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baseball genius who chews up America RAW novel - Chapter (48)
미국 씹어먹는 야구 천재-48화(48/400)
8번부터 시작하는 FS의 타순은 4회에 삼자범퇴로 무기력하게 물러났다.
페드로는 4회 말에도 마운드에 올라 5번부터 시작하는 산타모니카 타순을 깔끔히 막아냈다.
5회 초.
마이크의 안타 도진의 번트로 1사 2루.
산타모니카는 알렉산더를 1루로 걸어 내보내며 후속 타자들을 상대했고 5번과 6번 타자는 범타로 물러나며 무득점.
5회 말.
많은 이들의 기대와는 다르게 도진은 등판하지 않았다.
도널드 감독은 용병술로 5회 말을 틀어막았다.
일명 화수분 야구.
1이닝에 3명의 투수를 내보내며 타자들이 투구의 적응하지 못하도록 교란했다.
그 결과 완벽히 틀어막을 수 있었다.
감독은 도진을 위해 이런 결단을 내렸던 것이었다.
6회 말을 승부처로 봤기 때문이다.
그리고 도진은 6회 말에 마운드에 올랐다.
산타모니카 더그아웃은 도진이 마운드에 오르자 하나같이 눈살을 찌푸렸다.
하지만 데이브만큼은 무덤덤한 표정이었다.
그는 2번과 3번 타자인 로버트와 찰스를 불렀다.
“이번 이닝이 마지막이라고 생각해라.”
이번 이닝에서 점수를 내지 못한다면 하위타선으로 연결된다.
산타모니카의 하위 타선은 다른 학교의 중심타선과 비교해도 손색없었다.
데이브는 도진을 힐끗 쳐다봤다.
‘그래도 점수는 내기 힘들겠지.’
마운드의 오른 투수의 기량으로 보았을 때 그랬다.
다른 학교의 중심 타선 또한 그의 공을 제대로 건드리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데이브는 평온한 표정을 유지했다.
더 나아가 선수들을 다독였다.
“부담 가질 필요 없다. 우리는 이 경기에서 비기기만 해도 된다.”
선수들은 하나같이 고개를 끄덕였다.
산타모니카는 이번 경기를 비겨도 리그 1위였다.
7회 초 FS의 공격이 남아 있었지만, 선수들은 불안해하지 않았다.
‘우리에게는 리그에서 단 한 번의 블론 세이브도 허용하지 않은 특급 마무리 투수가 있으니까.’
‘그는 지금 마운드에 선 투수와 비교해도 손색없지.’
모든 정황이, 승리의 여신이 자신들을 향해 웃어 주고 있었다.
그 덕에 이번 이닝. 타석에 들어서는 타자들은 부담을 떨칠 수 있었다.
도진은 타자가 더그아웃에서 성큼성큼 걸어 나오자 호흡을 가다듬었다.
‘이번 이닝을 완벽히 틀어막아야 한다.’
혹시라도 실점한다면 경기를 뒤집을 확률은 0에 가까워질 테니까.
하지만 도진의 얼굴엔 근심 따위는 묻어나오지 않았다.
그의 컨디션은 평소와 달랐다.
샌프란시스코 전과는 다르게 많은 이닝을 소화할 필요는 없었으니까.
감독의 배려에 최고의 컨디션으로 이닝에 임할 수 있었다.
도진의 눈은 마치 밤하늘을 비추는 별처럼 반짝 빛났다.
‘중심 타선. 힘으로 찍어 누르겠다.’
상대하는 타자들은 캘리포니아에서 지표면으로 10위 안에 드는 강타자들이다.
7회 마지막 공격만을 앞둔 지금.
저들의 기세마저 힘으로 찍어 누르겠다는 생각뿐이었다.
마이크는 도진의 눈빛을 읽었다.
‘그래. 네 뜻대로 가보자고.’
마이크는 중앙에 미트를 고정했다.
패스트볼. 따로 사인은 필요 없었다.
도진은 즉각 와인드업했다.
퍼억.
“스트라이크.”
한복판으로 향한 패스트볼이 시원하게 미트에 꽂히자 타자의 동공이 미세하게 흔들렸다.
곧이어 분노했다.
‘감히. 한복판에 던져?’
1점 승부가 될 경기다.
그런데 오만하게 한복판에 던지다니.
