스윙.
투구는 배트의 스위트 스폿에 정확히 얹혔다.
따-악!
이미 굳어버린 투수는 타구를 따라가겠다며 고개조차 돌리지 못했다.
야수들은 동시에 고개를 떨궜다.
관중들은 예상 밖의 벗어난 결과에 심장이 턱 막혔다.
하지만 도진은 홈런을 친 것만으로 만족하지 않았다.
배트를 하늘 높이 던지더니 인종차별적 발언이 들려온 3루 관중석으로 고개를 틀었다.
그러고는 왼손으로는 자신의 턱을. 오른손으로는 자신의 뺨을 긁었다.
“우끼끼?”
원숭이 흉내였다.
‘우끼끼다. 이 개새끼야.’
인종차별?
어디 계속해봐.
백번 천번 홈런으로 갚아 줄 테니까.
도진은 아군 적군에게 자신의 건재함을 알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