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baseball genius who chews up America RAW novel - Chapter (46)
미국 씹어먹는 야구 천재-46화(46/400)
[슬라이더를 걷어 올렸습니다!] [타구는 좌중간 뒤로! 좌중간 뒤로! 담장을 그대로 넘겨 버립니다! 쓰리런 홈런!]투구가 배트에 맞는 순간 차갑게 식은 채팅창은 언제 그랬냐는 듯 다시 뜨거워졌다.
-OMG. OMG.
-Holy Cow! Holy molly!
-오오오 신이 돌아왔다!
-미쳤다! 미쳤어! 시련을 이겨내고 돌아왔다고!
곧이어 도진이 배트 플립 후 원숭이 흉내를 내자 해설은 흥분을 가라앉히지 못했다.
[어? 어? 저게 뭐죠?] [아! 원숭이 흉내입니다!]FS측의 채팅창은 불타올랐다.
행동의 유추해볼 수 있었으니까.
-진짜 미친 멘탈이다!
-원숭이? 뭐 어쩌라고?
-하나만 물어보자! 원숭이한테 홈런 맞는 네놈들은 도대체 뭐냐?
-뭐긴 뭐야? 원숭이보다 못한 존재지.
-미개한 놈들. 이기고 싶어서 더러운 술수까지 쓰죠? 그런데 안 통했죠?
-정의는 승리하는 법!
반면 산타모니카 측 해설은 아쉬워했다.
쉽게 갈 수 있다고 생각한 경기가 다시 팽팽해졌다.
그리고 도진의 과한 행동에 어떤 불만도 품지 못했다.
그를 도발한 건 산타모니카가 먼저였다.
관중도 결국 선수의 일부니까.
[3점 홈런. 세레모니. 이보다 완벽한 복수는 없습니다.] [확실히 그는 훌륭한 선수입니다. 인종차별 발언으로 그를 무너뜨릴 수 없습니다. 직접 증명해내지 않았습니까? 지금 분위기로만 봐서는 저희 산타모니카가 마치 악이 된 것 같습니다.]-WTF! WTF!
-F***! F***!
-저게 인간이냐? 저게 고등학생이 맞냐고!
점수가 순식간에 1점 차가 됐다.
하지만 아쉬움을 토로하는 채팅은 극소수였다.
여론은 돌아서고 있었다.
-FS의 킴. 넌 적이지만 인정한다.
-KIM? 아니 그는 KING이야.
-반할 것 같아. 개 멋있어.
-와 내 팔 보임? 온몸에 소름이 돋았다니까?
-보이겠냐? 네 얼굴도 안 보이는데.
채팅창은 이제 도진을 인정하는 부류가 훨씬 많았다.
미국은 실력 우월주의. 능력제다.
다인종이 모여드는 이곳은 실력이 뛰어나다면 존경받아 마땅했다.
무엇보다 영화에만 존재하는 히어로물.
미국은 그 히어로물에 열광한다.
그리고 도진은 방금 히어로 그 자체였다.
모든 고난과 역경을 딛고 완벽히 극복해냈으니까.
자신들이 그 불합리함을 겪었다면?
더는 이어붙일 수 없을 정도로 멘탈이 산산이 부서졌을 테니까.
그렇기에 도진을 향한 시선은 증오가 아닌 존경으로 뒤바뀌고 있었다.
* * *
해설과 채팅창뿐만이 아니었다.
산타모니카 고등학교의 한국 학생들은 마치 제 일인 양 그 누구보다 기뻐했다.
“이게 한국인이고!”
“이게 한국의 매운맛이지!”
“어떠냐 이 개! 아! 우리 학교니까 참아야겠지…… 라고 할 줄 알았냐? 개 같은 놈들아! 꼴 좋다!”
“두 번 다시 한국을 무시하지 마라!”
그들의 목소리는 경기장 내 누구보다 시끄러웠다.
다수의 불편하다는 시선이 그들에게 쏠렸지만, 한국 학생들은 당당했다.
그 어떤 시선에도 굴복하지 않겠다며, 눈치 따위는 보지 않겠다며 각오를 눈동자에 담았다.
제지? 주의?
해볼 테면 해보라지!
한국인을 욕한 저 미국인은 여전히 경기를 관람하고 있다.
자신들에게 주의를 준다?
이마저도 엄연한 인종차별이었다.
그리고 자신들을 건든다면.
뭉친 한국인의 매운맛을 제대로 드러낼 생각이었다.
한편.
인종차별 발언을 한 당사자는 죽을 맛이었다.
솔직히 생각을 입 밖으로 낼 생각은 없었다.