투수가 자신을 무시한다는 생각이 온몸을 지배했다.
2구. 타자는 스윙에 분노를 담았다.
퍼억.
하지만 그의 스윙은 허공만을 가를 뿐이었다.
“스트라이크 투!”
본때를 보여주겠다며 마음먹고 휘둘렀지만, 헛스윙이 나왔다.
타자의 분노는 공포로 뒤바뀌었다.
‘내가 칠 수 있을까?’
산타모니카 선수단은 도진을 공략하고자 특별한 훈련을 진행했다.
마운드에 선 투수를 이기겠다며 100마일에 달하는 피칭 기계를 통해 타격 훈련까지 했다.
그런데 자신의 배트는 그의 공을 칠 수 있기는커녕.
갖다 맞추지도 못했다.
타자는 전광판에 시선을 두었다.
전광판에 찍힌 구속은 100마일이 아닌 98마일의 공이었다.
연습 때 경험했던 공보다 덜 위력적이어야 정상이다.
하지만 투수가 던진 공은 고작 피칭 기계 따위와는 비교할 수 없었을 정도로 오금을 저리게 하는 구위와 구속이었다.
‘이, 이게 말이 되는 건가?’
타자는 있을 수 없는 일이라며.
그간의 노력을 헛되게 만들 수는 없다며 이를 악물고 3구째 배트를 휘둘렀지만, 도진의 한복판 패스트볼을 스치지도 못했다.
“스트라이카웃!”
타자는 허탈해하며 타석을 벗어났다.
3번 타자 로버트는 바통을 이어받고 타석에 들어서며 칠 수 있다는 확신을 배트에 담았다.
‘와라.’
하지만 타자의 확신은 그저 허황뿐인 허세가 되었을 뿐.
퍼억.
“스트라이크!”
미트에 꽂히는 순간 타자는 세상을 잃은 표정을 지었다.
‘도, 도대체 어떻게 돼먹은 공이지?’
분명히 한복판으로 날아오던 공이었다.
그런데 홈플레이트 끝에서 갑자기 눈높이까지 크게 솟아오르는 기분이 들었다.
하지만 미트에 꽂힌 패스트볼은 정확히 스트라이크 존에 걸려 있었다.
타자는 어금니를 빠득빠득 갈았다.
‘다음 공은 기필코 치겠다.’
하지만 그의 스윙은 공의 털끝조차 스치지 못했다.
퍼억.
“스트라이크 투!”
타자는 전의를 상실했다.
충격은 이루 말할 수가 없었다.
이래 봬도 자신은 캘리포니아 내에서는 팔방미인이었다.
기록이 증명했다.
타율, 타점, 장타 무엇 하나 빠짐없이 전부 뛰어난 지표를 기록했다.
하지만 지금 미트에 호쾌하게 꽂히는 투구는 자신의 수준으로는 절대 건들 수 없었다.
이게 어떻게 가능한 거지?
비단 투수라면 산타모니카의 중심 타선을 상대로 벌벌 떨어야 정상일 터.
하지만 벌벌 떠는 건 투수가 아닌 자신이었다.
이대로 물러설 수는 없다.
타자는 마지막 발악이라도 하겠다며 스윙해봤지만, 방망이는 허공을 갈랐다.
“스트라이크 아웃!”
6회 말.
2아웃.
산타모니카의 4번 타자.
캘리포니아 타율, 홈런, 타점 1위 데이브가 터벅터벅 타석에 들어섰다.
* * *
‘인정한다.’
데이브는 타석으로 향하면서 도진을 끝까지 노려봤다.
도진도 데이브의 눈을 피하지 않았다.
데이브는 결국 고개를 두 번 끄덕였다.
‘넌 내 예상보다 훨씬 대단한 놈이었군.’
데이브는 처음 그를 만났을 때의 기억을 머릿속에서 완전히 끄집어냈다.
처음 그의 투구를 접했을 때 범상치 않다고 생각했지만 그뿐이었다.
‘솔직한 말로 그저 먹잇감에 불과했지.’
특히나 재능을 개화하려는 선수들을 힘으로 찍어 눌렀을 때 느껴지는 쾌감은 이루 말할 수 없었다.
데이브는 여태껏 늘 그래왔다.
캘리포니아의 천재라고 불렸던 상대들을 자신의 발아래 무릎을 꿇렸다.
도진도 그렇게 되리라 믿었다.
하지만 그는 쓰러지는 대신 더욱이 태산만큼이나 굳건하게 버티고 있었다.
데이브는 전광판을 힐끗 쳐다봤다.
‘4대4라고?’
예상에는 없던 스코어였다.
이곳은 산타모니카 홈. 상대는 고작 FS였다.
그런데 자칫 잘못했다간 자신들이 나락으로 떨어지기 일보 직전이었다.
하지만 데이브는 당황하는 대신 마음을 추슬렀다.
‘결국 우리의. 그리고 나의 승리다.’
캘리포니아 내에서 자신을 앞서는 선수는 없었다.
지금도 그랬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지금까지 나의 노력은 헛되이 되지 않을 거다.’
자신은 야구 재능을 갖췄다.
하지만 재능만으로 으스대지 않았다.
‘나는 이 재능을 개화하고자 쉬지 않고 노력했다.’
수없이 배트를 휘둘렀다.
코치와 감독은 적당히 하라며.
몸 상한다며 뜯어말렸음에도 멈추지 않았다.
학교에서 배트를 휘두르지 못할 땐 집에서 휘둘렀다.
그로 인해 손목에 무리가 와 작년 시즌을 통째로 날렸지만, 후회는 없었다.
데이브의 안광이 타오르기 시작했다.
‘우리가 하이스쿨 인비테이셔널에 진출한다.’
그리고 산타모니카는. 자신은 그 목표에 단 한 발자국만을 남겨두고 있었다.
그런데 그 한 발자국을 내딛지 못하고 있었다.
마운드에 선 아시아인은 산타모니카의 진로를 방해하는 굳건한 벽이었다.
데이브는 도진의 눈을 또렷이 쳐다봤다.
일절 흔들리는 모습은 찾아볼 수 없었다.
‘너는 나와 동류구나.’
그는 포식자였다.
하지만 포식자끼리 붙어도 결국 강한 쪽이 이긴다.
데이브는 더 강한 포식자는 자신이라며 타격 자세를 잡았다.
데이브가 타격 자세를 잡자 도진은 심호흡을 뿜어내며 글러브 안에 오른손을 넣었다.
한편 도진은 데이브를 의식하지 않고 있었다.
‘미국에서 야구를 하게 돼서 다행이야.’
자신은 한국에서보다 야구를 훨씬 즐기고 있었다.
하지만 그냥 즐기는 것만으로 끝내고 싶지 않았다.
한국인으로서.
한국 역대 최고의 재능이라고 불렸던 자신의 끝이 어딘지 알고 싶었다.
‘내가 이긴다. 이 승부도. 그리고 경기도.’
도진은 사인이 나오지 않았음에도 곧장 와인드업했다.
마이크는 깜짝 놀랐지만 금세 중앙에 미트를 고정했다.
‘그래. 어차피 너 없었으면 여기까지 오지도 못했어! 하고 싶은 대로 해라!’
데이브도 도진이 고개를 끄덕이거나 젓지 않고 곧바로 투구 동작에 들어가자 심히 놀랐다.
하지만 그의 양쪽 입꼬리는 치솟았다.
‘그래. 제대로 붙어보자!’
데이브는.
마이크는.
도진이 어떤 공을 던질 줄 알고 있었다.
모를 수가 없었다.
한복판 패스트볼을 예고한 것이나 다름없었다.
도진의 손을 떠난 공은 곧장 미트로 향했다.
데이브는 눈을 번뜩이며 스윙했다.
그의 스윙에는 일말의 망설임 따위는 없었다.
‘눌러버리겠다.’
데이브는 결과가 아직 나오지 않았지만, 자신의 승리라고 확신했다.
지금까지 힘 대 힘으로 붙었을 때 자신은 단 한 번도 패배한 적이 없었으니 말이다.
따-악!
공이 배트에 닿았다.
그 순간 데이브는 이미 한껏 솟아오른 입꼬리가 더욱 치솟았다.
하지만 채 0.1초도 되지 않아 입꼬리는 가라앉았다.
파앗!
배트가 산산조각이 나며 파편이 공중에 흩날렸기 때문이다.
‘타구는?’
실낱같은 희망을 부여잡고 싶었지만, 데이브는 허탈한 표정을 지었다.
배트가 산산조각이 났다.
타구가 뻗어나갈 수나 있겠는가?