하지만 너무 경기에 몰입했던 탓에, 저 아시아인의 실력을 잘 알고 있었기에 은연중에 입 밖으로 튀어나왔다.
어쩌겠는가?
자신의 업보였다.
그만큼 마음은 불편했지만, 경기에서 이기고 있어 버틸 만은 했다.
하지만 정의 구현을 당한 지금은 쥐구멍에라도 숨고 싶었다.
모든 시선이 자신에 쏠렸다.
발가벗겨진 기분이었다.
선택의 기로에서 남성은 철판을 깔았다.
버텨내겠다며 어금니를 꽉 물었다.
저 시선이 무섭다고 경기장을 벗어난다?
그럴 수는 없었다.
잘못을 시인하고 물러난다면 미국인의 패배.
미국인에게 패배는 있을 수 없는 일이다.
그렇기에 생각을 달리했다.
‘미국인이 미국에서 야구 경기를 관람하는 것뿐이야. 저놈은 이방인일 뿐이라고!’
자신의 땅에서 모국 학교의 경기를 관람하는 게 무엇이 문제겠는가?
남성은 기필코 산타모니카가 승리하는 모습을 두 눈으로 지켜보겠다며 버텼다.
주위의 시선? 산타모니카가 승리한다면 어물쩍 넘어갈 것이다.
하지만 그때.
치어리더 복을 입은 여성이 그 남성 앞에 섰다.
“야. 너. 경기장에서 나가. 꼴도 보기 싫으니까.”
남성의 동공이 파르르 떨렸다.
“어? 어? 하리?”
1루 응원석에 있어야 할 차하리가 3루 관중석까지 도달했던 것이었다.
맑고 깨끗한 그녀의 외모에서는 나오지 않을 법한 날이 깊게 선 목소리는 분노가 담겨 있었다.
“못 들었어? 나가라고! 부끄럽지도 않아?”
“부, 부끄럽다니? 내가 왜?”
남성이 쌍심지를 켜며 반박했지만 하리는 물러서지 않았다.
이제는 그녀의 목소리에 증오가 더해졌다.
“왜? 왜라고? 정말 네가 내뱉은 발언의 의미를 몰라서 묻는 거야? 그 발언. 어디 나한테도 한번 해보던가.”
멘탈을 되찾고 기세등등하던 남성은 하리 앞에서 입하나 뻥긋하지 못했다.
차하리의 국적 또한 한국이며 유학생 신분이었지만 학교 내 인싸였다.
워낙 성품이 좋은 그녀는 전교생이 좋아했다.
그런 그녀에게 아득바득 대들 수 없었다.
남은 학교생활을 혼자 보내게 될 테니까.
남성은 결국 자리를 뜨겠다며 의자에서 몸을 일으켰다.
출구로 향하는 그의 발걸음엔 힘이 실리지 않았다.
하지만 하리는 서서히 멀어지는 남성을 다시 불러 세웠다.
“사과는 하고 가야지?”
남성은 어금니를 악물고 하리를 노려봤다.
하지만 분노를 집어삼킨 그의 눈빛은 그녀에게 일절 통하지 않았다.
결국 남성은 꼬랑지를 내렸다.
그러고는 홈 베이스를 밟고 이 부근을 쳐다보는 도진에게 시선을 돌렸다.
“미, 미안.”
개미처럼 속삭이는 목소리.
하리는 이번에도 그냥 넘어가지 않았다.
“똑바로 안 해?”
결국 남성은 도진을 향해 고개를 푹 숙였다.
“정말. 진심으로 죄송합니다.”
남성의 새하얀 피부가 벌겋게 달아올랐다.
그는 결국 가방으로 얼굴을 감싸며 경기장을 뛰쳐나갔다.
이 광경을 지켜보던 도진은 얼떨떨했다.
1점 차로 따라붙었다.
홈 베이스를 밟는 순간 아군과 얼싸안고 세레모니를 하겠다는 생각뿐이었다.
하지만 동료들은 세레모니에 가담하지 않았다.
먼저 홈을 밟은 도미닉과 마이크에게 하이파이브를 하겠다며 손을 번쩍 들어 올렸지만, 그들은 거절했다.
저 광경에 집중하라고.
사과부터 받으라고.
‘세레모니 대신 사과라.’
도진은 피식 웃었다.
자신에게는 사과 따위는 아무래도 상관없다.
경기에서 이길 수만 있다면 온종일 인종차별적 발언을 들어도 견딜 수 있었으니까.
물론 인종차별이 기분이 나쁘지 않다고 어물쩍 넘어간다면 그건 호구였다.
같은 인간으로서. 백인이 아닌 황인이라는 이유로 차별을 받아야 할 이유는 없었다.
‘하지만 힘없는 고등학생이 어쩌겠어?’
주먹으로 죽탱이라도 날릴 것인가?
폭력은 해결책이 되지 않는다.
‘차별에 맞설만한 최고의 수단은 바로 성공이지.’
성공 후라면 발언권이 생긴다.
그때도 이런 대우를 받는다?
가만히 있지 않을 것이다.
공론화를 시켜 얼굴도 들고 다니지 못하게 만들어야겠지.
그때면 충분히 해봄 직했다.
‘나를 옹호하는 사람들도 함께 맞서줄 테니까.’
그때가 오기만을 기다릴 뿐.
그냥 기다려서는 안 된다.
그만한 인물이 되어야만 했다.
‘하지만 지금은 또 달라. 동료들은 원치 않겠지.’
그들은 자신이 사과를 받고 훌훌 털어내길 바란 것처럼 보였다.
도진은 사과를 받겠다며 고개를 두어 번 끄덕였다.
그러자 한국 학생들은 목에 핏발을 세우며 도진의 이름을 연호했다.
“도진! 도진! 도진!”
도진은 원인 모를 감정에 휩싸였다.
이곳에서 늘 성으로 불리던 킴이 아닌 도진이란 이름이 들려왔기 때문이다.
손에 땀이 쥐어졌다.
심장이 두근거리며 감정이 복받쳐 올랐다.
‘난 혼자가 아니구나.’
자신과 같은 처지. 오로지 같은 민족에게서만 느낄 수 있는 고마움이었다.
‘이대로 넘어갈 수는 없지.’
도진은 오른손으로 모자를 벗어 2번 흔들었다.
그러고는 모자를 쥔 오른손을 자신의 가슴 가운데 대고는 살짝 고개를 굽혔다.
존경. 그리고 무한한 감사의 의미가 담겨 있는 인사였다.
하리는 고개를 45도로 꺾었다.
그러고는 천금과도 바꿀 수 없는 미소로 도진의 인사에 답했다.
* * *
3회 초.
스코어는 3:4.
FS는 1점 차로 따라붙었다.
노아웃. 주자는 없었다.
FS 해설은 소강상태로 가라앉은 분위기를 되살리겠다며 본분을 다했다.
[경기가 매끄럽게 진행되지는 않습니다만 깔끔한 마무리라고 생각됩니다.] [맞습니다. 솔직히 양 팀 다 께름칙했을 겁니다. 하지만 사과도 받았고 이제는 사고 없이 경기가 쭉 이어지리라 믿습니다.]-정의는 결국 승리했다.
-우리 선수들 표정이 완전히 돌아왔어. 지금부터 시작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야.
-이번 이닝에 동점을 만들거나 따라붙으면 좋으련만.
-분위기를 가져온 건 아니야. 홈런을 맞은 상대도 멘탈을 추스를 수 있는 시간이야.
여전히 FS는 1점 지고 있었다.
하지만 FS를 응원하는 시청자들은 충분히 이길 수 있다는 기대감이 있었다.
이번에 타석에 들어선 타자는 자신들의 기대를 어긴 적이 없었으니까.
[알렉산더. 타석에 들어섭니다.] [FS의 분위기가 꺾였을 때도 알렉산더만큼은 꺾이지 않았습니다. 마침 무사에 주자는 없습니다. 그를 거를 이유는 존재하지 않습니다.]타석에 들어선 알렉산더의 턱이 바삐 움직였다.
알렉산더는 데이브가 홈런을 치며 자신에게 읊조린 말을 떠올렸다.
‘흥이 식었다고?’
이런 도발은 과거에도 몇 번 있었다.
데이브와 자신은 중학교 때부터 라이벌이었다.
캘리포니아 내에서도 언제나 1, 2위를 다퉜다.
정확히 따지자면 자신은 언제나 그의 위에 섰었다.
중학 MVP는 단 한 명에게만 주어지는 타이틀.
그 주인공은 다름 아닌 자신이었으니까.
물론 지금 그의 실력은 뛰어나다.
성적 퍼포먼스 무엇 하나 빠지지 않았다.
하지만 알렉산더는 여전히 자신이 더 뛰어나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도발이 들어야만 하는 현 상황이 달갑지 않았다.
언제나 자신의 등 뒤만을 바라보던 경쟁자가 이제는 마치 앞서고 있다는 듯이 얘기했으니 말이다.
‘보여주도록 하지. 너와 나의 차이를.’
알렉산더의 안광이 빛났다.