‘내가 졌구나.’
힘에서 짓눌렸다. 완벽한 패배였다.
당연히 타구는 내야조차 벗어나지 못했다.
타구는 도진의 글러브 안으로 쏙 들어갔다.
* * *
[투수 플라이! 킴이 데이브의 배트를 산산조각 내며 아웃 카운트를 올립니다!] [정확한 타이밍에 휘둘렀습니다. 하지만 이 숨 막히는 대결의 승자는 FS의 도진 킴!]해설의 힘 있는 목소리에도 채팅창은 여전히 조용했다.
시청자들은 이 숨 막히는 상황에서 한치의 입도 뻥긋하지 못했다.
도진이 데이브를 잡아낸 것은 충분히 칭찬할만한 일이다.
하지만 아직 경기는 끝나지 않았다.
7회 초.
이번 이닝에서 점수를 내지 못한다면?
모든 것이 무위로 돌아갈 테니까.
불펜에서는 산타모니카의 마무리 투수 조세프 브라운이 기세등등하게 마운드에 올랐다.
도진은 투수가 연습 투구를 진행할 때 마이크와 도미닉을 불렀다.
“사이드암. 싱커형 투수는 우리에게는 생소하다.”
도미닉과 마이크는 마른침을 꼴깍 삼키며 고개를 끄덕였다.
영상으로는 이미 수없이 접해봤을 뿐 실전은 처음이었다.
“아웃당해도 괜찮으니까 최대한 공을 많이 봐줘. 그리고 궤적도 세세하게 설명해줘야 다음 타자에게 도움이 될 거야.”
공을 많이 본다는 건 카운트가 몰릴 수도 있다는 증거.
보편적으로는 타자는 바뀐 투수의 초구를 노리는 것이 정석이다.
마운드에 선 투수는 스트라이크로 기분 좋게 이닝을 시작하고 싶어한다.
그 때문에 카운트를 잡으러 들어오기 때문이다.
그때 휘두르면 안타가 나올 확률도 낮지 않았다.
하지만 도미닉과 마이크는 도진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며 수긍했다.
그의 눈동자와 목소리에 묻어난 간절함 때문이었다.
“최대한 지켜볼게.”
“물고 늘어지겠다.”
무엇보다 부탁한 당사자가 도진이었다.
자신들보다는 그를 믿는 편이 승리할 확률을 조금이라도 높이는 것이었다.
도미닉은 쉽게는 물러서지 않겠다며 타석에 들어섰다.
하지만 뱀처럼 휘어져 들어오는 싱커는 충격 그 자체였다.
결국 도미닉은 3구 만에 삼진을 당했다.
그는 눈물을 머금고 도진의 앞에서 머리를 푹 숙였다.
“괜찮아.”
도진은 도미닉의 어깨를 도닥였다.
하지만 지금은 1초도 그냥 허비해서는 안 된다며 재차 입을 열었다.
“도미닉. 구질은 어땠지?”
구질. 궤적을 묻는 것이었다.
똑같은 구종이라도 선수마다 구질은 전부 달랐다.
도미닉은 어금니를 꽉 깨물며 입을 열었다.
지금은 상심에 빠져서는 안 됐다.
“공이 좌측으로 휘어져 나가는 것 같다가 갑자기 우측으로 감아져 들어왔어. 그리고 공이 떠오르는 듯 보이지만 결국 가라앉았어.”
도미닉은 나름 세세하게 설명했지만, 일반적인 싱커가 보편적으로 저랬다.
자신도 설명이 부족하다는 것을 인지하며 양옆을 빠르게 훑었다.
“잠깐만.”
도미닉은 공 하나를 손에 쥐었다.
말로는 설명이 모자랐는지 온몸을 사용해서 휘어져 들어오는 궤적을 설명했다.
“이런 느낌이었어.”
“고마워. 무슨 말인지 알 것 같아.”
도진은 도미닉의 설명에 큰 도움을 받았다.
멀리서 지켜볼 때와 타석에 들어섰을 때 느낌은 다르다.
가까이서 봤을 때 대부분 공의 무브먼트가 훨씬 심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도미닉은 휘어져 들어오는 궤적까지 완벽하고 세세하게 표현해줬다.
이제는 눈에 익기만 하면 된다.
하지만 공이 눈에 익으려면 몇 번은 더 지켜봐야 했다.
타석에 들어선 마이크도 이를 알았다.
‘킴이 1구라도 더 지켜볼 수 있게 해야 한다.’
마이크는 배트를 짧게 잡았지만, 안타를 치겠다는 생각은 지웠다.
2구까지는 스트라이크 존에 꽂히는 공에 반응도 하지 않았다.
괜히 배트를 휘둘렀다가 공을 건드리기라도 한다면?
안타가 나온다면 다행이겠지만, 범타가 나온다면 공 한번을 더 볼 수 있는 기회를 놓치는 것이었다.
‘1구, 1구가 소중한 지금 그럴 수는 없지.’
하지만 3구째부터는 장기인 배트 스피드를 활용해 공에서 시선을 떼지 않고 끝까지 따라가 스윙했다.
틱.
틱.
틱.
3구 연속 파울 타구.
카운트는 0-2지만 투수는 마이크의 타석에서만 6개의 공을 던졌다.
마이크는 7구째 헛스윙하며 삼진을 당했다.
그는 마치 죄인인 양 터덜터덜 더그아웃으로 발걸음을 돌렸다.
그러고는 도진의 앞에 서서 고개를 푹 숙였다.
“미안하다.”
도진은 최대한 마이크가 상심하지 않게 아무렇지 않다는 듯이 말했다.
“아냐. 충분히 잘해줬어. 덕분에 눈에 완전히 익었거든.”
진심이었다.
7구 승부는 타자가 최선을 다한 결과물이다.
마이크는 도진의 어깨에 손을 얹었다.
믿는다는 뜻이 내포되어 있었다.
“믿어라. 꼭 해낼게.”
뒤이어 알렉산더는 타석에 들어서려는 도진을 붙잡았다.
“여의치 않으면 걸어 나가라. 내가 해결하겠다.”
알렉산더의 눈빛은 이글이글 타오르고 있었다.
도진은 대답 대신 미소를 띠었다.
그러고는 타석으로 터벅터벅 걸어갔다.
‘그래. 너라면 충분히 칠 수 있겠지. 하지만 걸어 나갈 수 있을지는 모르겠다.’
걸어 나간다는 것은 투수의 실수가 필요한 법.
하지만 그는 지금까지 원하는 코스에 투구했다.
제구력이 뛰어난 투수에게 걸어 나간다는 생각은 하지 않는 편이 좋았다.
알렉산더도 이를 모를 리가 없었다.
그리고 그는 자신의 마음을 편하게 해주기 위함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내가 해결해야 한다.’
도진은 타석에 들어섰다.
투수는 오늘 최고의 컨디션이었다.
원하는 코스로 팍팍 꽂히는 자신의 싱커가 이유이자 증명이었다.
그렇기에 투수는 도진에게 생각할 시간을 주지 않겠다며 곧장 와인드업했다.
공은 투수의 손을 떠났지만, 도진은 스윙하지 않았다.
대신 뱀처럼 휘어져 들어오는 구질을 눈을 부릅뜨며 재차 점검했다.
‘도미닉의 설명, 그리고 지금까지 대기 타석에서 내가 본 그대로다.’
2구.
투수의 표정엔 자신감이 넘쳤다.
이 희소성 있는 공을 타자가 반응하지 못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는 재차 자신 있게 와인드업 후 공을 던졌다.
하지만 이번만큼은 타자의 반응은 달랐다.
초구는 그냥 지켜봤을지언정.
손을 떠난 2구와 동시에 도진은 왼쪽 다리를 들어 올렸기 때문이다.
레그 킥.
하체에 힘을 실어 더욱 공을 뻗게 만드는 타격 방법.
‘미안한데. 끝났어.’
도진은 들어 올린 발로 바닥을 강하게 짓눌렀다.
지체 없는 스윙에는 힘이 실렸다.
스윙하는 순간에도 머릿속에서 투수의 궤적을 반복해서 그렸다.
도진은 투수의 공이 스트라이크 존으로 꺾여 들어오자 눈을 번뜩이며 전신에 힘을 실었다.
따—악!
도진의 힘찬 스윙은 혜성처럼 타오르는 공을 하늘로 날려 보냈다.
타구는 마치 천상의 지평선 속으로 향하듯 쭉쭉 뻗어나갔다.
전광판을 맞춰버린 이 타구는 결승 타점이 되었다.