‘지금은 나를 거를 수 없겠지.’
무사에 주자도 없는데 자신을 거른다면 투수와 포수에게는 지옥이었다.
자신은 타격도 타격이지만 발도 빨랐다.
도진이 FS에 합류하기 전까지는 팀 내 도루 부분에서도 1위를 차지했을 만큼 호타준족이었다.
물론 야구와 미식축구를 병행하는 바람에 부상 방지를 위해 이번 시즌에는 단 한 번의 도루도 하지 않았다.
그래도 오늘만큼은 달랐다.
기회만 된다면.
‘이길 수 있다면 부상이고 나발이고 모든 것을 내보이겠다고.’
상대도 이를 모를 리가 없었다.
‘대신 상대는 나를 잡고 분위기를 다시 가져오고 싶겠지.’
경기는 속행됐다.
제임스는 경기가 중단된 상태에서 포수와 이미 수많은 대화를 나눴다.
이번 이닝에서만큼은 알렉산더를 피할 수 없다.
정면 승부 말고는 선택지가 없었다.
그의 앞에 주자가 없는데 그를 선두 타자로 내보낸다는 건 재앙 속에 자신을 가두는 것이었다.
알렉산더를 출루시킨다면.
그 한 명뿐이었던 주자가 빚더미처럼 늘어나게 만드는 주루 능력을 갖추었으니 말이다.
알렉산더는 투수를. 그리고 배터리를 흔들 줄 아는 선수였다.
‘물러설 수 없다.’
포수와 투수의 생각이 교차했다.
절대로 물러설 수 없는 한판 승부가 시작됐다.
초구.
투수는 커브를 선택했다.
스트라이크 존으로 욱여넣을 수만 있다면 카운트를 잡을 수 있다는 확신이 있었다.
그 확신은 완벽한 제구로 이어졌다.
아름다운 포물선을 그리며 포수 미트로 향하는 커브에 알렉산더는 움찔했다.
노리던 공이 아니었다.
“스트라이크!”
투수는 주먹을 불끈 쥐었다.
포수 역시 티를 내지 않았지만 속으로 쾌재를 불렀다.
알렉산더는 잠시 타석에서 벗어나서 고개를 좌우로 한번 풀고는 투수를 쳐다봤다.
투수는 움찔했다.
초구 스트라이크로 유리하게 시작했음에도 알렉산더의 눈빛은 여전히 살아 있었다.
껌을 질겅대는 그의 표정은 마치 닥치는 대로 집어삼키겠다는 야수와도 같았다.
투수는 기세에 눌렸지만, 물러서겠다는 표정은 아니었다.
2구.
체인지업은 제구가 제대로 되지 않았다.
“볼!”
카운트는 1-1. 3구째.
투수는 스트라이크가 필요했고 타자는 손쉽게 스트라이크를 내줘서는 안 된다.
이 숨 막히는 상황에서 카운트가 불리해지는 쪽이 위험해지기 때문이다.
배터리는 사인을 주고받았다.
몸쪽 패스트볼.
제구만 된다면 카운트를 잡는 동시에 상대를 위축시킬 수 있다.
‘후우.’
알렉산더 역시 머리가 복잡했다.
4가지의 구종을 던질 수 있는 투수 때문이었다.
다양한 구종 때문에 어떤 하나의 공을 노리는 건 불가능했다.
그 사이에 공은 던져졌다.
몸쪽 꽉 찬 패스트볼은 그대로 미트에 꽂혔다.
“스트라이크 투!”
알렉산더는 투수의 완벽한 투구에 미간을 찡그렸다.
투수는 알렉산더의 표정을 놓치지 않았다.
‘승기. 잡았군.’
포수의 사인이 나왔다.
떨어지는 체인지업이었다.
패스트볼 이후에 체인지업은 위력적인 볼 배합이다.
한 치의 오차도 없는 흡사한 폼과 스핀.
대신 패스트볼과 다르다면 구속이 느리고 스트라이크 존 앞에서 떨어지니 삼진을 잡기 용이하다.
하지만 투수는 고개를 저었다.
‘좋지 않아. 오늘 체인지업 제구가 잘 안 돼.’
체인지업이 실투가 나는 순간 장타로 이어진다.
체인지업엔 구위 따위는 존재하지 않았으니까.
헛스윙을 끌어내지 못한다면 장타를 허용하는 구종이었다.
유리한 카운트에서 굳이 위험을 감수할 필요는 없었다.
포수는 결국 패스트볼 사인을 냈다.
투수는 고개를 끄덕였다.
공은 던져졌다.
타자의 가슴 높이로 날아오는 높은 패스트볼.
심적으로 위축된 타자에게 스윙을 끌어낼 수 있는 최적의 공이었다.
하지만 알렉산더의 선구안이 빛을 띠며 배트를 휘두르지 않고 참아냈다.
“볼.”
2-2 카운트.
이마저도 아직 투수의 카운트.
결정구를 던질 수 절호의 기회.
무엇보다 떨어지는 공과 높은 공을 전부 보여준 타자는 지금 혼란스러워할 터.
포수의 사인이 나왔다.
패스트볼.
투수는 고개를 저었다.
뒤이은 커브와 체인지업 사인에도 투수는 고개를 저었다.
남은 구종은 슬라이더뿐이었다.
포수는 의문을 품고 재차 슬라이더 사인을 보냈다.
그리고 이번에서야 투수는 고개를 끄덕였다.
포수 마스크 사이로 가려져 있었지만 그의 놀란 표정이 선명하게 보였다.
제임스는 슬라이더를 이닝당 1개씩만 던지기로 약속했으니까.
평소에 그가 입버릇처럼 했던 말이 있었다.
-미래를 위해 어깨를 소모품으로 만들고 싶지 않다.
하지만 이미 이번 이닝에 이미 도진을 상대로 슬라이더를 던지지 않았던가?
그런데도 그의 선택은 슬라이더였다.
자신이 정한 규율을 어기겠다는 것이었다.
그만큼 중요한 경기라는 뜻. 그리고 슬라이더라는 구종에 대한 자신감이었다.
제임스의 눈동자엔 확신이 비쳤다.
‘슬라이더라면 삼진 잡을 수 있다.’
투수는 자신감을 원천으로 곧장 투구했다.
역회전이 잔뜩 걸린 슬라이더.
알렉스의 배트가 나오자 투수의 입꼬리가 치솟았다.
‘내가 이겼다.’
이미 앞선 경험 덕분이다.
도진은 애매하게 스트라이크 존에서 뺀 슬라이더를 받아쳤다.
그렇기에 이번에는 아예 건들지 못하게 바닥으로 향하게끔 더욱 낮게 던졌다.
알렉산더의 눈이 번뜩였다.
‘슬라이더?’
예측 못 한 구종이었다.
‘이대로 배트를 휘두른다면 삼진이다.’
알렉산더는 어금니를 꽉 깨물었다.
배트를 멈춰 세우겠다며 어깨에 온 힘을 주었다.
그는 결국 초월적인 힘을 발휘해 배트를 멈춰 세웠다.
하지만 배트가 홈플레이트를 지나서 스윙이 됐는지.
아니면 제대로 멈춰 체크 스윙이 됐는지는 애매했다.
퍼억.
포수는 바닥에 원바운드 된 슬라이더를 제대로 블로킹했다.
그러고는 미트로 공을 짚더니 서둘러 1루심을 가리켰다.
스윙이 돌아갔냐고 묻는 것이었다.
1루심은 양손을 교차하더니 스르르 풀었다.
돌아가지 않았다는 판정은 3-2 풀카운트는 투수와 타자 그 누구도 물러설 수 없었다.
알렉산더는 배트를 말아쥐었다.
‘날 걸어내보내지는 않을 거다.’
굳은 믿음.
그들은 결국 맞더라도 정면승부를 할 것이란 확신이 있었다.
배터리는 사인을 주고받았다.
앞서 알렉산더가 꿈쩍도 못 한 몸쪽 패스트볼이었다.
투수는 와인드업했고.
공이 손을 떠나기 전 알렉산더의 왼쪽 입꼬리가 치솟았다.
‘몸쪽 패스트볼.’
투수는 공이 자신의 손을 떠난 즉시 직감했다.
알렉산더의 올라간 입꼬리가 너무나도 또렷하게 보였기 때문이다.
‘큰일이다.’
하지만 손을 떠난 공을 무를 수는 없는 법.
알렉산더의 스윙엔 일말의 망설임도 없었다.
따-악!
투구가 배트에 맞는 순간 알렉산더는 타구를 쳐다보지도 않았다.
그저 배트를 내동댕이치더니 1루로 발걸음을 옮겼다.
맞는 순간 홈런을 직감했으니까.
‘갔다.’
알렉산더는 1루를 돌아 2루로 향할 때도 무표정을 유지하며 껌이나 질겅질겅 씹어댔다.
하지만 2루 베이스를 밟는 순간에는 유격수 데이브에게만 들리게끔 목소리를 낮게 깔았다.
“흥이 식었다고? 깝죽대지 마라.”
3회 초.
스코어는 4:4.
경기는 원점이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